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07화 (107/206)

#  107

107. 십만양병설

-형치고는 드물지만, 생각이란 걸 했구나.

프로비던스는 한결같았다.

외계 기술을 먹고 업그레이드가 된 후에도 싸가지 없는 말투는 여전하다.

“응. 그랬지.”

테크룸이다.

의자에 몸을 파묻고 세주가 답했다.

아무리 막 나가는 세주라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외계 사절단에게 시비를 걸진 않는다.

세주가 노렸던 건 세 가지였다.

첫째, 적의 무력.

둘째, 적의 진의.

셋째, 적의 패턴 파악.

무력은 충분히 경험했다.

비트레이어를 기준으로, 아니.

이전 침공의 끝판왕이던 조두와 헬로우, 두 녀석이 분대급으로 가르간 놈에게 달려들어도 상대가 안된다.

막강했다.

본능이 세주에게 알려줬다.

진심으로 덤비면 죽는다는 걸.

그리고 두 번째, 적의 진의다.

만일 정말로 동맹을 위해서 온 거라면, 끝까지 뜻을 관철할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놈은 너무 쉽게 포기하고 갔다.

일부러 도발까지 했지만, 놈은 여유 있게 비웃으며 떠났다.

애초에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기도 했지만, 너무 빠르게 포기하고 떠났다.

놈의 진의, 동맹에 있는 게 아니다.

세주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패턴 파악.

프로비던스가 있어야 가능한 짓이라, 반쯤 포기했었다.

하지만 타이밍 좋게 깨어난 프로비던스다.

덕분에 놈의 힘과 움직임, 공격 패턴을 파악하고, 기억해 둘 수 있었다.

녹색 우주선에서 본 것과 합쳐서 하나의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

그건 큰 재산이 될 거다.

알지 못하는 적과 겪어 본 적의 차이다.

프로비던스는 만능의 기계다.

그가 있다면 한 번 상대해 본 적을 무너뜨리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지금 테크룸을 보는 세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찌지지직.

쩌저정!

테크룸의 모든 것이 부서진다.

입자 형태로 깨지고 푸른빛이 되어 흩어진다.

-준비됐지?

‘진즉부터 기다리는 중이다.’

파직.

스파크가 튄다.

퍽.

코 안 쪽 혈관이 터지고 피가 주르륵 흘렀다.

스윽하고 손으로 흐르는 피를 훔쳤다.

실제로 육체에 데미지가 있는 게 아니다.

지금 있는 곳은 정신적인 영역.

그리고 지금 하는 짓은, 세주의 정신세계를 확장하는 거다.

실제로 세주가 변하는 건 없다.

다만.

-이게 되면 내 활동 영역이 넓어질 거야.

프로비던스가 달라진다.

이 버릇없는 기계가 머무는 곳은 세주의 몸이다.

기본적으로 세주의 육체를 기반으로 살아남는 기생 로봇이다.

그리고 이번 업그레이드를 통해 프로비던스는 변화를 시도했다.

세주의 눈앞에 테니스공만 한 검은 물체 두 개가 부딪쳤다.

그리고는 펑 하고 터지며 사방에 빛을 퍼트린다.

대폭발로 우주가 태어났다는 빅뱅 이론을 눈으로 보는 것 같았다.

파아아악.

사방으로 흩어진 빛무리가 비처럼 내린다.

그리고 세주의 바로 옆에 작은 공이 생긴다.

원반의 띠를 두른 작은 공이다.

아니, 공이 아니다.

행성, 마치 우주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다.

빛무리가 하나하나 동그란 원을 만든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될 것 같다.

그 신비로움에 가슴이 뛴다.

-역시, 이건 너무 내 취향이지. 바꾼다.

그 사이로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다.

팟.

보던 장면이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앞에 넓은 복도가 나타난다.

-익숙한 모습이 편하겠지? 새로운 테크룸이야. 일명, 기술의 복도라 부르는 거야.

Technology Corridor.

테크룸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우주도 신기하고 멋졌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았다.

넓게 뻗은 복도 옆으로 문이 보였다.

-거긴 R&D 룸. 연구개발실이야. 이제까지 복잡하게 나뉘었던 연구, 기술, 실험실을 통합한 곳이지.

스윽.

손을 갖다 대자, 문이 열린다.

그동안 연구했던 내용과 결과가 작은 네모난 창으로 검은 공간에 떠 있다.

-본다고 알아? 넘어가.

초를 치는 저 자식이 아니었으면 이 감탄이 더 지속됐을 것 같다.

연구개발실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다음은 트레이닝 룸.

훙.

이제까지 만났던 상대와 그에 대한 대처법을 연구한다.

그리고 그걸 시뮬레이션 모드와 홀로그램 영상으로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에너지 플랜트.

-일반 에너지, 노블 에너지, 사이킥 에너지를 채집할 수 있지. 그리고 이 세 개의 에너지가 아니라 새로운 에너지를 채집하게 됐어.

“무슨?”

-오닉스.

화악.

주변 풍광이 다시 변한다.

그리고 프로비던스의 소년 형태가 보였다.

정방형의 은회색 바닥의 방이다.

훙.

그리고 불길하고 끔찍한 기운이 프로비던스에게 느껴졌다.

-이게 바로 오닉스 에너지야.

손가락 끝, 아주 미약한 검푸른 빛이 보인다.

은은하게 뭉친 빛이 흩어진다.

-지금은 쓸 수도 활용할 수도 없으니까, 구경만 해.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또 판을 깨는 놈이다.

“쓸 수도 없는 걸 왜 보여 줘?”

프로비던스가 피식 웃는다.

저 소년 형태 홀로그램은 재수 없는 미소를 참 잘 짓는다.

-언젠가 쓰겠지.

뭐냐? 그 평생을 노력해도 쓰지 못할 거라 믿는 표정과 말투는.

“오냐.”

세주는 무시했다.

변한 테크룸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눈 돌리기 바빴다.

인벤토리와 모드 트리는 크게 변한 게 없었다.

“근데 업그레이드돼서 할 수 있는 게 고작 테크룸 변신이냐?”

며칠이나 정신까지 잃은 주제에 말이다.

-설마. 이게 끝이겠어.

그리고 촤르르륵! 눈앞에 긴 메뉴판이 펼쳐진다.

-개발하고 싶은 거 집어. 하나씩 해보자.

흥분된 목소리의 프로비던스다.

메뉴판을 본 세주도 눈을 크게 떴다.

“와우.”

자기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첫 번째 보이는 게, 광학병기 개발이다.

메뉴를 쭉 살펴본다.

그리고 세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날 위한 게 아니구나.”

-정답.

군, 정확하게는 타인을 강하게 할 수 있는 메뉴가 대부분이다.

광학병기 개발, 사이킥 에너지 개발, 인체 강화 개발 등등.

전부 일반인을 현재 특수 부대라 불리는 이들 이상의 힘을 갖추게 만드는 것들이다.

결국, 전쟁은 혼자 할 수 없다.

상대에게 그 ‘가르간’이라는 사절단 같은 놈이 다섯만 있어도 인류는 멸망할 거다.

싸움은 결국 자신의 손으로 해야 하고, 뭔가를 지키길 원한다면 스스로 나서야 하는 법이다.

“광학병기부터 해.”

-오케이.

이건 전쟁이다.

모두를 지켜줄 수 없다면, 지킬 힘을 그 손에 쥐어줘야 하는 법이다.

*

나호필은 외계인 사절단이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하는데 진땀을 흘렸다.

세주가 나서서 중간에 상황을 설명했지만, 하나도 도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을 바쳐서 살아남을 순 없다.

결론은 하나였다.

전쟁을 끝낼 수 없다면 싸운다.

그런 상황에서 세주가 나호필을 찾아왔다.

“무슨 연구팀?”

“광학무기 연구팀을 신설해달라고 했다.”

세주가 심드렁한 태도로 말했다.

나호필이 말했다.

“이봐, 아무리 봐도 넌 이쪽보다는 이쪽을 쓰는 타입이다.”

나호필이 머리를 가리켰다가 다시 심장을 쿡 하고 찔렀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머리를 쓰고 연구를 하는 게 자신이라고 한 적은 없다.

“내 안에 프로비던스라는 괴이한 로봇이 있어, 그게 연구할 거다.”

“…좋아. 넌 내가 알던 그 이상의 천재다. 무슨 연구든 할 수 있다. 더구나, 구국 영웅의 요청이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고.”

원하는 건 세 개다.

대규모 생산시설.

그리고 그걸 만들 이와 연구할 이들.

도면도 공식도 모두 세주가 줄 테니, 나머지 준비를 해달라는 거다.

나호필은 마지못해 수락했다.

미친 소리를 하는 반세주다.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여기서 드러누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자.”

이게 끝이 아니었다.

“훈련 시스템 좀 바꾸는 게 어때?”

세주는 자신이 생각하던 모든 걸 나호필에게 얘기했다.

처음에 의심스러운 눈으로 듣던 나호필은 4시간 만에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넌 이해할 수가 없는 종류의 인간이다.”

가진 능력의 끝이 안 보인다.

사실은 반세주 개인의 능력이라기보다는 프로비던스라는 희대의 사기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능력이지만.

세주가 말한 것들.

나호필도 생각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함부로 실행할 수 없었던 것들이기도 했다.

“외계인은 다시 침공한다. 그들이 침공했을 때, 어물쩍 당할 순 없잖아.”

세주의 말에 나호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세주는 부지런히 쏘다녔다.

훈련 코스를 짰고, 나호필을 만나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직후다.

“너무 열심히 일했다.”

아침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하루였다.

세주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대신 눈을 감았다.

변한 테크룸으로 들어온다.

복도를 지나, 트레이닝 센터 문을 열었다.

-늦어.

‘바빴거든.’

그리고 그 안에 가르간, 외계인 사절단이 서 있다.

물론 실체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전적 19전 19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아니, 저자의 팔 하나 끊어본 적이 없다.

“콴이라는 종족 놈들은 다 저 정도 하려나?”

-모르지. 그 정보는 없었어. 하지만 저놈을 죽이지 못하면 인류 생존의 가능성은 없어.

아아. 그렇지.

가르간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가설을 세웠다.

인질을 원한 이유.

굳이 동맹을 택한 이유.

이전에 우주 해적이라는 놈이 인류를 공격하는 걸 알면서도 놔두고 이제야 나선 이유.

다양한 사실을 토대로 가설을 세웠다.

놈은 인간을 원한다.

멸망이 아니라, 인간이 발전하기를 원한다.

이유는 모른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화한 인류를 죽이기 위해 놈들은 올 것이다.

그게 놈들의 목적이다.

우주선에서 본 영상이 그걸 증명했다.

그러니까 지금 세주가 할 일은 정확했다.

율곡 이이 선생님이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듯이.

부국강병이다.

강한 병사를 키우고 자신의 힘을 키우는 거다.

그리고 가르간 놈이 다시 왔을 때 그 얼굴에 한 방 먹이는 거다.

우두둑.

목을 풀고 앞으로 나선다.

“모드 온 인파이터.”

시작은 근접전이다.

세주가 앞으로 내달렸다.

시뮬레이션 모드 삼매경에 빠질 시간이었다.

*

24살.

한참인 나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내년에는 서울로 갈까?’

지방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만으론 앞날이 캄캄했다.

팔뚝을 감은 용 문신 덕분에 어지간한 회사는 취직도 못 한다.

하지만 서울이라면 할 일이 있을 것 같았다.

잡생각을 하며 걷던 그다.

슉슉!

이상한 소리가 났다.

“별 미친 새끼가.”

가로등 불빛, 그림자에 누가 주먹을 앞으로 내지르고 있었다.

섀도복싱이라도 하는 것처럼 허공을 가르는 주먹이다.

그림자가 흔들리는 걸 본 그가 얼굴을 찌푸리고는 걸어갔다.

그런데 무시하고 지나가려는 순간이다.

그림자가 덜컥 멈추더니 터벅터벅 걷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봤다.

어설프게 시비라도 걸면 아주 반 죽여줄 작정이다.

그래도 소싯적에 복싱 좀 한 몸이다.

그리고 뒤를 본 순간.

“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말문이 막혔다.

발이 땅에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한 생긴 놈이다.

네모난 돌을 세운 것 같은 몸에 불룩하게 솟은 머리다.

목 같은 건 없이, 편편한 돌바닥에 혹이 솟은 것 같이 생겼다.

그 안에 작은 눈이 보였고.

사람 머리보다 큰 주먹이 보였다.

“트레.”

놈은 한 마디를 중얼거리고 바닥을 박찼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퍽!

사람 머리보다 큰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남자의 머리를 터트렸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검붉은 액체가 터진 물감처럼 골목 벽을 적셨다.

주르륵.

벽에 흐르는 피가 바닥에 내려와 퍼진다.

인간의 머리를 터트린 놈의 발이 그 위를 철벅 하고 밟아, 피 웅덩이에 발자국을 남겼다.

*

지직.

“오늘의 뉴스입니다. 어제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젯밤, 11시경. 전주 인후동 골목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A씨는 평소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현재 시신은 국과수에서….”

“경기도 안산역 화장실에서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전신이 토막 난 시신으로 현재 경찰이 수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무차별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어떤 태도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차별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열흘, 각지에서 숨진 사람들만 해도 80명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어제, 흐릿한 한 장의 사진을 입수했습니다.”

화면이 바뀐다.

암회색의 이상한 형체가 흐릿하게 찍힌 사진이다.

“외계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의심해 봅니다. 정부 당국에서 이제 손을 써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전 국민이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팟.

화면을 끈 세주가 몸을 일으켰다.

“골치 아픈 놈들이네.”

차라리 부대를 이끌고 침공하면 맞서 싸우면 된다.

하지만 몰래 들어와서 인간을 학살한다?

골치 아픈 정도가 아니다.

찾아서 죽이는 것 자체가 어렵다.

“야, 나호필한테 연락 넣어서, 병력 지원하라고 해. 저거 외계인 짓이니까 다 잡아 죽이라고.”

“넵!”

내무실 바깥쪽, 개인 통신병 중 하나다.

그가 밖으로 나갔다.

이러려고 군에 기술을 넘기고, 훈련 방식을 바꾸고 특수 부대를 만들었다.

“박민우, 자식 허튼짓만 해봐.”

박민우 소위.

현재는 소위까지 진급한 박민우다.

훈련소 교관이었던 그는 현재 세주에게 훈련받고 타 부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 옮긴 자리가 바로 기동타 어격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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