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50화 (150/206)

#  150

150. 멍청함과 경험치의 상관관계

[넌 대장을 왜 따라오는 거야?]

팽은 궁금했다.

치용, 인준, 유진 셋 다 독특한 인간들이다.

특이하고 이상하다.

그중 최고는 역시 이 인간이다.

“알아서 뭐하게?”

싸우지 않을 때, 그는 생각보다 예의가 바르다.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고, 얌전하다.

생고기라도 뜯게 생겨서, 양념 발린 돼지 갈비를 좋아하며 스테이크를 싫어한다.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뭘 기다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팽은 이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런 쪽으로 감각이 날카로웠다.

셋 중 가장 독특하며 짐승 같은 이다.

대장을 따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불현듯 호기심이 끓어올랐다.

대답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팽은 이 짐승 같은 남자, 김치용과 대화를 나눈 숫자가 손에 꼽았다.

“지구에서부터 지금까지, 형님 옆이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다.”

팽은 자신의 질문을 멀쩡히 들었는지 의심했다.

왜 따라오냐고 물었고, 그는 대장의 옆이 가장 치열한 전장이라고 했다.

그녀는 치용과 대화를 나누는 걸 왜 싫어하는 지 새삼 떠올렸다.

“으함. 졸리다. 잔다.”

이 자는 대화상대로는 최악이다.

제 할 말만 하고 만다.

이자와 그나마 가장 많이 말을 나누는 건, 인준이었다.

반은 싸움이었지만, 둘은 친근해 보였다.

‘전장에 서고 싶어서?’

전투 민족인 콴인가?

싸우기 위해 산다?

팽은 곰곰이 생각했다.

혹시 저자는 싸우는 것보다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

“후욱.”

치용은 호흡을 아꼈다.

누군가 푸딩을 10리터쯤 몸에 쏟아부은 것 같다.

끈적끈적하고 물컹한 감각이 전신을 감쌌다.

‘좋진 않네.’

그렇다고 적응하지 못할 리는 없었다.

1년 동안 놀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모드에서 벌써 여러 번 겪은 상황이다.

슈우우웅!

두두둥!

적의 함선 사이로 비틀 쉽이 들어갔다.

사방에 적만 바글바글하다.

스킬은 두 개.

중갑과 육감.

중갑은 노블 에너지의 방어막, 그러니까 소형 배리어를 전신에 감싸는 용도다.

그리고 육감은 몸을 중심으로 반경 45cm 이내의 공격 감지다.

퉁.

비틀 쉽을 박찼다.

쉽이 기우뚱하고 균형을 잃는다.

“야!”

밑에서 인준이 사납게 외쳤다.

건방진 놈이다.

치용은 무시하고 하늘을 날았다.

몸을 쓰는 건, 세주보다 더한 재능을 가졌다.

프로비던스는 김치용을 그리 평가했다.

그는 검은 우주 공간을 비상하는 매처럼 푸른빛을 뿜어내며, 함선 사이를 가로질렀다.

트레이! 트레!

통역기는 껐다.

지금부터 적의 목소리가 전하는 뜻은 필요 없다.

‘다 죽인다.’

완벽한 전투 모드로 돌아선 치용의 눈에 커다란 함선이 보였다.

‘큰 칼.’

오른손에 들린 블레이드 그립에 커다란 도끼날이 생긴다.

후왕!

치용은 서슴없이 그걸 내리그었다.

쩍하고 배리어가 잘린다.

그 안으로 뛰어든 치용의 손에는 블레이드 그립 대신 두 자루 샷건 쥐어져 있었다.

그의 총기는 벌써 몇 번의 개조를 거듭하면서 탄창을 없앴다.

탄약은 딱 두 발, 양손 도합 네 발이면 충분하다.

멀리서 맞출 필요도 없으니, 조준선도 가늠 좌도 필요 없다.

필요한 건 오직 위력뿐이었다.

꽝! 꽝! 꽝! 꽝!

샷건의 총구가 함선 외벽을 향해 불을 뿜었다.

근거리에서 맞으면 세주의 아머도 깨진다.

젤라틴 배리어, 배리어로 짠 실만큼이나 약한 외벽을 감싼 젤리 형태의 배리어로는 열 겹도 부족하다.

적의 함선 외벽에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린다.

마치 거인이 나타나 주먹질이라도 한 것 같았다.

퉁!

탄피배출구에서 따끈하게 데워진 쇳덩이가 튀어나온다.

광탄을 기반으로 하나 쏘는 방식은 화약총과 흡사하다.

위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다.

‘하나.’

언젠가 전투에 들어가게 되면 인준과 내기를 하기로 했다.

‘자식이.’

애초에 병과가 다르니, 잡는 숫자가 달라진다고?

‘내가 바로 김치용이다.’

“크허허허헝!”

치용은 거친 기합을 토했다.

입에서 나오는 우렁찬 외침과 함께 치용이 함대 안으로 뛰어들었다.

위이이이잉!

사방에서 기계 덩이가 몰려온다.

꽝! 콰직!

샷건이 불을 뿜고, 가까이 다가온 적을 향해 도끼를 휘두른다.

외눈에서 붉은 렌즈를 단 놈에게는 도끼를 휘두르고.

앞쪽에서 광학 라이플을 든 놈에게는 샷건을 먹인다.

꽈광! 콰자자작!

적을 가른 것도 모자라 함선의 내벽을 부순다.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고 날뛰는 야생마다.

지금 이 순간, 치용을 가로막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흠칫.

한참을 날뛰던 치용은 등 뒤에서 무언가 날아오는 걸 느꼈다.

아니, 느끼는 정도가 아니다.

투척형 에너지 블레이드.

크기는 12cm.

육감 스킬이다.

훅하고 치용이 몸을 바짝 숙였다.

바닥에 닿을 만큼 자세를 낮춘 채로 뒤를 향해 샷건의 방아쇠를 당긴다.

꽝!

이제까지 적을 분쇄하던 그의 샷건이 처음으로 막혔다.

후아앙! 콰가가가각!

도끼를 크게 휘두르자 반경 안에 있던 바이탄이 모두 상하로 나뉘어 바닥에 쓰러졌다.

깜빡깜빡. 팟.

한참 난리를 치는 중에 전력 장치라도 건드렸는지, 조명이 깜빡거리다 꺼졌다.

치용은 도끼날을 들었다.

푸르스름한 빛이 주변을 밝혔다.

사방에 뜬 붉은 렌즈의 빛이 치용을 노리고.

그의 정면.

보통의 바이탄과는 다른 개체가 서 있었다.

[인간 주제에]

[자살인가?]

한쪽은 겨우 자신의 반도 되지 않을 정도로 작다.

에너지 블레이드를 날린 놈이다.

그의 양팔에 치용에게 날린 블레이드 그립이 빡빡하게 꽂혀 있다.

겨우 130cm나 될까한 작은 기계는 렌즈의 빛을 깜빡이며, 명백한 분노를 보였다.

그리고 그 바로 옆, 치용보다 큰 놈이다.

둥글둥글한 몸체에 각진 부분이 없다.

치용이 편의상 한쪽을 난장이, 한쪽은 뚱보라고 호칭을 정해뒀다.

“자기소개 해봐.”

치용은 상대가 궁금했다.

보통은 아니다.

전장이라는 수라장을 헤쳐 온 치용의 감이 말하고 있다.

[텐]

작은 쪽이 입을 열고 렌즈의 불빛을 가늘게 만든다.

인간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더니, 정말 비슷하다.

[나인]

실버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숫자로 호칭되는 바이탄.

“하느님이 보우하사 세주 형님 만세다.”

[뭐?]

실버와 반세주와 1:1로 싸울 수 있는 개체들.

넘버링이 박힌 바이탄이 둘이다.

치용은 그 사실이 너무도 기뻤다.

“하나하나 찾아다니기, 졸라 귀찮았다. 덤벼. 커허헝!”

일타이피. 치용은 지는 건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

치용이 뛰어나가고, 세주는 조용히 벼락을 꺼냈다.

싸움의 승패는 무엇이 정하는가?

비틀 쉽에서 엎드린 채, 앞을 본다.

함선이 떠다닌다.

치용은 돌격에 최적화된 전투력을 갖췄지만, 혼자서 함대를 상대할 순 없다.

인준의 막강한 화력은 함선을 상대할 수 있지만, 함대는 무리다.

유진이야 말할 것도 없다.

세주는 조용히 탄환을 준비했다.

‘꺼내.’

-오케이.

촤르르륵.

세주의 바로 옆, 비틀 쉽 동체 위로 단단한 선반이 생겼다.

엎드린 채로 손이 닿는 낮은 선반이다.

콰우우.

묘기에 가까운 비행은 팽에게 맡겼다.

세주가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전장의 판도를 바꾸는 스나이퍼.

그게 자신이니.

일격일살, 한 방에 함선 하나씩 깨부수는 거다.

‘위치.’

칼큐레이팅 모드를 돌리는 프로비던스의 렌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재밍 때문에 적을 전부 파악할 순 없지만, 아군은 아니다.

맵 위로 자신을 제외한 넷의 위치가 뜬다.

그들이 있는 함선은 제하고, 나머지 전부.

그게 세주의 목표다.

‘오늘의 할당량을 채워보자고.’

남은 에너지를 부어 만든 탄이 선반에 가득했다.

한 발, 한 발이 전부 에너지 불릿, 애비탄이다.

파지직.

스파크가 튀는 탄을 든 세주는 숨을 내쉬었다.

“후우.”

화륵.

동시에 전신으로 에너지가 타오른다.

번업 상태에서 엎드린 채, 조준경을 겨눈다.

두두두둥. 두둥.

천천히 소리가 사라진다.

혼자만의 세계가 시작되고, 먼 곳의 물체가 눈앞에 다가온 듯 선명하게 보인다.

세주는 짜릿한 감각이 발끝을 스치는 걸 느꼈다.

전신의 신경이 모두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집중하는 순간이다.

검지가 천천히 안으로 당겨진다.

틱.

그런 소리가 머릿속으로 들렸다.

꽝!

첫발이 그의 총열을 지나 떠난다.

꽝!

우주에서도 세주의 벼락은 어김없이 두 번 울렸다.

그리고 상대의 함선 중앙에 거인의 탄환이 꽂혔다.

꽈과광!

함선이 폭발한다.

화염과 폭발의 힘을 담은 탄이다.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아깝다.

프로비던스가 절로 이런 소리를 할 만큼 고에너지가 깃든 탄이기도 하고.

오프.

세주는 싸움을 시작하기 전, 가상에 스위치를 만들었다.

집중 상태를 껐다 켰다 하기 위해서다.

한 발을 쏜 후, 다시 오프.

다시 겨눈 뒤, 온.

집중 상태는 오버 클럭의 마이너 버전과 같다.

쓰면 쓸수록 몸에 부담이 온다.

그렇기에 궁리했고, 해답을 찾아낸 그였다.

꽝! 꽝! 꽝!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총 열다섯 발.

열다섯 척의 함선을 박살 낸 직후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묘기였다]

투박한 기계음에 섞인 목소리다.

-느림보 녀석들.

프로비던스가 투덜거렸다.

무려 열다섯 발이다.

이제야 세주를 잡으러 오다니, 안일하다.

“반갑다. 친구야.”

세주가 생긋 웃으며 인사했다.

[난 세븐]

바이탄의 수장이 낳은 열셋의 괴물 중 하나다.

최속의 안드로이드도 있었고, 나노 안드로이드도 있었으니.

저놈도 특이한 능력이 있을 거다.

세주는 묵묵히 엎드린 채, 그를 봤다.

어떤 능력일까 나중에 궁금할 것 같았다.

실버는 말했다.

인간을 흉내 내 만든 안드로이드는 모두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고.

적을 발견하고 일단 말부터 건다는 말이다.

안일하다. 병신들의 집합이다.

약점이자 허점이었다.

세븐의 위로 공간이 일렁인다.

징!

놈의 목이 급히 위로 꺾였다.

적을 감지하자마자 보이는 반응은 일등급이다.

하지만 허술하다니까.

휘릭.

허공에서 빛이 반짝였다.

가늘고 단단한 푸른 선이다.

연상은 강철 와이어, 만든 건 유진의 손에 잡힌 블레이드 그립이다.

닿는 것만으로 강철조차 가르는  절삭력을 지닌, 에너지 와이어가 적의 목을 감쌌다.

세븐이라 밝힌 안드로이드의 손이 위로 들리려 한순간이다.

서걱.

유진이 와이어를 당겼다.

정면 대결로 치자면, 유진보다 한참은 위험한 놈이다.

하지만 이곳은 전장이고, 허술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목숨을 잃는 곳이었다.

전쟁은 무력이 아니라, 상황과 판단력으로 하는 것이다.

세주는 프로비던스를 통해 많은 걸 얻었지만, 처음 했던 그 생각에 변함은 없었다.

그러니까, 세주와 수호신 부대는 지금 군단을 막는 게 아니었다.

머릿수만 많은 머저리를 막는 거지.

‘위험하긴 개뿔이.’

-그러게.

프로비던스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 두 개다.

적의 멍청함과.

세주와 부대원의 경험치다.

그들은 이미 백전노장을 넘어, 전장에서만큼은 일당천의 전투력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꽈광!

비틀 쉽 배리어를 뚫고 부서진 함선 파편이 날아왔다.

[대장, 이제 이 배리어로는 무리야]

팽의 말이 들렸다.

“잠깐만.”

일당천이라고는 해도, 실제로 숫자를 그렇게 죽일 수 있는 전투력을 지닌 이는 둘뿐이다.

하나는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말투가 고약한 부대원이다.

세주는 자신의 머리 위쪽, 말투가 고약한 부대원이 있는 걸 봤다.

‘캬, 남자의 로망이다.’

-개뿔.

비틀 쉽 바로 위, 인준이 양쪽 어깨에 9연발 로켓을 단 아머를 입고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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