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35화 (135/206)

#  135

135. 언 땅에 오줌 누기

프로비던스는 시작하기 전에는 불평이 많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완벽을 추구한다.

그게 프로비던스의 존재 의의였다.

폐허가 된 건물에서 수거한 로봇의 숫자는 많았다.

이것들을 일일이 고치자면 지구에 있는 인간이 전부가 늙어 죽을 터였다.

일단 엔지니어 기술이 있는 로봇 스무 대의 에너지 플랜트를 만들어 심었다.

그리고 그 스무 대의 로봇을 시켜, 다른 로봇을 수리했다.

그 이후 가내수공업 돌리듯 로봇을 타박했다.

-형, 쟤는 안 되겠다. 마인드가 썩었어. 부수자.

‘로봇이 마인드가 어딨어?’

-지금 로봇 무시하는 거? 얘네 머리 나빠 보여도 다 나름 생각 있는 애들이거든.

세주가 눈앞에 창고 건물을 꽉 채운 로봇을 바라봤다.

어느새 백 단위가 넘는 숫자다.

공장을 보는 기분이다.

시키는 일에 충실한 이들이다.

딴청을 피우는 것도, 집중하는 것도 필요 없다.

로봇들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저 시키는 일만 열중하는 거다.

프로비던스가 찍은 로봇은 한쪽 팔 전선이 너덜너덜하게 드러나 있었다.

파직파직.

스파크가 튀고, 낑낑 하며 강아지 앓는 소리가 팔에서 났다.

‘아무리 봐도 고장 아니냐?’

-지금 쟤만 아니면 능률이 오를 것 같으니까, 빼서 버리자.

야박한 자식.

세주가 그 로봇 가까이 다가가자, 렌즈 빛이 깜빡인다.

[할 수 있습니다]

옆구리에 갈색 얼룩이 보였다.

오일이 흘러 굳은 자국이다.

다른 로봇에 비해, 험난한 꼴을 당한 것 같다.

에너지 플랜트만 고쳐도 움직이는 로봇이 있는 반면, 이렇게 반파된 놈들도 있다.

“넌 원래 뭐하던 애냐?”

세주가 쭈그려 앉으며 물었다.

바닥에 앉은 로봇이 빛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돌린다.

-봐, 저것 봐. 일 안 하고 딴청 피우는 것 봐.

프로비던스를 깔끔하게 무시한 채, 로봇을 보자.

녹색 불빛을 비추는 로봇은 말 대신 머리를 열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정수리 부분, 반구 형태가 쩍하고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 작은 구슬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한국에 있을 때, 여의도에 쳐들어온 놈들 비행기에 있던 거랑 비슷한 것 같은데?’

-맞아. 쉽게 말하자면 메모리 카드야. 접속하는 거로 영상을 볼 수 있어.

‘영상?’

-이 로봇의 기억, 저장된 걸 볼 수 있다는 거야.

동영상 같다는 소리다.

‘접속은 어떻게 해?’

-손만 갖다 대.

세주가 손가락을 하나 붙이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영상 재생이구나.’

-맞아.

아마존에 쳐들어 온 놈들 비행기에서 한 번 했던 거다.

그때보다는 퀄리티는 낮았다.

사방은 어둡고, 몸이 붕붕 떠 있는 느낌도 없다.

대신 주변 어떤 것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만 가지면 다 볼 수 있었다.

커다란 유리창 같은 것들이 공중에 떠 있었다.

기억의 일부였다.

외계어로 쓰여 있어서, 분류를 알아볼 순 없지만, 뭘 봐야할지는  알았다.

이 로봇이 파괴되기 직전의 장면이다.

네모난 창에 영상이 멈춰 있다.

그걸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 순간 정신이 그 창 속으로 쑥 하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동시에 세주는 로봇이 파괴되는, 이 로봇의 마지막 기억을 볼 수 있었다.

그 날은 짙은 안개가 낀 날이었다.

[주인님]

그리고 로봇은 이 행성에 얼마 없는 전투형 안드로이드였다.

은빛의 둥근 머리통, 그리고 가는 다리.

오른팔에는 손대신 칼이 달려 있고, 왼팔에는 총구가 달려 있다.

[실버]

그 앞, 금빛으로 빛나는 비슷한 형태의 안드로이드가 보였다.

[멍청한 짓을 했다]

[아니, 해야 할 일이다]

[우리를 만든 이들이다]

[창조주라고 해서 옳은 건 아니다. 인간은 약하고 쓸모없는 피조물이다. 그러니, 전부 죽인다]

[협상은 결렬이다]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바이탄 특유의 무미건조한 말투다.

하지만 그 안에든 적의는 분명히 느껴졌다.

실버라고 불린 안드로이드는 눈에서 레이저를 뿜었다.

칼을 휘둘렀고, 왼손 총구에서도 레이저 포를 뿜었다.

하지만 금빛 안드로이드의 배리어가 뚫리지 않았다.

[멍청하다. 인간에게 가망은 없다. 우리가 아니라면 콴이나 메카니모스에게 먹힐 것들. 차라리 우리가 전면에 나서서 싸우는 게 나을 거다]

팔이 뜯기며 뒤로 날아간 실버에게 금빛 안드로이드가 말했다.

[주인을 지키는 게 내 사명이다]

[그 주인은 죽었다]

세주는 그 말투에 감정이 실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안타까움 이었다.

금빛 안드로이드는 실버라는 이를 회유하고 있었다.

로봇도 감정이 있었다.

흥미로웠다.

실버는 자신의 다리를 뜯었다.

[같이 죽자]

자신의 다리를 든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위협이 될 순 없었다.

[어리석다. 합리성을 잃은 바이탄은 가치가 없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섬광이 실버에게 꽂혔다.

퉁.

소리는 작았고, 공격은 날카로웠다.

심장이 부서진 실버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금빛 안드로이드는 다가와 실버의 뇌라고 할 수 있는 메모리 볼을 뜯었다.

구슬을 쥔 그는 옆에 굴러다니는 폐급 로봇의 머리를 뜯어 그걸 쑤셔 박았다.

[넌 내 형제다. 생각을 바꿔라. 인간이 멸종되면 어차피 넌 내 옆에 있을 거다. 그게 합리적이니까]

실버는 부인할 수 없었다.

메모리 볼에 에너지가 끊기자 화면에 노이즈가 생겼다.

지지지지직.

듣기 싫은 소음을 끝으로 다시 어둠이다.

처음 봤던 다양한 창이 있던 자리였다.

인간에게 태어난 생명, 그게 바로 인공지능을 갖춘 안드로이드 바이탄이었다.

그리고 지금 화면을 본 세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자식들, 인간이랑 다를 게 없네?’

감정이 있고, 생각이 있고, 그걸 실행할 행동력까지 갖췄다.

인간에게는 최악의 적이다.

*

써틴.

그게 자신에게 내려진 이름이다.

감정을 가진 열세대의 안드로이드.

바이탄의 핵심 전력이자, 수뇌부다.

그중 하나 써틴은 자신에게 들어온 정보를 읽었다.

휘하 행성에서 일어난 일이다.

넘버 883 행성, 보급기지 중 하나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브레인은 일어난 일을 파악하고 보고하고 대처까지 한다.

손쓸 일 하나 없이 돌아가는 곳이다.

그런데 그 정보란 중에 특이점이 있었다.

‘적이 침투했지만,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다.’

시각 정보가 남지 않았다.

적의 모습을 모른다.

‘콴?’

소수 정예라면 번뜩 떠오르는 이름이다.

달리는 칼이나 뻗는 칼, 그게 아니라면 최근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렬하는 칼이라면 이럴 수 있다.

안드로이드 중에서도 최고 성능을 갖춘 그였지만.

콴 놈들은 비정상적으로 강하다.

일인군단.

놈들에게 붙은 별명이다.

하지만 그놈들이 하릴없이 여기서 이럴 일은 없다.

최근에 메카니모스와 콴은 서로 게릴라전을 펼치며, 한참 싸우는 중이다.

그 중 막강한 전력인 콴의 괴물 세 마리가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다.

하물며 바이탄의, 세 자리 수 숫자의 보급기지에서 깽판을 칠 확률은 너무 낮았다.

써틴은 그렇게 하나둘, 불가능한 일들을 지웠다.

소거법은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전부 소거하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투를 담당하는 두 놈이 와도 무리다.

호기심은 좋은 거다.

궁금한 걸 해결할수록 네 능력은 높아진다.

숫자가 없는 안드로이드이자, 바이탄 최고 수장의 말이 떠올랐다.

써틴은 그 말을 행동지침으로 삼고 움직였다.

[수송선]

그는 자신의 전용선을 탔다.

비틀 쉽의 일종이지만, 이형포 두 문을 달아 둔 최신형이다.

필요에 따라 전투 비행이 가능해, 어지간한 위협은 떨굴 수 있었다.

써틴은 그대로 883 행성 좌표를 확인하고 수송선에 올랐다.

‘30분.’

인간이 만든 것 중 가장 훌륭한 것이라면 숫자와 시간 개념이다.

써틴은 자주 그런 생각을 했다.

지표가 되는 숫자가 있다는 것은 편리하다.

애초에 자신들의 프로그래밍도 그렇게 이뤄졌다.

883 행성에 통신을 넣은 수송선이 기체를 띄웠다.

퍼스트라고 이름 붙은 바이탄 행성에서 일이었다.

*

세주는 처음에 총을 들고 쏘는 법을 가르치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실버라는 안드로이드의 메모리에 전투법이 남아 있었다.

‘이거 복사 안 되냐?’

-소프트웨어로 분류된 건 가능해. 물론 받아들이는 메모리 쪽에 여유가 있다면.

세분화 된 전투법을 살핀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는 안 되지?’

-하나만 골라.

총검술, 도검술, 사격술, 폭탄 제조 및 설치 등등.

실버는 아는 것도 많았다.

‘사격술만 때려 박자.’

-그럼 붙으면 다 죽어.

‘사격술도 없으면 얘네는 그냥 다 죽어.’

-정말 이놈들 데리고 싸우려고?

‘응.’

프로비던스는 홀로그램을 펼쳤다.

대부분 안드로이드의 분류표였다.

-하우스 키퍼 250기.

그들이 지켜야 할 집과 장소는 이미 폐허다.

-엔지니어 50기.

고칠 것들은 이미 어지간히 고쳤다.

-잔디 깎기 용 50기.

그런 것도 있었냐? 두 번 말하면 입 아프다.

잔디가 있던 자리에는 잡초와 썩은 흙만 가득하다.

-베이비시터 50기.

총 400기다.

아니, 실버까지 합치면 401기.

병력으로는 충분하다.

단 몇 시간 만에 이 정도 병력을 갖췄다.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전쟁 나면 아이건 여자건 할 것 없이, 다 싸우는 거야. 다 죽게 생겼는데, 용도 따져서 뭐하게?’

프로비던스는 얌전하게 실버의 사격술을 그들에게 업로드 했다.

그리고 프로비던스가 만든 400정의 광탄 라이플.

무장 완료, 훈련 완료다.

“가자.”

세주가 말하며 돌아섰다.

로봇들은 전부 그의 명령을 따랐다.

그들은 인간의 명령을 따르기로 약속된 안드로이드.

그리고 이 땅에 인간은 반세주 하나뿐이었다.

콰우!

바이탄의 병력은 많았다.

잘 정돈된 상태에서 싸움은 불리하다.

적이 화력도 좋고 숫자도 많다.

세주는 혼자서 건물 옥상에 드러누웠다.

400기의 안드로이드는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찾아.’

기계는 명령에 움직인다.

그러니까 명령을 내리는 중추, 그걸 찾아 부수면 된다.

어떤 컴퓨터도 cpu나 메인보드가 박살 난 채로, 움직일 순 없다.

세주의 눈에 푸른빛이 보인다.

적의 숫자는 대략 2,000기.

그리고 명령을 하달하는 놈은 단 한 기다.

‘죽여 달라고 비는구나.’

-그러게.

적은 세주를 모른다.

그리고 세주는 적을 안다.

애초에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그렇게 싸웠다.

적에게 자신을 숨기고, 적의 정보를 먼저 취득함으로.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싸운다.

그게 세주의 전투방식이었다.

프로비던스는 단시간에 적을 파악할 수 있었고, 세주는 그 정보를 토대로 적을 부술 수 있었다.

벼락을 손에 쥔 세주는 집중했다.

주변 소리가 사라지며, 한 점을 노려본다.

꽝!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주저함은 없었다.

이 싸움은 단기전이다.

장기전으로 가면 절대적으로 열세다.

고로 시간을 아낄 수 있다면 아낀다는 거다.

대형 광탄이 허공을 가른다.

레이저 포 대신 광선 에너지를 모아 탄환으로 바꾼 거다.

덕분에 벼락은 총성을 찾았다.

세주는 그 소리가 반가웠다.

꽈광!

벼락은 언제나 두 번 울렸다.

세주는 자신이 목표한 곳을 바라봤다.

어설프게 펼쳐진 배리어를 부순 탄환이 적의 지휘관을 박살냈다.

상체가 날아간 로봇이다.

적은 한 번 내려진 명령을 충실히 지켰다.

‘룰루랄라. 다 잡아먹을 시간이로구나.’

-신나?

‘내가 막, 뭐 부수고 쾌감 느끼는 건 아니지만, 이건 좀 신나네.’

안드로이드에게 종(種)이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다면.

이 싸움은 약자의 반란이다.

일방적으로 유린당한 강자에게 칼을 빼든 약자.

구경하기 딱 좋은 싸움이란 거다.

펑!

놈들이 달려오던 바닥이 터진다.

매립해둔 폭발물 덕에 사방으로 돌과 금속조각이 흩어져 날았다.

동시에 적 기계 병력의 중앙이 크레이터가 생기듯 텅 비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 빛이 번쩍인다.

두두두두둥!

반격 시작이었다.

매복한 400기의 로봇이 광탄을 갈겼다.

퍼버버벙!

터지고 부수는 소리가 널렸다.

그 중심.

실버라고 불렸던 안드로이드가 있었다.

지휘 전술도 입력된 실버다.

세주는 그에게 모든 싸움을 맡겼다.

그리고 이 난리를 통해서 세주는 달렸다.

-형은 진짜 약은 남자야.

‘내가 뭐?’

-같이 싸울 것처럼 굴더니.

‘할 건 하고, 싸워야지. 더구나, 여기서 소모전은 의미가 없다고.’

외계 놈들이랑 하루 이틀 싸우나.

놈들은 언제나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걸 부수기 전에는 이 전투도 언 땅에 오줌 누기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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