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판치기 (3)
이대로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해버린다.
절망에 빠진 베일리는 에드먼드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에드먼드. 어떻게 하면 좋겠나? 지금 벌써 3개 주가 넘어가 버렸어. 이대로라면 필패야."
하지만 에드먼드는 초조한 베일리의 말에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차분하게 말했다.
"후보님, 걱정하지 마시죠. 이건우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후보님은 그저 하던 대로만 하시면 됩니다."
에드먼드의 의연한 태도. 무언가 계획이 있어 보이는 그 모습에 베일리는 되려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이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저런 모습이라니. 역시 로스차일드의 사람인가 싶었다.
"그래. 자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 혹시 무슨 계획이 있는지만 좀 알려줄 수 있겠나?"
에드먼드는 예의 귀족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신기술이라고 해도 모두가 그걸 반길 수는 없지요. 반대 세력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심지어 그 에디슨도 전기등을 처음 만들었을 때, 기존의 가스등 회사들은 전기등을 쓰면 죽는다는 등 각종 루머를 퍼뜨리는 통에 꽤나 고생을 했었다.
당연히 KW와 같은 산업을 공유하고 있는 기존의 회사들은 밀려나지 않으려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다.
에드먼드는 그 점을 공략했다.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낮지만 미국에도 인텔, IBM 반도체 사업부와 같은 파운드리 회사가 여럿 있었다.
나노온이 미국에 자리 잡는다면 그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 그곳에 속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다는 뜻이다.
나노온과 파워온 공장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그들 주가가 떨어지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지는 불 보듯 뻔했다.
에드먼드가 사람을 시켜 노조에 몇 마디 흘리는 것만으로 그들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그 몇 마디에 그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이러다가 미국의 반도체는 모두 망할 수밖에 없다!"
"KW를 쫓아내라!"
그리고 KW의 미국 진출로 피해를 보는 산업은 반도체뿐이 아니었다.
뉴클리온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핵융합 발전소가 들어선다면?
기존에 에너지 관련 사업을 하던 업체들은 모두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나 에드먼드가 관리하는 석유 산업의 매출이 박살 날 것은 뻔히 보였다.
또한 지금 나온 수소에너지나 전기에너지 등의 신재생 에너지는 모두 보조 수단으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아니면 아예 사장될지도 모른다.
에드먼드는 그 점도 자극했다.
정유 산업을 위시한 태양광, 풍력 발전 등 다양한 발전소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 시위에 합류했다.
"클린턴 대통령이 미국의 발전 사업을 말아먹으려고 한다!"
"KW가 들어온다면 미국은 역대 최고의 실업률을 찍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핵융합 발전 사업은 국가의 기간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완성만 된다면 미국의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업이라는 말이다. 에너지 안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황에, 무턱대고 외국인에게 맡긴다는 건 거부감을 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얼마 전 텍사스주에서는 전기민영화로 인해서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본 적이 있었기에 거부감은 더 높은 상황이었다.
"어떻게 발전 사업을 동양인에게 맡길 수있냐"
"클린턴이 나라를 외국인에게 팔아먹는다"
찬반여론이 극명하게 갈렸다. 이 일이 큰 이슈가 되면서 국회에서도 이 일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국회에서도 이 일을 쉽게 처리할 수는 없었다. 얽힌 이해관계자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에드먼드의 인맥과 자금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민영화를 했다고 해도 자국 기업이 전력을 생산하는 것과, 외국 기업이 전력을 생산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이미 반도체와 배터리를 KW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발전까지 남에게 맡기는 건 그림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에드먼드는 이러한 사실들을 꾸준히 퍼뜨리며 반대 여론에 불을 지폈다. 그 덕분일까? 반대 세력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찬성 측을 조금씩 누르기 시작했다.
상황이 유리하게 바뀌는 것을 본 에드먼드는 웃음을 지었다.
‘이건우. 네가 가진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하지. 하지만 그걸 사용하는 건 무조건 내가 만든 판 위에서만 가능할 거다.’
“대통령이 이건우를 위해 에너지법을 바꾼다고 했지요? 후보님은 적당히 여론이 무르익으면 입법 청문회를 열어주시고, 이건우를 관계자로 불러주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알아서 물어뜯을 겁니다.”
그는 이 전략이 훌륭하게 먹히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
캐리온이 말했다.
[미국에서 여론의 흐름이 심상치 않습니다. 제가 개입할까요?]
로날드 클린턴이 공장을 유치하겠다고 하고, 나의 핵융합 발전 사업을 국책사업으로 지정하겠다는 선언이 나간 이후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공장이 세워지는 지역이야 좋겠지만, 그게 아닌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맞닿은 이들의 반대는 거셌다.
이익을 받는 사람은 일반 국민이라서 이해관계가 분산되는 반면, 이익집단의 손해는 강하게 결집된다.
그렇기 때문에 찬성여론에 비해 반대여론이 거센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그리고 거기에 정치까지 개입되면 그 정도가 심해지고."
단순히 이익집단들만 반대 시위를 한다면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골수 베일리 지지자들과 에드먼드의 사주를 받은 언론들까지 가세해 나를 까내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대로 내버려 두실 건가요?]
"그건 또 아니지."
반대 속에서 일을 강행하는 건 나로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일단 미국에서의 협상은 차후 타국과 협상하는 데 이정표가 된다. 여기서 내가 숙이고 들어갈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계속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나를 길들이려는 에드먼드의 속셈이 너무 명확하게 보였다. 나는 그 뻔히 보이는 수법에 순순히 당해줄 만큼 쉬운 놈이 아니거든.
그러던 와중 마침내 입법 청문회가 열렸다.
분명 이번 청문회에서도 베일리와 에드먼드의 입김이 잔뜩 들어간 놈들이 나를 물어뜯으려고 달려들 것이다.
향후 대선과 산업의 주도권이 달린 만큼 놈들도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오겠지.
하지만, 그런 판을 뒤집어 버리는 게 또 내 특기거든.
"이참에 한번 확실하게 보여줘야지."
누가 갑인지 말이다.
*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야당 인사들이 모였다. 그들은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에드먼드가 지원해준 덕분에 어찌어찌 반대 여론을 일으키긴 했지만, 애리조나주와 미시간주, 그리고 네바다주가 확실하게 클린턴 편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러스트벨트와 선벨트에 속한 지역들은 추가로 떨어질 콩고물이 없을까 하고 기웃대는 상황이다.
그러니 그들은 보여줘야 했다. 야당 또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뭔가 하고 있다는 모습을.
"일단 미국의 이익이 아니라 외국인의 배를 불려주는 기업 친화적인 행동이라고 몰아가기는 했습니다만···. 이건우가 가만히 있을까요?"
지금까지 이건우의 행보를 생각하며 골치가 아파왔다.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벌인 일을 고려했을 때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야당에서 이건우를 몰아붙인 이상, 이건우가 호의적이지 않게 나올 거라는 건 뻔했다.
"하지만 그건 미국에 통하지 않을 겁니다."
마침 이번 청문회의 관련 부처인 에너지 쪽 상임위는 야당에서 꽉 잡고 있었다.
이건우 혼자서 그 공세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이번 청문회를 위해서 그들은 이건우에 대해서 샅샅이 조사했다. 그 뒤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정보력이 한몫했다.
"그 대단한 기업인을 길들여 국가에 더 큰 이익을 안겨둘 수 있다면 저희 당의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을까요?"
그들이 압박한다면 이건우도 어쩔 수 없이 숙이고 들어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숙이고 들어온 이건우를 휘두르며 야당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
그 계획이 성공할 거라 생각하며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청문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건우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몰랐다.
*
핵융합 발전 시설 건립을 비롯한 에너지법 개정에 관한 청문회가 열렸다.
이를 위해 관련 전문가들을 불러 의견을 들어보고자 하는 취지였지만···.
"의견을 들어보기는 개뿔, 그냥 날 물어뜯겠다는 거지."
[앞에서도 열심히 털리고 있네요.]
나는 캐리온과 투덜거리면서 시간을 때웠다. 캐리온의 말대로 청문회에서 많은 사람이 나와서 털리고 있었다.
"왜 파워온을 KW에서만 계약했습니까?"
"아니, 그럼 파워온을 KW 말고 어디에서 들여옵니까?"
더군다나 공격당하는 쪽은 대부분 로날드 쪽 관계자였다. 야당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내려고 하고 있었다.
"KW에 뭐 받아먹은 거 아니에요? 비리 저지른 거 아니야?"
"··· 아니 무슨 비리입니까. 내가 파워온 받아오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요."
"아 됐고, 핵융합 발전소 지으면 또 KW에 받아먹는 거 아닙니까?"
"······."
핵융합 발전을 핑계로 상대방의 약점을 파헤치고 들어갔다. 그래서 상대방이 '안건과 관계없는 이야기입니다!'라고 하면, 그제야 위원장이 마지못해 그만두라고 진행을 했다. 위원장도 야당 쪽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나와 캐리온은 동시에 말했다.
"개판이다"
[재미있네요]
내가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니. 한숨이 다 나왔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나에게는 캐리온이 있다는 거였다.
캐리온은 이번 현안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조사를 담당했고, 지금 내 손에는 의원들의 약점이 한가득 쥐어져 있다.
오전 11시에 시작된 청문회는 오후 4시쯤 되어야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선서한 다음 착석했다.
긴장감이 흘렀다.
나는 착석한 의원들을 쭉 훑어보았다. 내가 마지막 순서라 이제쯤 열기가 식고 다들 지칠 때쯤이 되었는데, 오히려 마지막 불꽃을 태울 것처럼 다들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KW를 우리 손에 놓고 한번 흔들어봅시다."
야당 의원들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듣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글쎄, 그게 마음대로 될까?
어쨌든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질의자는 야당 하원의 원내대표를 맡은 엘라 맥코넬이었다. 처음부터 거물 의원이 등장하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배터리와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기 위한 지원책만 수십 가지입니다. 거기에 더해 핵융합 발전 시설을 짓기 위해서 관련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지요. 한 기업에 주는 특혜로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로날드가 나를 빵빵하게 지원해주기는 했다. 그런데 말이지.
"제가 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네?"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맥코넬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돈 많습니다. 굳이 지원해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지원책이 없다면 제가 굳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죠. 아시다시피 미국 말고도 원하는 나라는 많거든요."
사방에서 '건방진!'이란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공장 안 받아갈거야?
맥코넬은 입꼬리를 부들부들 떨었지만 그래도 애써 미소를 만들어내고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지원에 관한 부분은 다시 검토해보도록 하지요. 하지만 발전소에 관한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산업을 외국인에게 맡긴다니요!"
"특히 발전부문은 독과점이 되기 쉬운 산업입니다. 미국 국민의 생활과 산업에 직결된 영역을 다른 나라에 맡길 수는 없지요."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님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럼 제가 미국에 귀화하면 지원책은 물론이고 핵융합 발전소를 지을 수 있는 건가요?"
내 말에 맥코넬이 반색했다. 그녀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면서 다른 의원들도 눈빛을 빛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 수많은 첨단 기술을 보유한 사람이다.
나 하나 때문에 다른 대통령들이 차민태에게 설설 긴다. 이번에 KW에 외교관이 몰려든 것도 내 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인재를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야당 입장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요인이었다.
"귀화하실 건가요?"
"그냥 해본 소리입니다."
"······."
내 농담에 맥코넬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마 슬슬 폭발하겠구만. 나는 여유있게 멕코넬을 바라보았다.
나를 길들이기 위한 청문회는, 야당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