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집 (1)
위안부.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우리의 아픈 역사이다.
현재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는 12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 960억 엔을 기부하기로 하면서 후원단체를 알아보았는데, 그중 ‘희망의 집’이 가장 활성화된 곳임을 알아냈다.
희망의 집은 여성인권운동가로 유명한 김정숙 의원이 설립한 곳으로, 위안부 할머니들 보호하고 이들을 보살펴주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곳이기에 나는 여기에 기부하려고 했다.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희망의 집 후원금 사용내역에 특이점을 발견했습니다.]
[위안부 생존자에 대한 학대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지정 후원금을 기탁서 없이 시설 증축에 사용했습니다.]
[부지를 고가에 매입하고 헐값에 매각하여 차익을 본 정황을 발견했습니다.]
[이외에 비리를 12건을 더 적발했습니다. 자료를 정리해서 보내드립니다.]
“······.”
뭔 놈의 비리가 이렇게 많아?
이 정도면 희망의 집이 아니라 절망의 집 아니냐?
캐리온이 보내준 자료를 확인해본 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후원의 밤 행사 명목으로 3000만 원을 썼다고 해놓고 실제 지출은 500만 원인 것으로 확인되어 이중장부를 쓰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으며, 희망의 집 후원 계좌가 아니라 개인의 계좌로 후원금을 받아 이를 마음대로 유용한 흔적도 나왔다. 심지어 이를 보다 못해 직원이 내부고발하려고 하자 강제로 입을 막은 정황도 드러났다.
대한민국에서 저지를 수 있는 비리라는 비리는 여기서 다 저지르는 것 같구만.
캐리온이 추가 조사에 들어갔으니, 더 파보면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리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자마자 캐리온이 말했다.
[추가 조사 결과, 후원금 유용 및 탈세과 회계금 공시 오류 등 50건이 넘는 비리를 적발했습니다.]
“허”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장사할 게 없어서 위안부 생존자를 팔아먹어?
젊어서 위안부로 끌려가신 피해자분들이, 노후에 쉬지도 못하고 놈들에게 시달리셨을 걸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다시 참교육할 시간이다.
*
깨끗하게 잘 운영되는 곳도 있겠지만, 비영리단체에서 종종 비리 문제가 터져 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운영 기금이 자신의 돈이 아신 ‘남의 돈’이다 보니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기 쉬운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희망의 집은 정도가 심했다. 아예 설립 목적이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게 아니라 그들을 가지고 돈벌이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이 들 정도로 개판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심지어 놈들이 이용하는 대상이 위안부 피해자들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좋아. 그럼 희망의 집을 박살 내는 건 기정사실이고, 어떻게 박살 내는지에 대해서 좀 고민을 해봐야겠다.
이왕 엎을 거 본보기로 확실하게 조져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똑같은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참에 다른 쓸데없는 비영리 단체들도 한꺼번에 조져버려야지.
나는 캐리온에게 다른 단체에도 비리가 없는지 조사해보라고 한 후,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스리늄 개발과 파워온의 수출 이후 KW 코퍼레이션은 대기업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 미디어를 제외하고는 상장된 주식이 없지만, 에너지와 자원개발, 제약 등을 모두 합하면 그 가치가 수백 조는 가뿐하게 넘을 것이라는 게 세간의 평이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 기자회견을 했다 치면 언제나 훌륭한 떡밥을 던져주는 화제의 인물이다. 기자들은 이번에도 특종을 얻어갈 생각에 우르르 몰려왔다.
역시나, 나는 이번에도 기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위안부 생존자를 위해 희망의 집에 1조 원을 기부하겠습니다.”
일본에게서 받은 돈은 960억엔, 한화로 9500억 원 정도 됐지만 내 사비를 털어서 1조를 만들었다.
그 천문학적인 금액에 기자회견장에 잠깐 침묵이 돌았다.
‘1조?’
‘방금 1조라고 했나?’
우리나라에 1조를 기부한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명뿐이었다. 내 증조할아버지 되시는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질병 치료를 위해 재단을 설립해서 1조를 기부한 것이다.
물론 그 재단이 제일 그룹 것이니 기부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감이 있지만, 일단 단일 액수로는 1조 원이 국내 최고였다.
하지만 1조를 자기 재단도 아닌 곳에 쾌척한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1조 원의 의미를 깨달은 기자들은 앞다투어 소리치기 시작했다.
“다른 곳도 아닌 ‘희망의 집’을 고른 이유가 있습니까?’
“1조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 1조 원은 어디서 나온 금액인가요?”
역시. 이번에도 기자들이 확실히 떡밥을 문 게 느껴졌다. 의도대로 일이 술술 풀려가자 나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이번에 일본에서 미스리늄 광산 채굴을 막은 것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배상금 960억 엔을 지급했습니다. 일본에서 받아낸 배상금이니만큼, 조금 더 의미 있는 곳에 쓰였으면 해서 기부를 결정했습니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500억 원을 출원하여 총 1조를 위안부 생존자를 위해 기부하려고 합니다.”
돈이 일본에게서 나왔으니, 일본에게 피해를 본 사람에게 돌아가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내가 생각해도 완벽한 논리였다.
그 사과 안 하기로 유명한 일본에서 1조 원이라는 돈을 주면서 사과했다는 걸 들은 기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고, 나는 최대한 자세하고 상세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본과 조용히 처리하기를 원하는 모양인데. 뭐, 어쩌겠어. 내가 그러기 싫다는데!
*
내 기자회견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신문, 뉴튜브, 뉴스 할 것 없이 모든 곳에서 ‘일본에게서 뜯어낸 돈으로 위안부 생존자에게 기부한다!’라는 내용을 기사로 갈겨댔다.
반응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 일본이 아직 사과는 안 했지만, 1조는 인정해준다.
-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배상금 받은 게 거의 처음 아닌가? 이건우 대단하네
- 와···. 그럼 인당 800억 가까이 돌아가는 거네.
- 앞으로는 무조건 KW 응원합니다
- 정부가 못한 걸 기업이 하네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부분 시원한 사이다를 원샷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야마모토 주한대사가 와서 난리를 쳤지만 나는 간단하게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래서, 미스리늄 안 받아갈 겁니까?”
“······.”
미스리늄이 진짜 치트키라니까.
그리고 뭐, 문서로 작성한 것도 아니잖아? 주한 대사라는 사람이 이렇게 순진하다니.
일본과는 다르게, 1조를 받게 된 당사자인 희망의 집은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김정숙 의원을 포함한 희망의 집 운영자들이 모였다. 그들의 얼굴에는 흥분한 기색이 잔뜩 어려있었다.
“이건우 사장이 배포가 큽니다. 어떻게 1조를 통으로 기부할 생각을 하다니.”
“그러게 말입니다. 세상에, 저희가 그렇게 큰돈을 만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를 돕다 보니 이런 좋은 날이 오는군요.”
횡재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무려 1조다. 거기에서 몇억씩 빼서 써도 절대 티가 나지 않는다.
아니, 몇억 정도만 할머니들한테 쓰고 나머지는 모조리 자신들의 주머니에 집어넣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희망의 집 소장이 말했다.
“그런데 이건우 사장님이 기부하기 전에 재무상태를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김정숙 의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큰돈을 기부하는 것이니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저희는 깨끗하게 운영하고 있으니 장부를 보내주세요.”
어차피 그들은 이중장부를 쓰고 있었다. 전문가를 고용해서 깔끔하게 처리하고 있으니, 장부를 들고 간다고 해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하지만 김정숙 의원은 단 한 번도 희망의 집이 개판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들킨 적이 없었다. 당연히 이번에도 별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그녀는 이번 일을 기회로 생각했다. 자신이 희망의 집을 얼마나 잘 운영하고 있는지를 전국적으로 홍보할 기회.
“소장님께서는 최대한 빠르게 기자를 불러서 저희 측 입장을 밝혀주세요.”
“알겠습니다. 의원님”
그날 저녁, 희망의 집 소장이 입장문을 발표했다.
“저희 희망의 집은 위안부 할머니들께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자 하는 취지로 오랜 시간 동안 봉사를 해왔습니다. 또한 올바른 역사관을 재정립하고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 많은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이건우 사장님의 뜻깊은 후원으로 우리의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또한 위안부 할머니께 큰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물고기가 미끼를 확 물어버린 순간이었다.
*
내가 희망의 집에 기부한다는 소식은 9시 뉴스를 탔다. 화면에는 희망의 집 원장이 나와서 내 기부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아직 저렇게 좋아하기는 일렀는데. 그렇죠?”
옆에 있던 한서진이 자료를 건네줬다. 내가 요청한 이중장부와 통장 사본이었다. 항상 생글생글 웃던 모습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은 보기 드물게 굳어 있었다.
“고마워요.”
“별거 아니었어요.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CCTV와 도청장치도 설치하고 왔어요.”
캐리온이 집중적으로 희망의 집을 감시하면서 특이점이 있으면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엄청난 특이점이 기록되었다.
[어제저녁, 희망의 집에서 특이점이 발견되었습니다.]
[희망의 집 소장이 위안부 할머니에게 막말을 하는 영상입니다.]
나는 영상을 확인했다.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장에게 삿대질했다.
“이 나쁜 놈들! 느그들 또 돈을 빼돌리려고 그라제.”
당황한 소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기자가 없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소장은 안심한 얼굴이 되었다.
“어후 씨, 깜짝이야. 할머니는 또 여기 왜 있어요. 우리가 할머니를 얼마나 챙겨주는데. 우리 아니었으면 밖에 나가서 콱 뒈져버릴 노인네가 은혜도 모르고.”
“이 천벌 받을 놈들이! 이번에도 또 돈을 빼돌리면 다 폭로할 테니까 알아서 해라.”
폭로한다는 말에 소장의 얼굴이 무섭게 변했다.
“이 미친 노인네가 확!”
그는 손을 들어 할머니를 칠 듯이 위협했고, 깜짝 놀란 할머니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지라 작은 위협에도 그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쿠 이놈이 사람 죽이네.”
할머니가 바닥에 넘어졌는데도 소장이라는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짜증이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오씨, 이걸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야, 너희 들어와!”
소장이 밖에 있는 직원을 불렀다.
“너희 여기 들어오지 못하게 안 막고 뭐 했어? 기자들이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잖아.”
“죄송합니다.”
“당장 끌고 나가서 밖에 못 나가게 막아. 안 그래도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데 부정 탈라.”
직원이 쓰러진 할머니를 억지로 일으켜 데리고 나가는 것으로 영상은 끝났다.
그리고 영상을 확인한 나와 한서진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한서진이 중얼거렸다.
“가서 모가지를 분질러버릴까.”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그런데 일단 이것부터 터뜨리고 나서 죽이든지 살리든지 합시다.”
희망의 집. 너네는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