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기자와 성녀와 마인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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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형 골렘의 몸체는 단단한 석질로 이루어져있다. 마력폭발에 의해 석질이 조각나서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나를 사정없이 때렸다.
파바바박.
짐꾼용 방패에 고스란히 전해지는 압력. 안전모가 돌멩이에 부딪쳐 땅땅거리는 소리를 낸다. 방패로 가리지 못한 허벅지와 정강이는 파편에 찢어졌다.
[HP: 70%]
단번에 체력이 30%가량 빠져나갔다. [금강]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더 큰 부상을 입었을 거다. [금강]의 효과가 방어력 +50%이니, 체력이 45%는 빠져나갔겠네.
간만에 상처 입은 몸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내가 거의 모든 파편을 막아 헌터와 짐꾼들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타박상이나 찰과상 정도. 체력이 10%이상 깎인 사람은 없었다.
“윽. 거기 괜찮은가?!”
황종태가 방패를 여전히 앞으로 세운 채 고개만 뒤로 돌려 물었다. 걱정이라도 하는 듯 다급한 목소리다. 일부러 골렘을 이쪽으로 몰아세우고 터트렸지만 아닌 척 연기한다.
나는 당장 흑철검을 생성해 황종태를 베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속에 차오르는 충동을 견뎠다.
카메라로 촬영 중이다.
여기서 날뛰면 곤란하다. 지금 일성 길드를 적으로 돌리는 건 내게 위험한 일. 황종태를 제거하더라도 사람들 보는 데선 아니다.
“크으...”
신음하며 통증을 달랬다. 품에서 힐링포션을 꺼내 마시고 상처약을 꺼내 발랐다. 출혈이 멎는다.
“서둘러라!”
황종태가 골렘토벌을 재촉했다. 아까보다 토벌속도가 빨라지고 폭발형 골렘을 터트리면서 들려오는 굉음이 커졌다.
“재복 군. 자네 괜찮나? 출혈이 심하던데.”
짐꾼대장. 백범일이 와서 물었다.
“괜찮습니다. 좀 찌릿하네요.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하체에 상처가 많이 생겨서 시렸다. 황종태의 뒤통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무심하게 돌고 있는 카메라 렌즈. 김수로는 부상자들의 상황을 생생하게 영상에 담고 있었다. 줌 링을 좌우로 돌리며, 공략대의 피해를 부각시킨다.
처음부터 폭발 범위에 닿지 않던 위치. 안전지대를 확보한 채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촬영 각도를 살필 때, 처음부터 이곳의 주인공은 우리였다.
‘저놈도 마인인가.’
백종태와 같은 마인인 건지, 아니면 그와 잠시 편먹고 폭발장면을 찍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이게 유도된 연출이란 건 확실해 보인다.
제거대상 명단. 황종태의 옆에 김수로의 이름을 올렸다.
쾅······!
콰앙······!
펑······!
골렘 터지는 소리가 몇 차례 더 던전에 울려 퍼지고, 헌터들이 모든 폭발형 골렘을 잡았다.
홀에는 잔잔한 평화가 스며든다. 싸움의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김수로가 내게 다가왔다.
전달되는 마이크.
“골렘의 폭발에 가장 가까이서 당하셨는데요. 지금 상태가 어떠십니까?”
이 녀석이 내게 건넨 말은 위로나 격려 따위가 아니다.
폭발에 당한 심정부터 물어본다.
나는 현재 찢어진 허벅지와 정강이, 오른쪽 어깨부분을 붕대로 다감은 채다. 백범일이 당분간은 회복에 전념하라며 짐을 대신 들어주고 간이 목발까지 전해주었다.
누가 봐도 환자.
그런 내게 다짜고짜 인터뷰부터 진행한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놈이다.
아니, 집에 불내고 집주인과 인터뷰하는 놈인가.
*
뭐라고 대답해줄까.
그가 원하는 대로 인터뷰를 해보도록 한다. 죽기 전에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보라는 심정이었다. 나중에 다 되갚아 줄 테니.
―상처가 무척 쓰라립니다. C급 골렘의 파편에 맞았고, 하체와 어깨를 당해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입니다.
“저런, 유감입니다. 골렘이 눈앞에서 터질 때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방패를 들어 황급히 막아보려 하시던 것 같던데.”
―무서웠습니다. 일성길드의 헌터들이 앞에서 막아줄 땐 몰랐는데 한 마리가 이쪽으로 빠져나와 달려오는 순간 오금이 저렸습니다. 폭발할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C급 골렘은 E, F급 짐꾼헌터나 D급 헌터입장에선 악몽이나 다름없죠. 지금 일성길드가 모든 골렘을 처치하였는데,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대단합니다. 이렇게 위험한 골렘을 상대하면서 전혀 겁먹지도, 물러서지도 않는다니, 새삼 그들이 얼마나 강대한 적과 싸우고 있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성실한 대답에 김수로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마이크를 대고 하나를 더 묻는다.
“그렇군요. 골렘에 당한 피해자의 심정을 잘 들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일성길드에는 이하연 양이 있어서 당신의 상처는 전부 치료될 겁니다. 그녀가 여기에서 모든 부상자들을 돌보기로 했거든요. 어때요,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까?”
―이하연 님이요? 일성길드의 성녀? 그분이 우리를 치료해주는 겁니까?
“예. 여기서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쪽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당신의 상처는 곧 치유될 겁니다.”
―그것 참······ 감동이네요······? 이하연 님의 치료를 받게 된다니.
이 인터뷰는 태연하게 받아주지 못했다.
이하연의 치료. 정말 오랜만에 받는다. 이런 데서.
“완쾌를 빌겠습니다. 헌터님.”
김수로는 인터뷰를 마무리 짓고 다음 부상자를 찾아 떠났다.
나는 자리에 앉았다. 다치게 돼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이하연의 치료를 받게 된다니. 그리운 느낌이 들어 살짝 설레기도 한다.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난 회차. 내가 일성길드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이미 S급 헌터였다.
일성길드는 겉보기만큼 그리 좋은 길드가 아니다. 중간 중간 황종태 같은 마인이 섞여있고 인간에 대한 대우는 살갑지 않았다.
기계처럼 사람을 굴렸다. 균열에 입장하고, 몬스터와 전투하고, 던전을 공략하기를 무한 반복했다. 스케줄은 항상 가득 차있었으며 일성길드의 헌터들은 쉬지 않고 몬스터와 싸웠다.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그 실상은 가장 치열하고 위험한 길드였다. 여기에 들어온 길드원들은 죽을 때까지 몬스터들과 싸운다. 그들의 업적으로 길드는 명예를 얻고, 그 명예로 새로운 헌터를 들여온다.
새로운 헌터는 휴식 없이 몬스터와 싸워야했다. 보통 헌터들이 한 달에 1번씩 던전을 돈다 치면 일성 길드의 헌터는 한 달에 4번씩 던전을 돌았다.
기계처럼, 공장의 소모품처럼 사용되는 일성 길드의 헌터들이다. 소모되는 만큼 죽어나갔으며, 죽어나가는 만큼 다시 보충되었다. 일성 길드는 최고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에, 누구나 선망하는 한국 최고의 길드이기에. 젊은 헌터를 끊임없이 영입하고,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사고는 언론사와 힘을 합쳐 묻을 수 있었다.
일성길드가 최고인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둬들이고 있기 때문에. 가장 많은 헌터를 싸움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에. 가장 큰 명예를 얻어 부정적인 면은 감추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환경에서 나는 노력했다.
일성 길드에 든 이후에 던전을 돌고 돌고 돌았다.
스킬 하나 없이 몬스터와 싸우고 죽이고 다치고를 반복했다.
얼마만큼 던전을 돌았는지 모른다. 노력, 끈기, 열정이 특성인 나조차도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정도였으니 셀 수 없이 많은 던전을 돌았다.
거기서 만난 게 이하연이다.
S급 힐러인 그녀는 밖에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게 정말 사정없이 일한다.
S급 헌터로서 대접받기보단 더 많은 던전을 돌고 있다. 나와도 많은 던전을 같이 돌게 되었다.
그녀에게 도움 많이 받았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그녀의 치료 덕에 넘겼다. 아무런 재능이 없는 내가 노가다로 A급까지 성장하는데, 스킬에 대응하기 위해 마력에 맞고 맞고 또 맞는데, 몸이 성할 리가 없었다. 내가 살아있던 건 순전히 이하연 덕분이었다.
수많은 고생을 함께 했고, 그녀 덕에 일성길드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일성길드에서 쫓겨날 때, 나를 따라 길드를 나오기까지 해줬으니, 내가 그녀에게 가진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이하연이 나를 치료하러 온단다.
상처가 생긴 게 기쁠 지경이다. 전화위복이라고, 다친 부위를 살펴보며 이 상처가 섣불리 낫지 않길 기원했다.
*
오매불망 기다렸던 이하연과의 재회.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힐링]
이하연이 신성력을 뿜어 내 다친 부위를 치료하고 있는데, 김수로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내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을 가까이서 찍는다.
뒤이어 시작되는 인터뷰.
“이하연 양. 부상자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사람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치료가 도움이 되어 다행입니다.
“성녀(SS)라는 엄청난 특성을 갖고 계셔서 웬만한 상처쯤은 모두 치료 가능하신데, 본인의 특성에 만족하십니까?”
―제게 과분한 특성입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특성에 어울리는 삶을 살려고 합니다. 제가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치료에 실패한 적도 있으십니까?”
―······힐링은 아쉽게도 모든 상처를 치유하진 못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분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
―세상을 구하려다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도움을 주지 못해 죄스럽고, 속상합니다. 여신의 은혜가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
기자 녀석이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다. 내 눈앞에서 촛불처럼 꺼져버렸으면 좋겠다.
난 눈으로 김수로를 욕했다. 쓸데없는 질문으로 시간을 끄니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했다. 복제로 흑철검이 나올랑 말랑 한다.
김수로가 이하연에게 잡다한 질문을 마치고 마이크를 내게 돌렸다.
“이하연 양의 치료를 직접 받아보니 어떻습니까?”
―······.
나는 김수로를 말없이 노려보다가 순순히 인터뷰에 응했다. 카메라 앞이다. 일단 차분하고 신중해져야 한다.
―몸도 마음도 치유되는 느낌입니다. 성녀님의 정성이 느껴집니다.
“정성이라면 어떤 정성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녀는 사람을 진심으로 아끼죠. 단순 스킬이 아닌 마음도 전해집니다.
“이하연 씨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예. [친절]과 [선의] 특성은 거짓이 아닙니다. 그녀는 진심으로 부상자를 돕고 싶어 하죠. [힐링]은 수단일 뿐 마음이 먼저입니다.
“답변이 특이하군요. 꼭 이하연 씨의 속마음을 아는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두 분이 아는 사이는 아닐 테고, 추측입니까?”
―······추측입니다.
“예. 답변 감사합니다. 치료받고 정말 감동 많이 받으셨군요. [힐링]을 그렇게 해석하시니. 완치 축하드립니다. 한재복 씨.”
―감사합니다. 성녀님 덕분입니다.
김수로가 환하게 웃는다. 좋은 인터뷰를 땄다며 좋아라한다.
이하연은 좀 묘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힐링]을 받는데 속마음까지 고맙다고 하는 환자는 없을 거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뭔가를 말하려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꾹 닫고 다른 부상자들을 돌보러 이동한다.
김수로도 이하연을 따라 부상자들을 인터뷰하러 가고 있었다.
나는 눈가를 찌푸리고 잠깐 기다렸다. 모든 부상자의 치료를 마칠 때까지.
치료가 끝나고, 인터뷰마저 끝이 났을 때. 나는 이하연에게 다가갔다.
“힐러님. 저 죄송한데, 제게 [리커버리]와 [리프레쉬]를 써주실 수 있으십니까?”
[힐링]은 체력회복, [리커버리]는 상태이상 회복, [리프레쉬]는 기운회복이다.
힐링이 HP를 올려주고 리커버리가 CC기를 풀어준다면 리프레쉬는 감정을 회복시켰다. 기분을 맑게 해주는 특이한 스킬. 이하연이 예전에 갖고 있던 기술이다.
“······예.”
이하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다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친절한 여자다. 뜬금없는 부탁도 별 의심 없이 가볍게 들어준다.
[리커버리]
[리프레쉬]
내게 이하연의 새하얀 신성력이 덮이고, [리커버리]와 [리프레쉬]는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스킬을 복제해서 보관한다.
지금부터 [리커버리]와 [리프레쉬]는 아까 봤던 [힐링]과 함께 나도 쓸 수 있는 스킬이 되었다.
[리프레쉬]에 의한 건지, 아니면 원하던 스킬을 배워서인지 몰라도 기분이 말끔해진다.
나는 내가 배운 기술을 제일 먼저 이하연에게 사용했다.
[힐링]
[리커버리]
[리프레쉬]
부드럽게 뻗은 내 손에서 새하얀 신성력이 뻗어 나오며 이하연을 덮었다.
“?!”
놀라는 이하연.
지난 회차에 받기만 하던 걸 이젠 내가 그녀에게 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