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148. 비장의 수
“미확인 함선 발견!”
기습이란 두 글자에 어울리는 액션을 취하기도 전이다.
반세주가 돌아온 지 반나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시간상으로는 새벽쯤이다.
어두컴컴한 배경이 전부인 우주지만.
2교대로 승선 인원을 나눈 함선이기에 지금이 어느 때인지는 알았다.
지구에 있었다면 새벽 3시경.
다음 날 아침, 출진을 앞둔 컴컴한 밤이다.
지구의 함선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반나절 전, 반세주의 습격 덕분에 예행연습이 돼버렸다.
“통신 연결합니다.”
“통신 연결 거부.”
잠에서 깬 나호필이 나타난 건 그때쯤이었다.
미확인 함선을 발견하고 초동 조치가 다 끝나기도 전이다.
수면이 부족한 그는 충혈된 눈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함대 내 승선 인원은 함선당 최소 1,000명이다.
외계인이 겨우 백여 명으로 함선을 기동한 것에 비교하면 많은 숫자다.
하지만 그만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많은 숫자는 그만큼 나호필의 부담이기도 했다.
낭떠러지 사이를 가는 줄 하나로 매달고 가는 착각이 들었다.
말 한마디에 22척의 함선에 탄 22,000명이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다.
“담대하게 가자.”
옆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반세주다.
“안 잤어?”
“잤지.”
“부럽네.”
D를 먹은 이들은 일반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강력한 육체를 가진다.
피로를 회복하는 속도도 다르다.
“내 얼굴이?”
미친놈이랑 상종한 자신을 잠시 탓하며 나호필은 고개를 들었다.
“사형포 준비.”
단시간에 준비해서 쏠 수 있는 최강의 화력이다.
그 이후부터는 준비가 필요하다.
그게 인간이 가진 기술의 한계였다.
“싸이클롭스 부대 출격 준비.”
나호필은 주저하지 않았다.
통신을 받지 않는 미확인 함선 뒤, 태양을 등진 함선들이 보였다.
미확인 함선이라니.
‘미확인 함대겠지.’
바글바글한 숫자다.
그들의 함선과 닮은꼴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적이다.”
반세주가 옆에서 말했다.
나호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 그 한 글자만은 진실이었고, 사실이었다.
“전방 여덟 척, 발포 준비 완료.”
“쏴.”
“육형포 준비해!”
나호필이 외쳤다.
그 사이 함대 밑으로 사이클롭스 부대가 대기했다.
빠르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훈련을 수없이 해왔다.
느리다면, 그것대로 분통 터질 일이다.
목숨을 걸고 훈련한 보람을 찾을 때였다.
콰우우우!
앞선 여덟 척의 함선에서 빛무리가 뿜어져 나갔다.
칠형포를 죽음의 오로라라고 부르지만, 지금 여덟 개의 포신에서 뿜어지는 빛줄기도 그에 못지않게 강렬했다.
“휘유.”
옆에서 세주가 휘파람을 불었다.
콰가가가가가!
드드드드.
중력 제어와 충격 완화 장치가 구비 된 함선이 떨렸다.
“육형포 28% 충전.”
‘앞으로 10분.’
최소 10분은 충전해야 쏠 수 있다.
함대 간의 격전에서 칠형포는 의미가 없다.
아니, 칠형포를 충전하고 쏘는 시간에 차라리 육형포를 쏴대는 게 나았다.
거기에 적아를 구분할 수 없는 칠형포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너무 많았다.
나호필은 떨리진 않았다.
이런 상황도 예측했었다.
“함대 와이드 대형으로.”
넓은 보랏빛 막이 우주의 한 면을 가로막은 듯했다.
“적기 추정, 500척.”
필요한 보고지만, 끔찍한 내용이기도 했다.
“육형포 충전 55%.”
“사령관님, 좌전방에 또 다른 미확인 함대 출현입니다!”
나호필은 홀로그램으로 뜬 새로운 적을 바라봤다.
“추정 100척.”
‘별동대?’
아니다.
전방과 좌전방의 적은 다른 종류다.
모습이 달랐고, 움직임이 다르다.
보랏빛 배리어를 씌운 적은 아마도 메카니모스.
그렇다면 좌전방은?
“콴이다.”
웃음기를 잃은 세주가 말했다.
“전 함장 통신 연결해!”
나호필이 외쳤다.
지지지지징!
나호필의 전면, 홀로그램 화면이 무수히 나타났다.
정확하게 21개다.
“살아있었을 줄 알았다.”
안나 휴이츠다.
“예뻐졌네.”
반세주가 그녀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회포는 나중에.”
나호필이 그사이에 섰다.
“좌전방과 전방의 적, 메카니모스와 콴으로 추정됩니다. 아군을 둘로 나누겠습니다.”
“후퇴해야 하지 않겠소?”
반세주는 처음 보는 얼굴이다.
동양인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적당히 연륜이 있고, 그 만큼 신중해 보이는 얼굴이다.
“후퇴는 없습니다.”
나호필이 선언하듯 말했다.
꽈과광!
그 사이 적의 포격이 전방 부대를 때렸다.
푸른 배리어가 적의 광선포를 막았다.
“배리어 손상율 2%.”
“적의 포격은 사형포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숫자에서 밀리는 이쪽이 확실히 불리했다.
‘숫자의 차이는 예상했어.’
백 명이면 기동할 수 있는 함선을 1,000명을 태웠다.
그 숫자의 차이를 채우기 위해서다.
“각개전투로 전환하겠습니다.”
“벌써 그 작전인가?”
예상할 수 없는 타이밍에 적이 공격했다.
그러므로 아군도 적이 예상할 수 없는 걸 보여줘야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어.’
적의 심장부에 다다르지 못했지만, 여기서 죽는다면 모든 게 끝이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야 했다.
“합시다.”
이제 싸울 순간이었다.
콰우우!
곧 스물두 척의 함선이 서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적의 함선으로 돌격했다.
“분신자살?”
“그럴 리가.”
나호필이 뒤에서 묻는 세주에게 답하며 눈을 빛냈다.
‘후.’
속으로 숨을 내쉰 나호필이 입을 열었다.
“전원, 개별 전투를 시작한다.”
“옛!”
함선에 탄 승무원의 숫자는 천 명.
꽉꽉 채운 숫자다.
이들은 전부 자리가 있었다.
낮에는 세탁실 당번이었다가, 청소 당번이기도 한 이들이지만.
이들은 군인.
그리고 이곳에 온 이유는 하나다.
군인은 싸우기 위해 존재한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세주는 적 함대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함선을 보며 감탄했다.
두두둥!
적 함대 사이다.
당연히 대규모 포격은 피할 수 있었다.
전투는 급속도로 양상이 변해갔다.
고작 사형포 한 번 주고받은 뒤, 곧바로 돌진이라니.
김치용이나 할 짓이다.
나호필과 김치용은 타입이 완전 반대다.
즉, 나호필은 생각 없이 돌진할 인간이 아니다.
“구경이나 해.”
식은땀을 흘리며 나호필이 말했다.
곧 반세주는 천 명의 움직임에 감탄했다.
*
최선일은 좋은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나 착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성실했다.
가족을 아꼈으며, 친구에게 충실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은 최선일을 착하다고 말한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하나뿐이었다.
너무 고지식했다.
그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하나밖에 몰랐다.
최선일은 함선 승무원에 지원했지만, 합격할 줄 몰랐다.
하지만 나호필은 흡족한 얼굴로 그를 뽑았다.
그가 받은 명령은 하나뿐이었다.
“막기만 해.”
단순 반복 훈련은 고지식한 인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최선일에게도 지옥과도 같았다.
생전 처음으로 시작한 일을 중도에 관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버텼다.
그 결과 지금 이 자리에 있다.
두둥!
적의 소형포다.
보이는 즉시, 선일은 배리어를 펼쳤다.
함선 내부에 저장된 에너지를 일부 차용한 초소형 배리어다.
터덩!
배리어에 맞고 적의 포격이 튕겨 나갔다.
“계속 그렇게만 막아.”
파트너가 말했다.
선일은 이 자식이 싫었다.
자신과는 반대의 타입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안심이다.
싸울 때만큼은 파트너라고 부를 만큼 그를 믿을 수 있었다.
박동호, 그는 어릴 때부터 한 가지 일을 붙잡고 하는 걸 싫어했다.
어쩌다 보니 군인, 어쩌다 보니 저격수가 됐지만,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그나마 전투 중일 때는 나았다.
싸움과 전장의 한복판에 있을 때, 그는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함대 승무원도 그래서 지원했다.
훈련에 임하기 전, 그는 자유를 거세당했다.
“폰도 구비 안 됩니까?”
박동호는 중위다.
개인 연락 수단까지 뺏길 줄은 몰랐다.
“이곳은 기밀 본부다.”
관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탈영을 꿈꾸기도 했다.
그는 밥 먹고 운동하는 걸 제외하면 한 가지 일만 했다.
1년 내내, 움직이는 비행체를 맞추는 슈팅 게임을 했다.
지겹다는 정도가 아니다.
나중에는 눈감고 맞출 정도였다.
“날 내보내줘어어어어!”
반쯤 미치기 시작할 때, 함선이 출항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방어를 최선일이라는 파트너에게 맡기고 소형 함포 하나를 쥐었다.
조종법은 슈팅 게임과 동일했다.
눈이 가는 곳에 붉은 점이 따라가고 포착한 순간, 발사한다.
첫 세 발을 빗맞혔다.
그걸로 탄속과 탄도, 적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좀 맞춰.”
옆에서 투박한 목소리가 들렸다.
최선일이다.
이 자식은 영, 친해지기 어려운 타입의 인간이었다.
자신과는 정반대.
그래도 싸울 때라면, 만족한다.
이렇게까지 완벽한 방어를 하는 놈이 또 있을 리 없으니까.
두둥.
퍼버벙!
검은 배경에 적 비틀 쉽이 터진다.
“자자, 최고 스코어는 이 몸이시다.”
*
반세주가 키운 저격병과 몸소 키운 방패병.
나호필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다만, 이 전투의 핵심은 그들이 아니었다.
“입체기동팀.”
“이상 없습니다.”
천명 중, 정작 전체를 총괄하는 이는 단둘이다.
나호필과 부관 딱 둘.
나머지는 전부 전투 관련이었다.
방패, 소형포격팀.
입체기동팀.
중화력팀.
총 세 가지로 분류를 나눴다.
그중 입체기동팀은 압권이었다.
콰우.
“좌전방, 산개한다.”
적의 포격 방향을 예측해서 큰 공격을 피하고 더 안쪽으로 파고든다.
그게 그들이 할 일이었다.
적의 옆과 뒤를 탐하며 움직인다.
반세주는 이들을 보면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미친 짓을 했네.”
“그런 말을 너한테서 듣고 싶진 않다.”
1년이나 적지에서 먹고 자고, 결국 다 죽이고 온 또라이에게 들을 말은 아니었다.
아까까지 함선이 무기물이었다면, 지금 함선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곳곳에서 배리어가 생겼다가 사라진다.
핀포인트 방어다.
거기에 소형포가 적의 비틀 쉽을 공격하고, 입체기동팀이 이들이 싸울 수 있도록 함선을 조종한다.
하지만 이렇게 싸운다면 끝이 나지 않는다.
더구나 이쪽은 함선 한 척으로 여러 척을 상대해야 한다.
그 사이 반세주의 눈이 돌아갔다.
-강력한 에너지 파동.
프로비던스가 말하기도 전에 느꼈다.
후웅 하고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착각이 들었다.
꽈과광!
함선이 폭발하는 소리다.
‘아군?’
아니었다.
홀로그램이 비춘 건 적의 함선이었다.
그 사이, 황금빛이 솟구쳤다.
-안나 휴이츠.
‘그 여자네.’
전신을 황금빛으로 두른 폭력의 여신이 우주에 강림하는 모습이었다.
“사이클롭스 부대로 함선을 전부 부술 셈이야?”
“설마.”
나호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에는 상대 숫자가 너무 많다.
물론, 나호필의 노림수는 더 있었다.
박효녀, 중화기팀의 트리거였다.
탄환팀이 에너지를 충전하면, 그녀가 할 일은 하나였다.
완벽한 타이밍에 적에게 무기를 쓰는 일이다.
‘아직 아냐.’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안 했다.
군인이 된 건, 1년 반 전.
죽은 오빠가 군인이었다.
복수가 목적은 아니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일 할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가장 빠르고 편리하게 돈을 벌 방법을 택한 것뿐이다.
요새 시대에 군인만큼 안정적이고 돈 많이 주는 직장은 없다.
물론 목숨을 대가로 버는 돈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아쉬움은 없었다.
미련 없이 입대한 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재능을 알아차렸다.
어떻게 해서 아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어떤 순간에 얼마만큼의 힘으로 때리며 물건이 부술 수 있는지.
그건 작은 장난감에도 그리고 커다란 함선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지금.’
“쏩니다!”
앳된 목소리로 효녀는 외치고 트리거를 당겼다.
끼이잉.
콰우우우우!
그녀가 쏜 빛이 기괴하게 생긴 괴물 함선의 정중앙을 뚫었다.
펑 하고 터지며 사방에 녹색 체액이 젤리처럼 흩어져 뿌려졌다.
“쟤는 뭐야?”
“비밀 병기.”
세주의 물음에 나호필이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사령관님!”
입체기동팀 중 하나였다.
“후방에 미확인 함선 출현!”
그 말에 나호필의 안색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지금도 절망의 구렁텅이나 다름없는 순간이었다.
순간 나호필과 반세주의 눈이 마주쳤다.
지지징.
홀로그램이 삽시간에 주변을 채운다.
“후방에 새로운 적 출현!”
“방위 사령관!”
“어떻게 할 거요?”
“후퇴하는 겁니까?”
사방에서 그에게 물어왔다.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줘야 하리라.
“말해.”
반세주가 입을 열어 속삭인다.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나호필에게는 들릴 정도로.
“넌 아직 쓰지 않은 비장의 수가 남아 있어.”
그의 목소리는 악마가 조잘거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