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147. 작은 바늘로 큰 소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호필, 이 미친놈이.”
팽이 회피 기동했다.
일형포가 스쳐 지나가며 비틀 쉽이 흔들렸다.
세주는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야, 내가 쟤한테 뭐 잘못한 거 있냐?”
대뜸 보자마자 통신 끊고 공격이라니.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많을 거다.
같이 미국에 갔을 때, 나호필의 마음고생이 보통이 아니었을 테니.
“아니요.”
“그럴 리가.”
“이 자식, 죽입니까?”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반격합니까?]
실버가 묻는다.
“하지 마.”
나호필은 밑도 끝도 없이 대뜸 공격하는 타입의 인간이 아니다.
그 사이 다시 빛이 번쩍였다.
2차 공격이다.
“배리어.”
우웅!
비틀 쉽 자체 출력은 보잘것없지만, 이곳에 탄 이들은 보통이 아니다.
하물며 일형포라면 실버 혼자서도 막는다.
[제가 갑니다]
실버가 나서서 비틀 쉽 외부에 에너지를 뿌려 배리어를 만들었다.
쾅!
일형포를 막은 비틀 쉽이다.
이번에는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어떻게 해?]
팽이 물었다.
“돌격.”
세주는 고민하지 않았다.
일단 돌격이다.
얼굴 보고 말을 나눠보면 된다.
-의심했을 거야.
‘뭘?’
-1년 만에 멀쩡히 살아 돌아온 길이잖아. 반갑지만, 의심이 들지. 미국에서 형태변환자도 봤고.
비틀 쉽이 멋지게 몸을 비튼다.
중력 제어 장치 덕에 그들은 안정적으로 바깥을 살필 수 있었다.
휙휙 돌며 함선 사이로 파고든다.
“더 다가오면 발포한다!”
통신을 통해서 목소리가 들린다.
나호필이 아니다.
[상대 쪽에서 통신입니다]
실버가 말했다.
“무시.”
세주는 대답 할 필요를 못 느꼈다.
이미 쏴 놓고, 뭘 또 쏜다는 거냐.
“반격하지 마. 처음 통신한 함선 위치는?”
[확인 완료]
팽이 말했다.
“거기로 가자.”
전부 무시하고 날 듯이 쏘는 비틀 쉽이다.
함선 내부로 들어가자 오히려 일형포 포격은 없었다.
피하면 아군을 맞추는 격이었다.
대신 사이클롭스 다섯 대가 나왔다.
그걸 본 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만들었네.’
-내가 도안 해석까지 다 해줬는데. 못 만들면 그건 병신이야.
“유진.”
“네.”
“시험해보자. 아머 입고 나가서 놀아줘.”
유진이 그 말에 밖으로 나갔다.
“아 왜 또!”
치용이 불쑥 나섰다.
“넌 안 돼.”
아군 다 잡아 죽일 셈이냐?
이럴 땐 유진이 적절하다.
사람을 괴롭히는 수단은 뛰어나지만, 적정한 선을 잘 지킨다.
그러니까 죽이진 않는다.
“우린 진입한다.”
사이클롭스 다섯 대, 거구의 괴물 같은 외눈의 로봇을 보고도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미 바이탄과 싸우며 쓴맛을 보고 왔다.
유진이 밖으로 나간 걸 확인한 순간, 비틀 쉽이 목표한 함선 외벽에 안착했다.
“하선 후, 진입.”
세주가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그의 손에 리볼버가 들렸다.
‘로켓.’
형태는 폭발, 구멍을 뚫어야 한다.
그리고 밑에 있는 이를 죽일 생각도 없다.
벼락은 과하다.
광탄으로 구멍을 내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배리어가 앞을 막았다.
“잘라.”
세주가 말하자, 치용이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손을 뻗자 그의 손에 푸른 에너지를 머금은 도끼가 생긴다.
치용이 밑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쩍!
배리어가 쪼개진다.
그 사이로 그들은 밑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세주는 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꽝!
폭음이 울렸다.
추진기를 이용해 속도를 올린 일행이 안으로 스며드는 데 걸린 시간이 고작 30초뿐이었다.
반응할 시간조차 없었다.
함선 내부에 들어간 세주는 맵을 켰다.
‘나호필 어디 있냐?’
반짝.
맵에서 한 점이 반짝인다.
-가깝네.
“약진.”
세주가 말하며 뛰었다.
휙휙 주변 사물이 지나간다.
뒤를 따르는 부대원도 전부 빠르다.
중간 중간 승무원 몇을 만났다.
“으억!”
“뭐야!”
“습격이다!”
다 무시다.
무서운 속도로 대쉬한 그들은 문을 앞에 뒀다.
“인준.”
두꺼운 아머를 입은 인준이 어깨를 앞으로 내밀고 뛴다.
옆으로 비킨, 세주 앞으로 인준이 문을 들이받았다.
꽝!
우지직.
문이 반파된다.
시키지 않아도 실버가 나서서 문을 양손으로 잡고 열었다.
우드드드득!
터엉!
부순 내부 안으로 들어가자, 무형의 힘이 전신을 짓누른다.
‘염력?’
-그 양반이네.
반가운 얼굴이다.
애꾸눈의 이무영.
발해팀도 왔구나.
“합.”
기합 한 번이다.
퉁 하고 염력이 날아간다.
그 틈에 에너지 블레이드가 날아온다.
쩡!
그건 치용이 막았다.
실버가 라이플을 들어 앞을 겨누고, 인준이 광편 수류탄 두 개를 손에 든다.
팽도 라이플을 들고 세주의 등 뒤를 지켰다.
쩡! 쩡!
치용과 어울리는 이를 무시하고 세주는 앞으로 걸었다.
마치 자동으로 길이 열린 것 같았다.
부대원이 주변을 압도했다.
“야.”
“진짜냐?”
입을 열자마자 묻는다.
“가짜면 너희는 이미 다 죽었어.”
맞는 말이다.
나호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기주, 물러나.”
쩡쩡!
하지만 여전히 폭음이 울린다.
치용과 칼춤을 추는 이, 나기주였다.
세주는 피식 웃었다.
“잘 지냈냐?”
“저러다 죽겠다.”
나호필이 나기주 쪽을 보고 말했다.
“김치용, 그만.”
“쳇.”
혀 차는 소리가 들리고, 치용이 휘릭 공중에서 몸을 튕긴다.
그리고 세주 옆으로 돌아왔다.
뒤는 팽이 우측에는 인준이.
그리고 실버가 그들 곁에 선다.
“오랜만이지?”
세주가 웃으며 말했다.
1년 만에 본 얼굴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
나호필은 반세주에 대한 생각을 수정해야 했다.
자신은 그동안 반세주를 몰랐다.
“그래서 1년 동안 바이탄의 행성에 있었다는 건가?”
“그렇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뭘 먹고 버텼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새끼는 인간이 아니야.’
“너 외계인이지?”
“아냐.”
“맞잖아.”
“무슨 개소리야.”
개소리지.
반세주가 외계인이라면 이미 인류는 망했다.
세기의 구세주라 불리는 인간이다.
그 덕분에 살아난 사람이 지구에 가득했다.
“끙차.”
몸을 일으킨 나호필은 세주를 향해 말했다.
“초전은 이겼다.”
초전박살이란 말에 어울릴 정도의 전투였다.
세주도 봐서 알고, 들어서 안다.
“다음 계획은?”
“기습.”
나호필은 짧게 답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세주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켰다.
작은 바늘로 큰 소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가죽을 찔러봤자, 얻을 수 있는 건 피 몇 방울뿐이다.
평생을 도망 다니면서 찌르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러다가 바늘을 쥔 사람이 늙어 죽을 거다.
그러니까, 바늘로 찔러도 아픈 곳을 찾아 찔러야 한다.
외부라면 눈을 찌른다.
하지만 눈이 찔렸다고 죽을 리는 없다.
눈보다 치명적인 곳이 필요하다.
가죽 안쪽, 내부다.
심장, 일격이면 적에게 강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기습이란 두 글자에 담긴 의미가 그것이었다.
인류는 많은 걸 준비를 했지만, 아직은 바늘이다.
그러니까 적의 심장을 찌를 각오로 싸워야 한다.
나호필을 뒤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한때의 소동은 금세 가라앉았다.
“언제 싸웁니까?”
곰 새끼가 다가와 묻는다.
“김치용아.”
“넵.”
“며칠이면 그 말 쏙 들어갈 거다.”
“진짭니까?”
그 말에 신나 하지 말라고.
-저 자식은 진짜 반쯤 미쳤나?
‘아니, 완전히 미쳤지.’
-역시, 미친놈은 미친놈을 알아보는 거야?
‘닥쳐.’
적은 바보도 머저리도 아니다.
이곳의 전력을 보여줬다.
칠형포와 사이클롭스.
이 정도 전력을 보고도 가만히 있을까?
뇌가 없는 머저리가 아니고서야, 반응할 거다.
어떤 반응이냐의 문제다.
어느 정도의 전력으로 올 것인가?
‘설마 둘이 손잡고 덤비진 않겠지?’
인류가 아무리 많은 걸 준비했어도 아직 그들 입장에서 보자면 벌레다.
세주는 은근히 적의 반응을 기대했다.
*
[일단 인간부터]
가르간은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메카니모스 1계급 전투원, 미라.
죽일 수 있는 상대와만 싸운다.
예전, 미라와 전장에서 만난 적에 들은 말이다.
가르간과는 승부를 가늠할 수 없으니, 싸우지 않겠다.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투의 즐거움을 모르는 쓰레기, 그게 가르간이 내린 평가다.
[갈보 년의 명이냐?]
무엇보다 마음에 가장 들지 않는 건 이거다.
콴과 메카니모스는 아주 오랫동안 싸웠다.
[한 번만 더 지껄이면, 네 렌즈를 다 잘게 쪼개주마]
메카니모스와 콴의 영역 중앙, 은하 영역 선에 머문 행성에서 만난 둘이다.
작은 방과 원탁과 의자뿐인 곳이다.
가르간이 살기를 품자, 무거운 공기가 방안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니, 실제로 가르간은 어느 정도 에너지를 개방했다.
[싸우자고?]
미라가 손을 쥐었다 폈다.
‘재수 없는 새끼.’
가르간은 싸울 수 없다.
콴에게 여왕의 명은 절대적이다.
그렇다고 얌전히 모욕을 받을 생각도 없었다.
[네 놈을 찢어 죽이고, 나도 죽으면 그만이다]
[과격해]
[그렇게 만든 건 너다]
[그래. 좋아. 나도 한때의 정이 있으니, 여왕이라고 부르지]
[네놈들에게도 같은 결정이 내려졌으니 온 것 아닌가?]
가르간은 흥분을 지웠다.
감정을 보이는 건 아마추어다.
자신이 이곳에 온 이유는 명확했고, 여왕의 명령도 잊지 않았다.
주먹을 쥔 미라가 테이블을 톡 하고 쳤다.
[같다]
가르간은 이해할 수 없지만, 결정은 났다.
일어나기 전, 그는 호기심에 물었다.
미라, 그녀는 콴에서도 보기 드문 강력한 전사였다.
가르간 이전, 숨는 칼이란 별명을 가진 위대한 전사.
[왜 메카니모스가 된 거냐?]
미라는 그에게 전투를 가르쳐 준 콴이었다.
메카니모스는 잡종 중의 잡종.
콴이든, 인간이든.
그들의 일원이 되고 싶다면 받아준다.
메카니모스로 개조를 받는 순간, 그들은 이전 종족의 굴레를 벗어난다.
하지만 콴이 메카니모스로 전향하다니.
이해 불가다.
콴에게 여왕은 진리다.
싸움을 즐기고 여왕을 지키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이들이 콴, 그런데 메카니모스가 됐다.
가르간이 살면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일 중 하나였다.
[왜 너도 오고 싶나?]
성별을 잃고, 종족 특성을 버린 자다.
가르간은 자신이 괜한 질문을 했던 걸 깨달았다.
전투의 즐거움도, 여왕의 헌신도 잊은 갈보는 바로 미라가 아닌가.
[괜한 걸 물었다]
[인간을 죽이고 나서 너무 방심하진 마라]
[너나 조심해]
가르간은 말하고 돌아섰다.
그가 떠나기 전, 여왕은 명했다.
[인류를 멸망시키겠어요]
이유? 묻지 않는다.
그게 콴이다.
미라가 메카니모스가 된 게 이해가 가지 않는 만큼.
가르간은 지금 상황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은 그들에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콴과, 메카니모스 연합을 넘어서 주 병력을 투입하라니.
아니, 그게 끝이 아니다.
바이탄과도 동맹을 맺고 그들도 참전한다.
겨우 인간 때문에?
가르간은 머릿속에 한 인간의 얼굴을 떠올렸다.
인류의 영웅이라 불리는 자.
반세주.
두근.
어지간해서 뛰지 않는 심장이 반응한다.
가르간의 긴 삶 중에서 몇 되지 않는 싸워보고 싶은 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더 강해지면 그때다.
겨우 일류 전사급이라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어쩔 수 없지.’
제 손으로 죽이고 싶진 않다.
전장 중에서 알아서 죽으리라.
콰우우우.
밖으로 나온 가르간의 눈에 함대가 보였다.
함선 120척.
그리고 그 옆, 다리 달린 괴물 형상의 함선이 500척이 보였다.
두 부대의 주 병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