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40. 난 남는다
D를 2회 이상 먹은 이들.
그게 알파였다.
그리고 그런 알파 팀에서도 특이한 이들은 있었다.
트리필.
트리플 필에서 변형된 단어로 D를 세 번 먹은 이들.
그리고.
이레귤러.
D를 한 번 먹었으면서도 독특한 힘을 보이는 이들.
꽝!
폭음이 울리고.
뻥!
다시 굉음이 터진다.
그럼 레이퍼가 죽는다.
많은 이들이 말했었다.
벼락은 언제나 두 번 울린다.
반세주는 자신의 배럿을 전차 위에서 고정한 뒤.
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꽝! 꽝! 꽝! 꽝!
얼추 200마리의 레이퍼다
달려오던 놈들이 전차 포탄에 반 이상이 죽고.
나머지는 반세주의 총탄, 아니 저격 포탄에 죽는다.
지지직.
고명수가 자신의 무전기를 들었다.
“골드베어 통신, 저거 18mm라고 했습니까?”
김후경이 개인 통신으로 물었다.
“맞다.”
200마리가량의 레이퍼 무리.
알파 부대와 전차라면 충분히 이긴다.
단, 이렇게는 못 한다.
“브라이트 아이즈 통신. 적군 소거 완료.”
다가오지도 못한 채, 압살이다.
“콜드밤 통신. 수고했다. 전군 전진.”
고명수는 표정 하나 없이 전진을 명했다.
두두두두두두.
전차는 그대로 앞으로 향했다.
그 뒤로 세 번, 레이퍼 무리가 덤볐다.
물론, 멀리서부터 파인딩 모드에 잡혔고.
전부 격퇴했다.
그러고 나서 보니.
‘이것들 왜 이래?’
이상하다.
-이상하지?
한 번에 몰려왔으면, 적어도 이렇게 각개격파는 안 당한다.
‘죽여 달라고 덤비는 수준이다.’
철컥.
열 받은 총열을 식히며, 빈 탄피를 던진다.
그 뒤, 레이퍼 무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전진을 거듭하니.
부화장이 보이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저 멀리 점처럼 보이는 놈들을 보고, 고명수가 전차를 세운다.
그리고 전부 내렸다.
“전차는 본진으로 퇴각.”
왜 그런지 모르지만, 전차나 전자기계는 이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더 전진하면 전자계열 기계는 전부 먹통이 된다.
무인 정찰기로 확인 가능한 범위, 딱 여기까지였다.
이제부터는, 인간의 영역이었다.
“우리는 다시 전진.”
아직 정찰조로서 알아낸 게 없다.
이들의 일은 이제 시작이었다.
“몸 풀 기회도 없네.”
치용이 툴툴댔다.
몸 풀 기회가 있으면 그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나 보다.
치지직.
가는 중 무전기가 먹통이 됐다.
-방해전파야. 놈의 배리어에 가까이 왔다는 소리지.
이제 부화장에 가까이 왔지만, 골의 영향력이 미친다는 말이다.
정찰조가 몸을 숙이고 부화장으로 전진했다.
바글바글한 레이퍼 무리가 보였다.
-저기.
프로비던스의 빛이 한곳을 가리켰다.
‘뭐야?’
망원경 대신 스코프에 눈을 대고 확인했다.
하얀색 타원이다.
인간 정도의 크기의 서프보드처럼 생겼다.
납작하진 않고 볼록했고.
고명수가 주먹을 든다.
멈추라는 수신호다.
두 눈을 가리킨 후 앞을 가리켰다.
가시 범위에 놈들이 모습이 명확히 잡혔다.
고명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하얀 타원, 그들도 발견한 거다.
알파 팀 셋의 표정이 변했다.
-아는 눈친데?
‘그러게.’
하얀 눈.
조심하라던 그놈인가?
마침 하얀색이다.
-단순한 놈이네. 하얀 눈.
하얀색이니까 하얀 눈이다.
‘직관적인 게 좋은 거야.’
알파 팀 셋이 가까이 뭉친다.
앞쪽을 보니, 바글바글한 레이퍼 무리가 보인다.
그런데 적다.
부화장에 타격을 줬다 해도 남아 있는 놈들은 많았다.
거기에 남은 애벌레들도 계속해서 알을 깠을 테고.
‘이상한데.’
-그렇지?
놈들이 마치 인형처럼 제자리에 서 있다.
휴식?
놈들에게 그런 게 필요하던가?
항상 포효를 지르며 내달리던 모습만 봤다.
‘몇 마리나 돼?’
-1800마리.
‘정확하게?’
-맞아. 딱 1800마리. 역시 이상해.
후두둑.
소름이 돋았다.
놈들은 아무렇게나 뭉쳐 있지 않았다.
하얀색 타원을 중심으로 넓게 퍼진, 마치 전쟁을 준비하는 부대처럼, 정교하다.
이질감이 느껴졌다.
‘스캐닝해.’
-응.
곧바로 프로비던스가 날아올라 빛으로 놈들을 비춘다.
그때까지도 알파 팀 셋은 모여서 말을 나눴고.
곧 프로비던스가 돌아왔다.
-놈들이 전략을 써.
‘뭐?’
-브레인 레이퍼 놈들이 한 마리당 120마리의 레이퍼를 조종해. 놈과 레이퍼 120마리가 연결되어 있어.
그 말은.
-함정.
‘함정이다.’
투둑.
동시에 레이퍼 놈들이 움직인다.
“대장님!”
세주가 앞을 가리키며 외쳤다.
“퇴각!”
망설임 없는 고명수의 외침이다.
우르르르.
레이퍼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효를 지르지 않는 레이퍼.
세상 이보다 이상한 장면은 없을 것 같았다.
놈들이 양옆을 빙 두르듯 달린다.
도주는 어렵지 않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전부 레이퍼를 따돌릴 수 있다.
속도가 놈들보다 빠르니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이들이다.
거기에 놈들은 단순하게 앞만 보고 뛰는 놈들이니까.
살아있는 것들만 쫓는 머저리들이었으니까.
그리고 방심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이다.
-당했다.
퍽!
바닥에서 흙과 잡초가 튀어 오른다.
매복이었다.
바닥에서 놈들이 팔이 올라온다.
퇴각로에 수백 마리가 넘는 숫자가 올라온다.
‘돌파해야 해.’
“돌파한다!”
다행이었다.
고명수는 멈추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소총을 들었다.
두꺼운 총신을 가진 총이 불꽃을 뿜는다.
투다다다다다다!
한 손으로 총을 들고 당긴다.
람보가 따로 없다.
그리고 남는 손이 수류탄을 까서 던진다.
틱, 휙. 틱 휙. 틱 휙.
초 단위로 하나씩 던지자, 놈들의 머리 위로 꽈과광하고 폭음이 터졌다.
“좌로!”
한쪽을 노리고 뚫어야 했다.
“정면은 내가!”
김후경이다.
한 손에 하나씩.
샷 건 두 자루다.
땅! 땅!
달리면서 쏘다가 그대로 손을 놓는다.
끈에 묶인 총 두 자루가 그녀의 등 뒤에서 타닥하고 부딪힌다.
그리고 그 앞 달려드는 레이퍼를 향해.
쉬잉!
도끼가 허공을 가른다.
퍽!
우에서 좌로.
일격에 레이퍼가 갈린다.
끼에에엑!
하지만 놈들은 너무 많았다.
철컥.
그 뒤 장광안이 나선다.
양손에 수류탄을 던지고.
꽝! 꽝!
리볼버 두 자루다.
철컥.
그리고 거칠게 선글라스를 벗어서 던진다.
코드명 오드아이.
왜 그리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양쪽 눈이 다른 색을 보인다.
검정과 빨강.
“후.”
그가 숨을 뱉고 방아쇠를 당긴다.
타다다다다당!
6연발 리볼버를 쉬지 않고 쏜다.
철컥.
탄창이 비며 리볼버를 흔든다.
통하고 동그란 탄창 두 개가 빠지고.
동시에 리볼버를 허리춤에 꽂인 탄창을 향해 꽂는다.
철컥!
재장전 속도가 놀랍도록 빨랐다.
거기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보이는 묘기였다.
세주만 특별한 게 아니었다.
알파 팀은.
-쓸 만하네.
꽤 했다.
“으라ㅤㄹㅑㅆ!”
그리고 치용이 나선다.
땅! 땅! 땅!
초근접 사격이다.
애초에 맞추는 것 자체는 취미도 재능도 없다.
대신 치용은 달려들었다.
상의가 은은한 푸른빛에 물든다.
그리고 가까이 온 레이퍼 놈들을 확실하게 죽인다.
쏘고 벤다.
왼손에 샷 건, 오른손에 정글도.
죽음을 도외시한 무지막지한 돌파다.
그 옆.
인준도 백린탄을 사방에 뿌린다.
이 전장에서 알파 팀을 포함해 가장 많은 적을 죽인 게 그였다.
마지막으로 유진이다.
이 녀석이 없었으면 치용과 인준은 벌써 여러분 죽었다.
위협이 되는 적, 정확하게 판단해서 인젝션 건을 쏜다.
퓽.
작은 소음에 회색빛으로 스러지는 레이퍼다.
‘돌파는 할 수 있어.’
문제는 이들의 뒤를 쫓는 놈들이다.
세주는 몸을 반전했다.
뒤로 뛰면서 자신의 배럿 ‘벼락’을 든다.
‘모드 온 에임, 트레이싱.’
-목표는?
‘지휘자.’
총 열다섯 마리.
파인딩 모드가 놈들을 더 큰 불빛으로 바꾼다.
순간 놈들의 위치를 파악하고.
-명중률 78%.
첫 번째 놈이다.
철컥.
뒤로 달리면서 커버링 에너지를 탄환에 씌운다.
-좋아!
프로비던스가 감탄을 뱉는다.
달리면서 탄환에 에너지 실을 감는다.
묘기 중의 묘기다.
휘리릭.
붉은 점 앞 레이퍼 놈들 다섯이 가로막는다.
그저 목을 내놓던 브레인 레이퍼 놈들이, 레이퍼를 조종해 바리케이트를 만든다.
하지만 벼락이라 부르는 괴물이 쏘아내는 이 무지막지한 탄환은.
‘뒤져라.’
아무 상관 없었다. 그 정도 바리케이트는.
끼에엑!
바로 옆 달려드는 놈을 무시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꽝!
전차포탄 만큼이나 큰 굉음과 함께.
꽈광!
조준한 곳이 터진다.
쩍. 터덩!
동시에 곁에 달려든 레이퍼 놈이 칼날 다리로 세주의 등을 후려쳤다.
아머는 찢어졌지만.
단단한 솜털 덕에 상처는 없었다.
“꺼져.”
휘릭.
총구를 돌리고.
꽈꽝!
근거리에서 벼락의 방아쇠를 당긴다.
레이퍼 놈 몸의 반이 날아간다.
‘한 놈 처리.’
끼에엑!
효과는 충분했다.
레이퍼 120마리, 브레인 레이퍼의 제어 능력이 사라지자, 그저 앞으로 뛴다.
정련된 병사에서 이성을 잃은 짐승이 된다.
그사이 매복했던 놈들 사이를 거의 돌파한 이들이다.
맵 위로 아군 표시가 된 이들이 멀어진다.
-빠른데.
‘나머지 놈들 잡자.’
-오케이.
끼릭.
아무리 세주라도 달리면서 연사는 불가다.
꽝!
대신 일격일살이다.
끼에에엑!
폭음 한 번에 브레인 레이퍼 놈들이 죽어 나간다.
열 마리째까지 잡자.
“퇴각! 퇴각!”
광안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함정이었지만, 이들은 반세주를 몰랐다.
달리면서 쏘는 저격 포탄만으로 전세가 뒤집혔다.
거기에 알파 팀과 전우조의 활약.
위험하지만, 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 판단을 뒤집어 줄 놈이 있었다.
끼에에엑!
그 사이, 레이퍼 한 마리가 세주를 향해 달려든다.
휘릭.
총기를 위로 던져 총열을 잡는다.
잡는 것과 동시에 커버링 에너지 전이.
그리고 그대로 총기를 휘둘렀다.
푸른빛에 싸인 벼락이 레이퍼의 안면을 후려친다.
빡!
4번 타자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스윙에 놈의 전면이 찌그러진다.
-뒤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맵 위에 아군 불빛이 멈췄다.
하얀 눈이란 놈이 떠올랐다.
레이퍼 놈들을 무시하고 뒤로 내달렸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위치로 오니.
배를 부여잡은 고명수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의 발밑.
피가 철철 흘러 바닥을 적신다.
‘레이퍼가?’
아니다. 마치 칼날이 쑤시고 나간 듯한 모양이다.
“크흐흐흐흐흐.”
뭘까, 이 어색하고 저열한 웃음소리는.
김치용.
눈을 하얗게 뒤집어 까고 정글도를 휘두른다.
“이 미친 새끼가!”
인준이 소총을 들어 겨눴다.
차마 쏘지 못했다.
“쏴!”
뒤에서 김후경이 외치며 자신의 샷 건을 당긴다.
땅!
티디딩!
기가 막힌다.
정글도의 면을 이용해 총탄을 막는다.
하지만 다 막을 순 없어서 허벅지와 팔에 총탄이 박힌다.
후두둑하고 피가 뿌려져 바닥을 적셨다.
“물러서! 퇴각이다!”
장광안의 목소리다.
‘원인 파악해.’
-저거.
하얀 눈이라기에, 그런 눈을 가진 놈인 줄 알았더니.
아니다.
하얀색 타원, 그 밑으로 삐죽하고 발이 나와 있다.
마치 사람처럼 생긴 발이다.
그리고 놈의 능력.
브레인 레이퍼 확장판이었다.
‘치용은 브레인 레이퍼 놈에게 저항했다.’
이미 확인한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인형처럼 잘도 움직인다.
땅!
치용이 전면에 샷 건을 쏘고 하늘을 향해 환호를 지른다.
“꾸오오오오오!”
그 뒤로 레이퍼 무리가 따른다.
레이퍼 무리를 이끄는 장군 같았다.
‘저 새끼가.’
분명 조종당하는데 신나 보이는 얼굴이다.
그렇다고 죽일 수도 없고.
아니, 죽여야 하나?
“퇴각! 퇴각!”
그 뒤로 알파 팀과 전우조가 빠져나간다.
유진이 뒤를 돌아봤다.
세주는 주먹을 보이며 내렸다.
난 남겠다.
고개를 세차게 젓는, 전우조 막내다.
하지만 이미 아군과 간격이 벌어졌다.
“안 됩니다!”
소음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들린 것 같다.
그대로 아군이 빠져나가고.
‘미안하지만, 아는 얼굴이 죽으면 꿈자리가 뒤숭숭해.’
죽은 중사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
그를 위한 장송곡도 아직 들려주지 못한 참이다.
-어쩌게?
‘보는 사람 없잖아.’
가진 모든 걸 보여도 되는 시간이다.
다 죽이고 치용도 살리겠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법은 잘 알고 있다.
토끼 둘보다 배는 빠르고 강하면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