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 기자와 성녀와 마인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https://t.me/NovelPortal
일성길드와 짐꾼들은 던전에 입장했다.
<던전 정보>
-이름: 골렘던전
-난이도: C급
-공략조건: 던전 보스 ‘불타는 골렘’ 처치.
상태창에 나오는 던전 정보.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별 긴장감 없이 던전내부를 둘러보며 달라진 공기에 적응한다.
가장 먼저 움직이는 건 기자들.
“자자, 다들 집중하세요. 우선 촬영세팅부터 할 겁니다. 이후에 인터뷰 진행할게요.”
이들에게 골렘던전 공략은 이미 예정된 바였다. A급 힐러 한 명, B급 헌터 다섯 명, 그 외 십여 명의 C급 헌터들. 일성길드에서 준비한 전력은 골렘던전의 난이도를 가뿐히 넘어서고 있었다.
골렘던전은 공략법이 알려져 있는 평범한 C급 던전. 이들은 초대형 길드 일성에서 나온 엘리트 헌터들. 몬스터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얼마나 멋지게 촬영을 마치느냐였다.
다큐영상의 질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일성길드부터 인터뷰하겠습니다. 골렘던전에 들어왔습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E급 헌터 김수로가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세팅하고, 다른 E급 헌터 금나영이 대본을 들고 마이크를 내밀었다.
공략대 대장 황종태부터 인터뷰한다.
―일성 길드는 절대 던전 안에서 겁먹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던전공략은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골렘이 보이면 박살낼 뿐입니다.
“대단한 자신감이네요. 던전공략은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하셨는데, 무슨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까?”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로서 국민을 균열과 몬스터로부터 지키는 것은 의무지요. 괴수를 파괴하고 던전을 공략해 국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책임입니다. 일성 길드는 나라를 위한 사명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
자기자랑이었다. 듣기 쉽게 요약하면 ‘일성길드는 짱입니다. 너희를 보호합니다.’ 정도의 의미였다.
그 다음은 힐러 이하연의 인터뷰였다.
“일성 길드 이하연 양. 성녀(SS) 특성을 가진 걸로 큰 화제인데요. 던전에 들어온다면 무슨 생각부터 하십니까?”
―다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과연, 선의(S) 특성을 지닌 헌터답게 고운 마음씨입니다. 어린 나이에 A급 헌터가 되었고, 이미 수많은 던전을 공략하며 활약하고 계신데,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신 겁니까?”
―사람마다 역할이 있습니다. 제게 주어진 특성이 성녀(SS)라면, 거기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겠죠. 여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세계를 보호해주세요]라고. 절 믿고 내려주신 축복, 말씀대로 이행할 따름입니다.
······.
이하연 인터뷰는 개인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연예인보다 인기 있는 여자다. 이하연은.
개인 성격도 온화하며, 소설에서 나오는 성녀처럼 착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다.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헌터였다. 방송 분량을 위해 길고 긴 인터뷰를 마친다.
다른 길드원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짐꾼들도 가볍게 인터뷰한다.
우리에겐 골렘던전을 앞두고 하는 각오 따윈 물어보지 않았다.
“최강 길드 일성과 던전공략을 함께하게 되었는데요. 일성 길드원을 만난 소감이 어떠십니까.”
내게 짧은 질문이 들어왔다.
―최고입니다. 평소 일성 길드를 선망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보니 더 멋지네요.
내 대답이 맘에 드는지 금나영은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D급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일성 길드를 보기 위해 짐꾼으로 지원하셨다 들었습니다. 꿈이 이뤄져서 기쁘신가요?”
―예. 짐꾼으로나마 일성 길드를 보게 되어 행복합니다.
금나영은 만족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일성길드에 대한 찬사가 나올 때까지 진행할 인터뷰였다. 그들을 위한 촬영이니, 나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미리 해줘서 빨리 인터뷰를 끝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한 번씩 인터뷰를 진행할 겁니다. 가급적 몬스터를 잡을 땐 카메라가 있는 데서 잘 보이게 잡아주시고, 방송에 부적절한 언행을 삼가주세요.”
촬영을 위해 지켜야할 사항 몇 가지를 공지했다.
세팅을 마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던전공략에 임했다.
나는 일단 얌전히 있었다. 우선, 황종태를 사냥하고 이하연과 대화할 기회를 찾는다.
*
골렘던전은 3층짜리 C급 일반던전이다. C급, D급의 골렘들이 일반 몬스터로 나오는 던전으로, 1층 공략은 아주 무난하게 끝났다.
이들은 일성길드의 헌터들. 이런 던전을 공략하는 데엔 아무런 위기도 겪지 않는다.
“촬영은 잘 되갑니까?”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는 전사 황종태. 던전 1층 공략이 마무리되자 공략대에 휴식시간을 부여한 채, 기자한테 와서 물었다.
“촬영이요? 잠깐만요.”
김수로는 카메라를 통해 녹화영상을 돌려보고 있었다. 지워야 할 영상, 방송에 꼭 들어갈 영상, 추가해야 될 장면 등등을 고려하며 촬영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는지 따져본다.
판단을 마친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영상 완성도가 영 만족스럽지 않았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곧바로 물어보는 황종태. 카메라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드는 김수로와 눈을 마주친다.
“별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다만?”
“좀 지루해서 말입니다.”
“지루하다고요?”
“골렘을 잡는데 아무런 위기가 없지 않습니까. 일성길드의 대원들이 워낙 강하고, 골렘은 부실하니. 이거 그냥 어른들이 방망이를 잡고 깡통을 깨는 듯한 영상입니다.”
김수로가 투덜거렸다.
“그럼 안 되겠습니까?”
“음... 단적으로 설명하면, 이하연 양이 힐링을 쓸 기회조차 한 번 없었습니다. 축구로 따지면 골키퍼가 상대방의 슛을 막을 기회조차 없었죠. 일방적인 승리입니다. 너무 단조로운 영상이라 자칫 전부 편집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흠.”
황종태는 이제야 김수로가 말한 문제점을 깨닫는다. 일방적이고 간단한 승리가 계속되면 영상 내용이 없다. 촬영을 계속해도 남는 게 없었다.
“기껏 C급 던전에 들어왔는데 골렘이 강한 게 전혀 부각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영상을 봐도 일성길드원이 얼마나 강하고 위력적인지 느끼지 못하겠죠. 상대가 약하니 말입니다.”
김수로는 좀 더 스릴 있는 영상을 원했다. 싸움에 긴장감이 있어 보다 일성길드원의 입장에 몰입할 수 있고, 골렘을 부수는 데에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그래야 다큐영상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일성길드가 위기를 겪어야 한단 말입니까?”
“예.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하지만 골렘 따위를 상대로 이 친구들이 고전할리 없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게 문제였다. 일성길드는 던전공략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들어왔고,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니 골렘을 상대로 위기가 생길 리 없었다.
“적어도 이하연 양이 힐링 한 번이라도 쓰게 됐음 좋겠는데요.”
김수로가 흘러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다큐영상의 핵심은 이하연이다. 그녀의 활약이 돋보일수록 영상은 성공이다. 영상을 보러 온 사람 중 반 이상은 이하연을 보러왔을 터.
인기스타인 그녀의 분량이 많을수록 좋았다.
“이하연이 힐링을 써야 한다고? 그럼 누가 다쳐야 되지 않나.”
“예. 뭐,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하하.”
김수로가 눈을 가늘게 뜨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
잠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흘러 지나간다.
“너. 누가 다쳤으면 좋겠어?”
황종태가 김수로에게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었다.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묻는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요. 아무리 촬영이 중요하겠기로서니, 사람이 다치는 걸 원할 리가 있겠습니까?”
김수로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했다. 입으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눈으로 묘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누가 다친다. 죽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예. 죽게 된다면 큰일이죠. 그럼 오히려 방송에 나가기 힘들어질 겁니다.”
“딱 이하연이 치료할 수 있을 정도. 부상까지가 적절하겠군.”
“하하······.”
황종태는 누군가 다칠 상황을 고려하고, 김수로는 그의 생각을 말리지 않는다.
“너. 원래 이런 식으로 촬영을 했었나?”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영상에는 항상 자극적인 소재가 많지. 영상을 조작해왔냐는 말이다.”
“에이, 조작이라니. 무슨 섭한 말씀을. 요리에 조미료만 가한 정도지요. 이 업계 제작자들 다 그럽니다.”
김수로는 꽤나 유명한 기자였다. 그가 촬영한 영상은 특종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으며, 어디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사건을 기가 막히게 찾아왔다.
황종태는 그 이유를 알아챈다.
그는 상황을 유도하는 기자였다. 사건이 없으면 사건이 발생하도록, 문제가 없으면 문제가 생기도록. 시청자들의 관심거리가 될 만한 영상을 인위적으로 만든다.
“협력해 주겠다. 위기 상황을 만들어주지.”
“어라...? 그래도 되는 겁니까? 당신은 공략대의 대장이 아니십니까?”
“일성 길드의 팀장으로서 홍보도 책임져야 되지. 영상이 잘 되면 그건 결국 일성 길드를 위한 일이야. 안 그런가.”
“하하. 맞는 말씀이십니다.”
둘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의논하기 시작했다.
공략과 무관한 촬영을 위한 계획이 따로 생겨났다.
*
골렘던전 2층.
여기는 특이하게도 폭발형 골렘이 나온다. 보통 골렘은 마력의 원천인 마핵을 부수면 힘을 잃고 쓰러지기 마련인데, 이 폭발형 골렘은 그냥 쓰러지지 않고 폭발을 일으킨다.
마핵 자체가 터지기 쉽게 조작되어 일정 충격을 가하면 마력폭발을 일으키는 것이다.
골렘의 잔해가 사방으로 튀어 올라 수류탄이 터지는 것처럼 위험하다. 이 골렘을 잡을 땐 방어를 단단히 하고 원거리에서 잡는 게 상책이다.
2층의 어느 갈림길. 황종태는 인원을 나누었다.
“두 팀으로 나눈다. A팀은 왼쪽, B팀은 오른쪽 길로 돌입한다. 각 구역 공략이 끝나면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난다. 연락은 무전기로 하고. 알겠나, 대원들?”
“예!”
공략대원들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일성 길드는 위계질서가 잘 잡혀있었다. 황종태의 명령에 의심 없이 따른다.
“A팀. 이하연, 맹종익, 박우현······. 나머지는 모두 B팀이다.”
A급 힐러와 B급 헌터들은 A팀에 속했다.
황종태와 나머지 헌터들은 B팀이다.
“대장님. 그럼 B팀 전력이 너무 약하지 않습니까?”
박우현이 손을 들어 말했다. A팀에 B급 이상의 모든 헌터들이 속하면 B팀의 상급 헌터는 황종태 한 명일 뿐이다. 전력 비대칭이 생겼다.
“여긴 내가 있잖아. 뭐, 불만이라도 있냐?”
“아닙니다. 불만이라뇨. 그냥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하긴, 대장님이 계신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박우현은 혹시나 하는 의심을 풀었다. 황종태는 B급 전사로서, 그가 방어를 단단히 한다면 B팀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골렘들과 싸우는 게 크게 위험하진 않았다.
“그럼, 빨리 일 끝내고 와라.”
황종태는 A팀을 왼쪽 길로 보냈다.
나는 B팀. 황종태와 같은 팀에 속한 짐꾼이었다.
황종태는 B팀의 전열을 정비하고 오른쪽 길로 나섰다.
······.
네모난 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무 마리의 폭발형 골렘들이 서있었다.
1m 크기의 공처럼 생긴 몸통에 다리 두 개. 수정구로 이루어진 눈은 몸통 한 가운데에 박혀있다.
저 눈으로 적을 인식하고, 다리 두 개로 뒤뚱뒤뚱 뛰어 몸통을 부딪쳐 공격한다. 골렘 자체의 공격력은 약하지만 문제는 마핵을 건드려 터트렸을 때다. 가까이서 마력폭발을 일으키니 온몸이 흉기처럼 변해 사방으로 비산한다. 파편에 까닥 잘못 맞으면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금강]
황종태와 다른 탱커들이 방패를 세우고 방어스킬을 쓰며 앞장섰다.
앞에서 골렘들의 폭발을 막아내려 한다.
뒷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앞쪽에 형성된 수비진이었다.
나는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굳이 싸우지 않아도 전투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내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기서 이용되는 스킬과 행동을 모두 복제할 수 있으니.
게다가 내가 짐꾼이라 싸우면 안 되기도 하고.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기자놈이 주변에서 얼쩡댄다.
김수로.
이 녀석의 카메라는 정면의 전투지역이 아닌 뒤편의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짐꾼과 D급 헌터들을 향해.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우리를 뒤쪽에 한데 뭉쳐놓았다.
쿵······!
콰앙······!
전투가 시작된다.
헌터들이 원거리에서 발사한 마력에 맞은 골렘들이 터졌다.
궁수가 화살을 쏴서 골렘의 마핵을 맞추고, 전사들이 창을 던져 핵을 뚫는다. 탱커들이 방패를 세워 골렘의 파편을 막았다.
전투는 잘 진행되고 있는데, 황종태가 자꾸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D급 헌터들과 짐꾼이 모여 있는 곳.
그가 마인인 걸 알기에 의심부터 들었다.
옆을 쳐다본다.
김수로의 카메라는 계속 이쪽을 향하고 있다.
‘설마······?’
이쪽에서 뭔가가 발생하나.
그러지 않고서야 둘 다 여기에 집중하고 있을 리 없다.
그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펑······!
“이런.”
거센 폭발과 함께, 황종태가 폭발형 골렘 한 마리를 놓쳤다.
그는 방패를 비껴 골렘을 이쪽으로 내몰았다.
투다다닥!
두 다리로 열심히 뛰어서 짐꾼과 D급 헌터들을 향해 달려오는 폭발형 골렘.
카메라는 이곳으로 완전히 고정되고.
황종태는 골렘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허리에서 창을 빼내들었다.
창을 내던져서 골렘의 마핵에 꽂는다.
우리 앞에서.
‘저 자식이······.’
판단은 빨랐다.
나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짐꾼용 방패를 앞에 두고, 방금 탱커들로부터 복제한 스킬을 사용했다.
[금강]
콰앙! 퍼버버버벅!
눈앞에서 터진 대부분의 골렘파편을 견뎌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