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3화 (3/206)

#  3

3. 뭘 봐, 인마.

오전 여덟시.

기상나팔 소리에 눈이 뜨였다.

빠-빠-빠빠빠-빠빠빠-

‘귀청 떨어지겠네.’

안 그래도 어제 바로 옆에서 소총 네 자루가 뿜어대는 소리를 듣는 통에 귓속이 아릴 정도다.

“전부 일어나면 아침 식사 후, 기본 훈련에 참가하게 됩니다.”

처음 보는 조교가 불이 켜진 내무실 가운데 서 있었다.

“꿈 뜨게 행동하지 말고, 8시 45분까지 식사 완료 후 세수하고 내무반 바깥, 연병장에 집합합니다.”

그는 할 말만 하고 나가려 했다.

“질문 있습니다.”

안경 남자였다.

“말합니다. 훈련병.”

“정말 자율입니까? 훈련에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러니까 훈련에 참여하지 않고 제 개인 공부를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피식.

우연히 그 조교의 바로 옆에 앉은 세주의 눈에 그의 얼굴이 보였다.

비틀린 입꼬리, 그는 비웃고 있었다.

“마음대로 합니다. 훈련병.”

그는 그 말을 하고 나갔다.

“거, 여기 조교 새끼들은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어.”

용 남자가 뒤에서 말했지만, 거의 들릴 듯 말 듯 했다.

생긴 거와 다르게 참, 세심한 성격이다.

혹시라도 들리면 그의 기분이 상할까 봐 저런 배려를 하다니.

세주는 속으로 손뼉을 세 번 쳐줬다.

식사는 평범했고, 단체로 만든 음식치고는 먹을 만했다.

우르르 몰려가서 씻고, 관물대에 짐을 처박고 나가니 8시 40분경이었다.

기본 소양, 그러니까 이곳의 훈련병에게 필수적으로 행해지는 교육이다.

‘정신 교육일까?’

꼭 싸워야 한다. 외계인을 몰아내야 한다는 굳은 의지를 불러일으켜 줄 자료?

아니면 뭔가 의지를 불어 넣어 줄 대가를 약속할까?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지만, 정답을 알 수 없었다.

외계인과 싸우는 이들은 군인이었다.

그리고 도시에 사는 이들은 여전히 그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모른다.

그저 현재 외계인과의 전쟁은 소강상태이며, 가끔 소규모 전투가 일어난다고 알고 있다.

그 전투 횟수가 잦아서 사람이 필요하고, 사망률이 높다는 건 대강 소문으로 알지만.

군 내부 사정은 극비처럼 묻혀 있다.

하물며 방송에서도 다룬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제야 세주는 이게 얼마나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알았다.

‘세상에,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고?’

아니다. 궁금해도 알 수가 없었던 거다.

방송을 통제하고 아예 그런 의문이 생기지도 않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호기심을 잃지 않고 알아내려 한다?

‘죽일 것 같은데.’

이곳에서 본 군인들은 그런 걸 가리지 않는다.

세주는 이곳에서 본 군인들이 하나의 공통점을 가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들은 여유가 없었다.

분명 매스컴에서는 외계인과의 전쟁이 점점 승리로 향해간다고 하는데, 이곳의 분위기는 정반대였다.

열두 살의 아이가 스무 살의 성인에게 발악하며 달려드는 것 같았다.

한 톨의 힘도 남겨둘 수 없는 그런 싸움이다.

온 힘을 다해 달려들지 않고는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내 눈치가 제발 틀리길 빈다.’

그런 상황에서 징집된 병사라면, 사망률이 50%가 아니라 80%쯤으로 상향 조종될 것 같다.

“야, 넌 이름이 뭐냐?”

생각에 빠진 세주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옆을 보니 얄미운 표정 국가대표, 용 남자였다.

“반세주요.”

“요? 여기 군대야 자식아.”

그가 말했고, 세주가 그를 빤히 바라봤다.

“다랑 까, 몰라?”

알지.

“반세주다.”

“…뭐 이 새끼야?”

그가 막 육두문자로 갱스터 랩을 퍼부으려 할 때 조교가 말했다.

“제자리에 서.”

착하고 멋지게 제식훈련을 받았다면 좋았겠지만, 턱도 없는 소리였다.

어제까지 사회에 굴러서 배에 기름이 잔뜩 낀 사람들이 엉거주춤하게 멈췄다.

“야, 너, 아니다.”

옆에서 용 남자가 말했고, 세주는 어깨를 으쓱였다.

일병 조교가 철창을 가리켰다.

대체 뭐에 쓰는 물건인지, 맹수라도 가둬두는 것처럼 보였다.

동물원 호랑이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큰 우리가 안에 있고, 그 바깥으로 다시 큰 철창이 있었다.

그러니까 34중대 원 200명은 모여서 큰 철창문을 열고 들어가 호랑이 우리에 가까이 선 셈이다.

“안녕한가? 훈련병 여러분?”

맞은편, 우리 너머로 사람이 보였다.

“반갑다. 난 김택동 소위다.”

나이는 서른이 안 되어 보였고, 계급장은 다이아몬드 하나였다.

일병 조교가 경례하고 뒤로 물러났다.

김택동 소위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천천히 우리를 끼고돌면서 3중대 에게 다가왔다.

“시간이 없으므로, 바로 훈련에 임하겠다.”

그는 웃는 얼굴이었고, 걸음은 빠르지 않았다.

“오늘 훈련병이 교육을 듣고 나서 알아야 할 건 하나다. 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말과 함께 김택동 소위가 제자리에 섰다.

“아, 씨발. 진짜 뭐라는 거야?”

얄미운 표정 짓는 건 그리 잘하던 용 남자는 이해력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바로 옆에서 딱 들릴 만큼만 말하는 통에 신경이 쓰였다.

“환영한다. 내 수업에 온 것을, 내 수업 이름은 다섯 글자다. 환영의 의미가 각별하기에 내가 직접 지었다.”

세주는 그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우리 안쪽, 땅에 굳게 걸린 자물쇠가 보였다.

퉁.

그 밑에 무언가 있었다.

집중해서 보려 할 때, 김택동 소위가 말했다.

“너흰 좆 됐어. 내 수업 이름이다. 어때? 죽이지?”

쾅!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물쇠, 아니 땅에 박아둔 철문이 뜯겼다.

*

캬아악!

다리가 여덟 개 달린 괴물이 바닥을 찍고 자신을 가로막은 철창에 전심전력으로 부딪쳐온다.

3중대 쪽으로!

쾅!

괴물이 그대로 철창을 들이박았다.

“으악!”

“씨, 씨발!”

“피해요!”

놀란 사람들이 주저앉고 뒤로 물러나고, 들어왔던 철창으로 달려간다.

그걸 보던 소위는 세상에 이런 진귀한 장면은 없다는 듯 신나는 얼굴이다.

“훈련병? 탈영은 사형이다. 내 손에서 도망갈 수 있다면 시도해 봐도 좋다.”

철창을 쥔 훈련병 중 하나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뗐다.

“멍청하게 굴지 마라, 적은 갇혀 있다.”

말하며 소위가 장내를 둘러본다.

이 상황에서도 간덩이가 부은 사람들이 있었다.

총 넷이다.

제자리를 지키던 남자 하나.

괴물을 보며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놈을 관찰하는 남자 하나.

그리고 겁에 질려 물러나면서도 사람들을 챙기는 사람.

주먹을 쥐고 파이팅 자세를 취하는 사람 하나.

제자리를 지키던 건 반세주, 놈을 관찰하는 건 교수라던 안경 남자였다.

용 남자는 용기용기 열매라도 처먹었는지 맨주먹으로 저 괴물과 맞서려고 했다.

마지막으로 5분대의 분대장.

눈매가 쳐지고 콧대가 오뚝한 이십 대 중반 정도의 남자였다.

흔히 말하는 강아지상에, 모성본능을 자극하는 얼굴이다.

그는 겁에 질렸으면서도 사람들을 챙기려 했다.

“정신 차리세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쾅!

그 사이에 괴물이 다시 한번 철창을 들이받았다.

두꺼운 철창이 찌르르하고 떨렸다.

“저놈은 속칭 알까기라고 부르는 놈이다. 정식 명칭 따위야 알게 뭐냐? 놈은 인간에게 알을 깐다.”

소위는 혼자 다른 세상에라도 있는 것처럼 설명을 이어갔다.

“너흰 좆 됐어. 수업의 첫 번째 과제다.”

세주와 안경 남자, 간신히 정신을 차린 몇 명이 그의 입을 주시했다.

“죽여라.”

캬아아악!

괴물의 포효가 들려온다.

세주는 실망 했다.

그가 상상하던 외계인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

상상하던 여고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다른 것처럼. 세주도 실제로 외계인을 본 건 처음이었다.

매스컴에서 가끔 나오는 모습은 여전히 80년대 영화 E.T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무기는 없습니까?”

“넌 상점 5점.”

김택동이 세주를 보고 말했다.

“다른 놈들은 모두 마이너스 5점이다.”

상벌점제도?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기록하는 사람도 없이 혼자 떠드는 거였다.

“바닥을 봐라.”

그가 말하며, 바닥을 가리킨다.

무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이제는 대부분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도 몇 명을 제외하고는 괴물과 조금이라도 멀어지고 싶어, 큰 철창 벽에 바짝 붙어 있었다.

밖에서 일병 조교가 그들을 보고 피식피식 웃었다.

‘재수 없는 자식이네.’

세주는 마음속으로 일병 조교는 싸가지라고 입력했다.

‘무기라.’

바닥에는 돌들이 굴러다녔다.

흙바닥에 파묻힌 꽤 큰 돌도 있었다.

“돌을 던져라.”

총기도 아니고, 돌이라니.

처음 나선 건 용 남자였다.

“에이, 씨. 이런 걸 맞는다고 저놈이 죽겠어?”

놈은 곤충처럼 외골격으로 덮여 있었다.

단단한 갑주 같은 것이 놈을 감싸고 있었다.

“에라이.”

그가 돌을 던졌다.

붕하고 날아간 주먹만 한 돌이 갑주 위를 가격했다.

딱!

그리고 튕겨져 나왔다.

별 의미도 효과도 없는 공격이었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용기는 줬나 보다.

다들 돌을 들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다닥!

캬아아악!

쿵!

첫 인상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던 놈이 돌을 맞고 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그냥 우리에 갇힌 짐승이네.’

안경 남자는 돌을 몇 번 던져보고 세주의 곁으로 다가왔다.

“왜 안 던집니까?”

힐끗 그를 보고는 세주가 어깨를 으쓱였다.

“돌 한두 개로 저놈이 죽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럽니다.”

“지금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전부 바보로 만드는 말이네요.”

요로 끝나는 말을 들으니, 용 남자처럼 시비라도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말로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세주는 대충 이 수업의 의미를 이해했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저 겁먹지 않고 한발 물러서서 보면 보이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그로테스크한 괴물과 싸워야 한다.

더구나 이 외계인 족속은 몸집이 3M가 넘고 사람 따위는 야무지게 씹어 삼키게 생겼다.

‘내가 지휘관이라면.’

맨 처음 괴물에 대한 환상을 없애겠다.

놈들은 두렵지만 죽일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하나 더.

절대로 놈들을 쉽게 죽일 수 없으리라는 것과.

“총이라도 주든가.”

용 남자가 중얼거리는 게 보였다.

‘인간의 무기에 대해 믿음을 키운다.’

“근데 어딜 맞춰야 하는 거야?”

또한, 훈련을 통해서 놈들을 죽일 수 있다고 알려 줄 것이다.

그렇다면 자율적으로 참여하라고 해도 사람들은 본인의 의지로 최선을 다해서 훈련에 임하겠지.

그게 이 수업의 목표였다.

세주가 돌을 하나 집었다.

동그란, 주먹보다 조금 작은 돌이었다.

“의미 없다면서요.”

“불가능하다고 해도 반항은 필요한 법이니, 그쪽도 열심히 돌을 던지는 게 좋을 겁니다.”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괴물은 거대한 몸에 네 개의 눈을 가졌다.

주둥이는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고, 동그랬다.

외부는 단단한 껍질에 가려져 있어서, 돌 따위는 무시하고 놈은 철창에 부딪혀 왔다.

쾅!

*

김택동 소위가 훈련병들을 돌아봤다.

처음 눈여겨봤던 훈련병이 이제야 돌을 주워 던지는 게 보였다.

쐐애액!

제법 매섭게 날아간 돌이 딱하고 갑주에 맞고 튕겨졌다.

그는 그 짓을 수없이 반복했다.

내일 훈련 받을 때 어깨 근육이 뻐근한 걸 넘어 팔도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슬슬 이 의미 없는 짓을 멈춰야겠다 싶었다.

돌로 저놈을 잡을 수 있으면, 이 고생을 왜 하겠나.

외계에서 온 저 포악한 살육자는 잔인하고 위험했고, 강했다.

그만하라고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퍽!

이제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거기에 지친 얼굴로 어깨를 주무르는 훈련병이 보였다.

‘이것 봐라.’

아까 상점 5점을 줬던 훈련병이었다.

다른 훈련병과 똑같은 행동의 반복이다. 돌을 들어 던지는 단순한 행위고.

하지만 결과가 달랐다.

퍽!

카아아아!

괴물이 철창을 들이받던 몸을 멈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제까지 보여주던 모습과는 다른 행동에 훈련병 모두의 몸이 굳었다.

“니미, 또 무슨 지랄이냐.”

누군가 중얼거렸다.

괴물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두 개의 눈동자를 가진 여덟 개의 겹눈, 총 열여섯 개의 눈동자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놈을 찾는다.

괴물이 소리를 내뱉지 않았다.

덩달아 훈련병들도 침도 삼키지 못하고 멈췄다.

김택동 소위는 영화를 보듯, 다음 장면이 기대됐다.

그리고 괴물의 시선을 받은 훈련병이 입을 연다.

“뭘 봐, 인마.”

소위는 그걸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드물게 보이는 또라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