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220화 (220/222)

220화

선수를 친 것은 송하린.

아니, 마니였다.

카아아앙!

“죽어라, 괴물 같은 놈!”

“하하하! 신조가 아니었으면 진작 늑대에게 삼켜졌을 남매가 건방을 떨다니.”

화르륵!

“크으윽…….”

송하린이 주르륵 밀려났다.

상대는 이제 로키인지 수르트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불길을 덮어쓰고 있었다.

그 끔찍한 고열이 당장이라도 성검을 녹이고 송하린의 목숨을 취할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이쪽은 3명이었다.

“으아아!”

콰아앙!

최별의 검이 로키의 한쪽 팔을 때렸다.

휘두를 때는 반드시 베어 버리겠다는 마음을 품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로키는 가소롭다는 듯이 송하린을 짓이겨 마무리하려 했지만, 때마침 성진이 나섰다.

서걱!

“크윽…….”

불타는 대검을 휘두르던 로키의 팔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절단된 로키의 팔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그의 새로운 팔이 돋아났다.

그리고 절단된 팔을 새로 돋은 팔이 붙잡았다.

절단된 팔은 아직도 꿈틀거리며 로키에게 대검을 건네주었다.

로키는 축 늘어진 그 팔을 물어뜯었다.

으적.

으적.

“괴상한 짓거리를 하는 건 여전하네요, 로키.”

“솔, 신이란 전부 미치광이들뿐이야. 저 새하얀 괴조나 나처럼 위대한 신마저도.”

카아앙!

성진의 검이 로키의 대검을 후려쳤다.

그 안에 담겨 있는 힘이 로키의 심장을 철렁하게 했지만, 그것이 로키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하…… 죽는 줄 알았네. 물론, 죽을 일은 없겠지만. 이게 다, 아직도 인간의 버릇이 남아 있어서 그래.”

“…….”

“내 말이 무슨 뜻인 줄 알지?”

최별과 송하린이 이를 악 물었다.

후우웅.

그들의 눈에서 각기 빛이 뿜어 나왔다.

검은빛과 주홍빛.

그에 호응하여 그들의 검에서도 같은 색의 빛이 뿜어 나왔다.

화르륵.

파지직.

“귀찮은 짓을…….”

으지지직!

로키의 등에서 두 개의 거대한 팔이 날개처럼 튀어나왔다.

콰아아앙!

그 팔은 원래의 팔과는 다르게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며 마치 로키의 팔이 아닌 것처럼 이질적이었다.

카아앙!

“으윽…….”

송하린의 검이 로키의 손에 붙잡혔다.

퍽!

“커억…….”

최별은 송하린을 구하려다 다른 팔에 복부를 얻어맞고 날아가 건물에 부딪혔다.

콰아앙!

로키는 송하린에게서 검을 빼앗고 그녀를 후려쳐 날려 버렸다.

“크헉…….”

콰직!

다행히 그녀에게 이어지는 공세는 성진이 적절할 때 나서서 차단했지만, 쓰러진 그녀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정신이 혼미한 상태 같았다.

그녀들이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건 단순히 로키의 타격에 당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로키가 비웃음을 흘렸다

“킥…… 신성이 없으니 어질어질한 거겠지? 어이, 신조.”

“…….”

로키가 송하린의 천마도를 보다가 아무렇게나 던져 주위의 건물에 박히게 했다.

콰직!

“대체 이따위 놀음은 왜 하는 거지?”

“……뭐?”

“너도 알고 있었을 텐데? 힘을 쪼개면 날 이길 수 없다는 걸.”

로키의 말에 모두 침묵했다.

로키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이런 열정 놀음은 내 취향이 아니라고. 뭐하러 반쪽짜리 신들과 힘을 나눠 가지고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지게 한 거지?”

“……있으니까.”

“뭐?”

“이렇게 해야 너를 없앨 수 있으니까.”

“하!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지? 저런 장난감 같은 칼들, 그리고 내가 입김 한 번 불면 사라질 병정들. 도대체 네 계획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허망한 것들로 나에게 맞서는 거지?”

로키의 말이 맞았다.

그는 홀로 강했다.

기세는 태산과 같았고 그가 일으키는 불길은 세상 전부를 태울 수 있었다.

반면, 성진의 힘은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당장은 신성을 일으켜 로키에게 맞설 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신성이 다하는 순간, 세계의 종말이었다.

아니, 로키는 힘이 닿는 한 모든 세계의 문을 열어젖힐 것이고 그곳을 불태울 것이다.

그러니 온 우주의 종말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로키는 성진의 흔들림 없는 눈을 보고 말을 이었다.

“신조, 나는 너에게 감화됐다.”

“무슨 소리지?”

“이 끔찍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나에게 맞서는 너의 모습이 내 자비를 이끌어 냈다. 사실 나는 너를 동수로 인정하는 바다. 그러니 함께 새로운 세계를…….”

“헛소리.”

“뭐?”

“헛소리할 기력이 있는 걸 보니 여유가 넘치는군, 광대.”

로키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웃었다.

“큭…… 큭큭…… 들켰네.”

“왜 그런 시시한 말을 하는 거지?”

“그야…… 그게 더 재밌잖아? 네가 혹시나 하는 기대라도 품는 모습이 너무 즐거울 것 같아서 말이야.”

“악질이군.”

“난 애초에 이렇게 생겨 먹은 신이야. 어디 날 막아 봐라.”

스으윽.

콰아아아아아아아!

로키가 신성을 개방했다.

광대의 신성이 아닌 종말의 수레바퀴에 담긴 신성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살려 줘어어.

-누가, 구해 줘.

그의 주변으로 거센 기운이 일어났다.

누군가의 원혼처럼 일그러진 이목구비의 형상이 나타났다.

종말의 수레바퀴가 깔아뭉갠 영혼들이었다.

“듣기 좋아, 정말. 그렇지 않아?”

“…….”

“아, 그거 알아?”

로키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싸움은 어차피 이긴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뒷전이었고 마치 성진의 저 무표정을 깨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듯이 성진을 동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신아름……이었나?”

“……무슨 말을 지껄이려는 거냐?”

“워, 워…… 흥분을 가라앉히고 끝까지 들어 봐. 네가 이렇게 나와 맞서는 이유는 애초부터 베르드 폴니르 때문이잖아, 맞지?”

“…….”

“어때? 내가 그녀만큼은 수레바퀴에서 해방해 준다면?”

이번만큼은 성진도 혹할 만한 제안이었다.

애초부터 그것을 위해 싸워 온 것이니까.

“……정말이냐?”

“하하하, 물론 네가 내게 패했음을 인정해야겠지.”

“그리고?”

“세계가 불타는 걸 가만히 지켜보도록 해.”

“…….”

성진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로키는 성진의 그 모습에 흡족했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광소했다.

“으하하하! 인간들아, 너희가 믿는 신의 추악한 모습을 봐라! 결국에 신조도 목적을 위해 너희를 이용했음을! 너희의 세계와 작은 새를 저울에 올려놓고 고민하는 저 모습을 좀 봐!”

비록 광대의 사정권에서는 벗어났지만, 그의 광소는 전장에 선 모두에게 들렸다.

이 모습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로키가 천생 남들을 조롱하기 위해 창조된 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신조의 군대가 일체, 동요하지 않았을 뿐더러 성진의 표정도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뭐, 뭐냐? 그만큼 너희는 신조를 믿는 것이냐?”

성진이 그를 비웃었다.

“날 믿기보단 널 믿지 않는 거겠지. 이 거짓말쟁이야.”

“…….”

“네가 그녀를 종말의 수레바퀴에서 해방해 준다는 얘기를 내가 믿을 거라 생각했나?”

“큭…… 큭큭…… 그래. 가장 먼저 짓밟아서 영원히 불타는 고통을 맛보게 해 줄 거였지. 그걸 지켜보는 네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서 말이야.”

“집어치워라, 로키. 결국, 너와 나의 싸움이다.”

성진의 말에 로키가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결국…… 너와 나의 싸움이지.”

화르륵.

다시금 그의 몸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철컥.

스으윽.

광대와 신조가 대화하는 와중, 회복을 마친 최별과 송하린이 일어나 다시 가세하려 했다.

하지만, 성진이 손을 한쪽으로 뻗었다.

멈추라는 수신호였다.

그는 그저 최별과 송하린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신조 님…….”

“안 돼! 형님…… 형님!”

송하린은 뭐가 불만인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천마도로 몸을 지탱하고 울었다.

상심한 그녀를 지켜보던 성진이 로키에게 치달았다.

팟!

콰르릉!

성진의 몸이 아까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몸에서 뿜어 나오던 순백의 빛도 더욱 찬란해졌다.

완전한 신성의 개방.

로키가 웃었다.

“하하! 그래야지! 전부를 걸어라!”

카아아앙!

화르르르르륵!

성진과 로키의 검의 충돌하는 순간, 주변 일대에 원형으로 불길이 퍼져 나갔다.

“피해! 다들!”

“물러나세요!”

에인헤야르들이 힘을 쓰자, 로키와 성진이 싸우는 곳 주변부에 몰려 있던 몬스터들이 대부분 쓰러졌다.

하지만 어떤 이도 그의 싸움에 가세할 수 없었다.

지금, 저 로키의 초열을 견디는 것은 성진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으니까.

그러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지지직!

콰지익!

콰아아아아앙!

성진과 로키가 충돌할 때마다 엄청난 충격이 전장을 강타했다.

이미 반쯤 부서져 있던 건물들은 완전히 무너졌고, 그 때문에 빌딩 숲의 한 가운데인 이곳에 허허벌판이 연출되었다.

콰아아앙!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나!”

퍼억.

“우웁…….”

성진의 초점 없는 눈에 기분이 나빠진 로키가 주먹을 내질렀다.

성진은 핏물을 입 밖으로 조금 내비쳤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카앙!

카아앙!

성진은 지금 기묘한 심정에 휩싸였다.

‘이제 전부 결정되는 걸까?’

그가 영원토록 싸워 온 전장이었다.

로키와 서로 검을 겨눌 기회를 가지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카아앙!

흐릿한 시야.

화르르륵!

로키의 겁화에 성진의 머리칼이 조금 그슬렸다.

이미 사방에 탄내가 진동했기 때문에 성진은 눈치채지 못했다.

화르륵!

치이익!

이번엔 그의 손목이 겁화에 닿아 문드러졌지만, 이번에도 그는 눈치채지 못했다.

로키는 성진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안색을 굳혔다.

그의 기세가 달라졌음에도 성진이 무표정으로 전투에 임했기 때문이었다.

카아아앙!

서로의 검은 너무 빨라 선과 선이 충돌하는 것처럼 보여 일순 낭창낭창한 대나무를 들고 싸우는 것 같은 착시를 가져왔다.

‘나는…….’

성진은 오로지 상대의 선을 지켜보며 그것을 맹렬히 쫓았다.

상대를 뿌리치기 위해서 상대를 쫓는 모순이었다.

‘나는 뭘 위해 싸워 온 거지?’

그는 일순, 모든 게 허무해졌다.

시작은 그저, 베르드 폴니르를 구하기 위한 것뿐이었는데 어쩌면 너무도 멀리 와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는 푸념을 했다.

카아앙!

-살려 주세요…… 흑…… 부탁합니다.

‘뭐지? 아…….’

종말 이후에서의 기억이었다.

서민혁의 슈트가 고장 나서 얼어 죽을 상황이었고 그가 자신에게 구해 달라고 애원하던 순간.

카아아앙!

-이민상이에요, 형.

-올빼밉니다.

이민상과의 첫 만남.

-……내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

미쳐 버린 강민교의 질문.

지금은 그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여전히 모르겠다.

카아아앙!

“날 봐라! 신조!”

로키는 성진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지 않자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카앙!

카아앙!

반면, 성진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불타는 장갑을 착용하고 내달리던 2명의 사내.

김석찬과 정차현 단장.

그리고 김정우의 모습까지.

-사람은 참 신기해. 안 그런가?

그는 말했다.

-한없이 약하고 비겁하다가도,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존재가 돼.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보라고, 신조! 날 무시하지 마라!”

로키의 공격이 거세어졌다.

카앙!

캉!

화르르륵!

-올빼미, 사람은 이럴 때 웃습니까?

휴머노이드 정유리의 질문.

-굳이 고르라면 웃는 쪽이 낫겠네.

인간 주인혁의 대답.

-그럼 웃겠습니다.

그리고 정답.

모든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으아아아아!”

콰아아앙!

로키의 대검이 크게 휘둘러지자 성진이 주르륵 밀려났다.

하지만 타격은 없었다.

곧, 그가 몸을 일으켜 로키에게 쇄도했다.

-우리가 반드시 이 세계를 거머쥘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스칸다에 머무를 당시에는 몰랐지만, 에인헤야르와의 대화였다.

스칸다라는 세계는 그가 많이 변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초모로 해 주세요.

많은 일의 시작.

그는 스칸다에 다녀온 후 몸을 회복했고 진심으로 웃게 되었다.

“신조오오!”

로키의 선이 거칠어졌다.

그것은 악마의 손톱처럼 거칠게 성진의 목숨을 노렸다.

반면, 성진은 버들잎처럼 그의 공격에 흔들릴지언정 위태롭지는 않았다.

로키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눈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내가…… 싸우는 이유…….’

그리고 성진의 선택.

-다녀와, 기다릴게.

그가 그토록 떠올리려고 했던 얼굴이었다.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는 와중에 떠오를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반가웠다.

-대신 꼭 와야 해. 알았지?

이때를 예견한 것이었을까.

신아름의 인사는 뭔가를 관통하는 듯했고, 지금에 와서는 성진의 가슴을 쓰리게 했다.

카앙!

카아아앙!

‘돌아가야 해…….’

카아아앙!

“으, 읏…….”

전투의 양상이 조금 변했다.

작은 변화였지만 동시의 큰 결과로 나아가는 시작점이었다.

지옥 불은 모든 것을 매캐하게 재로 만들었지만, 성진을 태울 수는 없었다.

이제는 성진의 선이 로키의 선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카아앙!

캉!

‘나는 돌아가야 해…….’

돌아가야 한다.

그녀의 곁으로.

진정 그가 머무를 곳은 그곳뿐이었으니까.

카아앙!

성진의 광채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신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징조였다.

하지만 오히려 성진의 선은 굳건해졌다.

그의 검은 집요하게 로키의 검을 쫓았다.

단 한 순간이라도 그의 검을 뿌리치기 위해서.

카앙!

로키는 점차 성진을 상대하기 힘겨워했다.

-구해 줘.

-누가 우리를.

수레바퀴에 희생당한 영혼들이 울부짖었다.

하지만 성진은 위축되지 않았다.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을 때, 그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그의 발자국 뒤로, 수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짐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이들의 기대와 믿음은, 자음 하나만 바꾸면 힘으로 뒤바뀌었다.

성진은 맹렬히, 더욱 맹렬히 로키의 선을 쫓았다.

로키의 선은 여전히 빨랐고, 성진이 마지막 힘까지 짜내더라도 그 선을 쫓지도, 뿌리치지도 못할 것 같았다.

로키가 그것을 간파하고 웃었다.

“내가 이겼다! 신…….”

그런데, 날개마저 사라진 성진의 기세가 일변했다.

정광을 내뿜던 성진의 눈이 구름이 가득 낀 하늘이 개듯 맑아졌다.

그의 흐릿하던 초점은 어느새 로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그는 더 이상 로키의 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서걱.

로키의 선은 방금, 뿌리쳤으니까.

그의 목이 사선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

사사삭!

사악!

로키의 몸에 실선 수십 개가 그어졌다.

“이, 이게…….”

철컥.

성진이 쓰러지듯 땅을 짚었다.

후두둑.

로키의 몸이 산산조각이 나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이긴 거야?”

“우리가 이겼어?”

“신조 님이…… 이겼어?”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사람들은 방금 벌어진 일을 계속 중얼거렸다.

“광대가…… 쓰러졌어…….”

“이제 우리가…….”

“자, 자유인 거야? 이제는…….”

분명 환호성을 내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했다.

광대를 쓰러트린, 이 싸움의 결말을 누구보다 원했을 성진의 표정이 어두웠기 때문이었다.

표정이 어두운 것은 성진뿐만이 아니었다.

송하린과 최별도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이, 이긴 거잖아?”

“다들 왜…….”

그때, 성진의 뒤에서 누군가 웃었다.

“푸흡…… 푸흐흐흐…….”

조각났던 로키의 몸이 차례차례 원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 상황이 너무도 즐겁다는 듯이 성진을 비웃었다.

“그래, 잠시의 승리를 만끽했나?”

“…….”

“말했잖아. 내가 수레바퀴를 삼킨 이상 나는 수레바퀴와 한 몸이야. 그리고 수레바퀴는 파괴할 수 없지. 그 말은…….”

로키가 불타는 뱀의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거야.”

“…….”

“뭐라고 말이라도 하지 그래? 지금껏 노력한 게 헛수고가 되었으니까. 큭…… 얼른 허탈한 표정으로 나를 즐겁게 해 줘!”

그런데, 성진은 로키의 기대와는 달리 무표정한 얼굴로 로키를 돌아보았다.

입을 굳게 다문 모습 어디에서도 당황한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있었어…….”

“……뭐라고?”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고.”

“……거짓말.”

콰르릉.

툭.

투둑.

성진의 말에 호응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로키에게 말했다.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찾고 있었지?”

“뭐, 뭐를…….”

“서울의 종말 거부 장치 말이야. 어디 숨겼냐고 물었잖아.”

로키는 성진의 말을 되짚어 보던 중, 뭔가를 눈치채고 경악했다.

“서, 설마…….”

“그 질문은 잘못됐어.”

“너…….”

“처음부터 숨기지 않았으니까.”

후우웅.

후우우웅.

하늘에서 빛이 깜빡였다.

오래전에 맞춰 둔,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성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서울의 종말 거부 장치는…… 나야.”

“아, 안 돼…….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줄곧 자신만만하던 로키가 뭔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떨었다.

그는 성진의 입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내뱉어질 때마다 흠칫 놀랐다.

그리고 마침내, 성진의 입에서 로키를 궁지로 몰아넣을 시동어가 내뱉어졌다.

“나는, 아직…… 종말을 거부한다.”

후우우웅.

성진의 몸이 하얗게 타올랐다.

종말 거부 장치를 사용할 때에 빛나던 손바닥의 문장이 그의 이마에 새겨졌다.

그의 몸에서 누군가가 그와 똑같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정말, 이 방법뿐이었습니까?

“응.”

-모든 것이 당신의 예상대로 흘러갔나요?

“……결과적으로.”

-……안타깝습니다.

로키가 성진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자 그에게 달려들어 멈추려 했다.

화르륵!

“멈춰!”

파아아앙!

“컥…….”

하지만, 성진의 몸은 마치 불가침의 존재라도 된 것처럼 하얗게 빛났고 로키의 접근을 거부했다.

성진은 비를 맞으며 하늘을 보았다.

그의 몸에서 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최후 프로토콜 ‘끝’ 시동.

“안 돼! 신조 님!”

“신조 님! 그만두세요!”

이 프로토콜이 작동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최별과 송하린은 손을 뻗어 성진을 말리려 했다.

“제발…… 제발 멈춰요!”

“다른 방법이…….”

성진은 눈을 감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신아름뿐이었다.

마치 억지로라도 그녀의 얼굴을 새기려는 것처럼 성진은 계속해서 그녀를 떠올렸다.

이제는 볼 수 없을 게 분명하니까.

“미안해…… 아름아.”

-대신 꼭 와야 해. 알았지?

성진의 눈가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액체가 흘렀다.

“……못 갈 것 같아.”

영원을 이어 온 종말 전쟁의 끝.

그것은 공멸(共滅)이었다.

신조는 광대를 감싸고 사라지려 했다.

종말 전쟁의 승패를 가를 네 번째 선택이었으며, 또한 처음부터 이 싸움의 끝을 예상했던 신조와 성진의 선택이기도 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저 먼 곳에서부터 하늘을 수놓는 빛기둥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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