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17화 (17/206)

#  17

17. 자, 이제 우리 차례지?

“이 새끼가!”

말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지능지수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어째 저리 욕하는 것도 단순 무식하냐.

공격도 그랬다.

흙을 던지고 나서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한다.

방어 따위는 생각도 안 한다.

사람 좀 때려 본 솜씨인지, 때리는 행위 자체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붕! 휙!

D를 먹고 늘어난 근력 덕에 주먹질에 공기 가르는 소리만 요란했다..

“어디서 샌드백만 때렸나 저 새끼.”

치용이 옆에서 말했다.

“왜?”

“딱 보니까 사이즈 나옵니다. 저거, 비슷한 상대랑 싸워본 적 없습니다.”

치용이 싸움을 지켜보면 설명했다.

그래. 설명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치용이 말을 조리 있게 했다.

“본래 저렇게 덤비면 카운터 맞고 끝납니다. 좀 치는 새끼들한테 저렇게 덤비면 그냥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건데, 뭐 하는 거야!”

순간 버럭 화를 낸다.

아니, 너 무슨 병 있니? 잘 설명하다가 갑자기 왜 이래?

딱!

눈을 돌리자 유진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얌마!”

치용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약속 지켜!”

현무암이 외쳤다.

저 새끼가 속고만 살았나.

“걱정 마라.”

세주가 치용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돌을 던지던 놈을 향해 유진이 성큼 다가갔다.

겁도 없다.

겉으로는 한없이 유약해 보이면서, 강단은 있다.

피를 흘리며 다가오는 유진을 향해 놈이 달려들었다.

쩍!

끔찍한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싸움이 끝났음을 알았다.

달려드는 현무암을 향해 올린 유진의 어퍼컷 한 방.

이제까지 끌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쉽게 끝난 결말이다.

스르륵.

현무암 분대장이 앞으로 무너진다.

유진이 그걸 피해 뒤로 물러났다.

“헹, 본래 어설픈 놈은 어퍼컷이 직빵이지.”

치용이 자신이 가르쳤다고 신이 나 말했다.

“후아, 후아, 후아.”

긴장과 싸움의 여파로 유진이 숨을 몰아쉰다.

찔끔 눈물까지 흘린 것 같다.

“괜찮냐?”

세주가 다가와 묻자.

“사람은 처음 때려봤습니다.”

“잘했다.”

치용이 다가와 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으윽.”

기절하지는 않았네.

세주가 그를 일으켜 나무에 기대게 했다.

“괜찮아?”

짝.

가볍게 뺨을 때리자 놈이 정신을 차린다.

“우욱.”

턱이 아픈지 얼굴을 부여잡고 죽는 소리를 낸다.

“아파?”

“후, 내가 진 거냐? 하, 정유진한테. 내가 졌다고?”

“응. 네가 짐. 증인 세 명 있다. 한 방에 꼴까닥 하던데.”

“시발.”

그는 억울함에 눈물까지 보였고.

유진은 별말 없이 그를 지켜봤다.

이렇게 하나의 악연을 끝내…기는 뭘, 끝내.

“자, 이제 우리 차례지?”

세주가 웃으며 말했다.

“…뭐?”

현무암이 되물었다.

“우리 차례라고, 저기 치용이랑 인준이랑 내 차례. 유진이랑 볼일 끝났으니까.”

“내가 이기면 보내준다고…!”

말하다가 현무암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 이기면 보내준다고, 졌잖아.”

“에에? 그래서 안 보내 준다고?”

“응.”

“너희는 악마냐?”

현무암 분대장 눈에 공포가 어린다.

“에헤이, 동기끼리 표현이 과하네.”

“형님,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치용이 나섰다.

“아니, 이번에는 내 차례 같은데?”

그러자 인준이 그를 막았다.

그래. 시크한 척하지 마. 너도 뒤끝 있고 불같은 놈이잖아.

“쳇. 그래 한 번 양보한다.”

인준이 없는 안경을 고쳐 쓴다.

“넌 일단 주둥이 예절부터 바꾸자.”

“하, 하지 마!”

놈이 울먹거린다.

신기하게도 하나도 안 불쌍했다.

그동안 시비 건다고 열심히 주둥이 놀린 죄와 유진을 괴롭힌 것에 대한 것도 적절히 섞어서.

셋이 골고루 그를 때렸다.

마지막 나무에 매다는 것까지 본 유진이 말했다.

“심합니다.”

“아니, 많이 참은 건데. 이게 심해?”

세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왜인지 유진은 가슴이 근질근질했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하하하하.”

유진은 결국 웃었다.

자신도 당했었다. 그때는 참, 어떻게 버텼는지.

그때까지 자신을 바라보는 세주를 보며 유진이 말했다.

“생각해보니 적당하네요.”

*

2소대 진지 수비를 맡은 훈련병은 정면에서 달려오는 이를 보고 외쳤다.

“습격이다!”

몸집이 일반 사람의 두 배는 훌쩍 넘는 치용이었다.

“흥!”

그가 달려오며 그대로 한 명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쾅!

자동차가 사람을 들이받는 소리가 들렸다.

“무식해.”

인준이 중얼거리고 크게 선회해서 뒤쪽으로 돌고.

세주는 돌을 집었다.

“엿차.”

에임 모드를 켤 것도 없었다.

나무 위에 올라가 힘차게 돌을 던졌다.

하나에 한 명씩.

빡!

픽픽 바닥에 쓰러진다.

“누가 돌을 던진다!”

그 말한 놈 뒤에서 반짝이는 머리가 보였다.

그가 소리친 이의 목을 감는다.

“컥!”

목을 졸린 남자가 흰자위를 보이며 그대로 쓰러졌다.

진지 인원을 전투 불능으로 만드는 데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왜 이렇게 잘 싸우는 겁니까?”

유진이 혀를 내두르며 물었다.

“난 원래 좀 해. 치용은 직업이 그쪽이었고.”

세주가 기절한 이의 코에 손가락을 대보는 인준을 보고 말했다.

“쟤는 본래 좀 또라이끼가 있는 것 같다.”

치용과 인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보통 치용 같은 얼굴의 남자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건, 미친 짓이다.

하지만 인준은 잘도 덤볐다.

세주의 말에 유진이 그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걸 본 사람의 표정이다.

‘해석하지 마.’

눈치만 봐도 알겠다.

“유진아. 눈빛이 불손하다.”

“아, 아닙니다.”

금세 유진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진지 점령 끝난 것 같습니다.”

한 시간 뒤에야 3소대 깃발병이 왔다.

“늦어!”

치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허억, 허억. 왜 여기에 있는 거야?”

헐떡이며 깃발병이 말했다.

“별동대의 역할에 충실했지.”

세주가 그의 손에서 깃발을 뺏어서 꽂았다.

“점령 끝.”

훈련의 마지막을 알리는 말이었다.

*

2소대 기간병이자 담당 조교의 눈에 불이 붙었다.

그 조교의 별명은 번개콩이었다.

체구는 작은데 성격이 어찌나 급하고 승부욕이 강한지.

지고는 못 살았다.

그가 자신의 소대원을 보고 눈을 부라렸다.

“허, 3소대한테 져?”

그 사이 누군가 말했다.

“실종 인원이 있습니다.”

2소대 쪽에서 소란이 일었다.

“훈련병 전부 제자리에.”

박민우가 통제 후, 주변 탐색에 나섰다.

2소대 조교와 몇 명의 기간병이 주변을 둘러봤다.

“탈영이면 빨리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2소대 번개콩 조교가 말했다.

“탈영 아니야.”

박민우가 단정 짓고 움직였다.

산 위로 오른 그는 전투의 흔적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실종 인원은 한 명이었다.

박민우는 금세 그를 찾았다.

그는 산 위쪽,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군복으로 칭칭 묶어서 매달아 놨는데.

그 모습을 보고 처량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 사여저.”

그가 침을 흘리며 말했다.

“음.”

신음이 절로 나왔다.

얼마나 때린 건지. 성한 부위가 없다.

얼굴이 팅팅 부어서 본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2소대 훈련병 맞습니까?”

“마습이다.”

민우가 그를 끌어내렸다.

끄윽끄윽 대며 남자가 한참을 울었다.

곧 해가 질 것 같았다.

“이제 내려갑니다.”

“끅. 개애기을. 우이 아파가 아르믄 다 주어써.”

울면서도 하는 말 꼬락서니가 가관이다.

박민우는 잠시 생각하고서야 그가 말한 의미를 깨달았다.

아빠한테 이르겠다는 거다.

그 내용에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그는 웃는 대신 익숙한 다른 행동을 했다.

철컥.

서늘한 총구를 관자놀이에 갖다 댄다.

“죽고.”

왜 자꾸 웃음이 나오려는지, 꾹 참고 말을 이었다.

“싶습니까?”

“……딸꾹.”

오줌은 진즉에 지렸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듣습니다. 앞으로 깝치면 죽습니다. 덤벼도 뒤집니다. 특히나 3소대 건드리면 다 죽는 겁니다. 오케이?”

끄덕끄덕끄덕.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후하고 숨을 한 번 내쉬고 긴말을 잇는다.

“아빠 찾지 않습니다. 개자식아. 니네 아빠가 누구든, 밖에서 네가 뭐가 됐든. 여기 오면 그냥 군인입니다. 어설프게 깝치면 진짜 죽는 겁니다.”

쉬이이이.

바지 위로 다시 노란 오줌이 흘렀다.

“내려갑니다. 훈련병.”

절뚝거리며 양대로가 구르듯이 산에서 내려갔다.

그가 없어진 자리에 작은 키에 사나운 얼굴, 2소대 조교가 올라온다.

그가 박민우를 보고 말했다.

“편 가르기 하자고?”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아직 병과도 나누기 전인데, 너무 열 내는 거 아니냐?”

작대기 세 개, 같은 계급이며 동기인 놈이다.

“받은 만큼 하는 것뿐이다. 애초에 외면하지 말고 적당히 컨트롤 했어야지.”

“저런 새끼가 잘 키우면 싸움도 잘해 몰라?”

“응. 몰라.”

“해보자는 거지?”

“마음대로 해석해라.”

“병과 선택 후, 전술 경쟁 훈련 돌입하면 보자.”

“얼마든지.”

박민우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좋아, 좋다고. 한 장 걸래?”

“내기하자고?”

한 장이라, 천만 원이다.

적은 돈이 아니다.

기간병이 되면 돈 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쫄리면 사과하고 꺼지던가.”

사과?

“한 장, 받는다.”

박민우가 말하고 훌쩍 산에서 내려갔다.

*

에너지를 막 쓰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하루에 먹는 양은 정해져 있으니까.

에너지를 충당 못 하면 생체 에너지가 소실된다.

그리고 그게 계속되면, 죽는다.

미친 듯이 먹으며 아사를 하는 진귀한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또 먹습니까?”

그 무식한 치용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내무실에 걸터앉아 두유만 세 팩 째 들이켰다.

“배고파.”

조악한 변명이었다.

방금 식사를 마치고 PX까지 털고 왔다.

이제는 인준과 유진의 카드까지 손을 댔다.

‘돈을 벌던지, 다른 수단을 생각해내든지 해야겠는데.’

-형, 내가 방법을 생각해봤어. 들어 볼래?

‘말해 봐.’

-첫 번째는 취사장을 터는 거야.

‘…장난하지 말고.’

-밤에 어차피 따로 규제 안 하니까. 몰래 털자는 거지. 어때?

‘두 번째도 있냐?’

-PX 털자.

이 기계 새끼가.

‘너 PX 벽에 붙은 거 못 봤냐?’

떡하니 붙여 둔 한 장의 경고문이다.

훔치다 걸리면 손목 자름.

-형, 손목 하나쯤이야. 또 자라고 그러는 거 아냐?

오늘이다. 이 자식과 결판을 낼 날이.

‘결투를 신청한다. 브로. 테크룸으로 따라와.’

-아, 진짜. 나도 몸이 있다면 한번 붙고 싶다. 진짜. 진심으로.

‘후회할 말을 하네. 이 녹슨 쇠 대가리가. 너 내가 만만하지?’

-나랑 붙으면 형 그냥 3초 컷이야.

아, 진심 열 받게 한다.

“좋다. 좋아.”

자기도 모르게 육성으로 말했다.

“역시. 좋습니까?”

옆에서 치용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가 한쪽을 가리켰다.

“먹을 게 왔습니다.”

내무실 안쪽 커다란 종이상자가 보였다.

라면? 보급품으로 나왔나 싶었다.

안 그래도 유진이 몇 개를 챙겨서 가져왔다.

“라면 아니네?”

겉 포장지에 군용마크가 붙어 있는 것만 뺀다면 출출할 때 먹는 그 에너지 바와 흡사했다.

다만, 크기가 일반 에너지 바보다 두 배 정도는 컸다.

어쨌든 먹을 거였다.

“군 전투식량 대용, 금일 특식으로 나왔습니다.”

오, 부식이다.

세주가 신이 나 바를 뜯었다.

생각보다는 먹을 만해 보였다.

우적.

치용이 자신의 것을 양보하려 하자 유진이 말렸다.

“전부 먹어보랍니다.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그래?”

훈련의 일환인가 싶어서 치용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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