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143. 너의 어머니는 집안에서 평안하시냐?
밖으로 나오자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여기도 기후가 변하는구나.’
재밍 덕분에 프로비던스가 적의 위치를 못 본다.
세주는 자신의 몸에서 빌어먹는 기계에게 기대를 버렸다.
대신 일을 할 때마다 그를 달랬다.
스스로 능력이 완벽하지 않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세주는 평소와 같이 따뜻한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넸다.
‘쓸모없는 기계 놈.’
-염병할.
그에 대한 정겨운 답을 들으며 세주는 발걸음을 옮겼다.
“킁킁.”
세주가 코를 씰룩이며 냄새를 맡았다.
안드로이드는 오일 냄새가 난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코를 킁킁거리며 가까이 온 놈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오버 클럭 이후, 오감이 전보다 배는 예민해진 것 같았다.
세주는 주변을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다.
푹.
그리고는 땅에다 긴 쇠막대를 심었다.
‘이제 하나 남았지?’
-쓸모없는 기계라서 난 잘 모르겠는데?
이 기계를 만든 놈은 사춘기 소녀의 성격을 카피했을 거다.
‘말을 말자.’
“킁.”
그 사이,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냄새다.
시큼한 탄내가 섞인 기름 냄새.
적 중 하나였다.
세주는 주저 없이 튀었다.
*
세주가 사라진 자리에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온 투엘븐이다.
[놓쳤다]
벌써 1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적의 흔적은 보인다.
하지만 놈을 찾을 잡을 수가 없었다.
이 ‘오류’에 일레븐과 투엘븐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자부한다.
인류와 콴, 메카니모스를 넘어서는 최강의 종족이야말로 바이칸이라고.
투엘븐이 흔적을 찾으며 말했다.
[대단한 놈이다]
윙!
일레븐이 그 뒤를 따라왔다.
등에 여덟 장의 날개를 단, 벌 형태의 안드로이드다.
투엘븐은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거미 형태였다.
[도망치는 재주가 정말 대단해]
투엘븐이 나사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양손을 쥐었다 폈다.
비웃음이었다.
적은 쥐새끼였다.
포식자인 고양이를 피해 요리조리 도망가는 피식자.
[이 인간 뇌를 해부할 가치가 있다]
둘에게 이 정도로 도망가고 숨는 재주만 해도 대단했다.
둘은 손가락을 맞댔다.
대화는 인간을 흉내 내는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다.
고도의 안드로이드는 애초에 입을 열 필요가 없었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정보를 교환한다.
둘이 받은 명령은 두 가지다.
써틴을 죽인 주체를 확인하고 죽여라.
실버, 최초의 안드로이드를 잡아 와라.
번쩍번쩍.
둘의 눈이 여러 색깔로 빛난다.
그들에게 시간은 무의미하다.
영원을 사는 안드로이드이기에 급할 필요가 없었다.
둘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제까지와 다른 건 없었다.
만나기만 하면 된다.
둘은 써틴의 죽음을 모른다.
하지만 써틴이 어떤 안드로이드인지는 안다.
최속의 안드로이드.
그는 열셋의 안드로이드 중 가장 빠르다.
하지만 이 둘의 속도론 절대로 잡을 수 없는 안드로이드였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명령에 해당하는 신호를 넓게 퍼트렸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는 예전과 같았다.
찾아라.
그들의 신호에 기계병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언제까지고 숨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굳이 행성 전체를 헤집을 필요는 없었다.
인간은 먹어야 살고,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구조를 가졌다.
그에 비해, 안드로이는 어떤가.
그들은 에너지만 있다면 수백 년을 손가락 까닥 하나 안 할 수 있다.
그래서 둘은 급하지 않았다.
*
“나와.”
[어디로 갑니까?]
치용을 포함 넷 모두 시뮬레이션 모드에 박아둔 어느 날이다.
세주는 실버를 불렀다.
자신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실버가 몸을 일으켰다.
기름칠이 얼마나 잘 됐는지, 아주 작은 소음도 나지 않았다.
‘훌륭한 몸이다.’
세주가 만들어 준 몸은 훌륭했다.
마음에 드는 정도가 아니다.
자신의 본래 몸보다 훌륭하게 기동하는 바디와 그 바디의 재료는 죽은 동료의 몸이다.
만일 안드로이드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의 일부를 이어받은 기분이다.
“복수하고 싶다며.”
반세주란 인간, 이제까지 봐왔던 어떤 인간과도 다르다.
기분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것이 계산 하에 있는 것 같다.
가끔은 안드로이드인 자신보다도 더 치밀해 보인다.
‘인간이 그럴 수 있을까?’
이 인간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실버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상관있나?’
없다.
이 인간은 자신을 살려줬다.
목숨을 살려준 것뿐 아니라 삶의 목적을 만들어줬다.
그에 대해 감사를 표시할 필요는 없었다.
실버는 인간을 돕기 위해 태어났고, 그것이 자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 해야 할 일이었다.
반세주를 주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신의 주인은 죽었다.
그래서 실버는 팽이 세주를 부르듯, 대장이라고 했다.
주인은 아니지만 따를 만한 사람.
실버는 세주를 그렇게 생각했다.
감사를 표하는 대신, 실버는 자신의 모든 걸 이 자를 위해 바칠 생각이었다.
[복수입니까?]
실버는 그 단어에서 어색함을 느꼈다.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 그게 자신에게 붙은 별명이지만.
아직은 어색하다.
기쁨, 슬픔, 분노 등 감정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 복합적인 느낌을 실버는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안드로이드로서 자신의 상태를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생소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표현하려고 하지 마. 자신의 상태를 전부 말할 필요는 없다.”
세주가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실버는 일어나서 그의 손을 잡았다.
둘은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쉘터에 나와서 서쪽으로 꾸준히 걸었다.
빠르게 움직이진 않았다.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실버는 내부 장치로 현재 기온이 8도 정도라는 걸 알았다.
습도는 25%로 건조했다.
사박.
마른 모래를 밟자 부드러운 소리가 들렸다.
세주의 아머는 달라붙는 종류였다.
실버의 바디 또한 실제 인간보다 조금 큰 정도, 2m 정도의 신장을 가졌다.
위이잉.
실버는 먼 곳을 보기 위해 렌즈를 조절했다.
작은 점으로 된 렌즈가 한 무리의 기계병을 발견했다.
이제까지 세주가 저들을 잡아 죽인 걸 안다.
하지만 첫날 이후로 굳이 실버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다.
실버가 발견한 타이밍과 비슷하게 세주도 발걸음을 멈췄다.
“벌 잡을래? 거미 잡을래?”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하나는 네가 잡아. 내가 거미 잡는다.”
세주는 이 행성에서 1년간 숨었다.
굳이 적과 싸우지 않았다.
그는 고립을 택했다.
실버는 그 이유를 짐작했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다.
또한, 실버는 현재 적을 죽이지 않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저 둘을 죽이면 바이탄은 이곳에 추가 병력을 보낼 거다.
그건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세주는 현재 가진 병력으로 현재의 적을 죽이더라도, 이 이후에 올 병력을 염려했다.
“싸우는 건 좋지만, 죽는 건 싫어. 그리고 지는 싸움은 최악이고.”
실버는 세주의 말을 기억했다.
하지만 그 세주가 지금 적을 죽이자고 한다.
“이게 마지막이다.”
세주의 손에 어느새 긴 막대가 들려 있다.
허공에서 푸른 광선이 나와 나타난 걸 실버는 확인했다.
놀라운 기술이다.
본래 인간이 가졌던 기술보다 한 차원 높은 테크놀로지다.
푹!
세주가 막대를 바닥에 꽂았다.
“올 거다.”
막대를 꽂은 채, 세주가 경고했다.
동시에 막대에서 푸른빛이 솟았다.
파아아아앗!
찌지지지직!
쥐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행성을 감싼, 배리어가 찢겨 사라졌다.
실버의 눈에 사방을 감싼 은회색 막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주변을 살폈다.
푸른빛이 솟구치는 곳이 하나가 아니다.
실버는 모든 막대의 숫자를 인식했고, 그제야 세주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았다.
에너지를 보유한 막대를 행성 곳곳에 꽂아서, 적의 배리어를 찢음과 동시에 행성의 정보를 통제한 거다.
전파, 교신을 위한 신호를 전부 어그러뜨려 버렸다.
‘대단하다.’
실버는 감탄했다.
이 정도 기술력이 있다면 인간은 절대 바이탄이라 불리는 안드로이드에게 죽지 않았을 거다.
거기에 쉘터 밑에서 가상현실로 훈련을 하는 이들까지.
‘강해.’
실버는 자신이 최선을 다해도 저들을 죽이기 어렵다는 걸 알았다.
고작 피와 살로 이뤄진 인간이 금속과 오일로 이뤄진 안드로이드와 전투력이 견줄 만하다.
그 자체가 놀라운 사실이었다.
[옵니다]
놀라는 건 놀라는 거고, 할 일은 할 일이다.
새로운 에너지 플랜트가 강하게 진동을 했다.
전신에 에너지를 공급한다.
파칭.
양 손목 위로 칼날이 튀어나온다.
파츠츠.
동시에 전류와 함께 푸른 에너지 칼날이 만들어졌다.
에너지가 전신을 돌며, 온도가 올라간다.
적정온도는 25도.
하지만 현재는 50도에 가깝게 올라갔다.
안드로이드는 현재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를 알았다.
이건 복잡하지 않았다.
‘흥분.’
기대감이 섞인 흥분이다.
드디어, 주인을 죽이고 구세대 안드로이드 동료를 죽인 놈들을 만난다.
그 사실에 실버는 짜릿함을 느꼈다.
‘전류가 샜나?’
양손등 위로 튀어나온, 칼날에 흐르는 전류가 방전됐나 싶었다.
그럴 일은 없었다.
그만큼 강렬한 흥분을 느꼈을 뿐이다.
푹푹. 타닥! 타닥!
실버는 바닥을 칼날로 찔렀다.
찔린 모랫바닥이 까맣게 탔다.
치용은 말했었다.
극도로 흥분된다면 땅이라도 찌르면서 몸을 풀라고.
“…너 뭐 하냐?”
옆에서 세주가 미친 강아지를 보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긴장을 풉니다]
“치용이 알려줬지?”
[맞습니다]
통찰력이 대단한 인간이다.
자신의 행동을 보고, 그 전후 결과를 도출한다.
역시 반세주다.
자신이 대장으로 모시고 목숨을 걸을 가치가 있다.
즈아아아아!
실버는 외부 스피커를 통해서 자신이 이곳에 있음을 알렸다.
웨에에엥!
이미 서로 레이더로 상대를 파악한 둘이다.
벌 모양을 한 안드로이드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왔다.
“김치용. 이 또라이 새끼.”
세주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실버는 대답하지 못했다.
매섭게 날아온 안드로이드가 레이저 포를 쐈다.
이형포다.
다연발 일형포가 앞을 가득 채웠다.
실버는 발을 굴렀다.
쿵!
그걸 신호로 앞을 가로막는 반구형의 배리어가 펼쳐진다.
세주는 그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펑!
폭발음이 들렸다.
옆쪽, 다른 안드로이드가 세주에게 달려드는 게 보였다.
실버는 그걸 마지막으로 앞쪽에 모든 신호를 집중했다.
적을 파악하고 죽인다.
지금 그게 실버가 할 일이었다.
*
“야.”
거미 모양의 안드로이드가 달려든다.
세주는 그걸 보며 손에 리볼버를 쥐었다.
펑!
주저할 이유가 없었기에,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폭음이 터지며 안드로이드의 관심을 끌었다.
“넌 나랑 놀아야지.”
실버가 하나, 하나는 자신의 몫이다.
우드득.
동네 양아치처럼 목을 꺾고 선다.
오래 참았다.
-추정 에너지 2700만.
‘맛있겠지?’
-기다리다 배가 등가죽에 붙겠어.
그 배도, 등가죽도 없는 기형 로봇이 할 말은 아니다.
“오냐.”
세주는 웃으며 놈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줬다.
너의 어머니는 집안에서 평안하시냐?
그런 제스쳐다.
물론 나쁜 뜻의 질문이다.
은하 공용 제스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다.
인간이 하나, 이들이 하나 욕은 욕이다.
[빌어먹을 인간 놈, 잘도 숨어 다니더니 자살이 하고 싶어졌구나. 네 두개골을 쪼개서 뇌를 파헤쳐주마. 평생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고 실험체로 수백 년을 살게 해주마]
“…넌 조금 다르네.”
안드로이드는 전부 차갑고 냉정하게 할 말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다.
“재밌는 놈일세.”
말을 던짐과 동시에 세주는 등 뒤에 숨겨 둔 벼락을 꺼냈다.
[인간, 감히 이 안드…]
그리고 죽어라고 떠드는 놈을 향해 애비탄을 먹였다.
이미 놈들을 부르며 준비를 거듭한 한 방이다.
적의 기계 병력과 거리를 벌리고, 약이 오른 안드로이드 두 기를 부른다.
모든 건 예상 하, 계획 대로다.
꽝!
벼락이 울었다.
두 번째 울음을 기다리는 세주가 입가를 비틀었다.
“그래. 이 한 방으로 죽으면 아쉽긴 했을 거야.”
최속의 안드로이드처럼 피하지는 않았다.
적의 몸은 탄을 맞았다.
하지만 피해는 경미했다.
배리어를 펼친 것도 맞받아친 것도 아니다.
몸이 작게 변하며 흩어졌을 뿐.
[멍청한 인간, 우리는 나노 안드로이드. 지금부터 우위 종족으로 벌을 내리겠다]
사아아악!
노란 모래 섞인 검은 연기였다.
불길한 그림자처럼 그것이 세주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