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맞자 (3)
마침내, 나는 주한 일본 대사관의 연락을 받았다.
- 반갑습니다. 이건우 사장님. 대사께서 뵙고자 하시는데 찾아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일정은 저희 쪽에서 맞춰드리겠습니다.
사실상 항복선언이었지만,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매몰차게 대꾸했다.
“내가 왜 대사관에 가야 합니까? 그쪽에서 여기로 찾아오십시오.”
“네?”
수화기 넘어 대사관 직원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가차 없이 끊어버렸다. 어딜 바쁜 사람을 두고 어디서 오라 가라야?
어차피 급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이다. 요즘 뉴스를 보니 일본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하다고 한다. 연락이 절대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예상대로 일본 측에서는 다시 연락을 취해왔다. 심지어 이번에는 주한 대사가 직접 전화를 해왔다. 그는 직원의 잘못을 사과하며 사옥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약속을 잡았다.
서초동에 있는 고급 오마카세였는데, 나는 이번에 일론 머스크가 보내준 세단을 타고 갔다.
원래도 기사가 운전하기는 했지만, 운전석에 앉아있으면서도 운전대를 잡지 않는 건 색다른 느낌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인공지능 하나 참 잘 만들었단 말이지.
일식집 안으로 들어가니 대사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대사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반갑습니다. 사장님. 전권대사를 맡은 야마모토 쇼타로라고 합니다. 뉴스로 보는 것보다 실물이 더 훤칠하시네요.”
“네.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예? 그, 그러시겠지요. 하하.”
야마모토는 주절주절 사담을 늘어놓으며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나는 이 사람과 별로 하고 싶은 말이 없다. 그래서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대사께서 왜 저를 보자고 하시는 겁니까?”
“다름이 아니라 본국과 사장님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오해요?”
“예. 저희가 사장님의 광산을 뺏으려고 했다는 터무니없는 소문 때문에 양국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본국에서는 이를 굉장히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외교관이라 그런지 혓바닥이 길다.
“아, 그게 터무니없는 소문이었군요. 저는 사실인 줄로 알고 있었는데.”
“하, 하하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저희는 양국의 우정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떤 일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우리 사이에 회복할 우정이라는 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기에 일단 들어는 봤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본에서 준비한 내용은 뭡니까?”
야마모토는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
“본국에서는 수출규제 때문에 이런 오해와 비극이 일어난 것으로 간주하여, 미스리늄을 전략물자로 규정한 것을 철회하기로 했습니다.”
“와···.”
나는 감탄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선심 쓰듯이 말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근데 내가 요구한 건 그게 아니었을 텐데. 미스리늄 규제를 풀어주는 건 당연한 거고, 분명 추가 요구사항이 있었을 텐데 말이야.
하여간 왜 세상에는 말귀를 못 알아 처먹는 놈들이 이렇게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천성이 친절한 나는 내 요구사항을 다시 한번 되짚어줬다.
“대사님. 제가 전에도 말했지만, 원하는 건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입니다. 하지만 대사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에는 사과도 배상도 없는 것 같군요.”
“에···. 그, 그러면 사장님이 원하시는 사과와 배상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러면 양쪽이 이견을 조율하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한 조건을 읊었다.
“먼저 일본이 사도 광산의 채굴을 막은 덕분에 지금 두 달이 넘도록 채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 저도 그 점은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제 사정에 공감하신다니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사도 광산의 하루 채굴량은 300톤입니다. 제가 계산해보니 정확하게 73일 동안 채굴을 못 했더군요. 그러니 일본 정부에서 73일 동안 채굴하지 못한 21,900톤의 미스리늄에 대한 금액을 배상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대략 960억엔 정도 됩니다.”
“···예?”
당황한 그에게 나는 쌈박하게 웃어주었다.
“내 돈 960억엔. 그러니까, 한국 돈으로는 1조 원이네요. 내놓으시죠.”
“자, 잠시만요. 갑자기 그렇게 큰돈은···.”
당황한 야마모토는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아직 제 말이 다 안 끝났습니다. 제가 알아보니 사도 광산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징용당한 역사가 있던 곳이더군요. 그런데 그들의 임금이 아직 미지급되었습니다.”
그도 사도 광산에 대해 조사를 했는지 이 부분을 알고 있었다.
“에, 그건 지급 시효가 만료되어 일본 국고로 환수되었습니다만.”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그걸 왜 자기네 국고로 환수를 하는 건데?
“어쨌든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았다니, 그때 광산에서 일하시던 분들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저도 마음이 아프지만 법리적으로 따지면···.”
“대사께서 아픔에 공감해주신다니 다행입니다. 제가 그래서 아주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당시 사도 광산에서 일하시던 분들의 후손들을 찾아서 그분들을 다시 한번 광부로 고용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번에 일당은 후하게 드릴 예정입니다. 지난번 일본에서 받지 못한 일당까지 계산해서 드릴 생각입니다."
"그러니 사도 광산에 고용된 광부의 월급을 일본 정부에서 지급해주기를 바랍니다. 제 조건은 이 두 가지입니다. 아, 물론 그 전에 진심 어린 사과가 선행된다는 점은 굳이 말씀 안 드려도 되겠지요.”
내 어마어마한 요구에 주한 대사는 잠시 멍해졌다. 한참을 멍청히 있던 그는 이내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이보십시오. 이건우 사장님! 지금 협상할 생각이 있는 겁니까?”
야마모토는 더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탁상을 쾅 치며 일어났다. 나도 피식 웃으며 마주 일어났다.
“협상이요? 제가 지금 협상 따위를 하러 온 거로 보이십니까?”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서 말했다.
“이건 통보입니다. 협상이 아니라. 그러니 수용할지 말지나 결정하세요.”
“이따위 조건을 받아들일 일은 없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미스리늄도, 파워온 배터리 공급도 없습니다. 일본의 문제는, 알아서 잘 해결하십시오.”
“저, 저!”
나는 일본어로 욕설을 내뱉는 그를 뒤로하고 일식집을 나왔다.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했네. 하지만 일본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나는 조만간이라고 본다. 일본이 저 꼿꼿한 모가지를 굽히게 될 날이.
*
야마모토 주한 대사는 이건우의 요구조건을 외무성에 전달했고, 이를 들은 총리와 외무성 대신은 길길이 날뛰었다.
“960억엔? 960억 엔을 배상하라고?”
“한국인 광부를 고용하는데 왜 일본에서 그들의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거요!”
물론 그들이 날뛴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녔다.
결과적으로 협상은 결렬되었고, 그들에게는 여전히 미스리늄 배터리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일본의 2분기 수출 성적이 나왔다.
결과는 뻔했다. 개판이었다.
토요타, 렉서스, 혼다, 닛산. 일본 자동차의 수출량이 지난 분기 대비 62%나 급감했다.
이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하이브리드차와 내연기관차에서도 그랬는데, 포드나 테슬라, 캐딜락, BMW에서 전기차를 내연기관차만큼 저렴하게 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들로서는 굳이 비싼 데다 파워온이 없어서 성능도 구린 일본 차를 살 이유가 없었다.
같은 이유로 전자제품 업체의 판매량 또한 비슷한 수치로 감소했다.
문제는 이런 전자업계뿐만 아니라 의류, 항공, 주류, 화장품 등 산업 전반적으로 수출액이 감소했다는 것에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포비드 때문에 수출이 자유롭지 않았던 것에 있었고, 두 번째로는 한국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례로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은 모바일 앱의 사용자가 반 토막이 났고, 일본으로 여행하러 오는 여행객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며, 일본 맥주의 수출액은 97%나 급감했다.
심지어 한국 관광객으로 먹고산다는 대마도나 몇몇 관광지들은 근래 들어 손님 자체를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거의 박살 나다시피 2분기 실적에 일본 내에서는 정부에 대해 반발 여론이 들끓었다.
<우리만 ‘파워온’이 없다···일본 차, 수요 회복 기약 없어 ‘한숨’>
<한국 내에서 불매 운동 번져, “일본 닛산 자동차, 한국에서 철수 검토”>
<한국콜마의 일본인 이사 3명 중도퇴임, 일본 불매 운동 대응인 듯>
<혼다, ‘1만 대 판매클럽’ 재진입 장담 못 해>
문제는 일본 업계가 지지부진한 틈을 타서 다른 경쟁자들이 치고 올라온다는 것이다.
<아우디 폭스바겐 판매 정상화 시동 걸어, 일본 차 하향세 노린다>
<일본 제품 전반적으로 하향세···반사이익은 누구 몫일까>
이미 격차는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한번 벌어진 격차는 쉽게 좁힐 수 없다. 일본은 세계적 트렌드에서 점점 멀어지는 중이었다.
야당은 이를 빌미로 신나게 현 정부를 물어뜯고 있었으며, 총리의 지지율은 날이 갈수록 바닥을 찍고 있었다.
- 정부는 뭐하냐! 빨리 파워온을 들여와라
- 정부가 우리 산업 다 망친다
- 회사들 다 망하고서 파워온 들여오면 뭐 어쩔건데?
- 멍청한 정부놈들 욕심부릴때부터 알아봤다 진짜.
사람들은 조만간 시위라도 벌일 기세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총리는 두손 두발을 다 들었다.
“당장 이건우에게 연락해서 조건을 다 수용해주겠다고 해!”
일본의 꼿꼿한 모가지가 숙여지는 순간이었다.
*
나는 사옥까지 직접 찾아온 야마모토 주한 대사를 맞이했다. 왜 왔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물어봤다.
“바쁘신 대사께서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십니까.”
“본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사장님의 조건을 다 들어드릴 테니 조용히 처리하기를 원하십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이기는 싫으니, 조용하게 둘만의 문제로 끝내자는 뜻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저야 조건만 들어주신다면, 조용히 처리하든 시끄럽게 처리하든 상관없습니다.”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야마모토 대사는 바로 본국에 내 의견을 전달했고, 일본 외무성에서 즉각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번의 미스리늄 수출규제는 본국과 관계없이 경제산업성 대신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 결과이며, 이로 인해 일본과 한국 간의 신뢰 관계가 훼손된 것에 심히 통감하고 있습니다. 경제산업성 대신이 불행한 일로 사망했으므로, 제가 대신 이번 일로 피해를 본 KW 코퍼레이션에 사과를 표합니다. 양국의 관계에 조속한 회복을 기원하는 바입니다.”
“······.”
사과문을 듣던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건 무슨 유체이탈 화법도 아니고.
저 사과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산업성이 독단적으로 한 일이기는 하지만, 너희가 화를 내니까 내가 대신 사과해줄게. 이 정도면 됐지?’
배상금이나 사도 광산 인부에 관한 내용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조용히 처리하자는 게 이런 의미였나? 하긴, 워낙 과거에 잘못한 일이 많은 일본인지라 배상금이라는 단어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일단 내가 내건 배상액인 1조 원은 확실히 들어왔다.
나는 이 돈을 어떻게 하면 의미깊게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위안부 후원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1조 원이 큰돈이긴 하지만, 일본에서 받아낸 배상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전부 홀랑 먹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좋은 일을 하는데, 조용하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나는 성대하게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뜻깊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준 일본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일본 정부에서 배상액으로 전해준 960억 엔을 위안부 전문 비영리단체인 ‘희망의 집’에 전액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양국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진정한 화해와 우정의 손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물론 당사자인 일본은 내 감사 인사에 뒷골을 잡고 말았다.
조용히 처리하자고? 응 절대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