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136. 오류
지구, 비무장지대 전투 때부터 놈들은 생산과 공급을 동시에 행했다.
‘패턴이 단순해.’
세주는 애초에 이 싸움은 전쟁보다는 뒤치기가 승패를 좌우할 거로 생각했다.
-저 로봇들은 다 죽을걸?
그 작전을 들은 프로비던스가 말한다.
‘어쩔 수 없지.’
콰우우우.
그리고 달리는 세주의 머리 위, 비틀 쉽 하나가 불꽃에 휩싸인 채 날아온다.
대기권을 뚫고 들어 온, 비틀 쉽이 부드럽게 허공을 유영했다.
“늦어, 늦어.”
오라고 한지가 언젠데 지금 온단 말인가.
거기에 적 기지가 코앞이다.
아예 온다고 광고를 해라.
세주는 벼락 대신 침묵을 구현했다.
‘지대공 먼저.’
프로비던스의 스캐닝이 대지를 덮는다.
날아온 비틀 쉽을 격추하기 위해 땅에 구멍이 열리고, 일형포에서 삼형포까지 서른 문이 넘는 포신이 보였다.
많기도 했다.
저 작은 비틀 쉽 하나 잡자고, 용을 쓴다.
“후.”
숨을 한 번 뱉고, 모드를 전환.
‘모드 온, 불릿 마스터.’
동시에 애비탄을 장전했다.
능숙한 손길과 빠른 속도다.
타겟을 포착한 세주는 노블 에너지를 있는 힘껏 끌어올렸다.
스파이럴과 커브에 이은, 세 번째 기술이 필요했다.
커버링 기술은 전이와 양도로 나뉜다.
양도를 배우며 세주는 두 개의 기예를 만들었다.
나름 이름도 붙였다.
1식은 스파이럴.
2식은 커브.
그리고 3식이다.
전이와 양도를 섞어야 쓸 수 있는 기예였다.
세주는 가는 실을 연상했다.
자신의 의지를 담을 수 있는 노블 에너지로 만든 실이다.
극도의 에너지 컨트롤 능력과 프로비던스에게 배운 커버링 기술이 합쳐진 궁극의 기예다.
집중 상태에 들어간 세주는 첫 번째 목표를 찾았다.
실을 만들고.
적을 찾고.
애비탄을 만든다.
퉁.
뒤로 몸이 밀리며, 집중 상태가 풀릴 듯 했다.
하지만 풀리면 말짱 도루묵이다.
무서운 속도로 나는 애비탄을 묶은 실에 세주는 커맨드를 입력했다.
‘왼쪽.’
꽝!
첫 번째 포탑을 관통한 애비탄이 왼쪽으로 휜다.
콰아아아아!
애비탄이 울부짖는 짐승처럼 허공을 거칠게 긁는다.
꽝!
두 번째 포탑을 관통, 그리고 세주는 눈앞에 있는 포탑을 보며 애비탄을 ‘조종’했다.
3식, 유도라고 이름 붙인 기예였다.
포탑이 올라오고 비틀 쉽이 회피 기동을 하기도 전에 폭음이 연달아 터졌다.
그리고 지대공 포대를 부순 세주가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다.
퍽.
코피가 흘렀다.
스윽.
마스크를 벗고 코밑을 닦자, 피가 흥건하게 묻었다.
-집중 상태를 오래 유지하면 뇌가 타버린다. 그럼 바보 되는 거야. 벽에 똥칠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은 건 아니지?
프로비던스는 언제나 친절하게 말해준다.
염병할 기계 새끼.
‘그래서 적당히 하잖아.’
머리가 띵하니 울렸다.
집중 상태를 유지하는 건, 꽤 피곤한 일이다.
코피를 닦고 위를 보자 비틀 쉽이 내려온다.
-그래. 그냥 적당히 하다가 적당히 뒈져라.
싸가지 없는 기계 새끼가 아주 격하게 반항한다.
‘닥쳐라.’
언제나 수위는 잘 조절하는 편이다.
조금 무리했나 싶지만.
단시간에 서른 개의 포탑을 깨부수며, 새로운 기예를 연습할 기회였다.
유도는 쓸 만했다.
다만, 한계는 명확했다.
길어야 5초에서 10초다.
물론 애비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실에 붙이는 탄환의 스케일이 달라질수록 부담이 줄 거다.
그사이 비틀 쉽이 착륙했다.
“형님.”
치용을 선두로 일행이 줄줄이 나온다.
“왜 이렇게 늦어?”
세주가 그들을 타박했다.
유진이 나오자마자 말했다.
“목숨 걸고 왔다고요.”
“그래서 할 일은?”
인준이 태연한 얼굴로 물었다.
치용은 그런 인준을 보고 잔뜩 심통이 나 있다.
또 둘이 한바탕 했나 싶었다.
“저기 잠입해서 쓱삭한다.”
세주의 설명에 셋의 눈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비틀 쉽 바로 앞, 적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기계병들이다.
기계병 너머, 적의 기지로 보이는 탑과 도시가 보인다.
서울의 밤거리를 보는 듯,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도시다.
이 행성은 어떻게 되먹은 건지, 태양 빛 대신에 종일 초저녁처럼 어두침침하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누구도 이 정도로 보는 것에 문제는 없었다.
“소리 없이 빠르게 처리하고 간다.”
뒤에 남겨둔 로봇들이 시끄럽게 싸운 덕분이다.
이곳에 경계가 전보다 배는 줄어 있었다.
무엇보다.
‘스캐닝이 없다.’
-아마도 잃은 만큼 병력을 생산하고 있겠지.
프로비던스의 판단은 정확했다.
“기회네.”
세주가 중얼거렸다.
“다 쓸어버립니다요.”
치용이 먼저 튀어 나갔다.
이곳의 기계병은 일반 인간에 비하자면 공포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니었다.
치용의 손에 들린 샷건이 불을 뿜는다.
땅!
동시에 다연발 광탄이 기계병 몸통에 주먹만 한 구멍을 만들었다.
“크하하하핫!”
그리고 미친 듯이 웃는 치용의 뒤로 유진과 인준도 달려갔다.
단숨에 기계병을 쓸어버리는 그들이다.
이미 무장 수준이 이쪽 기계병보다 몇 배는 뛰어나다.
“가자.”
프로비던스의 스캐닝은 어떤 모드보다 사기다.
맵을 보여주고 적을 미리 파악한다는 건.
어떤 상황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정보를 미리 취득하는 것과 같았다.
맵을 살핀 세주는 방향을 잡았다.
지그재그로 달리고, 때로는 벽에 숨고, 때로는 냅다 달렸다.
신기하게도 처음 비틀 쉽에 이끌린 기계병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을 막는 이가 없었다.
-생각한 대로야.
‘네가 생각한 것처럼 말한다?’
이 작전은 세주가 짰다.
로봇을 수리, 싸우게 하고 그사이 적의 본진을 턴다.
남은 병력이 없으니, 당연히 수비하는 숫자가 빈다.
거기에 스캐닝 대신 생산 시설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순간, 침투에 취약해진다.
전부 계산 안쪽이다.
이 멍청한 기계를 농락하는 건, 손쉬웠다.
-애초에 바이탄의 전투 스타일은 작전의 세련됨보다는 무조건 힘으로 밀어붙이는 거야.
콴은 신출귀몰하고, 메카니모스는 독특한 무기와 전투법으로 싸운다.
그리고 바이탄은 인해전술과 힘.
숫자와 무식할 정도로 밀어붙여 싸운다.
그 단순함이 만든 빈틈이었다.
-남은 기계 병력들 길어야 10분이야.
아무리 기습을 했어도, 애초에 적이 월등히 강하다.
세주는 시야 한쪽에 타임워치를 켠 프로비던스가 요악하다고 생각했다.
‘언제는 다 부수라며, 이제는 구하라고?’
-누가 구하래?
이 츤데레 같은 자식.
그럼 10분이 무슨 상관이냐?
그냥 놔두고 튀면 그만인데.
-알아서 해. 형이. 알아둘 건, 아무리 인간이 창조했어도 저들도 생명이라는 거야.
‘지랄한다.’
-좋게 말해도 꼭 태클을 걸어.
뒷골 당기는 소리하고 있다.
누가 누구한테 태클을 건다는 거냐.
세주는 잠깐 멈춘 뒤, 한 곳을 향해 뛰었다.
네온사인이 화려한 도시는 골목길 하나 없이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건데?”
말없이 따라오던 인준이 묻는다.
깜빡하고 이 작전의 목적도 말해주지 않았다.
“우리 목적은 두 개다.”
세주가 앞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할 일이 많았다.
맵도 살피고, 시간도 보고, 적에게 들키지 않을 루트도 확인해야 했다.
“첫째, 뭐 하나 훔칠 거다.”
그건 들었다.
모두 답은 하지 않았지만, 알아들었을 거다.
“둘째, 여기에 있는 남은 병력 다 쓸어버린다.”
“…형님, 여기서 결사항전을 하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인준이 백린탄으로 적을 몰살하고, 치용과 함께 방금 일부 기계병을 상대했다.
유진은 그 두 번의 전투로 대강 적의 전력을 파악했다.
그도 이래저래 잔뼈가 굵은 몸이다.
넷은 뛰어나며 인간을 넘어섰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그렇다고 달랑 넷이서 군대와 맞설 순 없다.
[날 선두에 내보내 줘]
“어딜! 그건 내 자리거든!”
팽까지 다섯에 저 무식한 치용이라도 무리는 무리다.
“누가 정면에서 싸우재?”
세주는 말하고 다시 움직였다.
유진은 토를 달았지만, 반항은 아니었다.
그저 의견일 뿐이다.
언제나 결정은 세주의 몫이다.
그가 자신의 목숨을 구한 걸 떠나서, 반세주란 인간은 승산 없는 싸움을 싫어한다.
옆에서 지켜본 유진은 그걸 잘 알고 있었다.
*
브레인은 적이 도시에 들어온 걸 알았다.
인간의 도시를 닮았지만, 이곳은 바이탄의 행성이다.
빌딩 하나하나 전부 적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적은 귀신같이 빈틈을 비집고 지나갔다.
슬쩍 흔적이 보여 쫓으면 귀신같이 사라진다.
그 덕분에 들어온 것들이 콴인지, 메카니모스인지, 아니면 뜨내기 우주 해적들인지조차도 몰랐다.
외계 인간이 될 수도 있었다.
브레인은 판단하지 않았다.
기계는 속단하지 않는다.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적은 불명이다.
대신 수비를 했다.
[전 병력]
아군에게 명령을 하달하며 브레인의 제어장치가 미친 듯이 계산을 시작했다.
적은 엔지니어다.
폐허에 버려진 구시대 안드로이드를 부활시켜 싸우고 있다.
그 사이 바이탄의 도시로 들어와서 후방을 공격한다.
이 중 적들이 노리기 가장 좋은 건 무엇일까?
[생산 플랜트를 보호한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 자신과 생산 플랜트다.
플랜트가 터지면 곤란하다.
이미 안드로이드에게 당해 소실 된 병력이 있다.
바이탄 행성에는 항상 정해진 숫자의 주둔군이 있어야 했다.
플랜트만큼이나 중요한 것, 브레인 자신이다.
전 부대의 동시 명령과 지휘권, 통제 능력을 고루 갖춘 브레인이 터져도 문제다.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자신의 거취를 생산 플랜트로 이동한 후 병력의 벽을 만드는 거다.
그래서 브레인은 그대로 행동했다.
자리를 옮긴, 새파란 동체에 팔다리가 긴 안드로이드가 명령했다.
[적을 찾는 것보다 이곳을 지킨다]
그리고 2분 뒤.
삐비비빅.
경고의 비프음이 머리를 울렸다.
브레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메카니모스도 콴이 와도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
그는 곧 이곳에 오는 써틴에게 연락했다.
[써틴]
[무슨 일?]
[기밀문서 유출 확인]
바이탄의 기밀문서라는 건, 전부 메모리 볼에 담긴 내용이다.
그것도 전부 암호가 몇 겹이 씌워져 있어서, 그 누구도 해독할 수 없었다.
기계의 신이라도 오지 않는 이상은 암호를 건 본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작동 오류인가?]
가장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가끔 미친 안드로이드가 자기도 모르게 메모리 볼을 토해내곤 했다.
[아닙니다]
브레인은 상황을 파악하고 말을 이었다.
[오류입니다. 기계 오작동, 해킹 감지]
[…오류? 해킹?]
써틴은 감정이 있는 열 세대의 안드로이드 중 하나.
그는 지금 배운 감정을 기억했다.
황당함이었다.
바이탄이 해킹을 당하다니, 격투기 선수가 아이에게 얻어맞아 케이오 당한 꼴이었다.
*
-같잖아.
프로비던스는 적의 중추 건물에 들어오자마자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지잉.
곧 벽이 문처럼 열렸다.
-들어와.
“진입.”
세주는 기관단총을 들고 안으로 훌쩍 들어갔다.
그 뒤를 부대원 모두가 따라왔다.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승강기 움직인다.
‘응.’
“놀라지 마.”
부대원에게 경고하자마자, 바닥이 훅하고 떠올랐다.
모두가 순간 자세를 낮췄다.
반응 속도만 봐도 일류다.
“신기하네요.”
유진이 밑을 보며 말했다.
바닥이 둥둥 떠다닌다.
현대판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보는 것 같다.
슉하고 날아간 곳은 거대한 기둥이 있는 곳이었다.
그 안에는 검은 구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거 전부 그거 같은데?’
-맞아. 메모리 볼.
세주는 암담함을 느꼈다.
필요한 정보는 하난데, 양이 너무 많다.
거기에 당연하게도 락이 걸려 있을 거고.
타임워치에 눈이 간다.
남은 시간은 8분 10초. 9초, 8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렀다.
‘음. 여기 털 수 있겠냐?’
-나 누군지 몰라?
재수 없는 기계 새끼라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입을 열어 말하지는 않았다.
지금 삐지게 해서 좋을 게 없었다.
착하고 기둥에 붙은 프로비던스는 그대로 침묵했다.
“지금 뭐 하는 건데?”
인준이 사방을 경계하며 묻는다.
“해킹.”
세주가 담담하게 말했다.
모두의 눈이 세주에게 향한다.
멍 때리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잘도.”
“음.”
“야, 형님이 한다면 하는 거지.”
인준이 말하고 유진이 신음을 뱉고, 치용이 불성실한 눈빛으로 말했다.
그리고 팽이.
[우리 대장은 못 하는 게 없어]
세주의 엄마가 말하듯 그를 칭송했다.
“기다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다.
-완료.
‘아, 찾았어?’
역시 우리 프로비던스라고 외칠 타이밍이었다.
-찾기는, 분류는 나중에 하고 다 끄집어냈지.
‘응?’
-전부 털었어. 이 새끼들 알면 뒷골 좀 땡길 걸.
아니, 뒷골은 인간이나 땡기는 거지.
이 기계들의 행동 양식을 볼 때 할 말은 하나뿐이었을 거다.
오류.
프로비던스가 세주의 에너지 컨트롤 능력을 보고 했던 한 마디와 같다.
기계는 자신이 상정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결과에 ‘오류’라는 단어 외에 선택지가 없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