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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217화 (217/222)

217화

성진의 곁으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본대에서 비쭉 튀어나온 성진의 곁에 모인다는 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신조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지금도 합류를 망설이던 영혼들이 빛기둥을 타고 그들의 무구로 향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합류하는 인원들이 점차 많아졌다.

“신조 님, 길을 뚫겠습니다! 저희가 시선을 끌 테니…….”

이제는 수십 명의 군집이 되어 버린 성진 일행.

성진은 도로에 박힌 검 3자루에 다가가기 위해 이들을 이용해야 했다.

“왜, 왜 돌아온 겁니까?”

“…….”

“기억을 지우면서까지 떠났는데, 왜 다시 돌아온 거죠?”

질문을 받은 이도, 곁에서 함께 질문을 들은 이들도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결국 누군가 성진의 말에 답했다.

“제가 떠난 날이 떠오르는군요. 다른 날보다 별이 잘 보이지 않던 날이었습니다.”

“…….”

“그때에는 종말 전쟁 따위는 지긋지긋해서 다시는 쳐다보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신조, 당신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인간을 이용한다고 생각해서였죠.”

답을 한 남자는 견장에 블랙 오팔 버튼이 붙어 있었다.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 사실이잖습니까.”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떠났던 그 날은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과거였습니다. 당신은 그 이후로도 계속 싸워 왔군요…….”

“…….”

“결국…… 제자리입니다. 당신이 아니고서야 인간과 함께 이런 미친 짓을 벌일 괴짜는 없으니까.”

스칸다와 오딘의 안배로 기억을 되찾은 에인헤야르들은 결국 다시 성진의 곁을 지키고자 했다.

“우리를 다시 받아 주시겠습니까?”

“이번엔 내가 잘할게!”

“다시 한번 해 보자고!”

성진은 지금도 무지갯빛으로 빛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합류하는 모습을 보았다.

폭풍은 처음에 하나였다.

하나는 둘이 되었고, 둘은 일곱이 되었다.

어느새 폭풍은 불어나 수백, 수천만의 폭풍이 되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마음을 다잡은 폭풍들만 남게 되었다.

건물의 옥상, 아스팔트 노면에서 그들이 소리쳤다.

“신조여! 우리가 다시 당신의 곁에 서도 되겠습니까?”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본 에인헤야르들이 소리쳤다.

“가자! 검에 다가가야 해!”

“검으로 향해라!”

에인헤야르들은 모두 스칸다에서 이름을 날리던 자들이었다.

기억을 지웠어도 강인한 영혼들은 결국 전장을 찾아 떠돌았었다.

그들이 신조를 위해 돌아왔다.

종말 전쟁의 와중, 세 번째 선택이었다.

***

“빌어먹을, 그 자식들이 돌아온 거군.”

“로, 로키 님! 수르트가 해낼 수 있을까요?”

“어떨 것 같아?”

“아마도…….”

“그래, 솔직히 반반이야. 신조의 노림수가 따로 있다면 백이면 백 수르트가 패하겠지만 말이야.”

로키의 곁에서 시중을 들던 사도가 그에게 물었다.

“하면, 지금이라도 수르트를 돕는 게…….”

“내가 왜?”

“네? 하지만 수르트가 패할 수도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내가 원하는 건데 뭣 하러?”

“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이해를 못 하네. 수르트를 내가 왜 도와줘야 하는데?”

“하지만 수르트는 우리의 우군이…….”

“하! 우군은 무슨…….”

로키는 시종을 귀찮은 듯이 쳐다보다가 덧붙였다.

“저 불덩이 놈도 속셈이 있어서 나와 함께하는 거야. 비즈니스 관계라고 하면 적당하겠군.”

“그렇더라도 이러다간…….”

“저 지독한 신조부터 수르트까지 치고 박고 싸우다 공멸하는 게 나한테는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지.”

“그, 그렇군요.”

“하지만, 수르트는 멍청해. 아무래도 창조주가 힘을 준 대신 지혜를 앗아간 것 같아. 뭐, 하긴…… 종말의 수레바퀴에 기생하는 놈이니.”

“수르트가 종말의 수레바퀴에 기생한다는 말씀은 처음 듣습니다.”

“수르트는 늘 종말과 함께해, 자유의지를 가진 나와는 달리 수레바퀴와 운명을 같이하지.”

시종은 로키의 설명을 듣다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어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종말의 수레바퀴가 파괴되면 수르트 또한 소멸하는 건가요?”

“너…… 그 말 좀 거슬리네?”

“아! 죄, 죄송합니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을 했습니다.”

종말의 수레바퀴가 파괴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종말의 수레바퀴는 로키와 운명을 같이했으니 그것이 파괴당한다는 가정은 로키가 신조에게 패배할 거라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만약에 수르트와 신조의 싸움에서 신조가 승리한다면…… 상황이 안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내가 수르트보다 약하니까? 신조가 수르트를 이기고 나에게 온다면 내가 패할 테니까?”

“그, 그건…….”

“됐어.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그리고 어차피 너도 곧 죽을 테니까 내가 기분이 나쁘다고 죽여서야 쓰나?”

사도는 어차피 죽음이 예정된 자였다.

로키의 수하들 전부.

신조의 군대를 막기 위해 목숨을 바쳐야 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거 착각이야.”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수르트보다 약할 거라는 그거 말이야.”

“…….”

로키가 뒤를 흘겨보다가 곧 누군가를 찾았다.

“이봐, 준비됐어?”

“거의 끝나 갑니다.”

“여기 넘어온 이후로 계속 준비한 거 아니었어? 그놈에 거의 끝나 갑니다는 일주일 전부터 들은 것 같은데…….”

“실망을 안겨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이제 곧 완성됩니다.”

“그래, 효과는 어떨 것 같아?”

“이걸 사용한다면 로키 님의 자손의 유전 형질뿐만 아니라 능력 전반을 다루시게 될 겁니다.”

“흐흐흐, 앙그르보다는 내 마음에 차진 않았었지만 끝내주는 힘을 후대에 물려줬지. 자식들은 내 자랑이야.”

로키는 신들의 황혼이 닥쳐오기 이전에, 앙그르보다라는 거인을 부인으로 맞이했었다.

그 후,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각기 펜리르, 요르문간드, 헬이었다.

사도들은 로키가 방금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자식들을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단연코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경멸했고 어떻게든 이용할 생각뿐이었다.

로키가 지시한 연구를 도맡은 사도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데…… 이렇게 억지로 유체의 힘을 그러모으면 펜리르 님과 요르문간드 님의 신성 회복에 타격이…….”

“그건 네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네. 알겠습니다. 곧 준비가 끝나니 바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도는 물러나며 생각했다.

자식들이 영겁의 시간 동안 부활을 위해 회복한 힘을 거리낌 없이 앗아가는 로키가 과연 자식들을 아끼는 것인지.

또한, 어떤 괴물이 되려 하기에 자식들의 힘까지 손을 대는지.

물론, 그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기에 맡은 바 일만 할 생각이었다.

***

3자루의 검은 이제 성진의 눈에도 보일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분명 멀리 있진 않았지만, 수르트의 방해 때문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팟!

파팟!

전장의 형국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끝을 모르고 합류하는 에인헤야르 덕분에 막기에 급급하던 본대가 앞을 향했다.

“길을 뚫어라! 앞으로 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다들 달려!”

단단하던 방패가 일순간 창이 되어 일직선으로 뚫고 나가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아아아!

“가라! 다크 초코 브레스!”

화아아아아아악!

비룡이 볼을 부풀렸다가 화염을 뿜었다.

끄아아!

다른 몬스터들은 그 화염에 휩쓸렸지만, 유황으로 빚은 인간들은 비룡의 숨결에도 멀쩡했다.

비룡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갸르릉 하며 저공비행을 했다.

후우웅.

콰아아앙!

비룡의 날 선 꼬리가 용암 인간을 후려쳤고 그 여파로 용암 거인 몇이 반으로 잘려 허물어졌다.

“잘했어, 쵸코!”

한편, 전장에는 그리운 얼굴들이 속속 도착했다.

“하!”

콰지지지직!

엘드요툰의 대검이 건물을 사선으로 무너트렸다.

“무너진다! 다들 피해!”

“이, 이런…… 위험…….”

건물 잔해가 굴러 떨어지는 속도는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혁명군의 병사 2명이 낙하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고, 고속 기동이!”

“누가…….”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건물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던 혁명군의 병사 둘은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손으로 보호했다.

이런다고 건물로부터 머리를 보호할 수 있을 리가 없었지만, 습관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콰직.

“끄으으으으으…….”

그런데, 신기하게도 병사들은 낙하하는 건물에 짓이겨지지 않았다.

“뭐, 뭐야!”

“누가…….”

병사들의 곁에서 떨어진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성진에게 천룡팔부의 호흡을 전수했던 카인, 그리고 성진과 함께 모험했던 잭이었다.

카인과 잭은 핏발이 선 얼굴을 하고서는 양팔을 하늘 높이 뻗었다.

“크으아아아아!”

경이로운 광경이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인의 대검이 다시 한번 그들을 노리고 떨어지고 있었다.

“안 돼!”

“이런!”

주변에서 탄식과 함께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 대검이 건물 잔해와 함께 병사들, 그리고 카인과 잭까지 뭉갤 수 있는 높이까지 다가왔다.

그때, 누군가 옆 건물의 벽면을 차고 날아올랐다.

팟!

이윽고.

쩌어어엉!

날아오른 괴인은 엘드요툰이 휘두른 대검의 검면을 후려쳤다.

“누가…….”

괴인은 단출한 봉 1자루만으로 그 일을 가능하게 했다.

지켜보고 있던 원숭이와 토끼가 소리쳤다.

“레, 레이서다…….”

“레이서야!”

배나무의 수도사 레이서.

그도 전장에 돌아왔다.

“후우웁.”

공중에서 볼을 잔뜩 부풀린 그는 몸을 뒤틀어 한 번 더 도약했다.

호흡의 달인인 그만의 독창적인 무술이었다.

거인에게 바짝 다가선 그는 덮쳐오는 화염을 숨을 해방해 밀어냈다.

파아앙.

화아아악!

주변에 강풍이 몰아치며 불길이 물러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레이서는 공격 기회를 놓쳤다.

“데하!”

엘드요툰이 역으로 기회를 잡아 그를 뭉개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손을 뻗던 엘드요툰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스릉.

철컥!

화르륵!

엘드요툰의 내뻗은 손이 깔끔하게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쿠웅.

엘드요툰이 느낀 섬뜩함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팔이야 다시 재생시키면 되었지만, 지금 그의 어깨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불길하기 짝이 없었다.

스윽.

엘드요툰의 고개가 자신의 어깨에 올라와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호두 좀 까 볼까.”

후우웅.

꼬장꼬장하게 생긴 노인의 얼굴.

한줄기 서광이 그의 눈에서 흘러나왔다.

또한, 막대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의 주먹.

곧, 그의 주먹이 앞으로 곧게 뻗어나갔다.

후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엘드요툰이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곧, 그의 머리가 통째로 뜯어져서 소멸했다.

“별것도 아닌 게…….”

“그 복장 오랜만이구먼.”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아이고, 허리야…….”

엘드요툰의 팔을 벤 검성 ‘아들집에좀자주와’

엘드요툰의 어깨에 올라타 일격에 머리를 통째로 날려 버린 권성 ‘성북산악회파이팅’.

“음? 머리는 왜 그렇게 산발을 했나?”

“방금 막 자다가 깨서 그래.”

“흘흘흘…… 노인네가 낮잠은…….”

전장 곳곳에서 전 시대의 거인들이 나타나 전황을 뒤집고 있었다.

후웅.

콰아앙!

콰지직!

사방에서 성진 일행이 검이 있는 곳까지 도달하는 것을 막아섰다.

비산하는 파편들과 끔찍한 악취들.

다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우움!”

엘드요툰 둘이 대로를 꽉 메우고 팔을 뻗어 왔다.

“내가 맡을게!”

“나도!”

에인헤야르들이 재빨리 뛰어나가 대로를 막아선 엘드요툰을 쓰러트렸다.

“허억…… 헉…….”

“거의 다 왔어…….”

집중적인 견제와 더불어 좋지 않은 전방의 상황 때문에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야 검이 있는 곳 근처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콰르릉!

끼이이익!

검에 다가서는 몬스터들은 여지없이 검이 내뿜는 방어 기제에 당해 갈갈 찢겨 나갔다.

성진이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돌파하기 위해 자세를 잡으려는데 이선익이 팔을 뻗어 막았다.

성진은 곧 눈을 돌려 이선익이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신조…… 이것을 노리는 거구나.”

“수르트…….”

조금 작아진 수르트가 검을 노려보고 말했다.

“그렇다면…….”

“막아!”

“수르트가 검을 노린다!”

화르륵!

수르트의 몸에서 거센 불길이 일어났다.

에인헤야르 몇이 그를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흥…… 끼어들지 마라.”

화륵!

퍼어엉!

“커억!”

“크으윽…….”

불길에 휩싸여 뒤로 튕겨 나가거나 그대로 불타 쓰러지는 에인헤야르.

아무리 에인헤야르가 막강하다지만 신성을 지닌 존재에게는 대항조차 힘들었다.

휘오오오오.

불길이 수르트의 손에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의 방향이 박혀 있는 3자루의 검에 향했다.

저 불길이 검을 녹일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힘이었다.

“막아야…….”

“제길!”

이선익이 성진에게 말했다.

“아에.”

갈게.

이선익은 저 불길을 막을 생각이었다.

실패하면 그것이 곧 죽음인데도.

성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신호였다.

좋은 친구들이 소리쳤다.

“선익아! 막아!”

“달려, 이선익!”

이선익이 고함을 지르며 검들이 잠든 곳으로 달려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그의 뒤를 성진과 송하린, 그리고 최별이 따랐다.

“끝이다.”

화륵.

콰아아아아아!

수르트의 겁화(劫火)가 검을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

기적적으로 검이 녹기 전 도착한 이선익은 방패를 들었다.

치이이이익!

***

“제발…….”

“제발 힘내!”

“더는 못 보겠어!”

시민들은 아까부터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에 더욱 똘똘 뭉쳤다.

-현 시각, 게이트 주의보 발령.

하늘 건너편의 영향이 있는 것일까.

전 세계의 곳곳에서 게이트 발생 조짐이 관측되었다.

“대피하세요!”

“도망치시라고요! 일단…….”

흩어지는 무리와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는 무리.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제발…… 부탁해.”

“저, 저! 다 죽겠어!”

“정말 저기가 무너지면 우리도 다 죽는 거야?”

“이게 무슨 소리야!”

욕설과 고함이 사람들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하지만, 누군가 외친 소리가 그 혼란을 잠시 멈추게 했다.

“힘내라, 이선익!”

“이선익?”

“이선익이라고? 그게 누구야?”

“저기 방패 들고 뛰어가는 사람이잖아!”

“그래? 저 사람 이름이 이선익이야?”

“이름 좋네!”

넓은 공연장은 사람들이 쉽게 전염된다.

그곳에 관중이 가득 차 있으면 누군가 던진 말이 슬로건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 먼저 꿈틀대며 한 몸짓을 따라 하기도 했다.

이곳은 공연장보다 더 거대했고 관중은 만석이 된 지 오래였다.

“이선익 힘내!”

“선익아! 지지마!”

“할 수 있어! 선익아! 넌 최고야!”

“이선익! 이선익!”

“제발 우리 좀 구해 줘! 선익아!”

그것을 잠자코 지켜보던 헬은 묘한 표정을 짓고 등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어떻게 되려나? 음…….”

하늘을 올려다 본 헬이 잠시 멈칫하다 웃었다.

이선익의 갑옷이 황금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또 기적인가!”

***

“으아아아아아아!”

이선익의 방패가 거대해져 수르트의 불길을 막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아!

화르륵!

“마, 막을 수 있을까?”

“……이선익이 먼저 쓰러질 거야.”

그때, 이선익의 갑옷이 갑작스럽게 더할 수 없는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런…… 어?”

“뭐, 뭐야?”

이선익은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다.

불길은 계속 쏟아졌지만, 방패는 겉이 그슬렸을 뿐 이선익을 화마에 휩싸이게 하지는 못했다.

수르트가 분노했다.

“……건방진!”

콰아아아아아!

불길이 더해졌다.

거세게 일어난 불길은 이내 이선익을 뒤로 밀치기 시작했다.

치지직.

치이이이이이.

“으아아아아!”

이선익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가려는 그 순간, 어디선가 빛이 날아들었다.

키이이이이이이이잉!

날아든 빛은 수르트의 어깨를 때렸다.

“큭…….”

수르트가 충격에 몸을 틀자, 화염이 다른 건물로 번져 녹여 버렸다.

수르트는 재빨리 다시 이선익을 노리려 고개를 돌렸다.

화염의 열기가 어찌나 강했던지, 이선익이 있던 자리는 구덩이가 깊게 파여 있었다.

그런데, 수르트가 찾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우선, 이선익은 다른 인간들에게 구조되어 헐떡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선익은 수르트가 찾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검.

3자루의 검이 몽땅 사라졌다.

“뭐…….”

콰르릉!

예고도 없이 들려온 굉음에 수르트는 발작하듯 그곳을 쳐다보았다.

모두 그와 인접한 옥상에 올라 있었다.

삿갓을 쓰고 검은 무복을 입은 송하린.

투구와 망토를 두른 최별.

그리고 흰 옷과 성검회의 기를 목에 두른 성진까지.

수르트는 이들의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먼저, 이상하게 반짝이는 광석 장식을 달고 있는 것이 첫 번째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공통점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빛나는 검을 들고 있었다.

화르륵!

최별의 검에서 태양의 불길이 치솟았다.

“준비됐어요, 신조 님.”

“하하! 형님, 옛날 생각납니다!”

송하린의 천마도는 거무튀튀한 벼락을 휘감았다.

성진은 새하얀 신검 스칸다를 쥔 채로 수르트를 노려보았다.

수르트가 검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에 서늘함을 느꼈다.

분명, 신성이 깃든 검이었다.

수르트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로키! 어서 나서라!”

로키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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