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급 병사 반세주-2화 (2/206)

#  2

2. 쏠 것 같습니까? 안 쏠 것 같습니까?

세주는 외계인에게 감염되어 해부돼서 실험체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와, 솔직히 좀 쫄았다. 이 시키들.”

그건 아니었다.

열넷 중 가장 건장한 남자였다

어깨도 떡 벌어졌고, 등에 용도 한 마리 감았다.

좋게 보면 조직에서 일하는 폭력배요, 나쁘게 보면 동네 양아치다.

‘둘 다 좋은 건 아니구나.’

소독을 끝내고 나온 열셋.

안에는 뭐가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흰 연기 속에서 간신히 보이는 녹색불을 따라 나가면 끝이었다.

흰 연기가 피부에 닿자마자 따가운 느낌은 있었지만, 크게 해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로, 꽤 이상해도 나오는 건 힘들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한 명.

질문했던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가 안 나왔다.

“안 나오네요.”

금테 안경을 올리며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그 말에 대답하려는데 누군가 먼저 말했다.

“너는 인텔리여? 보니까 대학물 먹다 왔는갑다?”

“틀린 말은 아니죠. 교수였습니다.”

용 남자의 말에 안경 남자가 답했다.

“교수? 아따 잘 나가는 양반께서 어쩌다 여까지 오셨는가?”

“징병제 폐지하고 추첨제로 바뀐 거 모릅니까? 무식에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허허. 이 새끼 보소.”

분위기가 살벌하게 급변했다.

“너 뭐라 했어?”

용 남자가 눈을 부라렸다.

“기억력도 낙제 수준입니까?”

“이 쉬벌 놈이.”

용 남자가 순식간에 안경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싶던 순간이었다.

“동작 그만!”

조교가 소독실에서 나왔다.

조교는 나오자마자 외쳤지만, 용  남자는 무시하고 안경 남자의 얼굴을 후려쳤다.

퍽!

찰진 소리가 울렸고, 그 사이 조교가 용 남자에게 달려왔다.

용 남자는 뭐? 어쩔 건데? 라는 말을 표정으로 보여줬다.

‘와, 저 사람 얼굴로 말을 하네.’

세주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를 보며 감탄했다.

얄미운 표정 짓기 대회가 있다면 탈아시아급 실력자가 분명했다.

조교는 다가오자마자 군화로 그의 정강이를 후려쳤다.

빡!

“악!”

그가 정강이를 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야, 이 개새…!”

용 남자가 일어나려는 순간이었다.

철컥.

조교는 말없이 품에 손을 넣더니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총구를 그의 관자놀이에 붙였다.

용 남자의 입이 셔터가 닫힌 듯 굳게 다물어졌다.

잠깐의 침묵 뒤, 식은땀을 흘리며 그가 입을 열었다.

“이것 보쇼. 실수 한 번 한 거 가지고 이럴 거요?”

“실수?”

조교가 피식 웃었다.

그는 용 남자의 뒤로 돌아가 뒤통수에 총구를 댔다.

그리고 물었다.

“내가 쏠 것 같습니까? 안 쏠 것 같습니까?”

꿀꺽.

용 남자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세주에게도 들리는 것 같았다.

“안 쏠 것 같습니다.”

용 남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세주는 흥미롭게 그 상황을 지켜봤다.

‘설마, 놔두겠지.’

징집해 온 병사라지만,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리고 군인은 그 국민을 지키는 자들이고.

세주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무엇보다 외계인 침공 후 5년.

그동안 안전한 도시에 있던 사람들은 외계인들과 싸우는 자들에 대해 너무 무심했다.

“안 쏩니다.”

조교가 말하고 총을 거뒀다.

대신 그는 무릎으로 그의 허벅지를 찍었다.

쩍!

장작이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억!”

용 남자가 바닥으로 허물어진다.

동시에 조교가 군화를 들어 그를 자근자근 밟았다.

처음에는 양 팔뚝.

“악! 그만! 잠깐만!”

딱!

시끄러웠는지 조교는 곧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용 남자의 눈이 흐리멍덩하게 풀렸다.

‘때릴 줄 안다.’

턱 끝을 스치듯이 찼다.

뇌가 흔들린 용 남자는 반항이 불가능했다.

아니, 애초에 멀쩡한 상태에서 싸웠다고 하더라도 상대도 되지 않았을 것 같다.

근 5분 동안 남자를 밟은 조교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여기 놀러 온 거 아닙니다. 문제 일으킬 시 다음에는 쏩니다. 내 말이 진짜인지 시험해보고 싶으면, 굳이 기다리지 말고 지금 나옵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침착함을 가장한 세주조차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교의 카리스마에 말을 잃었다.

“훈련병, 골병 나게 안 때렸습니다. 지금부터 셋 셀 동안 일어납니다. 일어나지 않으면 삶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 대갈통에 구멍 내드립니다. 셋, 둘, 하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리나케 말을 이었다.

용 남자가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비틀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턱.

하지만 누군가 그를 붙들어 세웠다.

넘어지려는 용 남자를 보며 품에 손을 넣던 조교가 움직임을 멈췄다.

“뭡니까?”

“이제부터 전우가 될 텐데, 이렇게 죽게 둘 수는 없습니다.”

“좋은 자세지만, 함부로 나대지 않습니다.”

긴장감에 입이 말라왔지만, 세주는 그걸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할 일을 했다는 듯 서 있었다.

조교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뭐, 앞으로는 사고치고 싶어도 그럴 짬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고 치지 마십시오.”

그의 말에 무게가 전과는 달라졌다.

“네.”

세주만 입을 열어 답했다.

조교는 그런 세주를 다시 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동합니다.”

모두 지금 이 순간 불안함을 느꼈다.

세주는 불안감 보다 나오지 않은 한 사람의 행방이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조교의 품에는 권총이 들어 있었고, 그건 방아쇠만 당기면 사람을 죽이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조교는 충분히 그 방아쇠를 당길 위인이었고.

3조 200명은 시작부터 198명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20명이 한 소대로 그리고 10명이 한 부대로 세분됐다.

“여기는 34중대의 5분대입니다.”

앞에 숫자가 맨 처음 조, 그리고 중간 숫자가 중대 순서, 마지막이 분대 순서였다.

그러니까 3조의 4번째로 만들어진 중대에 다섯 번째 분대란 얘기다.

성의 없는 작명이었다.

물론 이런 데서 쓸데없이 켈로 부대 따위의 이름을 붙일 필요는 없었다.

군복과 군화, 그리고 기본 장구류를 받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거의 지나간다.

“하루 종일 줄만 서다가 끝나겠네. 썅.”

용 문신을 한 남자는 조교랑 멀어지고 나서 다시 살아나서 입을 털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A급을 주네.’

훈련용 CS복도 아니고, 제대로 된 군복과 탄띠까지 거기에 깨끗한 수통도 있었다.

세주는 단연코 군 생활 내내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초 S급 수통이었다.

제작연도가 2017년도였다.

식사하고 식사 후 군복을 받자, 바깥은 이미 어둑어둑 했다.

내무실로 돌아와, 배정된 긴 침상에 철제 관물대를 등지고 앉았다.

“점호하겠습니다.”

언제 정해졌는지, 맨 앞자리가 분대장 역할을 했다.

저녁 점호 시간에 처음 봤던 상병 조교가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접이식 철제의자를 드르륵 끌고 와 앉았다.

“쉬어.”

“전체 쉬어!”

점호라고 해서 각 잡고 하는 일련의 과정을 상상하던 차라 의아했다.

뭐, 저렇게 여유 있는 태도인지.

“뭐, 다들 영장을 받으면 황당할 거라고 봅니다.”

그때 상병 조교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전 여러분 34소대의 소대장 겸임 조교, 박민우입니다.”

훈련병 중 하나가 손을 들었다.

박민우라고 자신을 밝힌, 권총을 소유한 살벌한 소대장이 그를 보며 말했다.

“질문 하나, 일단 받습니다. 다음부터는 제가 말하기 전까지 손을 들거나 하지 않습니다.”

손을 든 훈련병, 반세주였다.

그는 이 질문을 자신이 취해야 할 태도의 지침으로 삼아야 했다.

“오늘 오전에 헤어졌던 훈련병 하나가 아직도 보이지 않습니다.”

움찔.

그 사람이 사라지는 걸 봤던 이들이 모두 몸을 꿈틀하며 움직였다.

박민우가 세주를 쳐다봤다.

그건 노려보는 것에 가까운 강한 눈빛이었다.

“훈련병.”

그가 말을 끊었다.

모두가 침묵했다.

그 고요 속에서 조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 필요 없습니다.”

말하고는 조교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본 조교 훈련병을 위해서 말씀드립니다. 앞으로 그런 궁금증은 잘 접어서 뇌 속에 처박지 말고 어디 갖다 버리십시오.”

잊으라는 말을 어렵게도 하는구나.

세주는 답을 들을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그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이래 봬도 눈칫밥만 7년이다.’

다니는 회사마다 또라이 보존 법칙에 의해 꼭 개또라이 같은 상사가 있었다.

덕분에 눈치만 비약적으로 늘었다.

그의 생존 여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는 알 수 있었다.

세주가 알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런 일이 특별한 경우는 아니라는 것.’

조교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어떤 훈련병이 식당에서 오바이트를 하거나, 행군 중 혁대가 끊어져 주저앉았다거나 하는.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처럼 말했다.

세주는 새삼 깨달았다.

‘여기는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긴다.’

죽느냐 사느냐는 이제부터 저 조교의 손에 달려 있을지도 몰랐다.

세주는 새삼 생각했다.

‘재수 하나는 오지 게 없구나.’

생살여탈권을 쥔 사람,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조교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간단하게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일단 먼저 말씀드릴 건, 듣는 것도 자유, 하는 것도 자유라는 겁니다. 예전 군대 생각하고 오셨다면 큰 착각 일 겁니다.”

조교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와중에 세주 쪽에서 잠시 눈이 멈춘다.

‘내가 좋아서 멈춘 건 아닌 것 같고.’

아무래도 찍힌 것 같았다.

“군가를 외우거나 복무 신조를 외우는 일은 없습니다. 간단한 제식훈련은 받겠지만, 여러분들은 이미 한 번 그 훈련을 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듣고 보니 그랬다.

이곳에 20대 초반이나 십 대 후반 정도의 어린 사람은 하나도 안 보였다.

“애초에 군필자와 미필자는 훈련소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훈련병들이 할 일은 단순합니다. 해야 할 필수적인 일은 아침 점호, 저녁 점호, 그리고 청소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럼 나머지는?

본래 훈련소란 집 생각이 날 틈도 없게 몰아치는 게 일이다.

거기에 바빠질 거라고 본인이 직접 말했었다.

그런데 점호 두 번과 저녁 식사 후 청소 외에 아무것도 안 시킨다면.

굳이 이곳에 사람을 모은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 외 훈련은 자율 참석입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자율?’

고등학교시절 수없이 들었던 자율학습도 아니고, 훈련을 자율적으로 하라고?

무슨 개소리냐고 묻고 싶었다.

세주는 자신만 이런 기분을 느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듣는 사람들 표정을 보며 세주는 그게 거울과 다름없을 거로 생각했다.

“궁금해도 묻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일 되면 알아서 하게 되니, 물을 필요도 없고 오늘은 이대로 잡니다. 알겠습니까?”

“…네!”

군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힘 빠진 목소리다.

사람들이 겨우 눈치를 보다 대답했다.

조교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이 되면 알 수 있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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