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26화 (26/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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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뒤는 없다

오수미는 안절부절못하며 거실을 서성거렸다. 이건우가 떠난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정혁은 서재에서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건우가 설마 다 말해버린 건 아니겠지?’

지은 죄가 있었던 오수미는 정성스럽게 과일을 깎아 서재 문을 두드렸다.

“여보. 저녁 아직 안 먹었다면서요. 과일이라도 좀···.”

문을 연 오수미는 잔뜩 흐트러진 채 술을 마시고 있는 이정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여, 여보. 무슨 일 있어요?”

“지훈이 지금 어디에 있어?”

“지훈이는 내일 출국하잖아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온다고 하던데···.”

심상치 않은 눈빛에 오수미는 말끝을 흐렸다.

“내일 비행기 티켓 취소해. 그리고 지훈이한테는 지금 당장 집에 들어오라고 하고.”

“···여보?”

이정혁은 핏발이 선 눈으로 소리쳤다.

“지금 당장!”

오수미는 도망치듯 서재를 빠져나왔다. 가슴이 불안함으로 뛰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불현듯 갑자기 집에 찾아온 이건우가 생각났다. 이 모든 파란이 이건우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

이지훈이 미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그때부터였다. 모든 일이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클럽에서 신나게 보내고 있는데 핸드폰에서 불이라도 난 것처럼 진동이 느껴졌다.

확인해보니 잠깐 못 본 사이 단톡이 수십 개가 넘게 쌓여 있었다.

유학을 같이 하고있는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으로, 모두 마약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마약에 대해 알면서도 쉬쉬하는 사람들이다.

- 야 이거 봐봐

- https://newtu.be/fJf4z6GvKII

- 우리 얘기 아니냐?

이미 본 사람도 있는지 다들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 ㅅㅂ딜러 새끼가 입 턴 거 같은데.

- 윤단아? 이거는 또 뭐 하는 년이야?

카톡을 읽던 이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윤단아?’

윤단아라면 예전에 양소희-이건우 스캔들에서 이건우의 누명을 벗겨주는데 일조한 뉴튜버였다.

그리고 자신이 쫓겨나듯 유학을 가게 된 원인을 제공한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고.

그런 여자의 이름이 단톡방에 거론되자 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단톡방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웬만한 사고를 치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친구들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자 뉴튜브 영상이 나왔다. 썸네일을 보고 그는 가슴이 철렁 떨어지는 걸 느꼈다.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모자이크하고 음성 변조를 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데클란?’

미국에서 마약을 공급해주던 딜러였다. 재미교포라서 말도 잘 통하고 싹싹하기에 그들과 친하게 지내던 이 중 하나였다.

그놈이 왜 여기서 나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제야 영상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클럽에서 마약 파티하는 재벌 3세. 공급책이 폭로하다!>

홀린 듯이 영상을 클릭한 이지훈은 할 말을 잊었다.

‘이걸 어떻게 알았지?’

어떤 경로로 마약을 입수했고, 마약을 한 사람이 누구며, 그들 간의 관계가 어떻고···.

내부자가 아니면 모를 정보가 가득했다.

게다가 사진까지 있었다. 누가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마약을 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다행히 실명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얼굴도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었지만, 이대로라면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영상의 끝에 윤단아가 2부에 모든 걸 밝히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댓글 창은 난리가 났다.

재벌과 먀약. 각각이 자극적인 키워드인데 합쳐지니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었다.

- 헐···. 이거 폭로해도 됨?

- 누나 괜찮아요?

- 내일 죽었다고 기사 나와도 놀랍지 않을 듯.

- 베테랑 보면서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학예회 수준이었네.

- 그래서 2부는 언제 나와요?

“이 미친년이···.”

잠깐 영상을 확인한 사이에도 조회수가 만 단위로 올라간다.

더군다나 지난번 사건 이후 윤단아의 인지도가 어마어마해졌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 뜨거웠다.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이미 실검은 ‘윤단아’ ‘마약’ ‘재벌 3세’ 같은 키워드로 뒤덮였고, 연관기사가 수도 없이 생산되고 있었다.

이지훈은 위기감을 느꼈다.

사회적인 문란을 일으켜서 미국으로 쫓겨나듯 유학을 간 게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마약 사건으로 또 구설에 오르면?

할아버지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시겠지.

아마 제일 그룹에서 자신의 자리는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아무리 아버지라도 막아 주실 수 없다.

“뭐라도 해야 해···”

다행히 시간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조회수를 빨려고 그런지 모르겠지만 윤단아가 당장 모든 사실을 공개한 것은 아니다.

그 전에 윤단아를 막는다면 그에게도 회생의 여지가 있다.

이지훈은 단톡방에 들어갔다. 마침 단톡방에서도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이지훈이 재빠르게 자판을 눌렀다.

‘다들 윤단아 동영상 봤지? 다음 동영상이 올라오면 우리 다 좆될거같은데?’

- 나 이번에도 사고 치면 회사에서 쫓겨난다고 했는데

- 심지어 나는 지금 집유 기간이라고

- 근데 타이밍 존나 수상하지 않냐? 하필 우리가 다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 터뜨렸어.

단톡방 대부분이 사고를 치고 회사에서 쫓겨나듯 나온 녀석들이었다.

이번에 마약 사건이 터지면 입지가 불안해지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기에 단톡방의 분위기는 점점 격해져만 갔다.

‘야, 그래서 다들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냐?’

- 그럼 어떡해?

- 이미 사진도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

- 지훈이 너는 무슨 방법이라도 있어?

이지훈은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자주 가는 바의 주소를 남겼다.

‘일단 여기로 모여봐. 얼굴 보고 얘기하자.’

아무리 집에서 내놓은 자식들이라고 해도 다들 한가락 하는 집안의 자제이다.

인맥을 총동원한다면 크리에이터 하나쯤 누르는 건 일도 아니다.

이지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

그날 새벽. 이지훈은 흐트러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몸에는 담배와 알코올 냄새가 짙게 배어있었다.

터덜터덜 거실로 들어온 그는 소파에 앉아있는 이정혁과, 초조한 얼굴로 옆에 있는 오수미를 발견했다.

“아, 아버지···.”

친구들에게는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했지만, 아버지 얼굴을 보니 겁부터 덜컥 났다.

그때 이정혁이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다.

쫘악!

그리고 뺨을 후려갈겼다.

이지훈이 비틀거리며 넘어질 정도로 거센 충격이었고, 오수미가 기겁하며 달려왔다.

“여보! 지금 애한테 이게 무슨···!”

“당신은 비켜 있어. 이지훈 너, 지금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

이지훈은 고개를 푹 숙였고, 그 모습은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정혁이 목소리를 높였다.

“사고 쳐서 미국으로 쫓겨난 놈이, 뭐? 마약을 해? 너 지금 제일 그룹을 물려받을 생각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경악한 오수미가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마약? 우리 지훈이가 마약을 했다고?’

“그, 그럼 지금 뉴스에 나오는 마약 얘기가···.”

뉴스에는 한창 재벌 마약 파티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당연히 자기 아들은 관련이 없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불난 집 구경하듯이 있었는데···.

그 불이 우리 집에 난 거였다니.

힘이 쭉 빠진 오수미는 그대로 주저앉았고, 이정혁은 이지훈을 다그쳤다.

“언제부터 마약에 손을 댄 거야.”

“작년에 음악사업본부에서 팀장을 맡고 있을 때, 연예인들이 하길래 저도 궁금해서 그만 한 번 해봤는데···.”

이정혁은 그만 눈을 감고 말았다. 그도 제일 ENM에서 음악사업본부를 주축으로 암암리에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지만 눈감아준 이유는 그게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돈도 될뿐더러 한번 마약에 맛 들인 아티스트들은 제일ENM을 떠나지 못한다.

그런데 그 마약이 아들을 좀 먹고 있었다니.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지훈이 더듬더듬 변명했다.

“그때는 눈치가 보여서 자제했었는데, 이번에 그 사건으로 미국으로 쫓겨나면서 힘들어서 그만···.”

쫓겨나듯이 미국으로 유학을 간 건 그동안 엘리트 코스만 밟던 이지훈에게 큰 충격이었다.

미국에 가서 고삐가 풀리고 만 것이다.

“그래도 아직 제 이름은 안 나왔잖아요. 그리고 방금 유학 간 친구들이랑 대책을 세워봤어요. 빠르게 조처하면···.”

그 순간 이정혁이 그의 얼굴에 사진을 집어던졌다.

“멍청한 놈. 그런 놈들도 친구라고. 겨우 실명이 안 까발려진 거로 만족하는 게냐? 지금 이 판을 깐 게 누군지 몰라서 그래?”

사진이 팔랑거리며 바닥에 떨어지고, 이지훈은 사진에 박힌 자신의 얼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사진의 원본. 그게 아버지의 손에서 나왔다.

“이, 이게 어떻게···.”

“이건우 그놈이 주고 갔다.”

“이건우? 지금 이건우가 저를 함정에 빠트린 거예요?”

한번 이건우에게 당한 경험이 있는 이지훈이다. 또다시 이건우의 이름이 언급되자 이지훈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원하는 게 뭐래요? 그 자식이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버지가 그놈한테 뭐라도 쥐여주면···.”

“시끄러워!”

징징대는 아들을 보는 이정혁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곤경에 처한 것을 보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상황도 확실히 파악했고 끓어오르는 분노도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이성이 돌아오니 문득 아들놈이 대책일 세워 놨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아까 대책이라고 했던 것은 뭐냐? 일단 얘기나 들어보자.”

이정혁의 물음에 이지훈이 자신감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윤단아가 사진의 공개를 다음 영상으로 미뤘잖아요. 일단 여론전을 펼쳐서 윤단아의 이미지를 공격하고, 그 사이에 윤단아와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영상의 유포를 막으려고 했어요.”

얼핏 들으면 무계획적이고 무모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정혁은 왠지 모르게 그 이야기가 괜찮게 들렸다.

같이 마약을 한 사람들이 다 한가락 하는 집안 자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힘을 합친다면?

어쩌면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음···.”

이정혁이 약간 망설이자 이지훈은 눈치를 보며 계획을 풀었다.

“먼저 삼연방직의 사위 김현진. 김현진의 친정이 한양일보라서 아는 기자들이 많아요. 기자에게 돈 좀 쥐여주고 우리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게 하는 겁니다.”

“윤단아 같은 이슈 크리에이터의 막무가내식 폭로가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관한 기사에요. 아마 기사가 나면 윤단아 측에서도 다음 영상을 올리는 데 조금 신경이 쓰이겠죠.”

“그다음에는 해연건설 쪽에서 용역을 동원하기로 했어요. 알아보니 윤단아가 혼자서 살고 요즘 영상 때문에 퇴근이 꽤 늦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를 노려서 윤단아와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협박하든 돈을 쥐여주든, 어떻게 해서라도 영상과 증거를 지우게 할 거예요.”

말이 이야기를 나누는 거지 납치를 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 이지훈은 그런 과격한 수를 쓸 만큼 궁지에 몰려있었다.

“마지막으로 세진 병원장 딸 강혜나. 그쪽 병원에서 마약 조사 서류를 위조해서 공표하면 사건을 무마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스캔들 하나 터뜨려서 물타기를 하면 되고요.”

그의 말을 듣던 이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기간에 생각해온 방법치고는 꽤 구체적이고 괜찮았는데, 다른 재벌가의 자제가 엮여 있으니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이나 자원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이정혁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을 정도로.

무엇보다 그는 다시는 이건우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 회장님의 집에서 이루어졌던 치욕적인 거래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구석이 쓰렸다.

아들이 세운 작전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이건우에게 한 방 먹이는 셈이 된다.

그의 입장에서는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셈.

또한 윤단아가 그렇게 타격을 받으면 이건우도 당분간 몸을 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단아만 사라지면 이건우에게 남아있는 스피커가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계산이 선 이정혁은 말했다.

“네 뜻대로 한번 해 보아라. 대신 실패한다면 너는 미국이 아니라 거제도에 처박혀 있어야 할 게다.”

이정혁의 으름장에 이지훈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더이상 그에게 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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