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81. 피자 시켜 먹어야겠는데
-전방 빨간 천막.
뒤로 돌려쓴 캡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썼다.
캡을 앞으로 푹 눌러 쓴 뒤다.
“브런치 카페?”
기가 찬다.
대낮에 저런 곳에서 전화를 받은 건가?
음습한 지하실에서 몰래 일을 꾸밀 줄 알았더니.
그게 악당의 기본적인 예의다.
드르륵.
야외 테이블에 궁둥이를 붙이고 손을 들었다.
눈웃음이 예쁜 여직원이 메뉴판을 갖다 줬다.
‘배가 고프긴 하네.’
D를 먹으면 일반 사람도 위장이 배는 늘어난다.
세주는 D를 먹진 않았지만, 평소 운동량에 비례해 일반인보다 세 배는 먹었다.
기내식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소리다.
유진을 향한 일방적인 구애로 승무원이 주전부리를 갖다 주긴 했지만.
‘과자 부스러기로 내 위장을 전부 채울 순 없지.’
메뉴판을 들고 손가락으로 콕콕 찍었다.
“이거, 이거, 이거.”
“일행이 더 오나요?”
이 정도 영어는 다 알아듣는다.
“혼자 다 먹을 겁니다.”
눈웃음이 예쁜 여자가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떠났다.
‘반한 건가? 곤란한데.’
-…언제 정상이 될래?
‘평생 이러고 살 거다.’
두꺼운 샌드위치가 세 개, 샐러드 하나, 탄산음료까지.
우적우적.
좀 짜긴 했지만, 못 먹을 정돈 아니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먹다가 고개를 드니, 샌드위치를 가져다준 여자가 세주를 보고 웃는다.
찡긋.
윙크를 날려줬다.
-안 본 눈 삽니다.
‘닥쳐라. 형 연애 사업 방해하지 말고.’
-미국에 연애하러 오셨나 봐요?
그럴 리가.
드르륵.
한참 먹고 있는데 누군가 앞에 앉는다.
금발의 푸른 눈.
유진만큼이나 잘생긴 얼굴이다.
“뻔뻔하군.”
그가 말을 걸었다.
한국말이고, 익숙한 목소리다.
“장깡만.”
입에 샌드위치가 가득하다.
발음이 뭉개졌다.
꼭꼭 씹어 먹고, 빨대를 입에 물고 쭈우욱 빨았다.
꿀꺽!
“꺼어어억!”
시원하게 트림을 뱉고 나니, 이제야 배가 좀 찼다.
“네가 기대한다기에 한달음에 달려왔지.”
“…이해할 수 없다. 넌 이제까지 내가 본 어떤 인간보다 미쳤다.”
“저기, 훈민정음 다시 알려줘? 미쳤다는 건 칭찬이 아냐.”
“안다.”
“그럼?”
“욕한 거다.”
세상 다시없을 평온한 어조로 저렇게 말하니.
욕이 욕 같지가 않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눈썹 한 가닥까지도 마치 그림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인물화가 아니라 정물화 같은 느낌이다.
느낌만으로 이놈들을 구분할 순 없겠지.
겉으로는 당연한 구분이 어렵고.
-스캐닝으로도 무리긴 한데, 더 살펴볼 여지는 있겠어.
속으로도 쉽게 알 수 없단다.
골치 아픈 일을 맡았다.
식탁 위에 놓여 진 긴 냅킨으로 입을 대충 닦고.
품에서 달러를 꺼냈다.
그리고 팁을 계산해서 잔돈까지 올려뒀다.
환전해오길 잘했다.
그때까지도, 첫 번째 오더라고 자신을 밝혔던 놈은 세주를 구경하기만 했다.
시선을 느낀 세주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 내 연락처까지 남기면 완벽할 텐데.”
아까부터 저 여자가 자꾸 시선을 보낸다.
부담스럽게 시리.
미안하다. 이국의 미녀여.
‘나에겐 강슬이 있다.’
-아직 안 차였어?
‘닥쳐라.’
눈웃음이 예쁜 종업원이 다가왔다.
진짜 곤란한데.
“저기.”
그리고 그녀가 내 앞에 있는 정물화 괴물에게 말을 걸었다.
여자가 연락처를 묻고, 거지같은 자식이 답했다.
“관심 없다.”
그걸 본 세주가 입을 열었다.
“너 재수 없다.”
“칭찬인가?”
입꼬리가 올라간다.
처음으로 보이는 감정 표현이다.
웃어?
이 새끼가.
퉁.
무릎으로 테이블을 올려쳤다.
팅!
도심 한복판에서 아머를 입고 총기를 갈길 순 없다.
테이블이 시야를 가린 사이 몸을 낮추고 앞으로 태클을 걸었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빨라.’
-위.
태클을 걸던 자세 그대로 앞으로 굴렀다.
“킁?”
달달한 냄새가 났다.
폭탄?
세주가 있던 자리다.
“이런 미친 새끼들이!”
수류탄이다.
-2초.
터지기까지 남은 시간이다.
‘모드 온 오버페이스.’
순간 가속을 발휘해 종업원 여자의 허리를 안았다.
그리고 달렸다.
꽝!
뒤에서 폭음이 터지고 등에 수류탄 파편이 몇 개 박혔다.
몇 개는 꽤 깊게 박혀서 치료가 필요했다.
-방심했어.
‘설마, 준비하고 있을 줄 알았냐?’
그제야 주변에서 자신을 향한 적의가 느껴졌다.
저격수가 둘.
그리고 브런치 카페를 중심으로 소총수가 포위망을 좁혀온다.
“꺄아아아아악!”
그제야 비명이 귀를 때렸다.
“쉿.”
귀청 찢어지겠다.
그녀를 내려놓자, 뛰지도 못하고 오줌을 줄줄 쌌다.
하아.
‘이거 어쩐다?’
멋모르고 덤빈 건 아니었다.
적을 상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얻기 위한 기습이었다.
그런데 보기 좋게 당했다.
“뭐야!”
“피해!”
주변이 소란스러운 것도 잠시다.
대로 한복판에서 일어난 폭발이지만 누구 하나 죽은 사람은 없었다.
아니, 죽을 뻔한 여자는 세주가 구했다.
-출혈 막는다.
레스큐 액트 모드를 켜고, 주변을 살폈다.
꽤 촘촘한 포위다.
아니, 근데 이것들은 그냥 막 총을 갈기고 수류탄을 쏘네.
자국민이 죽는 건 눈에 보이지도 않냐?
양손을 번쩍 들고 세주가 입을 열었다.
“항복.”
첫 번째 오던지, 오뎅인지 하는 놈은 그사이 내뺐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치직!
비니를 눌러 쓴 검은 군복을 입은 남자가 무전기를 들고 입을 연다.
“형태변환자 발견, 생포합니까?”
‘지금 나보고 형태변환자라고 한 거냐?’
-같이 들어놓고. 이거 아무래도 제대로 엿 먹은 것 같은데.
“야, 나 아냐.”
당황해서 한국말이 나온다.
“한마디만 더 하면 벌집을 만들어주겠다.”
진짜 아닌데, 믿어주질 않네.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연막.’
프로비던스를 유용하게 쓰는 방법 중 하나.
인벤토리의 활용이다.
위이잉!
바닥에 안전핀이 뽑힌 연막탄이 덩그러니 나타난다.
쉬이이익!
폭음도 없이 회색 연기가 솟자.
“갈겨!”
좀 망설이지 그러냐.
투다다다!
사방에서 소총수가 총을 갈겼다.
그리고 연기가 사라지자.
세주의 모습은 없었다.
“로트.”
검은 군복의 남자가 무전기에 대고 외치자.
“로트 원, 없음.”
“로트 투, 없음.”
“로트 쓰리, 없음.”
“젠장!”
무전기에서 연속으로 들려오는 소리는 전부 저격수다.
놓쳤다는 말이었다.
*
필요한 건 두 개였다.
일단 변별력.
놈들을 구분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놈들을 더 만나봐야 했고.
그리고 두 번째는.
‘죽일 수 있는 방법.’
상체가 통째로 날아가도 죽지 않는다.
이제까지 상대하던 놈들과는 완벽하게 다른 타입이다.
“후아.”
-레스큐 액트 모드 끈다.
자체 치유력을 높여주는 모드를 꺼야 했다.
-등에 박힌 거 뽑고 치료해야 해.
‘그런 건 깨끗한 곳에서 해야 하지 않냐?’
소독약 냄새나고 하얀 천과 침대와 가슴 큰 간호사가 있는 그런 곳.
찌지지직!
쥐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적어도 하수도에서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놔둘 정도로 만만한 상처가 아냐.
프로비던스가 날아서 등 뒤로 넘어갔다.
푸부부북!
“음.”
‘하면 한다고 말을 해야지.’
-말하면 덜 아파? 그냥 참아.
마취하나 없이 등에 박힌 수류탄 파편을 다 뽑아냈다.
그리고 레스큐 액트 모드를 켰다.
그러자 좀 살만 했다.
‘건진 건?’
-하나.
‘뭔데?’
죽이든 살리든 놈을 잡는 게 목적이었지만 놓쳤다.
-그러니까 보자마자 족치지 그랬어.
‘말을 할 줄 알잖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여간 건진 건 뭐야?’
-구분할 수 있어.
‘어떻게?’
-스캐닝을 하다 보니까 인간이랑 다른 점들이 있어.
‘뭔데?’
-체온과 근밀도 등. 근데 너무 미묘해. 아마 보통 인간은 구분할 수 없을 거야. 거기에 사지 중 하나라도 날아가지 않으면 본래 모습을 숨기니까.
지랄 맞다.
결국 구분할 수 있는 건 프로비던스뿐이라는 거다.
세주는 맨홀 뚜껑을 열어서 주변을 살폈다.
어둡고 조용한 골목이다.
전신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이거, 이대로 호텔에 가도 될지 모르겠는데.
결국, 몸을 숨기고 몰래 비상구 계단을 올랐다.
카메라에 찍히는 거야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801호를 열자.
철컥.
총구가 반겼다.
“손들어!”
여기도 미군, 저기도 미군.
미군이 풍년이다.
“왜 이러세요?”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설마 얼굴을 다 알겠냐고.
[…이상 다섯 명의 테러리스트가 현재 본국에 입국….]
그들의 뒤쪽에 TV에서 다섯 명의 얼굴이 보였다.
치용이는 화면발이 나은 것 같다.
반세주를 비롯한 수호신 부대에 나호필까지 전부다.
뉴스에서 그 다섯을 테러리스트라고 말한다.
국민의 협조까지 바라면서.
“일행은 어디 있지?”
총구를 겨눈 놈은 멸치처럼 마른 남자다.
‘형태변환자야?’
-아냐. 전부 인간이야.
곤란하다.
전부 죽일 수도 없고.
총구를 겨눈 다섯 명의 남자 중 둘이 다가온다.
묵직한 수갑을 가지고 온다.
D를 먹은 병사 전용인지 무게와 강도가 상당해 보이는 수갑이다.
팅.
그때 창문으로 돌멩이가 날아왔다.
분명 돌이었지만.
“수류탄이다! 엎드려!
세주가 외치자 모두 바닥에 넙죽 몸을 던진다.
그중 한 명은 아예 돌 위로 몸을 던졌다.
툭.
그 틈을 타 세주가 몸을 날렸다.
수류탄이라고 착각한 돌멩이를 감싸 안은 이의 등을 밟고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와장창!
깨진 유리 따위야 단단한 솜털에 막혀 전부 튕겨 나간다.
옷이 찢겨서 엉망이 됐다.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하면 아무리 세주라도 무사하기 어렵다.
무려 8층이다.
중력의 법칙을 몸소 실현하기 직전, 허공에서 가느다란 실이 보였다.
단단한 솜털을 세워 맨손으로 움켜잡자.
훅하고 몸이 중력의 법칙을 위반하며 가슴이 울렁거린다.
끼기긱!
끊어질 듯 실이 비명을 질렀지만, 세주의 무게를 견뎌낸다.
바로 옆 건물이다.
거리는 꽤 있지만, 유진의 아머에서 나오는 이 실은 엄청 튼튼하다.
“쏴!”
뒤에서 총알을 갈기지만.
수류탄이라도 던지지 않으면 총알에 죽을 일은 없다.
꾸욱!
잡은 실이 손바닥을 파고든다.
핏방울이 맺혔지만 놓칠까 봐 손에 두어 번 더 돌려 감았다.
팅!
진자 운동하듯 몸을 날려 옆 건물에 안착하자.
군인들이 총을 쏘는 대신 부리나케 움직이는 게 보인다.
“어떻게 된 거야?”
치용, 인준, 유진이 다 모여 있다.
“저희 현상수배 됐더라고요.”
유진이 설명하고 치용이 밑을 본다.
“오는뎁쇼.”
“피하자.”
“…왜 피합니까?”
치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부 사람이야. 그럼 다 죽일 거냐?”
아니 기절만 시키고 사라져도 문제다.
보는 족족 이들과 싸울 순 없다.
몸을 숨길 곳이 필요했다.
-하수도로 가자.
팔자에 없는 닌자거북이 코스프레를 하게 생겼다.
“밑으로!”
세주가 건물에 매달려 내려간다.
그러자 다들 따라왔다.
“난 못 해.”
나호필이 고개를 저었다.
“이리로 오슈.”
치용이 그를 한 손으로 잡고 등 뒤로 휙 매달았다.
“으어억!”
나호필이 비명을 지른다.
“조용히 하시고, 잘 잡으쇼. 놓치면 죽을 테니.”
꿀꺽.
나호필이 침을 삼키고 답했다.
“죽어도 안 놓칠 거다.”
“놓치면 죽으니까. 거 맞는 말이네.”
치용이 혼자 킥킥거렸다.
순식간에 건물 벽을 타고 내려온 그들은 어두운 골목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맨홀을 발견하자마자 뚜껑을 열고 몸을 날렸다.
마지막에 유진이 들어가며 맨홀을 닫았다.
‘젠장.’
꾸리꾸리한 냄새가 다 가시지도 않았는데, 여길 다시 오다니.
그리고 바닥에 내려서고 물었다.
“자,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어떻게 됐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미 수뇌부가 적에게 전부 장악당한 거라고 본다.”
나호필이 말했다.
세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뉴스에서는 이 다섯 명을 테러리스트라고 했다.
애초에 난이도 높은 임무가 별 5개로 급상승했다.
‘어째 편한 일이 없냐.’
-적은 우리보다 우월한 놈들이니까.
한국을 침공한 놈은 머리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미국 전체에 뻗은 마수는 어두웠고, 정말 깊은 곳까지 닿아 있었다.
“나, 그거 봤는데. 코와붕가?”
치용이 중얼거린다.
“피자 시켜 먹어야겠는데?”
인준이 답한다.
이 자식들이 심각성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 닌자거북이?
세대가 다른 유진이 그게 뭐냐고 물었다.
“닌자 거북이 몰라?”
서른 이하는 대부분 모르지 않겠냐?
나호필이 둘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과연 이 미친놈들이 어디까지 미친 소리를 하는 양 지켜보고 있다.
그들을 보고 세주가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배달 전화번호 알아?”
나호필이 세주를 향해 눈을 돌린다.
-세상 제일 미친 사람의 얼굴을 보는 이의 표정이군.
프로비던스가 말 안 해도 알겠다.
나호필은 이 거지 같은 상황보다 수호신 부대를 보며 더 짜증이 솟구친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