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82화 (82/206)

#  82

82. 테러

“빌어먹을! 누구 짓인지 알게 되면 가만 놔두지 않을 테다!”

배가 통통하니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돼지를 닮은 남자다.

워싱턴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테리다.

배달을 준비하던 중 피자 한 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다음에는 배달부가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고, 피자를 강탈당했다.

이 피자 도둑은 제대로 미친 새끼인지, 그 자리에 돈을 놓고 간다.

‘잡히기만 해봐라.’

벼르다 못해 칼을 갈고 있는 테리다.

막 나온 뜨끈뜨끈한 피자를 밖으로 보냈다.

딩동!

음식이 나왔다는 벨을 누르자.

직원이 부리나케 다가온다.

이 동네에 산다면 자신의 피자를 모를 리 없다.

향이 가게를 넘어 퍼진다.

‘오늘도 최고야.’

그는 자신의 피자에 자신이 있었다.

그 도둑놈도 맛은 알아서 자신의 피자를 훔쳐가는 것이 틀림없다.

근데 어떻게 훔쳐 가는지 용케도 모습 한 번 들킨 적 없다.

“테리, 피자 나왔다면서요?”

벨을 누른 게 방금이다.

“가져갔잖아.”

“네? 아직 오전이라 직원이 나밖에 없는데, 난 안 가져갔어요.”

“뭐?”

테리가 급히 주방에서 나왔다.

테이블에 앉은 커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식은 언제 나오는 거야?”

고개를 휙휙 돌렸다.

안 보였다.

“테리.”

뒤에서 이 가게에서 벌써 2년째 일한 녀석이 그를 불렀다.

“아까 피자 가져간 놈 못 봤어?”

“…테리? 괜찮아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털썩.

“고스트다. 고스트야.”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넋이 빠진 채 뒤돌아오는데 벨 옆에 피자 값이 보인다.

그놈이었다.

피자 도둑놈.

*

우적.

하수도에서 정말 피자를 먹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도둑놈처럼 훔쳐 먹는 신세라니.

“본국과 연락 안 되죠?”

“안 돼.”

나호필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여러 번 시도했다.

여기가 무인도는 아닐 터인데,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고립이다.

“어쩔 생각이지?”

벌써 하수도 생활만 3일째다.

헤엄이라도 쳐서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고민할 시점이다.

나호필이 세주를 본다.

“그걸 왜 저한테 묻습니까?”

“난 수가 없어. 다 막혔어. 내가 쓸 수 있는 정보가 없으면 난 그냥 일반인일 뿐이다.”

역시나 나호필도 보통 인간은 아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은 힘이 없다고 밝히다니.

“미국 상태는 어떤 거 같습니까?”

“최악.”

아군의 끈이 끊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미군 전체, 아니 미국 시민 전체가 테러리스트라고 이들을 매도하게 놔둔다.

언론, 정치 전부 틀어 막혔다는 소리다.

“그냥 나가서 다 때려 부수면 되는 거 아닙니까?”

“조용히 하고 있어.”

치용이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인준이 그의 입을 틀어막는다.

“이 새끼는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조용히 하래.”

“…에휴.”

인준이 한숨을 쉬고 세주가 입을 연다.

“치용아. 얌전히 기다려야지.”

“…제가 갭니까?”

-드디어 진화한 건가. 솔직히 방금 형 말 못 알아먹을 줄 알았는데.

“아니. 넌 곰이지.”

아무 말이나 해주고 다시 나호필을 바라봤다.

그가 눈을 빛내고 세주에게 묻는다.

“김치용과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

절대 아니지.

“소장님이라면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탈출.”

고작 다섯이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의 의견도 타당하다.

“준장의 생각은?”

씌익.

세주가 만면에 미소를 보였다.

놈들은 세주 일행을 테러리스트라고 지목한 뒤 완벽하게 틀어막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해줄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테러.”

테러리스트로 지목해줬으니, 그에 합당한 짓을 해줘야지.

“…테러?”

다섯이서 군대와 맞설 수는 없다.

대신.

윗대가리에 있는 놈들을 죽일 순 있었다.

세주가 생각한 일은 단순했다.

찾아가서 몰래 죽인다.

암살이다.

“찬성!”

생각 없는 치용이 손을 들고 말했다.

*

덜컥.

고급 빌라 단지, 한 주택의 창문이 조용히 열렸다.

툭.

누군가 그 안쪽으로 들어온다.

하나가 아니다.

들어온 숫자는 셋.

맨 앞에 있던 남자가 주먹을 들고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조용히 안으로 들어간다.

사박사박.

조용한 집에 발걸음 소리가 퍼진다.

카펫을 밟는 소리다.

‘확인해.’

그들이 들어온 곳은 주방이었다.

문을 슬쩍 열어서 그 틈새로 밖을 살피던 세주다.

-맞아.

찾았다.

두 번이나 허탕을 쳤다.

유력인사라고 해서 전부다 형태변환자로 갈아치우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테이크 필먼이란 남자의 집이다.

도시 내에서 방귀 좀 뀐다는 언론사 사장이다.

“도둑이라면 그냥 나가라. 경비를 부르진 않겠다.”

퍼스트 오더란 놈만 저따위 말투인 줄 알았더니.

이게 놈들의 종족 특성인가보다.

“도둑 아닌데?”

놈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테러리스트?”

“웃기고 있네.”

시작은 유진이다.

달려들어 놈의 머리를 찬다.

적중하기 직전, 놈이 소파를 들어 올리며 피했다.

빠각!

소파 다리를 분지른 유진이 옆으로 피하고.

인준이 달려들었다.

‘약점이 뭘까?’

-그냥 봐서는 알 수가 없어.

인준이 주먹을 휘두르며 그를 압박하자 놈이 점프해서 거실 위 샹들리에에 매달린다.

끼기긱!

샹들리에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심각한 소음을 낸다.

부르주아 같으니라고, 집안에 샹들리에가 웬 말이냐.

찌르르.

그가 밑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고 왔지?”

“감으로.”

놈의 눈이 인간이라면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방향으로 휙휙 돌았다.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제각각 움직인다.

뿌드득!

그리고 곧 인간의 거죽을 벗어버린다.

전과 같다.

근섬유가 드러난 몸과 쭉 찢어진 입과 눈.

덩치가 단숨에 커진 놈이 밑으로 쇄도한다.

세주를 향해서다.

쩌억!

놈의 무릎을 정면으로 막자 뿌지직하고 발이 마룻바닥을 부수고 파고들었다.

‘묵직하네.’

그래도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다.

쌔액!

다시 머리로 날아오는 채찍 같은 팔이다.

그대로 잡아챘다.

‘모드 온 인파이터.’

육감 스킬이 놈의 공격을 미리 알려준다.

조두 놈에 비하면 너무 약하다.

콰득.

손아귀에 힘을 주자 놈의 근육이 부서진다.

“끄에에엑!”

놈이 기괴한 비명이 터졌다.

“시끄러워.”

그대로 놈의 머리를 팔꿈치로 후려치고 양 허벅지를 무릎으로 찍었다.

뻑! 쩍! 쩍!

그래도 놈은 기절 대신, 몸을 비틀대며 반항했다.

인간과 다르니, 어딜 때려야 기절하는지 알 수가 없다.

‘성질 부여, 전격.’

순간 봄버맨 모드로 전환, 작은 점토 폭탄에 전격을 부여해 놈에게 붙였다.

쿵! 파지지지직!

‘영향을 받네.’

럭키다.

놈이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세주는 서슴없이 벼락을 들어 놈의 머리에 대고 쐈다.

꽝!

머리가 터지는 걸 보고 놈을 둘러업는다.

“가자!”

웨에에에엥!

때마침 바깥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이런 소란을 피웠으니, 누군가 신고했을 거다.

바깥으로 나오니 나호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

다섯이 된 그들이 다시 뛴다.

치용이 버릇처럼 나호필을 한손으로 들어 어깨에 얹었다.

“멀미난다.”

“죽는 것보다는 나을 겁니다요.”

치용이 중얼거렸다.

이제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는 하수도로 돌아온 그들이다.

“죽은 겁니까?”

유진이 물었다.

철푸덕.

하수도에 놈을 내려놓은 참이다.

살아있는 생물을 프로비던스의 인벤토리에 넣을 순 없다.

고로.

-해부하자.

이번에는 직접 놈의 몸을 까봐야 했다.

“한 번 헤집어보자고. 놈의 약점은 뭔지.”

쭈우욱!

군용 대검에 노블 에너지를 넣고 놈의 몸을 반으로 갈랐다.

“역겹군.”

나호필이 감상평을 내뱉었다.

놈의 피는 마치 젤리처럼 뭉쳐져 있었다.

그 안으로 내장으로 보이는 것과 그걸 감싸는 갈비뼈 모양의 묵직한 뼈가 보인다.

-오. 혈액 형태가 독특한데. 그 안쪽도 봐봐.

“이게 내장인 것 같습니다. 인간과는 구조가 다르네요.”

유진의 말에 인준이 물었다.

의무병 교육을 받으면서 기본 의료기술을 배운 유진이다.

그가 손을 젤리에 푹 찔러 넣었다.

“끄르륵.”

몸이 반으로 갈린 놈이 신음을 흘린다.

세주가 그걸 보고 칼을 높이 들었다.

“우린.”

푹!

그리고 밑으로 내리꽂는다.

“어떻게 죽이는지만 알면 돼.”

“정답이다.”

나호필이 그 말에 동의했다.

처음 내리찍은 곳은 젤리처럼 굳은 혈액의 중앙이다.

심장처럼 보이는 기관이었다.

“끄륵!”

하지만 놈은 죽지 않았다.

“르르!”

그리고 눈을 뜯고 사납게 그들을 노려본다.

“잡아.”

치용이 놈의 양팔을 발로 밟았다.

“바둥거리면 뒤진다.”

그리고 한마디를 던졌다.

인준이 다리를 잡더니 와이어를 꺼내서 묶어버렸다.

그 사이 세주와 유진이 번갈아 가며 찌른다.

푹! 푹!

“끄륵!”

“그르르.”

한동안 같은 짓을 반복한 둘이다.

-에너지다.

그 사이 프로비던스가 한쪽을 가리켰다.

렌즈의 푸른빛이 가리키는 곳이다.

개구리 알처럼 생긴 내장이다.

-핵이야. 인간으로 치면 저게 심장이겠어.

놈의 쭉 찢어진 눈과 세주의 눈이 마주쳤다.

“라루!”

놈이 외쳤다.

하지만 세주의 칼날은 멈추지 않았다.

푹!

푸와왁!

녹색 체액이 위로 솟는다.

젤리처럼 굳었던 피가 단숨에 액체로 변해서 흘렀다.

“냄새 한 번 고약하네.”

인준이 눈살을 찌푸렸다.

“약점은 여기.”

세주가 가리킨 곳이다.

“남자로서 맞추기 참 어려운 곳이네요.”

유진이 평가를 내려준다.

놈들의 약점.

고간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생식기가 있는 위치였다.

*

놈을 구분하는 건 프로비던스가 대신해줬다.

시체를 가지고 인벤토리에 넣고 연구실에서 세심하게 하나하나 해부해보더니.

원거리에 있는 것들도 금세 알아본다.

그리고 약점을 안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거시기가 터지면 죽는다.

죽으면 젤리처럼 응고된 혈액이 액체로 변한다.

프로비던스가 시체를 수거해서 내린 결론이다.

거기에.

-양질의 에너지야. 전과 농도가 달라. 하지만 높지는 않아. 잘해야 2만 내외로 수급할 수 있겠어.

놈의 위치에 비하면 높은 수치의 에너지가 아니다.

철컥.

프로비던스에게 먹은 에너지로 총기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하루가 지나고 나니 12만짜리 에너지를 먹은 총기가 만들어졌다.

“벼락이 아니네요?”

“대낮에 건물 중앙을 박살 낼 순 없잖아.”

배럿의 형태가 아니다.

그보다 더 긴 총신.

볼트 액션 타입의 저격 소총.

여러 가지 특징을 따서 만든 프로비던스의 창작품이다.

-이름은 내가 지어줄게.

그러든가 말든가.

세주는 스코프에 눈을 대고 초점을 맞추는 데 여념이 없다.

-사일런스.

침묵.

더 없이 어울리는 이름이다.

총열에 붙은 자체 소염기와 소음기.

총 자체가 가볍다.

탄창도 필요 없는, 오로지 스나이퍼 모드를 위한 총이다.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요인 암살에 최적이다.

‘모드 온 스나이퍼.’

거기에 관통 스킬을 부여한다.

휘이잉!

이름 모를 빌딩 옥상에 오른 그들이다.

치용과 인준은 비상구에 그리고 유진을 옆에 세웠다.

나호필은 번외다.

그는 전투원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요인이다.

주변 소리가 사라진다.

완벽한 몰입 상태에 들어가는 이 순간, 더 없는 쾌감이 느껴진다.

마약처럼 온몸을 적시는 즐거움이다.

스으윽.

방아쇠에 검지가 닿는 감각이 온몸에 전해진다.

스코프 너머, 단단한 강화유리에 모습을 감춘 놈이 보였다.

사장님 의자에 앉아 뒷모습만 보인다.

지위도 이름도 모르지만, 프로비던스가 찍은 이다.

어느 기업의 CFO라고 했던가?

-적중률 99%.

프로비던스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맞출 수 있다.

확신이 들었고, 이런 감각은 언제나 세주를 배신하지 않았다.

끼리릭.

송.

김빠지는 격발음이다.

하지만 탄환은 정확하게 날아갔다.

커버링을 씌운 탄환에 앞에 스파이럴까지.

툭!

관통 성질 부여로 강화유리를 그대로 꿰뚫고 뒷모습만 보이는 놈의 의자 뒤를 뚫는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놈이 체액을 쭉쭉 뿜어내며 죽는 건 보였다.

인간 거죽이 벗겨지며 근섬유가 드러나는 몸이다.

책상 위로 그대로 쓰러지는 걸 본 뒤.

“자, 쇼타임이다.”

보이는 족족 죽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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