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
본진털기 (2)
윌리엄의 광기.
윌리엄은 북한을 통해 테러를 벌였고, 덕분에 세계는 전쟁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내가 장웨이 주석과 성공적으로 딜을 쳐서 망정이지, 만약 중공군이 그대로 북한에 들어왔으면 그때는 정말 전쟁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이후, 윌리엄이 나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서 언제든지 테러와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미친놈이라는 걸 확실하게 했다.
놈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고 끊임없이 기발한 방법으로 날 공격해올 것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내가 가진 주요 시설들의 보안을 강화한 일이었다. 각종 공장에서부터 KW 본사와 연구소, 데이터센터와 핵융합 시설들까지.
특히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데 한몫한 미니온들은 데이터센터를 비롯하여 각종 공장과 발전소에 보내졌다.
또한 혹시 몰라서 주변 사람들의 경호도 늘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적한 것으로 보이는 시설들은 이제 철옹성과 같은 곳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강원도에 있는 한 데이터센터에서 미니온이 수상한 사람을 발견했다.
이상한 표정으로 비척비척 데이터센터로 걸어오는 다섯 명의 사람들.
미니온은 데이터센터로 걸어오는 다섯 명의 사람을 경계 등급으로 분류했다.
지금까지 관계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데이터센터를 노리고 다가온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안면근육분석 결과 그들은 극도로 불안하고 과민한 상태에 있었다.
[경계 단계에 들어갑니다.]
위이이잉
스텔스 기능으로 모습을 감춘 전투 드론이 상공에 배치되어 언제든지 공격에 대처할 준비를 갖추었다.
미니온은 다섯 명의 사람을 스캔했다.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해서 사람들의 인적사항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스캔하는 것과 동시에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몸속에 이물질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의 몸속에 공통적으로 삽입되어있는 금속의 이물질.
미니온은 즉시 캐리온에게 그들의 인적사항과 함께 특이점에 대해 보고했다.
*
캐리온은 미니온의 보고를 받은 즉시 내용을 분석하여 나에게 보고했다.
[데이터센터에 있는 미니온들이 인적사항을 보고했습니다.]
[노숙자, 가출청소년, 독거노인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출신 지역부터 나이와 직업까지 그들 사이의 접점이나 공통점은 없습니다.]
[유일한 교집합은 이들에게 연고가 없다는 점입니다. 가족 또는 친척과 연을 끊은 지 오래되었고, 실종된 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사흘이 지났는데도 실종신고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 다섯 명이 모여있는 것도 수상한데, 그 무리가 세계 각국의 데이터센터에서 동시에 발견된다면 더 수상하다.
내가 알기로 이런 짓을 벌일만한 사람은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다.
“또 윌리엄이 수작을 부렸나 보군. 뭐 총화기라도 들고 있나?”
이들에게 총 하나를 쥐여주고 총기 난사라도 하라고 했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윌리엄은 내 상상을 아득히 벗어나는 놈이었다.
[사람들을 스캔해보았습니다. 총화기는 없더군요. 그런데 몸속에서 이물질을 발견했습니다.]
“이물질?”
캐리온은 화면을 보여주었다. 사각형 모양의 무언가가 몸에 들어있었다. 미세한 비프음을 울리며 점멸하는 붉은 빛이 나는 물체.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이건 아니지. 그러나 불길한 짐작은 빗나가지 않았다.
[폭탄으로 추정됩니다.]
“이 미친새끼가”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이건 진짜 미친놈 아닌가?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을 납치해서 몸속에 폭탄을 집어 넣어버리다니. 영화에서나 있는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걸 실제로 하는 새끼가 있을 줄이야.
[전선이 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전기식 뇌관을 사용하는 것을 보입니다.]
전기식 뇌관은 무선으로 격발할 수 있으므로 지구 반대편에서도 조종할 수 있다.
“기폭장치는 윌리엄이나 그의 요원이 들고 있겠군.”
[예. 지금 사람들에게 접근한 사람을 추적해서 기폭장치를 들고 있을 만한 사람을 추리고 있습니다.]
캐리온은 납치당한 사람의 동선을 중심으로 접촉한 사람을 찾았다. 사람들의 얼굴과 체형을 스캐닝하고, 전세계 CCTV를 뒤져서 그들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들을 추려냈다.
세계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심지어 저 사람들 대부분이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사람들이다 보니 CCTV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캐리온뿐만 아니라 미니온들까지, 다른 업무 처리를 멈추고 여기에 모든 자원을 투입했다. 그리고 전력을 다한 캐리온의 능력은 엄청났다.
캐리온은 결국 그 사람 중에서 공통분모를 발견해냈고, 최종적으로 접근한 요원을 찾아냈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은 천천히 데이터센터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남은 거리는 대략 1km가량. 이제 십오 분만 더 걷는다면 저 사람들 몸에서 폭탄이 터지겠지.
나는 생각했다.
“기폭장치를 들고있는 사람이라면 미네르바 가문의 요원이겠지. 그들을 지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캐리온은 바로 내 의중을 알아챘다.
[지금 바로 미네르바 가문의 본거지를 공격하자는 말입니까?]
“요원들의 기폭장치를 해킹하는 건 미니온에게 맡겨.”
하지만 미니온이 해킹할 때까지 기다리고 앉아있을 수는 없다. 대신 나는 이 섬에 온 목적을 조금 더 빠르게 달성하기로 했다.
“대신 우리는 미네르바 가문을 공격한다.”
각자의 본진을 향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
제한시간은 15분.
하지만 변수를 생각한다면 10분 안에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한다.
캐리온은 이건우보다 먼저 출발했다. 캐리온은 인간의 신체를 본떠 만들기는 했지만 구동원리는 궤를 달리한다. 아크리액터 심장에서 나오는 에너지와 미스리늄으로 만든 골격과 근섬유는 음속을 초월한 속도를 낼 수 있게 해줬다.
캐리온은 먼저 위성을 통해서 미네르바 가문에 생체폭탄을 제어할만한 시스템이 있는 곳을 확인했다.
[타깃 설정. 메인 파워를 관리하는 관제실]
캐리온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 뒤로 미니온 드론들이 호위하듯 따라갔다. 소닉붐이 터지며 어느새 캐리온은 목적지에 도달했다.
가문의 정중앙 통제실이 보이자마자, 캐리온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지붕을 박살내며 건물에 진입했다.
콰앙
한쪽 무릎을 꿇은 채 히어로 랜딩의 포즈를 취하며 등장한 캐리온. 그 충격에 자욱한 먼지와 함께 건물이 진동했다.
“콜록콜록”
“이게 뭐야! 경비, 경비는 어디에 있어!”
“지금 무전도 안 됩니다!”
“그래도 소란을 들었으면 튀어와야 할 거 아니야!”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사람들은 충격에 아직 비틀거리고 있었고, 건물이 부서진 잔해들이 풀풀 날리고 있었다. 캐리온은 나풀거리는 머리를 뒤로 휙 넘기며 훗 웃음을 지었다.
[성공적으로 잠입 완료했습니다.]
캐리온은 통제실 관리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바로 메인 서버에 접속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한 관리자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너 뭐하는 새···.”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슈욱
그 앞으로 총알이 스치듯 지나갔기 때문이다. 총알은 그의 귀 옆을 스치고 벽에 박혔다.
"...."
관리자는 본능적으로 침을 삼키고 총알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총알이 날아온 방향은 뻥 뚫린 천장. 그곳에는 미니온 드론이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총구를 보며 관리자는 손을 살짝 떨었다.
‘1cm만 더 앞으로 갔으면 맞을 뻔했다.’
그는 가문에 충성을 다했지만 죽음을 불사할 정도는 아니었다.
캐리온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메인 서버에 접속했다. 서버를 몇 번 만져주니 역시나 정보가 나왔다. 캐리온은 바로 이건우에게 보고했다.
[기폭장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가문의 요원이었습니다. 바로 해킹해서 연결을 끊겠습니다.]
캐리온의 말을 들은 관리자가 발작하듯 소리쳤다.
“아, 안 돼!”
하지만 캐리온은 이미 모든 걸 처리한 후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캐리온은 미네르바 가문에 있던 모든 비밀정보를 그대로 털어버렸다. 수십, 수백 년동안 저장되어왔던 미네르바 가문의 모든 기밀이 캐리온의 서버에 차곡차곡 쌓였다.
모든 일을 끝낸 후 캐리온은 다시 들어왔던 대로, 뻥 뚫린 천장을 통해서 솟구치며 날아갔다.
그 모습을 사람들은 멍하니 쳐다보았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갑자기 글래머러스한 여성이 천장을 뚫고 난입하더니 진행 중이던 작전을 중지시키고 모든 정보를 털어가 버렸다.
“끝인가?”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천장으로 작은 물체 하나가 떨어졌다.
EMP 폭탄이었다.
퍼어엉
강력한 전자기 교란이 생기며 소란이 일어났다.
“갑자기 감시 모니터가 꺼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자장비까지 모조리 통제를 잃었습니다. 엔진까지 완전히 뻗었어요!”
“다시 켜!”
“이거 왜 이래? 안 켜집니다!”
윌리엄은 본진에 누군가 EMP 폭탄들 떨굴 수 있다곤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EMP에 대한 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서버실에 있는 모든 시스템이 뻗었다. 휴대폰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전자시계까지 고장이 났다.
그날, 미네르바 가문은 역사상 처음으로 탈탈 털렸다.
*
나는 다소 여유롭게 캐리온의 뒤를 따라갔다. 캐리온이 한바탕 쓸고 갔는지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초토화된 후였다.
어차피 캐리온이 필요한 정보는 모두 빼냈지만, 나는 미네르바 가문이 박살 난 것을 내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전생의 나를 죽인 놈들. 내 첫 번째 복수의 완성이었다.
나는 미니온 군단의 보호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왔다.
카앙!
물론 중간에 드론 한 기가 막으면서 튕겨 나가기는 했지만.
“보자마자 총알이라니 사람들이 인사가 과격하네.”
캐리온이 미처 처리하지 못한 놈이 있나보다. 하긴 캐리온의 주요 임무는 보안 인력 제거가 아니라 기폭장치 해킹이었다. 미니온은 총알이 날아온 궤도를 계산해서 사람이 숨어있을 곳으로 총을 한 방 갈겼다.
“컥!”
명중했는지 비명이 들렸다. 그쪽으로 가자 총알을 되맞고 쓰러진 경비가 보였다.
나는 그를 몇 번 걷어차며 말했다.
“넌 뭐하는 새끼인데 보자마자 총질이세요?”
“···이건우”
“오? 나를 알아?”
“죽어!!!!”
그는 품에서 칼을 꺼내 들더니 나를 향해 찌르려고 했지만,
지이이잉!
미니온 드론이 발사한 전기충격기에 그대로 거품을 물고 기절하고 말았다.
미네르바 가문에 깔린 경비를 무력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맞은 편에서 사람들을 처리하면서 다가오던 캐리온과 마주했다.
캐리온이 보고했다.
[작전에 총 16명의 사람이 투입됐고, 그중 기폭장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5명입니다. 이들의 기폭장치를 해킹해서 연결을 끊었습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끝난 건가?”
[상황을 확인하겠습니다.]
곧이어 캐리온은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었다. 미니온과 연결된 카메라를 통해 각국 데이터센터에 있는 상황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은 이미 데이터센터 가까이에 다가왔다.
‘기폭장치가 사라졌으니 문제없겠지. 이제 구호요청을 해서 몸속에 있는 폭탄만 들어내면 되겠군.’
그때였다.
사람의 몸을 스캔하고 있는 장치에서 폭발장치가 붉게 반짝였다. 타이머가 작동한 것이다.
나는 소리쳤다.
“저게 뭐야!”
캐리온이 침착하게 말했다.
[···타이머입니다. 기계식 타이머로 보입니다.]
전자식 타이머는 쓰지 않았다. 전자기 교란에 걸리면 그런 장치는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한 형식의 기계식 타이머를 사용한 모양이다.
이건 사람 몸 안에 있어서 캐리온이 분석해서 멈출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설령 몸을 짼다고 하더라도 기폭장치를 해체하다가 실수로 폭발이라도 한다거나 타이머가 모두 끝나버리면 그거는 그거대로 좆된 것이다.
순간 나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미니온에게는 나노 센서를 달았었지?”
[네.]
캐리온은 양자 센서를 온몸에 때려 박았지만, 하위호환인 미니온에게 그 정도의 기술을 구현하기는 힘들다.
대신 미니온은 나노 센서를 박았다. 관련 기술은 1나노 반도체 공정인 나노온 프로젝트를 할 때 이미 정립했으므로 기술 구현은 어렵지 않았다.
즉 미니온은 작은 나노들로 이루어진 휴머노이드이다.
“그 나노 센서를 분리해서 저 사람들 안으로 침투시킬 수 있나?”
나노 센서는 미니온과 연결되어있다. 미니온이 자신의 센서를 조종해서 내부에 있는 폭탄을 해체할 수 있을 것이다. 정 안되면 기계를 망가뜨려도 되고.
마치 나노로봇처럼 쓰는 것이다.
캐리온은 잠깐 계산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 확률은 높지 않지만 이론적으로 가능합니다. 미니온을 대상자에게 접근시키겠습니다.]
화면 너머로 미니온들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보였다.
실패했다가는 데이터센터는 둘째치고, 저 사람들이 모두 폭발하면서 인육의 파편이 되어 흩어질 것이다.
나는 손을 꽉 쥐었다. 긴장했는지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미니온의 나노로봇이 피해자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