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잽과 어퍼컷 (5)
시작은 전자영부터였다. 전자영은 뉴튜브를 켜고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쉬림프입니다!”
- 쉬하!
- 내가 오늘만을 기다렸지
- 헐 방제 뭐야? 이건우랑 알바트리온?
ㄴ 오늘 커뮤니티 공지에 떴었는데···.
- 이건우 받고 알바트리온 갑니다
- ㅓㅜㅑ장난 아니네
방송 제목은 <이건우의 혐의 파헤치기 / 알바트리온 주가조작>. 자극적인 거 + 자극적인 거의 조합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자 전자영은 웃으며 말했다.
“요즘 또 이건우 씨가 화제잖아. 그래서 내가 자료를 입수해서 분석해봤어.”
전자영은 서류박스를 책상 위에 쾅 올려놓으며 우는소리를 했다.
“이거 내가 다 분석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 서류가 한 박스로 나오네ㄷㄷㄷ 얼마나 해먹은 거야
- 오늘 여기서 이건우 확인사살ㄱㄱ
- 이걸 보는 우리가 승자.
- [rbfl38님이 후원금 10,000원을 보냈습니다] 빨리해
어그로는 확실했다. 요즘 핫한 이건우를 끌어들였고, 그의 비리를 파헤칠 것처럼 자극적으로 몰아붙였다.
전자영은 쭉쭉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며 미소지었다. 다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라고 아우성이었다.
“준비 단단히 해.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으니까.”
다시 한번 터져 오르는 채팅창과 후원금을 보며 전자영은 신이 났다.
‘이거 하길 잘 했는데?’
윤단아의 부탁으로 시작한 방송인데, 어찌된 게 평소 그녀가 하던 콘텐츠보다 훨씬 더 호응이 좋았다.
입소문을 듣고 왔는지 시작한 지 5분도 안 됐는데 사람들이 2만 명이나 모여들었다. 오랜만에 대박의 향기가 느껴졌다.
‘이거, 내가 단아한테 술 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전자영은 기분 좋게 방송을 시작했다.
*
나는 스튜디오 한쪽에서 전자영이 스트리밍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예전에 윤단아가 제주도 사태에 대비하라는 말을 할 때는 같이 있었지만, 오늘은 빠져있는 게 나았다.
그때와는 달리 내 이미지는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재벌 3세 망나니에 더해 적폐 중의 적폐 프레임이 씐 내가 방송에 나가기라도 한다면?
아마 채팅창은 폭발해버리고 방송 진행도 제대로 되지 않을 터였다.
다행히 내가 없어도 전자영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쏙쏙 골라서 해주고 있었다.
준비 시간이 짧았는데도, 경제부문 탑 뉴튜버답게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었다.
각종 어려운 용어들을 알아듣기 쉽게 풀어나가고 있는 것은 덤이다.
그렇게 전자영이 내 자산증식 과정을 밝힐 때마다 반응이 엄청나게 터져나왔다.
- 헐···. 시바코인에 300억을 투자했다고?
- 테슬라가 결제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대ㄷㄷㄷ
- 수익률 미쳤다. MC 소프트에도 투자했었네.
- 시바 코인이랑 MC 소프트로 1조 가까이 벌었음.
전자영은 자산증식 과정에 대한 오해를 깔끔하게 해명했고, 그다음에 경영 승계과정으로 넘어갔다.
솔직히 이건 말할 것도 없었다. 지분 40%를 대략 8000억 원이나 주고 제값에 받아왔으니까.
당시에는 조금 서운했지만, 할아버지가 제값을 모두 주고 파신 게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 나는 가족이니까 뒷거래 있을 줄 알았는데.
- 이만호 회장님 얄짤 없으시네. 손자한테 10원 하나 빠트리지 않고 다 받고.
- 이 정도면 킹정이지
- 내가 봐도 문제 될 건 없는데 기자들은 왜 이렇게 난리야?
모든 오해는 풀렸다. 무려 전자영이 1시간 동안 자료를 들어가며 열변을 토한 덕분이었다.
나는 고맙다는 표시로 고개를 살짝 숙였고, 전자영이 말을 이었다.
“이건우 씨 세금 낸 거 실화야? 이 돈으로 건물 하나 올릴 수 있겠어.”
전자영은 내가 낸 세금 명세서를 공개했다.
명세서에 적혀있는 숫자는 무려 열두 자리. 웬만한 중견 기업도 벌기 어려운 금액을 몇 달 동안 세금으로 내버린 사람이 나다.
- 건물이 아니라 아파트 단지도 만들듯
- 이 돈으로 청년 주택 만들어주라
- 이 정도면 상 줘야 하는 거 아님? 왜 잡아간다고 ㅈㄹ이지?
나는 마지막 말에 동의했다.
나처럼 깨끗하게 세금을 잘 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이건 국세청에서 모범납세자로 표창을 받아야 한다고.
이제 오해는 모두 풀렸다. 시청자들은 더이상 나를 비판하지 않았다. 오히려 채팅창에서는 나를 한껏 띄워주고 있었다.
그룹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한 사업가이자 모범납세자.
누가 봐도 번듯한 청년이었다.
드디어 나는 채팅창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사실 사람들의 비판을 듣는 게 쉽지는 않았다. 나를 비방하는 기사들과 그 아래 달리는 수만 개의 댓글.
나에게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뭐 세계 최고의 재벌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공격이 들어올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해보니 기분이 무척 불쾌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준 놈들을 가만히 둬서는 안 되지. 이제 슬슬 놈들의 눈에서도 피눈물이 흐를 때가 되었다.
내 맘을 아는지 전자영도 빙긋 웃었다.
“그런데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이건우 씨가 아니야.”
- 아 맞다. 알바트리온
- 나도 알바트리온에 투자했는데. 이번에 백신 개발 한다잖아
- 근데 주가조작 실화임? 그럼 다 좆되는 거 아니야?
- 나 지금 어플 켰다ㄷㄷㄷ 바로 매도해야지
비슷한 내용의 말들이 많았다. 다들 경제에 관심이 있는 만큼 주가가 오르는 알바트리온에 투자한 모양이다.
그런데 어쩌나. 그 주식 이제부터 땅바닥에 처박힐 예정인데.
하지만 천성이 상냥하고 너그러운 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내가 주식 7000억 원어치를 쏟아내기 전에 팔아치울 기회를.
물론 나야 손해를 조금 보겠지만, 그래도 개미들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야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개미들에게는 손실이 크게 다가오는 법.
그리고 나는 이미 하락에 1000억가량 배팅하고 풋옵션을 사들였기 때문에, 주가가 내려가면서 보는 손실을 충분히 헤징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알바트리온 내부에서 백신 테스크포스를 만들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아직 공고도 내지 않았더라고.”
“그리고 웃긴 게 뭔지 알아? 원하오 제약이랑 알바트리온 제약이랑 둘 다 백신은 전혀 만들어본 적이 없는 회사란 말이야. 그리고 MOU도 맺지 않고 그냥 말만 흘러나왔을 뿐이야.”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건.”
쉼 없이 말하던 전자영이 말을 멈췄다. 그리고 녹음 파일을 틀었다.
- 진짜로 백신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그냥 대충 만드는 '척'만 하고 떨어지는 떡고물만 먹으면 됩니다. 하하하.
성윤식을 비롯한 3인방이 만나는 밀실은 보안이 철저해서 도청할 수가 없었지만, 원하오 제약과 성윤식, 그리고 알바트리온 사장이 만난 레스토랑은 캐리온의 눈길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그것이 레스토랑 전체를 빌려서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막았다 하더라도 말이다.
“익명의 제보자가 이 파일을 보냈어. 물론 위조 검사까지 마친 파일이야. 진짜라고 보면 돼.”
녹음 파일이 공개되자 채팅창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 ㅅㅂ미친 거 아니야?
- 당장 매도하러 갑니다. 그래도 용돈 벌이는 했네
- 이거 시세 조종행위 아님?
- 역시 짱깨 놈들은 믿는게 아니였어
전자영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고, 나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채팅창에서 더이상 나의 이름은 볼 수 없었다. 나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조만간 인터넷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겠지.
이것으로 물타기는 성공이다.
*
전자영의 라이브 영상은 캐리온이 빠르게 편집했다. 한 시간도 안 돼서 ‘이건우의 실체를 파헤쳐드립니다’ ‘알바트리온 주가조작?!’이라는 이름의 두 개의 동영상을 받은 전자영은 입을 떡 벌렸다.
“편집자가 누구길래 이렇게 빨리 편집을 하는 거예요?”
“영업 비밀입니다.”
편집 실력도 좋았다. 캐리온이 전자영의 영상을 미리 확인해놓고 그녀의 스타일에 맞추어 센스있게 편집을 한 것. 심지어 그녀가 이전에 올리던 영상들보다 더욱 괜찮은 영상이 탄생했다.
“흐응. 이러면 저도 KW 미디어에 들어가 보고 싶어지는데요. 단아 그 애가 일하기 편하다고 하는 이유가 있었다니까.”
200만 뉴튜버가 우리 회사에 관심을 보이는 건 좋은 일이다. 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영업했다.
“저희 소속사로 오시면 최고의 대우를 해드리겠습니다. 일단 저희는 크리에이터의 활동에 간섭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산 비율도 다른 회사보다 훨씬 좋은 조건입니다.”
“고려해볼게요. 마침 소속사와 계약 기간이 끝나가거든요.”
“기대하겠습니다.”
나이스!
이 정도면 꽤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아마 캐리온이 만들어 준 영상의 조회수를 보고 나면 다른 소속사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캐리온에게 전자영의 계약 종료 시점을 유심히 지켜보라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전자영의 동영상이 올라가고 하루가 지났다. 동영상의 여파는 엄청났다.
수많은 뉴튜버, 스트리머, 기자들이 전자영이 올린 영상에 나온 자료들을 분석하였으며, 그것이 전부 사실이라는 게 드러나고 있었다.
주가는 흔들거리고 있었으며, 나는 당장 칠천억을 팔아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개미들이 발을 빼도록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전자영이 알린 알바트리온 주가조작 소식을 알린 건 아니었다.
한양일보는 보란 듯이 알바트리온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다.
<뉴튜버 쉬림프월드, 음성 파일을 조작해?>
「경제부문 1위 뉴튜버인 달리는 쉬림프월드가 음성 파일을 조작하여 고의로 알바트리온 주가에 불확실성을 주고 있다. 이는 증권거래법상 시세 조종행위에 해당할 수도 있으며,···.」
최선을 다해 알바트리온을 변호해 주는 모습이 짠하기만 했다.
이 웃기지도 않은 소설을 쓰느라 기자들이 얼마나 머리를 싸맸을지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한양일보가 이러고 있을 정신이 없을 텐데. 그렇죠?”
내 맞은편에 앉아있던 윤단아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호로록 마시고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곧 있으면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소식이 터질 테니까요.”
한양일보는 한양 출판인쇄 등 계열 인쇄 회사에 대해 인쇄비를 과다지급하거나, 자매지 등을 인쇄해주고 인쇄비를 받지 않거나 늦게 받는 특혜를 줬다.
또한 한양여행사 등 계열 6개사에 대해 광고를 무료 게재해주는 수법도 썼다.
그리고 시가가 형성되지 않은 제도상의 허점을 이용해 비상장주식을 친족 등 특수관계인에게 저가 매각하거나 고가매입하는 방법으로 지원했다. 또 비계열사 주식의 신주인수권을 고가매입하는 수법도 사용했다.
윤단아는 방금 이 내용을 뉴튜브에 올렸으며, 나는 관련 기사를 뿌렸다.
이제 나에 대한 오해도 벗었고 반격도 날렸으니, 이제 실질적인 카운터만 넣으면 되는 건가?
칠천억 매도.
그 폭탄이 내 손에 쥐어져 있다.
예전에 어떤 슈퍼개미가 3000억을 매도하면서 MC 소프트의 주가를 혼자서 17%를 내린 기록이 있다. 그때 당시, MC 소프트 시총이 10조가량 됐었다.
지금 알바트리온의 시총은 그 두 배인 22조.
그리고 나는 알바트리온 주식을 대략 6800억을 들고 있다. 원래 4000억 원어치를 샀는데, 주가가 오르면서 그만큼 늘었다.
사람들이 빨리 손절하는 중이라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 타이밍에 내가 벌어들인 수익 6800억을 모두 털어버린다면 주가가 얼마나 떨어질까?
그리고 성윤식과 그 일당들은 얼마나 손해를 볼까?
나는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영감 얼굴이 분노로 벌게지는 걸 보지 못한다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
다음날. 성윤식을 비롯한 3인방이 밀실에 있는데 보좌관이 문을 쾅 열고 들어왔다.
“의원님! 알바트리온에 큰일이 났습니다!”
늘 침착하던 보좌관이 이렇게 다급해 보이자 성윤식은 불길함을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알바트리온 주가 조작 사실이 터져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는 보좌관을 다그쳤다.
“알바트리온에 또 무슨 일이 터진거야?”
“누군가가 알바트리온에 7000억원 가량 매도 주문을 넣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주가가 미친듯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성윤식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럼 내 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