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33. 브레인 레이퍼
“이런 미친.”
저 멀리 자색 구름이 몰려왔다.
상황실로 쓰는 건물 안,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광경이다.
반백의 흰 머리, 이곳 전투의 총책임자.
강대총 장군이었다.
계급은 대장. 무려 포스타다.
육군사관학교 졸업, 특수부대 출신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지휘관이 그였다.
그런 그의 입에서 욕설이 터졌다.
“지랄 맞네.”
낮게 깔린 자색의 구름.
“자성운 입니까?”
자성운.
규모 4가 시작되기 전 일어나는 특이 현상이었다.
부관의 말에 침통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코드 알파, 베타 호출하고.”
“네.”
“전군, 전시 상황 돌입. 데프콘1 Cocked pistol이다.”
30일에서 3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휴식의 끝을 알리는 신호였다.
*
규모 1은 격퇴가 손쉽다.
사상자가 전무할 정도.
규모 1의 습격은 구경한 지도 오래됐다.
규모 2는 힘들다.
목숨을 걸고 싸운다.
그래도 죽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규모 3은 살기 위해 싸운다.
매일 백여 명이 죽어 나가는 전장은 공포 그 자체다.
그래도 견딜 만하다.
아니, 견딜 수 있다.
그동안 규모 2와 규모 3이 번갈아 가며 나타났고.
현재는 규모 3의 빈도수가 높아져, 걱정이 많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외계 침공 후 딱 한 번 일어난 일.
규모 4.
핵폭탄을 터트리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게 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그러기에 규모 4는.
죽기 위해 싸우는 전장이라 불렀다.
“저거.”
세주가 눈을 찌푸렸다.
자색의 구름이 보였다.
-놈이야.
골이 뿜어내는 운무다.
‘저기서 나오는 게 그냥 수증기는 아니겠지?’
-당연한 말을. 아마도 알과 그 알을 까는 애벌레 등등. 다양하겠지. 종합선물세트라고 봐야지.
부르르.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짜릿한데.”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누가 규모 4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아니, 규모 4에 대해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 섬뜩한 공기.
한여름에도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게 만드는 절망적인 공기.
콰우우우우!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간다.
전투 시작 전에 제대로 한 방 먹이겠다는 심산이다.
-무용.
대규모 스캐닝 후, 연구를 통해서 세주도 알고 있었다.
‘배리어.’
쩡! 펑!
허공에서 미사일이 터진다.
골은 자체적 배리어를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3일이 지나고 놈들이 몰려오기 전까지.
어떤 공격도 저 방어막을 뚫을 순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쏜다.
어쩔 수 없다.
발악해야 한다.
만일 이게 개인 대 개인의 싸움이었다면.
한쪽이 참으면 끝난다.
이게 학교 내의 반과 반의 대항전이라면.
승부를 내고 교사가 중재하면 그만이다.
회사와 회사의 싸움이라면, 별의별 수단이 동원되겠지만.
법원의 개입으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인류와 다른 종의 싸움이다.
중재할 존재도 없을뿐더러.
‘한 대 맞고 아야! 하고 끝날 수준도 아니라는 거지.’
“준비하자.”
지원 병력이 늘어나는 건 당연지사였다.
하루하루 세주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 전장이 그를 기다릴 뿐이었다.
“똑똑.”
누군가 막사 밖에서 노크 소리를 냈다.
“누구십니까?”
막사 입구 쪽에 있던 하사가 천막 입구를 열었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였다.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청바지와 반팔 티.
-단춧구멍이네.
‘장광안 이겠지.’
코드명 알파.
세주를 스카우트 하려던 남자다.
“잘 지냈나?”
그가 세주를 보고 손은 흔든다.
한낮의 태양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알파?”
친해 진 중사가 읊조렸다.
“압니까?”
“저런 복장으로 부대 내부를 돌아다닐 이들이라면 뻔하지.”
장광안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할까?”
“네.”
세주가 그를 따라나섰다.
천막을 나서서 걸으며 그가 말했다.
“톡 까놓고 물어보자.”
“물어보십시오.”
“왜 안 들어 오냐?”
“코드명 알파 말입니까?”
“그래.”
“꼭 들어가야 할 이유라도 있습니까?”
“여기에 남아 있는 이유 뭐야? 돈이야? 아니면 명예? 사명감?”
-여자라고 대답해 봐. 어떤 표정 지을지 궁금하다.
“여…기에 남는 이유라.”
방심하다 정말 여자라고 답할 뻔했다.
‘조용히 좀 있어라. 이 지랄견 같은 놈아.’
-아니, 조언을 해줘도 그러네.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우뚝.
장광안이 멈췄다.
“뭐?”
-이 양반도 귀가 안 좋네.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유가 거창하네.”
“그런 편입니다. 어릴 때부터 높은 목표를 지향했습니다.”
“대답하기 싫다? 좋아. 묻지 않지.”
‘나 방금 되게 솔직하지 않았냐?’
-인정. 형 지금 되게 솔직했어. 거의 깨 벗고 말한 수준이야.
‘그래. 누가 믿겠냐고, 미친 로봇이 기생해서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싸운다면.’
-말에 가시가 너무 많다. 형?
‘그래? 잘 발라 들어.’
“또 봐서 반가웠다. 혹시 우리 싸우는 걸 보고 마음이 바뀌면 말해라. 수호신.”
그 말과 함께 그가 훌쩍 떠났다.
그렇게 돌아서는데.
다른 선글라스가 그를 잡았다.
긴 머리카락이 어깨를 넘게 기른 여자였다.
가죽바지와 흰색 반팔 티를 입었는데.
그 안에 속옷이 은은히 보였다.
-야한데.
‘이런 건 섹시하다고 하는 거다.’
-그게 그거지.
“반세주 하사?”
“하사 반세주. 맞습니다.”
“으음. 장 대장님이 관심이 지대하던데, 궁금하네요. 실력이 어떤지.”
“누구신지?”
“코드명 베타, 박태희예요.”
알파, 베타, 어디까지 나오는 거냐.
감마랑 델타도 있는 거 아냐?
“네.”
“또 봐요. 얼굴이나 익히려고 왔어요.”
그녀가 웃으며 세주의 어깨를 툭 하고 치고 지나갔다.
걷다 보니 어느새 병원 앞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병원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씰룩이는 가죽 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가죽 바지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뭐 봐요?”
“네?”
바로 옆에 다가온 인기척을 못 느꼈을 리 없다.
“뭐 보냐고요?”
강슬. 일명 강 닥터였다.
붉은 머리칼을 한쪽으로 쓸어 올리며 그녀의 눈이 앞으로 향했다.
“애인?”
“에이.”
“애인 있다고 누가 뭐라고 해요?”
“애인 아닙니다.”
“네.”
그녀가 툭툭 걸어서 병원으로 향했다.
농담이 안 통해.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 나올 것 같다.
다시 막사로 돌아가자, 중사가 바짝 붙었다.
“알파가 왜? 자기 부대로 오래?”
이미 두 번째 스카우트에 베타 부대도 관심이 있다는 걸 알려주면 어떨까 싶은 얼굴이다.
“알파가 뭔지 아십니까?”
“모르지.”
“근데 뭔 관심이 그리 많습니까?”
“소문은 들었지. 알파, 아주 특별한 병사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아, 네. 그런 병사들이 모인답니다. 전 모릅니다만.”
“스카우트 아냐?”
“아닙니다.”
귀찮아서 대충 답하고 눈을 감았다.
괜히 이미지 트레이닝할 시간만 뺏겼다.
*
자성운이 절망을 줬다면.
소문만 무성한, 코드명 알파와 베타 인원들이 왔다는 건 희망이었다.
소문내는 것만큼은 단연 발군인 세주의 옆자리 중사는 입이 부르터라 말을 전했다.
‘참, 할 일도 없다.’
하긴 나름 그가 이 압박감을 견뎌내는 방법이리라.
전투 시작 전.
세주는 터벅터벅 걸어서 자신의 무기를 찾았다.
“정말 그걸 쓸 건가? 그동안 총기 수입 외에는 아무 짓도 안 했잖아?”
상황실도 수없이 바뀌는데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는 장교였다.
“씁니다.”
세주는 두말할 필요 없이 30kg 가 넘는 자신의 배럿을 들고 나갔다.
배치를 고민하는 이에게 미리 말을 해둔 덕에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몽정의 수호신이란 별명이 먹히네.
‘몽정은 빼고.’
수호신이란 별명 덕이다.
A-1.
A 구역의 저격탑.
가장 앞에 있으면서 세주가 사용하기 전까지는 사장 된 곳이다.
너무 가까워서 저지선이 밀리면 전부 전멸하기 일쑤였다.
세주는 탑을 기어 올라갔다.
묵직한 총을 들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보는 눈이 없어지자 인벤토리에 갖다 박았다.
프로비던스의 능력은 여러모로 편리했다.
탑 위, 사로가 아니라 옥상이다.
텅!
탄약을 내려두고, 거치대를 세웠다.
그 뒤 총기를 거치했다.
-전투 시작 6시간 48분 전.
프로비던스가 먼 허공을 보며 말했다.
세주는 누워서 사격 자세를 취해보고는 일어났다.
‘꺼내.’
위이잉.
프로비던스가 렌즈로 빛을 뿜는다.
세주 뒤쪽에 3D 프린터가 물건을 만들 듯 인벤토리에서 물건을 꺼낸다.
두꺼운 철판과 망치, 못이다.
바닥에 동그랗게 홈이 나서 세울 수 있게 만든 철판이었다.
꽝!꽝!꽝!
커버링까지 써서, 콘크리트 바닥 위로 철판을 박았다.
그걸 뒤에 두고 엎드린 채, 발바닥으로 밀었다.
힘껏 밀어도 꿈쩍도 안 했다.
그대로 다시 사격 자세를 취했다.
거치대를 둔 채, 위아래로 총구를 움직였다.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간이침대를 꺼냈다.
‘깨워.’
그 뒤 잤다.
아주 푹.
*
“전 부대 제자리 대기.”
“수호신은?”
“개별 작전 허가해달라고 해서 허가해줬습니다. 어디 저격 탑 안에 있을 겁니다.”
강대총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신 반세주.
눈여겨본 병사다.
이런 병사만 있다면 결코 이 싸움이 이렇게 밀리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을 정도로.
“알파와 베타는?”
“저지선 무너지면 출전한답니다.”
거기는 본래 개별 작전권을 가졌다.
“지뢰 설치는?”
“평소와 같습니다. 전장의 앞쪽에 빼곡하게 채워뒀습니다.”
한 달의 유예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제는 기다리는 것과.
‘지지 마라.’
병사들을 응원하는 일만이 남았다.
*
끼에에에엑!
펑! 꽝!
시작은 박격포와 지뢰의 이중주였다.
폭발이 일어나고 선두로 나서는 레이퍼 무리가 박살 난다.
“오예!”
누군가 신이 나 외쳤다.
‘머저리.’
1년 전 규모 4에 참여했던 남자는 손이 떨렸다.
소리 지른 이는 지옥을 모르는 이다.
저깟 폭발에 무너지는 레이퍼 따위가 두려운 게 아니었다.
꽈릉, 꽈릉!
지대지 미사일과 박격포.
쏴아아아아!
공대지 미사일을 위해 전투기가 허공을 난다.
후웅!
전투기에서 미사일 나가서 대지를 강타한다.
꽈-앙!
폭약에 당한 놈들의 시체가 증발한다.
이렇게 보면 왜 규모 3 정도에 밀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인간이다.
하지만 그 뒤, 전황은 조금씩 변했다.
적의 박격포가 허공에 알을 쏜다.
퓨퓨퓨퓨퓽!
꽈르르르르릉!
뒤쪽 지대공 포탄이 허공을 가로질러, 경계선 위에 오르기 전에 요격한다.
남자는 하늘을 바라봤다.
‘하나 놓쳤다.’
저 하나를 놓치는 순간, 아수라장이 된다.
저기에서 나오는 레이퍼에 근처 보병이 작살이 나버린다.
꽝!
그런데 폭음이 울리고 펑 하고 허공에서 남은 하나의 알이 터진다.
‘음?’
이상한 광경이었다.
순간 눈을 비빈 남자다.
하지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저 멀리 데몬 플라이 무리가 난다.
그리고 지상에서 레이퍼 무리가 달려왔다.
진짜 싸움의 시작이었다.
무서울 정도의 인해전술.
미사일도 포탄도 두려워하지 않은 괴물 무리.
그렇기에 저들은 포탄과 지뢰의 밭을 뚫고 넘어온다.
그 뒤, 보병들의 살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다.
인간이 이제까지 버텨온 게 신기했다.
그는 몰래 빼돌린 모르핀을 팔뚝에 꽂았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총구를 물고 자살할 것 같았다.
투두두두두두!
꽝! 꽝!
폭음과 기관총 소음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그는 입을 헤 벌리며 침을 흘렸다.
“다 뒤졌어!”
용기가 솟아올랐다.
소총 한 자루만 있으면 다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그가 총구를 앞으로 내밀고 나서는 순간이다.
‘아.’
몽롱한 정신 속에서도.
규모 4를 지옥으로 만드는 놈이 보였다.
크고 까만 물방울을 옆으로 누인 모양의 눈.
인간과 같은 이족 보행이지만, 팔은 없다.
키도 크지 않다.
고작해야 150cm 정도.
하지만 저놈이야말로 악마였다.
규모 4를 지옥으로 만드는 괴물.
놈은 레이퍼처럼 빠르지도 그렇다고 레이저 광선을 뿜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바라본다.
그럼.
“히엑?”
인간은 미쳐버린다.
바로 옆 병사가 눈깔이 돌아간다.
흰자만 보이는 눈으로 그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브레인 레이퍼.
일명 뇌를 강간하는 미친 외계 괴물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