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로 갑질하는 양아치 재벌-25화 (2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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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당했다!

이정혁은 오랜만에 일찍 퇴근했다. 잠깐 한국에 온 아들이 내일이면 다시 미국으로 떠난다. 오늘이 마지막 저녁인 셈.

“여보 나 왔소.”

거실에 들어오는데 뭔가 분위기가 싸하다.

평소라면 마중 나왔을 아내는 보이지 않고, 가사도우미만 남아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눈치를 보며 다이닝룸 쪽을 힐끔거리는 모습이 이상했다.

이정혁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이닝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여기 있으면 안 될 것을 봤다.

“어, 아버지. 이제 오셨어요?”

망나니. 뼈아픈 실수. 태어나면 안 되었던 놈.

최근에는 그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던 첫째 아들이 밥을 먹고 있다.

옆에는 오수미가 떨떠름한 얼굴로 서 있었다.

이건우는 넉살 좋게 김칫국을 후루룩 들이마시고는 말했다.

“어흐. 잘 먹었다. 역시 집밥이 최고라니까.”

이정혁은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참으며 말했다.

“집구석을 뛰쳐나갈 때는 언제고 무슨 낯짝으로 들어온 게냐.”

“어머니가 제 얼굴을 까먹겠다고 하시는데 아들 된 도리로서 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건우는 싱긋 웃으며 오수미를 바라보았고, 오수미는 슬며시 이건우의 눈길을 피했다.

평소에는 이건우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인 사람이, 무슨 일인지 이건우 앞에서 꼼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정혁은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를 만나려고 온 것일 테니 그냥 서재로 따라와라.”

“역시 아버지는 말이 잘 통해서 좋다니까요.”

이건우는 씩 웃으며 오수미에게 말했다.

“밥 잘 먹었어요. 어머니.”

“어, 그, 그래.”

*

나는 이정혁을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 뒤통수에 오수미의 눈빛이 따갑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집에 오니까 어찌나 반겨주던지 집에 발도 못 붙이게 하더라.

물론 충분히 예상했던바, 나는 미리 준비해 간 선물을 드렸다.

‘청일고등학교 학생주임 심권섭.’

그 단어를 듣자마자 오수미가 눈에 띄게 굳었다.

‘뭐야. 가, 갑자기 무슨 소, 소릴 하는 거야!’

나는 빙글빙글 웃었다.

‘아무리 성적이 급하다고는 해도, 시험지를 빼돌리면 어떻게 합니까.’

나는 가방에서 몇 가지 자료들을 더 꺼냈다.

오수미가 심권섭이라는 사람과 주고받았던 카톡 내용,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돈이 오갔던 정황까지.

아들의 성적을 위해 교사를 매수했던 증거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야!’

바들바들 떨며 빽 소리를 질렀지만 그래 봐야 내게는 사실을 인정하는 몸짓으로 보일 뿐이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시는 모양이네요. 지금 저한테 소리를 지르시면 안 될 거 같은데?’

‘으,응?’

‘제가 화가 나서 이걸 신문사에 제보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요즘 가뜩이나 재벌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데, 성적까지 돈으로 샀다는 기사가 나오면···어후. 장난 아니겠는데?’

나는 여전히 실실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 그런데 성적을 조작했다는 사실. 아버지도 알고 계신가요?’

내가 조사를 하며 알게 된 것은 이정혁은 성적 조작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 나온 배짱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정혁에게 말도 하지 않고 오수미 혼자 일을 벌였다.

아마 자신이 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겠지.

이정혁까지 언급되자 오수미는 겁먹은 얼굴을 했다.

‘거, 건우야. 어쩔 수 없었다고. 지훈이를 후계로 키우려면 성적이 잘 나와야 해서···.’

‘그건 제 알 바는 아니고요.’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이게 폭로되면 아버지 표정이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아버지가 자존심 하나는 대단하신데 거기에 스크래치를 낸 당신을 가만히 놔둘까요?’

모르긴 몰라도 적당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오수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제는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원하는 게 뭐야.’

‘앞으로 제 신경을 건드리지 마세요. 그러면 이 건은 당장은 묻어드리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수미는 언제 나를 막아 세웠느냐는 듯이 즉시 안으로 들여 밥을 한 상 차려줬다.

평소에 집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반찬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니 쫄리긴 쫄렸던 모양이다.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서 얼마나 입안에 혀처럼 굴려고 하던지, 가증스럽기까지 했다.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생각하던 나는 응접용 소파에 앉는 이정혁을 바라보았다.

이 사람도 참 가족 운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할 정도로 사랑하는 와이프는, 남편 몰래 아들 성적을 조작하고 있었다.

뭐, 이제 내가 알 바는 아니지만.

지금은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어떻게 벗겨 먹을지 고민하기에도 바쁘다.

“무슨 일로 집까지 찾아왔느냐.”

이정혁은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오는 태도로 빨리 용건만 말하고 꺼지라는 듯이 말했다.

피차 말을 길게 할 필요는 없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업 하나 같이 하시죠.”

“사업?”

나는 탁상에 준비해온 서류를 올렸다.

“KW 미디어를 발족하면서 OTT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희 플랫폼에 제일 ENM의 콘텐츠를 유통하고 싶습니다.”

“제일 ENM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일 겁니다. 전세계에 서비스를 할 것이기 때문에, 제일 ENM가 유통권을 보유한 드라마와 영화를 31개의 언어로 번역해 해외로 수출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이번에 스튜디오 라이언과 외주 계약을 맺은 만큼 콘텐츠를 공동제작해 유통할 수도 있습니다.”

이정혁은 내 말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겠지.

실제로도 내가 건넨 제안은 제일 ENM 괜찮은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정혁이 말했다.

“용건은 다 끝났느냐?”

“네”

“그럼 내 대답을 들려줘야겠군. 거절한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이유는요?”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너와 손을 잡아야 하는지 모르겠군. 그것도 수익을 배분하면서까지 말이야.”

이것도 예상했던 바이다.

그러면 이제 KW 미디어와 계약해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면 되는 건가?

나는 싱긋 웃었다. 제안이 대차게 거절당했는데도 내가 웃음을 짓자 이정혁의 눈썹이 기분 나쁜 듯 꿈틀거렸다.

“혹시 오늘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보셨나요? 퇴근하느라고 바쁘셔서 그런 건 신경 쓰시지 못하셨나 보죠?”

“뭐?”

“오랜만에 온 김에 제가 선물 하나 드리고 가죠.”

나는 가방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올려놓았다. 사진 속에서는 이정혁이 애지중지하는 아들이 다른 재벌 3세들과 방탕하게 노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사진 속에 아들의 얼굴이 있는 것을 본 이정혁은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이정혁은 예민한 목소리로 나에게 쏴붙였다.

“이번에는 또 무슨 짓거리를 꾸미는 거야.”

“그건 직접 알아보세요. 인터넷 어디에 들어가도 무슨 일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정혁은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이제 급한 것은 내가 아니라 이정혁이거든.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나면 계약서에 싸인을 할 마음이 생기실 것 같네요.”

그리고 나는 이정혁의 눈앞에서 계약서를 반으로 찢었다.

“아, 참고로 다음번 계약은 이것과는 ‘많이’ 다른 내용이 될 겁니다.”

*

이건우가 나가고 이정혁은 반쪽이 난 계약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찢어진 종잇조각들을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제길! 이건우!!!!”

서로 죽일 듯이 싸운게 바로 몇 주 전인데, 갑자기 파트너쉽을 제안해오다니.

분명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당연히 거절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놈은 어디선가 이상한 정보를 가지고 협박을 해왔다.

아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다시 이건우에게 놀아난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아들 이지훈을 가로막는 장애물 정도로만 생각했지만, 그 장애물은 점점 거대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 거대해진 장애물이 자신의 앞길마저 막을 것만 같았다.

이정혁은 씨근덕거리며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건우가 저렇게 기고만장해져서 협박을 하는 거지.

이정혁은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서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

1. 재벌 3세 마약 파티

2. 마약 파티

3. 윤단아 폭로

4. 윤단아 마약 파티 폭로

“마약?”

불길한 느낌이 머리를 스쳤다. 이정혁은 이건우가 놓고 간 사진을 보았다.

이지훈과 친구들이 나른한 얼굴로 담배를 물고 있다.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지훈과 같은 주에서 유학을 하는 친구들이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물고 있는게 과연 담배일까?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맨 처음에 올라온 기사를 클릭했다.

<유명 클럽서··· ‘재벌 3세의 마약 파티’>

뉴튜브 크리에이터 윤단아 씨는 1월 11일 한 영상에서 부유층의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미국의 한 클럽에서 재벌 3세들이 모여 마약 파티를 했다고 합니다.

윤단아 씨는 클럽에서 마약을 공급한 딜러 A 씨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자료 영상이 아래 있습니다. (출처: https://newtu.be/fJf4z6GvKII)

이정혁은 글을 읽다가 멈칫했다.

‘윤단아?’

윤단아라면 이건우 회사 소속 크리에이터이다. 지난번 이건우와의 싸움의 발단이 된 여자이기에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이것도 이건우가 꾸민 일인가?

그는 불안함을 억누르며 윤단아 영상을 편집한 클립을 눌렀다.

윤단아: 오늘 인터뷰할 A 씨는 미국에 거주하는 재미교포이자 재벌에게 마약을 공급한 딜러입니다.

A 씨는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되고 음성이 변조된 채 인터뷰에 등장했다.

윤단아: (삐이)는 잘 아시는 분이에요?

A 씨 / 마약 공급책: 저랑 완전 친한 형이에요. 여기에 자주 오니까. 맨날 나한테 약을 사 가거든요.

윤단아: 마약 파티는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A 씨 / 마약 공급책: 클럽에 VVIP를 위한 전용 통로가 있어요. 오피스텔 공간을 전용 룸으로 개조해서 운영한 건데, 여기서 벌어지는 마약 파티와 성폭행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소각팀’도 있지요.

윤단아: 성폭행도 했나요?

A 씨 / 마약 공급책: (능글맞게 웃으며) 그럼 마약을 하고 그대로 잠이나 잘까요?

윤단아: ···마약은 어떻게 공급했나요?

A 씨/ 마약 공급책: 보통 클럽에 있는 VVIP룸에서 주죠. 종종 차 안에서 몰래 만날 때도 있고.

윤단아: (삐이)씨 말고 다른 사람들도 왔나요?

A 씨/ 마약 공급책: 형뿐만 아니라 많이 왔어요. 여기 한국인들이 얼마나 많은데. **형(PD), **누나(대형병원장 딸), **형(고위층 자제). 여기서 자주 놀았지.

윤단아: 여기 사진에 있는 사람들인가요?

A 씨/ 마약 공급책: 어, 맞아. 여기 사진에 있는 사람 그대로에요. 이 사진은 또 어떻게 구했대? 누나 능력 좋구나.

영상은 여기서 마무리됐다. 다행히 영상에 나오는 이름은 ‘삐’처리가 되거나 ‘**’표시가 되어서 떴다.

하지만 영상에 나온 마지막 말이 이정혁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사진?’

이건우가 선물이라며 주고 간 것이 바로 사진이었다.

설마 사진에 아들의 얼굴이 있으면···.

이정혁은 스크롤을 내려 사진을 확인했다.

“후”

다행히 사진에는 모두 모자이크 처리가 됐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구도를 봤을 때, 윤단아가 공개한 사진과 이건우가 주고 간 사진은 똑같은 사진이었다.

즉, 이건우가 윤단아를 시켜 만든 판이라는 것이다.

“제길.”

그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사이 얼마나 긴장했는지 셔츠가 땀으로 젖었다.

그는 진열장에 있는 독한 양주를 꺼내 마셨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을 기분이 아녔다.

알코올이 들어가자 속이 화끈하게 뜨거워졌다. 그는 머리를 털며 생각에 잠겼다.

이지훈은 마약을 했고, 이건우는 어떻게 알았는지 증거까지 틀어쥐고 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걸 터뜨리지 않았어.’

이름도 공개하지 않았고 사진도 모자이크 처리를 해놨다. 여지를 준 셈이다.

그리고 이정혁은 이건우가 왜 그랬는지 금방 깨달았다.

“제일 ENM의 콘텐츠”

이건우가 말하는 바는 분명했다.

아들이 마약사범으로 잡혀들어가는 것을 보기 싫으면 콘텐츠를 넘겨라.

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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