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38화 (38/206)

#  38

38. 반세주가 불렀다

“없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었다.

단숨에 대공세라도 일어나지는 않을까 가슴 졸였다.

-놀랍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사선에 올라가서 스코프에 눈을 갖다 대고.

저 먼 곳까지 확인했다.

없다.

레이퍼 무리가.

“언제부터?”

총기를 관리하는 병사에게 물었다.

대답은 프로비던스가 했다.

-20시경 전후로 사라졌어.

‘위기를 느낀 건가?’

후방을 공격당했으니까, 뒤를 지킨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시계를 확인하니 21시 10분이다.

“일제히 뒤로 후퇴했답니다. 정찰 병력을 투입한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다.

“알았다.”

어떻게 할까?

기다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 사이 에너지를 모아서 이것저것 만드는 것도 가능하고.

트레이닝 센터를 열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전투에 관해 더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둘 다 최선은 아니다.

몸을 일으켰다.

움직이니 병사가 묻는다.

“어디 가십니까?”

“왜 물어?”

“이동 시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누가?”

“감대한 소령님 명령입니다.”

“그 사람한테 간다.”

“…네?”

“총 잘 지켜라.”

스물다섯이나 먹어 보인다.

저런 이들이 이 전쟁에서 얼마나 많이 죽어 나갔나.

저 뒤편, 남은 이들의 평화와 안전이란 말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갈려 나갔나.

싸움을 끝내고 싶다.

새삼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치고 올라왔다.

저벅저벅.

곧장 지휘부로 쓰는 곳으로 향했다.

척.

가는 길을 누군가 막았다.

중위다.

“필승. 소위 반세주.”

“무슨 일?”

눈빛이 날카롭다.

전신에서 풍기는 기세도 예사롭지 않고.

-한가락 하게 생겼네. 그 단춧구멍이랑 비슷한 수준이겠는데?

“사령부에 볼 일 있어 왔습니다.”

“그니까 그 볼 일이 뭐냐고?”

-오호, 군단의 영웅이자, 수호신. 몽정의 대가를 무시하는 중위라.

‘몽정의 대가는 빼야지?’

-아, 깜빡했네.

가지가지 한다.

“볼 일, 여기서 말해야 합니까?”

파직.

눈이 마주친다.

불꽃이 튀었다.

“들여보내.”

그 뒤, 구레나룻이 희끗희끗한.

50대 초반쯤 된, 배가 볼록 튀어나온 남자가 말했다.

군복만 아니라면 동네 편의점에서 마주칠 것 같은 인상이다.

계급은 소령.

옆집 아저씨 소령이 세주를 보며 웃었다.

-가식적인 웃음이네.

누가 봐도 참 인위적인 미소다.

“필승, 소위 반세주.”

“감대한 대령이다. 들어오지.”

“네.”

그의 뒤를 따르자, 중위가 길을 터준다.

중위 얼굴을 한 번 빤히 봐주고 지나갔다.

“여기는 사령부야. 이곳을 지키는 이들은 지금 꽤 신경이 곤두서있다. 이해해라. 소위.”

물론 이곳뿐 아니다.

부대 전체에 긴장감이 감돈다.

이제까지와는 완연하게 다른 변화 덕택이다.

규모 4가 일어날 때도 이랬다.

그때는 보랏빛으로 꿀렁꿀렁 쏟아지는 구름을 보며 누구도 비극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저 위험을 대비하는 수준을 높였을 뿐.

“사령부는 왜 찾았나?”

“정찰 병력 떠났습니까?”

“물론.”

“다음 정찰은 언젭니까? 거기에 합류하고 싶습니다.”

턱.

계단을 밟던 감대한 소령이 걸음을 멈췄다.

“어디에 합류한다고?”

“다음 정찰조에 합류하고 싶습니다.”

“…커피 한잔하지.”

사양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향한 곳은 복도 끝 창문가다.

바로 앞,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 한 잔을 건넨다.

“소위 반세주.”

“믹스 커피는 정말 잘 만든 거야. 이게 없었다면 난 이곳에서 지내는 게 두 배는 힘들었을 거라고 본다.”

후루룩.

달디 단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반세주 소위.”

“소위 반세주.”

“소위는 꽤 특별한 상황에 놓여 있다. 아군의 영웅이면서, 현재 사상자를 현저히 줄이는 무지막지한 힘을 보여줬다.”

“과찬이십니다.”

“그런 저격병이 정찰조로 떠난다?”

-나 같아도 안 보내주지. 그냥 몰래 가지. 왜 그랬어?

프로비던스를 무시하고 소령과 눈을 마주쳤다.

“안 됩니까?”

확실히 답해라. 가부를.

설득은 그다음이다.

“가고 싶다면 가도 좋지. 하지만 이유는?”

“전쟁, 끝내고 싶습니다.”

소령이 웃는다.

다시 그 가식적인 웃음이다.

“알파 팀을 붙여주지. 작전 지휘권은 알파 팀장에게 있으며, 소위는 경계 저격병으로 들어간다. 이의 있나?”

“없습니다.”

*

첫 번째 정찰조가 연락 두절 상태가 됐다.

세주는 몰랐지만, 지휘부는 알았다.

그들은 곧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반갑다. 고명수다.”

눈매가 날카롭고 키가 컸다.

190cm 정도.

거기에 팔다리가 무척이나 길었고.

인중도 길었다.

전체적으로 긴팔원숭이를 떠올리게 했다.

-별명 붙이는 취미 있어?

‘기억하기 좋잖아.’

“또 본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 장광안이 세주를 향해 손을 흔든다.

고명수의 뒤다.

“반세주 소윕니다.”

알파 팀 대장을 보고 세주가 인사를 건네자.

“내 계급은 작전 시 중령이다. 참고하도록.”

막사 안에 대뜸 들어와서 건넨 인사다.

침상에 반쯤 궁둥이를 걸터앉은 채로 세주가 위를 올려다봤다.

“작전 시면, 현재는 아닙니까?”

“전시 상황에서 내 계급은 항상 중령이다.”

“필승.”

그럼 경례를 해야지.

“필승.”

그가 경례를 받고.

“나가지. 해줄 얘기도 있고.”

광안이 세주를 향해 손짓했다.

“작전 시 계급 어떻게 됩니까?”

그가 웃으며 답했다.

“대위.”

염병, 소위 이하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나가려는데, 매일 한 마디씩 던지던 이가 안 보인다.

몽정을 소문낸 중사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어디 갔어?”

“정찰조로 나갔습니다. 소위님.”

그랬나.

밖으로 나가니, 후끈한 늦여름 열기가 느껴진다.

윙 하고 날아다니는 모기가 극성이다.

여기저기 모기향을 피우지만, 그 지독한 향에도 끝까지 인간의 피를 먹으려고 달려든다.

깡도 좋다.

“현재 이곳에 있는 알파 팀은 총 셋이다. 너까지 포함해서 넷인데, 고작 넷이서 정찰을 갈 순 없잖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추천해라.”

고명수는 말이 많지 않았다.

할 말만 딱딱 끊어서 했다.

추천이라. 떠오르는 이가 없을 리 없다.

“셋, 추천하겠습니다.”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장광안이 나섰다.

“내가 본래 알파 팀 스카우터야.”

그가 세주를 보고 말을 덧붙인다.

“알파, 나머지 한 명은 어디 있습니까?”

세주가 묻자.

“내일 올 거다.”

생각해보니 베타 팀도 있다. 굳이 충원할 필요가 있나?

“베타 팀 떠올리는 거면 소용없다. 오늘 새벽에 떠났어.”

이곳은 가장 치열한 전장이다.

그런데 이곳을 두고 떠나?

“네 덕분이지. 우리도 내일 오전에는 떠날 참이었고.”

“무슨 말씀입니까?”

“브레인 레이퍼를 잡아야 하는데, 네가 우리 대신했으니까.”

-여기보다 급한 전장이 있다는 얘기네.

프로비던스가 결론을 내려줬다.

이곳보다 저들의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거다.

“그럼, 쉬어라.”

고명수가 말하고 훌쩍 떠난다.

“출정은 내일 아침이다. 푹 자둬.”

자둬야지.

푹.

그대로 막사로 돌아와 누웠다.

빈 옆자리가 보였다.

‘곱게 살아서 와라.’

이름도 딱히 묻지 않고 지냈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동료다.

그대로 누우며.

‘테크룸으로.’

하루의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다.

테크룸에서 눈을 뜬 세주가 말했다.

“개인 시뮬레이션 모드 돌리자.”

-설명은?

“하면서 해. 시간 많아?”

순간 머리가 둔중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흔들린다.

그리고 주변 환경이 변한다.

-경험해봐서 알지? 시뮬레이션 모드는?

어깨 위에 놓인 프로비던스에게 눈길을 줄 새도 없다.

끼에에엑!

레이퍼 무리다.

가상이라지만 현실에 가까운 감각이다.

-시뮬레이션이라고 얕보다가는 죽을 만큼 아플걸.

“이걸 보고 누가 얕보겠냐.”

더럽게 리얼하네.

-내일 있을 법한 상황을 예상해서 최대한 그와 맞는 전투 현장을 연출.

-전투 시 기록이 남으면 다각도로 녹화됨으로 전투 시 버릇과 장단점 파악 가능.

-거기에 수치로 에너지 효율성이 나오며, 기본 격투술도 가르쳐 주는 친절한 시스템!

-마지막으로 시뮬레이션 후, 모든 상황에서 참여자가 했던 것보다 더 최적의 판단 루트를 보여줌으로 판단력을 길러 주는 초특급 코스!

-이것이야말로 전투에 있어서 필수적인 개인 시뮬레이션 센터!

약장수다.

‘넌 약을 팔았으면 대성했을 거다.’

그 말을 끝으로 레이퍼가 달려든다.

그리고 세주도 서슴없이 그 사이로 뛰어들었다.

*

“그래서?”

광안이 물었다.

철그렁.

가운데 쇠 봉이 휘어질 정도로 무식하게 바벨을 꽂아둔 벤치프레스다.

땀을 흘리며 일어나는 남자.

누가 봐도 무식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생겼다.

두꺼운 눈두덩이, 여자 허리둘레만한 팔뚝.

몸집은 얼마나 큰지 그가 일어나니까 그림자가 앞을 가린다.

“안 갑니다.”

그나마 존댓말이라도 해주니 다행이다.

“또 알파나 뭐시기 들어가라고 할 거 아닙니까?”

무시하고 지나간다.

광안은 언제부터 코드명 알파가 옆집 개 취급도 받지 못한 건지 궁금해졌다.

알파의 이름으로는 말을 듣지 않는다.

“반세주 소위가 불렀다.”

쿵.

들고 있던 아령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킨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뭐냐, 대체 반세주가 뭐길래.

이 무식하기 짝이 없는 이를 움직이냐는 말이다.

“내일 09시까지, A 구역 입구로.”

그다음.

머리를 박박 민 병사다.

계급은 일병.

눈초리가 날카로운 게 알파 팀 대장과 비슷하다.

머리를 밀어서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32살이라고 들었다.

방금 만난 김치용도 32살이고.

‘그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김치용도, 이 대머리 병사도 정상은 아니다.

“거절합니다.”

“대뜸?”

“코드명 알파에 들어오라 마라 할 거 아닙니까?”

경례 후 바로 시작된 대화가 이 모양이다.

“땡. 틀렸다.”

앉아서 무언갈 적던 인준이다.

그걸 힐끔 봤다.

대충 그린 그림이 섞여 있다.

탁.

인준이 자신의 노트를 덮는다.

“그럼?”

말이 짧다. 한마디 해도 된다.

자신의 계급은 엄밀히 말하면 대위다.

고작 일병.

거기에 전투력도 보잘것없다.

‘팰까?’

사람 좋다고 소문난 장광안이지만.

슬슬 인내심의 한계가 온다.

“반세주가 불렀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또 프리패스냐?’

왜인지 이유 따위 이제 알고 싶지도 않다.

“09시 A 구역 입구.”

할 말만 전하고 나섰다.

굳이 왜 나서서 이들을 모은다고 했을까?

반세주란 자식 얼굴만 보여주면 끝날 일을.

괜한 짓을 했다.

정유진을 찾았다.

“어디 갔는지 아나?”

같은 막사를 쓰는 병사가 꼿꼿한 자세로 답한다.

“상병 최병준! 병원에 간 거로 알고 있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다.

코드명 알파는 공공연히 알려진 강력한 아군이자, 최고의 부대다.

“수고.”

“필! 승!”

좋다. 딱 부러지는 경례 소리.

평소에 이런 것에 연연하지 않던 그지만.

소탈함을 넘어서 군기가 몽땅 빠져나갔다는 소리를 듣는 그지만!

만족스럽다.

“가볼까?”

기분이 조금 나아진 상태로 유진을 찾아 나섰다.

“…저 새끼는 더하네.”

가관이다.

“그죠? 맞죠? 제가 손금 볼 줄 안다니까요.”

여자의 손목을 잡고 있다.

긴 벤치에 비스듬히 앉은 유진과 그 맞은편.

삼십 대 정도 되는 간호사다.

눈썹이 치켜 올라가, 눈매가 사납다.

실수라도 한 번 하면 그 밑에 있는 아이들은 죽어날 것 같은, 그런 강력한 카리스마가 보이는 외몬데.

“맞네, 동생 말이 맞아.”

봄 햇살에 녹는 눈과 같이 웃는다.

올라간 눈매가 밑으로 내려오려고 용을 쓴다.

“어이.”

장광안도 이제는 질려 버렸다.

반세주 곁에는 정상인은 없다.

“아, 필승. 일병 정유진.”

“바쁘지?”

“아닙니다.”

생긋 웃는 우유 빛깔의 사병이다.

그가 봐도 참 잘생겼다.

“09시 A 구역 입구.”

“무슨 말씀입니까?”

“반세주가 부른다.”

앞, 뒤 다 잘라먹고 말했다.

역으로 물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무슨 일인지, 뭘 준비하는 지도.

“네. 알겠습니다.”

역시나 그딴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네.”

광안이 한 마디를 남기고 떠나자.

“이상한 사람이네, 동생.”

“아니에요. 그나저나 가봐야겠어요. 또 올게요.”

“응, 기다릴게.”

간호사가 유진의 손을 간신히 놓는다.

그녀의 어깨를 한 번 감싸며 가벼운 포옹을 하고 유진이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09시.

A 구역 입구.

“오랜만입니다. 형님.”

그 치용과.

“나도 왔다. 형님.”

이상한 말투의 대머리.

“무슨 일인데요?”

바람둥이까지.

“정찰 가자. 저기.”

화룡점정이다. 알파를 걷어찬 영웅이자, 또라이.

그가 손가락을 들어 전장 저편을 가리킨다.

“그럴 것 같았어요.”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셋이 합류했다.

‘고민하지 말자.’

저 넷은 그냥 저런 놈들이다.

광안은 그렇게 결론 내렸다.

“으아아!”

A 구역은 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최전방에서도, 앞쪽인 곳이었다.

그렇기에 전장이 바로 보였다.

그 덕에 누군가 뛰어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의무병!”

보자마자 외쳤다.

“제가!”

유진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앞으로 뛴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건지, 뛰어오는 병사의 몰골이 기괴했다.

한쪽 팔이 잘린 채, 표정 없이 뛰어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