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181화 (181/183)

외전 2. 머라이어 '캐리' (2)

슈퍼아이돌K

캐리온은 1차 예선에 합격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하지만 캐리온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1차 예선의 통과쯤은 그녀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1차로 뽑힌 사람들은 총 1000명이다. 그리고 2차에서는 이들을 50명으로 추려내는 작업을 거친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스튜디오 촬영이 시작되는데, 캐리온 또한 사전에 연락받은 스튜디오로 향했다.

2차 오디션에서는 10명씩 총 100팀으로 묶였고, 캐리온은 그중 일곱 번째 팀이었다. 그녀가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순간 주변의 시선이 쏠렸다.

‘와 진짜 예쁘다’

‘피부가 완전 아기 같잖아. 잡티가 하나도 없어.’

'저 정도면 반칙 아니야?'

아이돌을 꿈꾸는, 한 외모 한다는 여자들이 감탄할 정도로 캐리온은 예뻤다. 하지만 캐리온은 이번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마치 바다를 바다라고 부르는 것처럼, 그녀에게 예쁘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에.

캐리온은 빈자리에 철퍼덕 앉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화들짝 놀랐다.

“아, 그···. 거기 자리 있는데.”

캐리온은 그녀를 쳐다보았다. 얼굴을 스캔하는 순간 인적사항이 바로 출력되었다.

박소현. 수원시 권선구 거주. 창명고등학교 3학년.

[그래?]

박소현은 약간 소심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캐리온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를 만든 사람은 이건우이다. 당연히 캐리온도 이건우스러운 가치관을 갖고있다.

[그럼 자리를 비운 놈이 잘못이지.]

“···아?”

박소현은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더이상 신경을 쓰는 건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리온의 대답에서 그녀가 쉽게 대화가 되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렇게 한차례 소란이 있고 난 뒤 대기실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몇몇은 다시 연습에 들어갔고 몇몇은 옆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친목을 다졌다. 그리고 캐리온은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그때였다. 사나운 고양이처럼 생긴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캐리온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캐리온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야, 거기 내 자린데.”

캐리온은 감고있던 눈을 떴다.

[어쩌라고.]

“뭐? 하, 참.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캐리온은 여자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정유미. 서울시 서초구 거주. 세현예술고등학교 3학년.

대형 건설업체인 우정 건설 사장의 막내딸.

캐리온은 결론을 내렸다.

[음, 허접?]

처음 들어보는 모욕에 정유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뭐? 야! 너 뭐라고 했어?”

그녀의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올라갔다. 대기실에 있는 모든 참가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몰렸다. 싸움이 일어나려는 일촉즉발의 상황.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직원이 들어왔다.

“7번 팀 대기하세요.”

캐리온은 이까짓 언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정유미를 스쳐나갔고, 정유미는 분한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

박소현은 두근두근거렸다. 원래 소심한 그녀는 중요한 시험 앞에서 긴장을 잘 한다. 하지만 이 두근거림은 조금 달랐다. 그저 중요한 오디션을 앞에 둬서 오는 떨림 같은 게 아니었다.

바로 옆에서 두 여자의 기 싸움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멋있어···.”

그녀는 캐리온의 당당한 모습이 멋있었다.

정유미는 꽤 유명한 연습생이었다.

서울 명문고인 세현예고에 아버지는 대기업 사장이다.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빵빵하고. 엔터테인먼트도 메이저급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알아주는 곳이다.

그래서 그녀는 데뷔하기 전에도 몇 번 방송에 타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그런 애 앞에서도 꿇리지 않고 할 말을 다 하다니.

원래라면 오디션을 앞두고 긴장했어야 할 그녀는 캐리온 때문에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고, 덕분에 긴장하는 것을 잊어 준비한 노래도 완벽하게 부를 수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캐리온의 차례가 되었다. 캐리온은 통기타를 하나 메고 심사위원들 앞에 섰다.

심사들은 기대했다. 1차에서 캐리온은 정통 발라드로 그들의 마음을 녹여냈다. 이번에는 어떤 노래를 보여줄까?

심사위원으로 있는 한 프로듀서가 말했다.

“제가 봤을 때 캐리 씨는 이번에도 발라드곡을 들고나왔을 거예요.”

“하긴. 저번에 선보인 창법은 발라드에 어울리는 창법이었죠.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무적이었습니다.”

마지막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캐리온은 발라드 원툴으로도 이 오디션을 씹어먹을 힘이 있었다. 그들은 캐리온을 지켜보았다.

무대에 올라온 캐리온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통기타를 잡았다. 하지만 그녀가 줄을 튕기는 순간, 어느새 연인을 기다리는 듯한 달콤한 표정을 바뀌었다.

심사위원들이 감탄하며 수군거렸다.

“방금 감정에 몰입하는 거 봤어요?”

“와···. 진짜 나 소름돋을 뻔.”

이어 시작되는 발랄한 선율. 진한 정통 발라드와 다른 어쿠스틱한 느낌이었다.

통통 튀는 듯한 기타 음에 캐리온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1차 예선 영상에서 보았던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음색은 사라지고, 봄날에 소풍을 온 듯한 달달한 목소리가 오디션장을 뒤흔들었다.

박소현은 두 손을 꼭 잡았다.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 심사위원들은 춤을 추는 듯한 리듬감에 몸을 맡기고 어깨를 들썩였다. 보통 몇 소절 부르고 끝이 나건만 지금은 아무도 캐리온을 막지 않았다. 결국 1절을 다 부른 캐리온이 노래를 멈췄다.

아직도 여운에 빠져나오지 못한 심사위원들. 캐리온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저기요. 끝났는데요?]

“······.”

심사위원들은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합격 버튼을 눌렀다. 전광판에 합격을 알리는 푸른 빛이 들어왔다.

캐리온의 2차 오디션 역시 깔끔한 통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

2차 오디션에서는 1000명 중에서 50명을 뽑는다. 합격률은 무려 5%. 상당한 탈락자가 발생하는 경연이었지만, 7번 팀에서는 무려 3명이나 뽑혔다.

캐리온.

스타 엔터의 내정자인 정유미.

그리고 박소현.

3차 오디션은 팀전인데, 살아남은 50명 중에서 5명끼리 팀을 만들어서 팀워크를 보는 무대였다. 캐리온, 정유미, 박소현은 그대로 한 팀이 되었다.

팀전을 시작하기 전, 캐리온을 눈여겨보고 있던 박홍근 이사가 그녀를 몰래 불렀다. 캐리온이 들어가자 박홍근 이사가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아, 캐리 씨 왔어요? 여기 앉아요.”

박홍근 이사는 반색하며 그녀를 앉혔다. 그리고 박홍근 이사 옆에는 정유미가 있었다. 정유미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사님? 저년은 왜 불렀어요?”

박홍근 이사는 정유미의 말투에서 둘 사이가 안 좋은 걸 짐작했다. 캐리온을 스타 엔터의 걸그룹에 끌어들이려고 했던 박홍근 이사는 조금 당황했다.

“둘이 아는 사이니?”

“당연히 모르죠. 근데 저년 저거 싸가지가 없더라고요. 아무 말도 없이 제 자리를 뺏었다고요.”

무척이나 유치한 이유였다. 사춘기 애들끼리의 단순한 투덕거림이라고 생각한 박홍근 이사는 그냥 정유미를 무시했다.

박홍근 이사가 캐리온에게 말했다.

“캐리 씨. 우리 오디션 프로그램이 걸그룹 멤버를 뽑는 건 알고 있죠?”

[네.]

“유미가 우리 스타 엔터의 자랑이라서 내가 밀어주고 있거든. 그런데 캐리 씨도 매력이 만만치 않더라고.”

박홍근 이사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낀 정유미가 뭐라고 반발하려고 했지만, 박홍근 이사는 재빠르게 말했다.

“내가 밀어주는 사람이 우승자가 될 확률이 높아요. 그러니까 캐리 씨도 우리 엔터에 들어오면 내가 팍팍 밀어줄게.”

참다못한 정유미가 소리 질렀다.

“이사님!”

“너는 가만히 있어!”

캐리온은 별다른 말 없이 두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확실히 그녀가 알고있는 일반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캐리온은 생각하는 척하며 빠르게 조사를 돌렸고, 1분이 지나지도 않아 둘 사이의 대략적인 관계를 알 수 있었다.

먼저 정유미는 우정 건설이라는 대기업 사장의 딸이다.

보통 엔터에서는 몇억을 들이며 아이돌을 키우지만, 정유미는 달랐다. 우정 건설에서는 막내딸인 정유미를 아이돌로 꽂기 위해서 엔터에 수십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역으로 했다.

정유미도 나름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돈을 갖다 바르자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었다.

이번에 드디어 걸그룹으로 데뷔시키기로 했는데, 박홍근 이사는 조금 더 화제성을 모으기 위해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투자를 받은 박홍근 이사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정유미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데뷔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니 정유미가 말을 뚝뚝 자르면서 끼어들어도 박홍근 이사는 별다른 내색하지 않고 받아주는 것이고.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캐리온이 말했다.

[무슨 말씀이신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래그래. 잘 생각했어. 데뷔하려면 우리 스타 엔터 같은 규모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게 좋지. 암."

[착각하신 것 같은데 저는 걸그룹에 들어갈 마음이 없는데요.]

걸그룹에 들어갈 마음이 없는데도 걸그룹 오디션에 참가한 이해 못 할 상황에 박홍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정유미도 놀라서 물었다.

“어?”

“뭐? 왜?”

[제 실력이면 굳이 그룹에 들어가는 게 손해지요. 솔로로도 충분하고요.]

박홍근 이사는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럼 여기는 왜 나온 건데?”

[우승하려고요. 우승한다고 해도 꼭 걸그룹에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요.]

정유미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말했다.

“재수 없어. 저년 저거 말하는 거 봐봐요 이사님. 아주 싹수부터 글러먹었다니까요.”

하지만 박홍근 이사는 아직 미련을 놓지 못했다. 지금까지 캐리온이 보여준 것들을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솔직히 그도 캐리온이 걸그룹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긴 했다. 저 재능이면 차라리 솔로로 돌리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그러면 우리 엔터와 계약하는 건 어떤가? 내가 특별히 솔로로 데뷔할 수 있도록 밀어주겠네.”

[싫은데요.]

“뭐?”

[제가 그렇게 작은 회사에 들어갈 이유가 없잖아요.]

캐리온은 진심이었다. 그녀가 키워온 KW 코퍼레이션에 비하면 스타 엔터나 우정 건설은 동네 구멍가게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박홍근 이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이, 뭐? 작은 회사라고? 스타 엔터가? 소속사도 없는 주제에 받아준다고 해도 뭐?”

캐리온은 일 처리에서는 만능이지만, 아직까지 사람의 감정을 익히는 부분은 조금 어려웠다. 박홍근 이사가 왜 화를 내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혹시 사실을 말씀드려서 화가 난 건가요?]

“이년이 진짜! 어윽 뒷골이···.”

박홍근 이사는 소리를 지르다가 뒷목을 잡았다. 한참 씩씩대던 그는 캐리온을 가리켜 삿대질했다.

“너, 내가 가만히 안 둘 거야. 솔로로 데뷔한다고? 개뿔. 이미지가 쓰레기가 되고도 너를 받아줄 소속사가 있나 봐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