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복제헌터-36화 (36/38)

〈 36화 〉 제물던전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던전은 재배치되었다. 우리가 뚫고 들어온 보스방의 문은 막혔다. 제물던전은 특수던전. 던전을 공략하기 전까진 나갈 수 없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제물던전, A급 특수던전?”

사람들이 혼란에 잠긴다.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던전은 완전히 변해있었다. 공략대가 쓰러트린 골렘들의 잔해가 남아 곳곳에 떨어져있지만, 그 외 부분. 정확히 초록색 선이 감싸지 않고 있던 모든 공간은 변했다.

“내 상태창이 잘못된 거야? 제물던전이라고 정보가 나오는데?”

누군가는 자기에게 뜬 알림을 의심했다.

“뭐야. 골렘던전 클리어라며. 출구 어딨어, 출구? 던전을 공략했는데 왜 다른 던전이 나와?”

누군가는 평소와는 다른 결과에 분개했다.

“하하. 내가 잘못 봤나. 요새 몸이 허하더만. 별 이상한 환상을 다 보고. 빨리 정신 차려야지.”

누군가는 믿기지 않는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사실이었다. 지난 회차의 기억으로 골렘던전이 제물던전이 될 걸 알고 있던 나는 상황이 또렷하게 보였다.

던전 재배치와 이중던전. 신비로운 장면이었다. 던전의 생성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한 듯하다.

눈에 띄게 당황한 건 이하연이었다. 사슴 같은 눈망울을 부르르 떨어대며 상태창을 계속해서 읽어본다.

A급 제물던전(특수). 공략조건: 팔수악마 ‘제로데 팔마르’ 처치. 계속 읽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상태창은 우리가 새롭게 들어온 던전에 대한 정보만을 표시할 뿐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냐고,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하소연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

“당신은 제가 꼭 지켜줄 겁니다.”“······?”

겁먹은 이하연에게 조용히 내 다짐을 전했다. 이하연이 눈을 끔뻑거린다. 자신한테 한 소리인지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왔을 때처럼 슬그머니 비켜 물러났다. 아직은 내가 활약할 때가 아니다. 적어도 첫 번째 층에서는 일성길드의 힘을 빌려야 한다. 여기는 제물던전. 문을 통과하려면 계속해서 던전에 제물을 바쳐야 하니까.

“방금 저한테 하신 말씀이에요?”

“······.”

손으로 자신을 짚으며 물어보는 이하연. 대답하지 않았다. 일성길드 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못 들은 척하며 짐꾼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보기엔 나는 평범한 짐꾼 헌터. 약하고 존재감 없는 D급 헌터를 좀 더 연기한다. 제물던전 첫 단계에선 힘을 아끼는 편이 낫다.

이하연이 고개를 기울인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지 머리를 흔들며 손으로 얼굴을 한 차례 쓸었다. 이런 타이밍에 짐꾼이 다가와서 지켜주겠다고 속삭이는 건 이하연의 입장에선 환청과 다를 바 없었다.

“이하연 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갑자기 새로운 던전이 등장했습니다.”

“그러게요······.”

“A급 특수던전이랍니다. 나가는 길이 없습니다.”

“······.”

시무룩한 이하연. 잘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끌어 길드원들과 함께 현재 상황을 정리하고 주변 환경을 파악하며 새로운 던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30여명에 달하는 공략대가 그녀를 믿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었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사람들과 대화한다.

나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나마 일성길드의 반응은 차분하고 냉철한 편이었다. 내가 도착한 짐꾼들의 파티는 난리였다.

“C급 던전, C급 던전이었잖아! 우린 C급 던전을 깬 거잖아. 그런데 왜 A급 던전이 나와?”

“A급 던전이면 S급 헌터쯤은 와야 깰 수 있는 거 아냐? 왜 우리가 A급 던전에 있어?”

“특수 던전이야! 특수 던전! 우리는 갇혔다고!”

일성길드만 믿고 던전 공략에 따라온 이들이었다. 비전투원에 가까운 짐꾼들은 급작스럽게 위기가 코앞으로 닥치자 공포에 떨었다.

“······.”

경력 있는 헌터 백범일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의 기나긴 헌터 생활 속에서도 이런 일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을 거다. 이중던전은 한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니까.

나는 소란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당장 나서서 혼란을 수습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 내게 김수로가 다가왔다.

“저기, 한재복 씨?”

“?”

“던전이 갑자기 A급 특수던전으로 변해 다들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짐꾼으로서 현재 심정이 어떻습니까?”

마이크를 들이댄다.

불안하면서도 흥분한 얼굴. 대형 사건이 들이닥치자 눈이 뒤집혔다. 위기의 순간이지만 또한 특종이 될 걸 알기에 잔뜩 긴장하며 카메라를 대고 인터뷰를 시도한다.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한 녀석이기도 하다.

일성 길드의 헌터들도 긴장하고 있는 차에 E급 헌터가 전혀 겁먹지 않았다. 특종에 대한 갈망이 생존본능을 초월한다.

―김수로 님.

“예, 한재복 씨.”

―이게 인터뷰할 상황입니까?

“아, 인터뷰 거절이십니까. 그래도 개중에는 제일 침착해 보이셔서 여쭤봤는데, 역시 안 되겠습니까?”

―정신 차리십시오. 저희 다 위기입니다.

“옙.”

내가 정색하자 마이크를 접는다. 카메라는 끄지 않았다. 녹화중단버튼을 누르지 않고 다른 헌터들을 촬영한다. 만약 김수로가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대박 영상이 탄생할 듯했다. 신비한 이중던전과 죽음의 위기에 처한 헌터들을 실시간으로 찍어대고 있으니.

저 녀석도 지금 그렇게 판단하고 카메라를 쥔 손을 놓지 않고 있겠지.

카메라 앵글에 집중하는 김수로의 옆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남들의 위기를 고스란히 담으며 기뻐하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지 않다.

저 카메라. 나중에 부숴야겠다.

*

“여긴 이중던전입니다.”

이하연이 말했다.

던전을 조사하던 일성 길드원들은 그렇게 판단했다. 던전보스를 잡자마자 다른 던전으로 이어지는 구조. 해외에서 발생된 사례로 전해 들었던 이중던전의 특징이었다.

“구조대는 없습니다. 저희의 힘으로 던전을 공략해야 돼요. 다들 많이 놀라셨겠지만 부디 침착해주세요.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공략대 사람들을 한데 모은 채로 말하고 있었다. 일성길드 대표로서 공략대의 행동방침을 정한다.

“임시 대장님. 구조대는 왜 없는 겁니까? 그리고 이중던전이 무엇입니까?”

김수로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는 이미 이유를 알고 있었지만 카메라로 촬영중이었다. 이하연에게 보다 자세한 설명을 구한다. 혹시라도 살아나가게 된다면 영상을 보게 될 시청자를 위한 서비스.

이하연 옆에 있던 일성 길드원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김수로를 싫어하게 된 지 오래다. 황종태가 실종된 이후부터 더 신나서 인터뷰를 요구하던 그의 행보는 짜증과 혐오를 유발했다.

“카메라 안 꺼?”

박우현이 김수로에게 손가락질했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촬영할 생각만 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시하는 김수로.

이하연이 화를 내는 박우현을 말렸다.

“괜찮아요. 제가 설명할게요. 진짜로 이중던전이 뭔지 모르는 분들도 계시잖아요.”“하지만 촬영은 중단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분위기가 장난도 아니고, 공략대가 전멸할 위기인데 태평하게 촬영이나 하고 있다니.”

“김수로 님. 카메라 좀 꺼주실래요?”

이하연이 부탁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김수로에게 돌아갔다.

“지금 중요한 상황인데 조금만 더 촬영해도 되겠습니까?”

“부탁할게요.”

“옙······.”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자 김수로가 마지못해 카메라를 껐다. 카메라를 끄고도 아쉬운지 입맛을 다신다.

촬영이 중단된 걸 확인한 이하연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중던전은 던전 안의 던전. 겹쳐진 던전입니다. 원래라면 따로 따로 발생했어야 할 균열이 같은 자리에 발생하여 던전이 이어져버린 건데요. 하나의 던전을 깨면 다른 던전에 자동으로 입장하게 됩니다.”

하나의 균열을 통해 두 개의 던전에 동시에 들어와 버린 셈이다. 한 던전을 깨면 다른 던전으로 이어져서 이중던전이라 불린다.

“이때 첫 번째 던전과 두 번째 던전의 균열발생시기는 다른데요. 첫 번째 던전을 공략하면 바깥의 균열은 사라져버립니다. 두 번째 던전의 균열이 열릴 때까지 밖에서 헌터들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던전 내부에서만 두 번째 던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밖에서는 균열이 열리지 않아 못 들어온다.

“두 번째 던전. 즉, 우리가 지금 서있는 제물던전의 균열이 언제 열릴지는 모릅니다. 한달 후가 될지, 일년 후가 될지, 10년 후가 될지. 그래서 구조대를 기다릴 수 없어요. 우리들의 식량이 먼저 떨어질 거예요.”

남은 공략대의 식량은 넉넉잡아 3주 분. 느긋하게 구조대를 기다릴 여유 따윈 없었다.

“우리가 살려면 던전을 깨야 해요. A급 던전이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하연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구조대도 없고, 나갈 수도 없었다. 공략대에게 남은 길은 A급 던전 공략뿐이었다. 던전이 공략대보다 수준이 높을지라도,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진짜 여기가 이중던전입니까? 말로만 들었지 그런 던전이 실제로 발생할 줄은!”

“맙소사! A급 던전을 깨야한다고?”

사람들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까진 시간이 걸렸다. C급에서 A급으로 던전이 변했다. A급 던전을 깨지 않고는 살아나갈 방법이 없었다. 상황이 불합리하다고 힘껏 소리쳐본다.

누가 대답해줄까.

나를 제외하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불합리하다고 애걸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여기 있는 모두는 결국 같은 피해자였다. 힘을 합쳐 나아가지 않고선 변하는 게 없었다.

“다들 힘내요. 할 수 있어요······.”

[리프레쉬]

이하연이 사람들에게 기분 정화 마법을 걸었다. 좌절해서 울 것 같은 사람들은 그녀의 마력에 맞고 기운을 차린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을 치유하는 이하연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긴장하고 있는 건 그녀일 거다. 자기도 무서워 죽겠는데 공략대를 이끌어야 했다. 오직 책임감에 의해 괜찮은 척 행동한다.

[리프레쉬]

나는 이하연을 도와 사람들에게 마법을 걸어주다가, 그녀에게도 신성 마법을 걸었다.

“?”

“당신도 힘내요.”

응원을 전했다. 다른 사람 돌보는 건 자주 했어도, 자기 자신 돌보는 건 잘 못하는 여자다. 든든히 뒤를 받쳐주었다.

“감사합니다······.”

이하연이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나는 고개를 까닥였다. [복제]덕분에 맞이한 진귀한 경험이었다. 내가 오히려 이하연을 치료하고 감사인사를 받다니. 괜스레 뿌듯한 느낌이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

공략대는 전진했다.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다. 배수진을 친 것만 같은 상황. A급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기세등등하게 기운을 드높이고 발을 앞으로 뻗었다.

사실 다들 알고 있었다.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걸.

C급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모인 인원이 A급 던전을 공략할 가능성은 현저하게 낮다.

A급 던전이 괜히 A급 던전이겠나. 지금 있는 공략대원 모두의 헌터등급이 두 단계씩은 높아져야 승산이 생기는 던전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굶어죽기보단 일어서서 싸우기를 택한다. 뒤가 없어서 하는 전진이다. 갈 곳이 없다면 유일하게 남은 길이 지옥으로 향하는 통로라도 나아가야 한다.

공략대의 기세는 자못 비장했다. 짐꾼과 기자들까지 병장기를 챙기고 던전에 나오는 몬스터와 싸우려고 한다.

A급 몬스터가 나오면 E, F급 헌터들은 손가락도 까닥 못하고 끔살이겠지만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공략대 앞에 첫 관문이 나왔다.

“이건... 뭘까요?”

굳게 닫힌 6미터 크기의 아치형 대문. 그 앞에는 네모난 제단이 있었다. 마석등이 천장에 알알이 박혀 제단을 집중적으로 비춘다.

“제단?”

공략대 선두에 서있는 이하연이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기괴한 장치가 등장했다. 제물던전은 등장도, 진행과정도 특별하다.

“여기 비석에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던 길드원 한 명이 외쳤다.

모두가 주목해서 쳐다보는 글귀의 내용.

이런 문구가 새겨져있다.

「지나가려는 자. 힘을 바쳐라.

너의 정성에 따라 재앙이 결정될 것이다.」

제단은 희미한 보랏빛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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