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사전 작업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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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3개월이 지났다.
나는 몸을 단련하는 걸 최우선으로 하였다. 마나가 중요하지만, 그 전에 확실히 해둬야 할 건 내 신체능력부터 끌어올리는 거다. 회귀 전 A급 헌터 시절과 비슷한 수준으로 훈련 일정을 맞추었다.
체력 단련, 근력 운동, 민첩성 향상 프로그램을 꾸준히 실시했다.
지금.
일과처럼 한강변 10km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헥, 헥······ 오, 오빠······ 잠깐.”
재희가 헐떡이며 쫓아오다가 가냘프게 소리 낸다.
“잠깐만 기다려봐······ 헥, 헥. 나 죽겠어.”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버린다. 팔을 쭉 늘어트리고 혀를 내빼는 게 탈진한 개구리 같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달린지 30여분. 재희의 체력을 고려할 때 많이 뛰긴 했다.
“한 바퀴 돌고 올 때까지 잠깐 쉬고 있어. 돌아오면 다시 뛰자.”
널브러진 재희를 두고 다시 뛰어가려 자세를 취했다.
“······오빠, 잠깐. 잠깐만.”
“?”
재희가 양손을 뻗으며 황급히 나를 말린다. 나는 고개를 돌려 동생을 쳐다봤다.
“이거 맞는 거야?”
“뭐가.”
“나 진짜 헌터 되는 거 맞아? 운동하는 거 맞는 거야?”
창백한 얼굴로 가쁜 숨을 내쉬며 나를 올려다본다. 흔들리는 눈빛에는 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의구심, 답답함, 회의감 등등.
3개월 전부터 나를 따라 훈련에 임하게 된 한재희였다. 교과서, 연습장, 문제집들은 다 방구석에 짱박아두고 운동기구를 사서 기초체력을 다지는 데 전념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됐는데 여전히 주구장창 훈련만 하고 있으니 불안감이 생기나보다.
“날 믿어. 넌 각성하게 될 거야. 그것도 유능한 헌터로, 그러니까 기초부터 튼튼히 다져놓자.”
마력을 다루기 이전에 몸부터 만들어야 한다. 강한 몸에 마나를 추가하면 그 효용이 배가 된다. 각성하기 전에 미리 운동하는 습관을 길러두는 편이 좋았다.
“내가 각성해? 각성 그렇게 쉽게 하는 거 아니잖아. 5,000분의 1의 확률이라며.”
재희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툴툴댄다. 아직 자기가 헌터가 된다는 걸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 온순한 성격이라 내가 시키는 대로 매일 끌려와서 훈련에 임하고 있긴 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 불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때가 됐네.’
재희를 강제로 각성시킬 시기가 됐다. 자기가 헌터가 될지 말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운동에 집중하긴 힘들었다. 좀 무리를 해서라도 각성석에 노출시켜야겠다.
각성석은 일반인을 헌터로 각성시키는 특수한 마석이다. 마석에 마력을 주입하면 고유한 파장을 뿜어 숨겨진 힘을 일깨우는데, 마석 자체가 워낙 희귀하고 가동하는 데 드는 마력의 양도 많아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진 않는다.
있는 집 자식들이 각성센터의 의무검사 전에 각성자인지 미리 테스트 해보는 정도. 1회 사용에 2,000만 원이나 들어간다.
“각성하러 가자.”
“응? 무슨 수로?”
“각성석.”
각성석 얘기가 나오자 재희의 눈이 동그래진다.
“각성석? 내가 아는 그 각성석? 오빠 미쳤어? 무슨 돈으로 그걸 쓰려고 그래?”
스무 살이 되면 국가가 알아서 각성검사를 해주는데 각성석을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부유하지 못한 집안은 더 그렇다.
“내가 보채서 그래? 아냐, 내가 잘못했어. 운동 열심히 할게. 운동 열심히 하면 자연 각성하거나 2년 후에 각성검사로 헌터가 되겠지. 그러니까 각성석은 사용하지 말자.”
재희가 애걸한다. 섣부른 각성석 검사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는 사회의 인식이 팽배하다. 5,000분의 1의 확률을 믿고 2,000만 원짜리 검사를 하는 건 복권보다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작은 두 손으로 내 팔을 꼬옥 붙잡고서 말렸다.
“괜찮아. 넌 반드시 각성하니까.”
난 그러건 말건 담담하게 말했다. 재희가 각성하는 건 당연한 사실이고 시기도 마침 괜찮았다. 운동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기본적인 루틴을 소화한다. 마력을 배울 때가 되었다.
“돈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우리 당장 생활비도 빠듯하잖아.”
아직 내가 헌터일로 돈을 많이 벌어온 건 아니다. E, F급 균열 몇 개를 클리어한 정도. 기초를 다질 생활비만 충당했다. 재희는 각성석 값을 걱정한다.
“아는 길드가 있어. 거기서 해결하면 돼. 이번 주말에 각성하러 가자.”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가 됐다. 몸의 컨디션은 충분히 끌어올렸다. 슬슬 길드에 가입하고 재희의 각성문제도 해결한다.
“오빠······ 그거 알아?”
“?”
“오빠 많이 변했어.”
재희가 만류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나를 보며 허탈하게 말한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뭔가 거침이 없어졌다고 할까. 되게 사나워졌어.”
“······.”
“던전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해탈한 목소리. 그녀가 뭐라고 하던 간에 내가 눈도 깜빡하지 않을 걸 안다.
그런가.
재희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
하긴, 15년 전의 나하곤 많이 달라져 있을 거다.
방심하면 죽음이 찾아오는 세월을 견뎠으니 그렇지. 자비도, 망설임도 없어졌다.
“그래서, 싫어?”
재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재희가 뾰로통한 얼굴로 시선을 피한다. 오빠는 거칠어졌다. 자신감이 넘치고 뭔가 무서운 눈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상당히 낯설긴 하지만 한편으로 믿음직스러워진 면도 있다.
오빠는 오빠다. 자신을 보는 친근한 눈빛은 변하질 않았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조금 달라져도 괜찮았다.
“알았어.”
조심스레 올려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주말 아침. 우리는 길드 건물에 들어왔다.
“되게 작은 길드네. 헌터길드하면 다 으리으리하고 무지막지하게 클 줄 알았는데, 여기가 오빠가 아는 길드야?”
재희가 바닥타일에 발을 디디며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길드는 작았다. 오피스텔 건물에 끼어있는 조그만 사무소였다.
“응. 길드 리테일. 지인들끼리 운영하고 있는 아주 작은 길드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답했다.
길드 리테일. 내가 21살 무렵엔 이렇게나 작았었구나.
지난 회차엔 28살에 들어온 길드였다. 현재 보고 있는 초창기의 길드는 정말 아담하기만 하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우리를 보고 직원 한 명이 물었다.
“예. 거래를 하러 왔습니다.”
“거래요? 어떤 거래?”
“각성석에 관한 거래입니다.”
“각성석이요? 아,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각성석 얘길 꺼내니 멈칫한다. 1,000만 원 이상의 거래다. 내선 전화기를 들어 길드장을 부른다.
······.
“길드장님이 자리에 안 계시네요.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시겠습니까.”
연락이 되지 않자 주변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묻더니 우리를 길드 대기실에 안내한다. 소파에 앉히고, 30분만 기다리면 될 거라고 전했다.
직원이 떠나고, 나는 커피를 뽑아 마셨다. 재희에게도 하나 뽑아 건네준다.
“여기는 뭐하는 데야?”
목을 쭉 뺀 채 호기심어린 눈으로 사방을 살펴보던 재희가 묻는다. 사무실에 다양한 복장으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특이한 행색에 시선을 빼앗긴다.
“헌터일 중개업소야. 여러 잡다한 일을 도맡지만, 메인 업무는 용병관리지. 던전을 클리어할 인원을 뽑아 균열에 보내는 일.”
중개업소는 균열과 헌터를 연결한다. 주로 길드 없이 프리로 일하는 헌터들을 관리한다. 던전관리센터나 대형 길드로부터 일거리를 받아 무소속 헌터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헌터의 신원을 보증하고, 사망사고 기타 던전에서 일어난 불상사를 책임진다. 헌터계의 하청업체라 볼 수 있다.
“아. 그럼 저 사람들은 용병이야?”
재희가 갑옷, 로브 등을 입은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각성석도 팔아?”
“응.”
“중개업소라며.”
“여긴 좀 특이해. 중개업소긴 한데, 길드장이 다른 사업도 병행하고 있지. 아이템도 거래해. 주로 비싼 아이템.”
“오······ 그렇구나.”
이곳의 길드장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유익현. A급 헌터.
대형 길드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중개업소를 하나 인수했다. 길드 이름을 리테일이라 정하고 던전 공략, 아이템 판매, 중개업 등 다양한 사업을 시작한다. 곳곳의 유능한 인재들을 스카우트하고 발전적이고 혁신적인 운영을 통해 5년 후엔 그럴듯한 중형 길드로 키워낸다.
나는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일성 길드에서 잘리고 여기에서 일한다. EX급 게이트가 터질 때까지, 유익현은 좋은 파트너였다. 그가 몬스터에게 죽은 이후 내가 길드를 이끌게 된다. 아포칼립스 시절의 동료들을 대부분 여기서 얻었다.
이전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아까 그 직원이 우리를 사무실로 호출한다.
똑똑.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니 포마드 머리의 중년인이 마법사 한 명과 싸우고 있었다.
“이 멍청한 녀석아! 거기서 파이어 블레이즈를 쓰면 어떡해. 어차피 다 잡은 몬스터인데, 시체를 불태워버리면 뭐가 남냐, 엉?”
“그래도 마석은 멀쩡하지 않수. 아, 마석만 남기면 되는 거 아녀?”
“이 자식이, 그렇게 말을 해도······ 야! 마법사인 너는 마석만 챙기면 되겠지만 몬스터는 살이니, 뼈니, 가죽이니 다 팔아먹을 수 있는 물건이란 말이다! 네가 다 태워버려서 손해가 얼마야!”
“아 또 잡으면 되지. 또 잡으면 될 겁니다?”
큰 소리로 다그치는 중년인. 마법사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찌르며 잔소리를 하고 있지만 마법사는 전혀 알아듣는 기색이 아니다. 빈정대며 어깨를 으쓱인다.
“말본새하고는, 너 진짜 뒤지게 맞아볼래?”
“어? 던전 밖에서 헌터끼리 전투는 금지인 것 모르우? 양측의 동의하에, 대련실에서, 보호구를 착용해야 싸울 수 있는 것 모르시나?”
“모르겠냐. 이놈아.”
중년인은 규정이건 뭐건 무시하고 한 대 때릴 기세다. 마법사의 태도를 보니 그래도 싸다.
“저, 길드장님.”
직원이 큰 목소리로 중년인을 부른다.
“손님 왔습니다.”
사무실 내 분위기를 깨고 이목을 집중시킨다.
“누구? 아. 각성석을 거래하러 오셨다는. 알았네. 자넨 이만 물러나보게.”
유익현이 우리를 보고는 직원을 돌려보낸다. 마법사를 사납게 노려본다.
“야. 너 저기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이따 마저 얘기하자.”
“네~ 네.”
마법사에게 지시했다. 마법사는 듣는 둥 마는 둥 맘대로 하라는 시늉을 하고는 소파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마법사 모자를 내려 얼굴을 가리고는 빈둥댄다.
유익현은 그를 노려보다가 우리에게 고개 돌렸다. 정중하게 꾸벅 인사한다.
“안녕하십니까. 리테일 길드장 유익현입니다. 이제 막 던전공략을 마치고 온 터라 자리가 어수선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손님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인 점. 죄송합니다.”
이게 원래 유익현이다. 마법사 때문에 흥분해서 막말을 해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점잖고 예의바른 사람이다. 한참 어린 나이대의 우리를 대하면서도 깍듯이 격식을 차린다.
나는 꾸벅, 마주 인사했다.
“각성석을 거래하러 오셨다고요.”
나와 재희가 책상 앞에 앉자 본론을 꺼냈다.
“예. 강제 각성을 하러 왔습니다.”
“그렇군요. 가격은 알고계신 겁니까.”
“네.”
“등급은 어느 걸로 할 겁니까. 1등급, 2등급, 3등급이 있는데.”
“1등급입니다. 그 전에······.”
나는 말끝을 흐렸다. 각성석은 효과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1,2,3.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다.
“유익현 길드장님, 확실히 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일반적인 형태의 거래가 아닙니다.”
“?”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자 유익현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본다.
“혹시 길드원 필요하지 않습니까?”
리테일 길드는 지금 한창 정규 길드원을 모집하는 중이다. 유익현은 야망이 큰 남자이며 최고의 길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인맥을 동원해 여기저기서 인재를 포섭하는 상황.
난 이것에 관해 물었다.
“필요는 합니다만······?”
대답은 곧바로 하지만 왜 이런 걸 갑자기 묻느냐는 태도였다.
그러면 됐다. 첫 번째 거래 조건은 맞는다.
“제 동생이 강제 각성을 할 건데 말입니다. 얘가 S급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길드가입을 조건으로 각성비를 면제해주시겠습니까.”
“?”
“?”
“?”
유익현, 한재희, 마법사 모두가 내 말에 의문부호를 그렸다. 뜬금없는 제안이 뜬금없는 타이밍에 튀어나왔다.
“투자를 해주시죠. 얘는 S급 헌터로 성장할 겁니다. 리테일 길드에서 믿고 키워주신다면 그 이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한재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
“저건 무슨 헛소리야.”
유익현은 할 말을 잃은 표정이고 소파 구석에 앉아있던 마법사는 모자를 치켜 올려 나를 구경하며 황당한 웃음을 흘린다.
“생각해보세요. S급 헌터입니다. S급 헌터, S급 헌터가 어디 흔합니까? 대한민국 3대 길드도 몇 명 보유하지 못하고 있죠. 리테일 길드가 최고의 길드가 되려면 S급 헌터가 누구보다 절실할 겁니다.”
“······.”
“당신이 맨날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죠. SS급 헌터 한 명, 혹은 S급 헌터 3명. 이게 최고의 길드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제가 그 중 한 명을 끼워놓겠습니다.”
유익현의 당황을 넘어 경악한다.
나는 그가 최고의 길드를 목표로 하는 걸 알고 있고, 그걸 위해 필요하다 생각하는 바를 정확히 짚어냈다.
각성검사를 해보기도 전에 S급 헌터가 된다느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지만 나름의 근거는 갖추고 있다.
놀랍게도 내가 준비한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으로 할 소리는 더 어이없고 광대하다.
“제가 원하는 거래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내가 하는 소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갑작스런 제안과 논리의 비약. 대꾸하자니 떠벌려놓은 말이 많아서 어디서부터 짚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더 치고 나갔다.
“이 길드를 제가 세계 최고의 길드로 만들겠습니다. 대표 자리를 넘겨주시죠.”
당당히 길드를 내놓으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