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성진은 이민상과 헤어진 후에도 안양에 모여 있는 병력을 확인했다.
광명에서 조금 떨어진 안양에 이만한 병력이 모여 있다는 것을 사도들은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
종말 이후의 세계와 등불이 힘을 합쳤음에도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성진의 신성은 이제 바닥을 보여 최후의 계획을 실행할 정도만 남았다.
각성자 전력인 등불, 그리고 김정우와 손성일을 필두로 한 무장 병력들.
분명 만만치 않은 전력이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젠장…… 젠장…….”
“…….”
“빌어먹을…… 제발…….”
난간에 기대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리는 조병창이 보였다.
성진은 그냥 지나치려다가 말을 붙였다.
“괜찮습니까?”
“……신조님.”
“안색이 좋지 않네요.”
“아…… 하하…… 일국이 바보 같은 자식이 왜 하필 거기로 떨어졌을까요? 하하하…….”
“……걱정되시나 보군요.”
“걱정됩니다, 무척이나. 신조님 위로하실 생각이라면…….”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럼 잠시만…… 제 말동무라도 해 주시겠습니까? 어차피 잘 생각도 없으시잖습니까?”
다급해 보이는 조병창.
성진은 그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성진이 바라보고 있는 그는 위험해 보였다.
“왜 동료를 잃는 것에 적응할 대로 적응한 놈이 이럴까 싶으시겠죠. 압니다.”
“…….”
“이보다 더 위험한 상황도 많았고 그때마다 지금의 일국이를 잃기도 했습니다. 전우를 잃는 건 영원히 전장을 떠도는 저와 일국이에게는 분명하게 적응해야 하는 일이죠.”
“그러지 못했군요.”
“……사실, 네. 그러지 못했습니다. 친구를 잃는 건 여전히 힘든 일입니다. 저는 적응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신조의 전사라는 놈이 이러고 앉았으니…….”
“누구에게나 상실은 공평합니다.”
“그렇게 말해 주실 필요 없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원래의 조병창과 그의 오래된 기억이 합쳐졌을 때 어떤 감정들이 생겨나는지?”
성진은 수많은 세계를 떠돌며 그의 병사들과 함께했다.
하지만 지금껏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목표 이외의 것에 관심이 없었다.
이곳의 조병창과 그의 병사로서 함께했던 조병창의 영혼의 기억이 합쳐진다면 어떤 느낌일까.
“끔찍한 기분입니다. 부모님이 어느 날 이복동생을 데리고 온 기분이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전혀 좋은 기분이 아닙니다.”
“그랬군요.”
“두 기억이 다르지 않으며, 분명 영혼은 하나일 텐데도 거부감이 듭니다. 신기하죠? 처음에는 그저 기억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좀 다릅니다.”
“어떻게 다르다는 말입니까?”
“저는 지금껏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영원토록 싸워 온 제 영혼이 기억하는 게 옳다고. 영혼이 선이며 그것을 받아들인,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는 그것에 따라야 한다고.”
어려운 말이었지만, 정리하면 간단했다.
과거의 기억이 주인이고 현재를 사는 원래의 몸은 잠시 머물다 가는 그릇이라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등불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잖아요. 현재를 살아가던 내가 영혼의 기억이 돌아왔다고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게…….”
“…….”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다른 가치관을 가지는 게…… 이상하잖아요? 내가 과거부터 당신의 병사였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의 게임만 좋아하던 조병창이 자리를 내줘야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조병창은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조병창이라는 사람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것 같아요. 내 인생은 충분히 가치 있다, 이런 식으로요.”
“맞습니다.”
“나는 조병창입니다. 게임 좋아하고 평생의 추억이라곤 일국이랑 같이 게임하면서 울고 웃었던 기억밖에 없는…… 나는…… 나는…….”
성진은 위로할 수 없었다.
조병창은 과거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야 했으니까. 그건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일국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일국이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분명 죽더라도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다음 세계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무서워요.”
죽음의 공포를 상실의 공포가 압도한다.
죽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이 더 괴로울 때도 있는 법이다.
“죽지 않았을 겁니다.”
“죽었을 확률이 더 높아요. 아시잖아요.”
“네, 죽었을 확률이 더 높긴 합니다.”
“젠장…….”
“그래도 죽지 않았을 겁니다.”
성진이 올곧은 눈빛을 보내자, 조병창도 소매로 눈을 훔쳤다.
눈이 빨개진 그가 히죽 웃었다.
“하하하…… 뭐,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고 어떻게든 되겠죠.”
***
그으응.
그으으응.
손성일은 이미 광명 전선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준비를 마치고 예정된 시각에 신호를 보낼 것이다.
그 때문에 미리 준비하고 모든 인원이 차량에 올라 있었다.
다수의 화이트, 그리고 무장한 병사들.
수는 많지만, 압도적인 전력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때문에, 이번 영종도 보급이 실패한다면 사실상 미래가 불투명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각오를 다져야 했다.
오랜 세월, 이 싸움을 준비했던 것처럼.
김정우가 성진에게 다가왔다.
아직 차량에 오르지 않은 사람이 둘뿐이었기에 주위는 차가 내뿜는 소음만 존재할 뿐, 다른 이들의 관심은 없었다.
“신조.”
“…….”
“이곳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당신이 그저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줄 알고 있을 거야.”
그 말이 맞았다.
올빼미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그랬다.
한없이 선에 가까운 사람이며 자신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인류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
‘아니야.’
과거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의 신조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선이 될 수 없었다.
“자네의 거짓말을…… 우리를 속였던 걸…….”
“박사님.”
“계속하게.”
“네?”
“모두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 줘. 자네만 믿고 이 전쟁에 끼어든 사람들이 많아. 남은 가족도 한 명 없는데 오로지 인류를 위해…….”
“…….”
“그들을 위해 잠시만…… 더 속여 주게. 부탁일세.”
성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김정우가 뒤돌아 차량에 오를 때까지 성진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민상이 그의 뒷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일순간 표정을 바꾸고 성진에게 소리쳤다.
“형! 타요! 신호 곧 떨어져요!”
“……응.”
“빨리, 빨리!”
일부러 더 밝게 얘기하는 이민상.
성진은 터덜터덜 걸어 차에 올랐다.
치이익.
-기동! 기동 예정 시각입니다.
-전부 대열 어그러트리지 말고 곧장 쫓아와라!
그으으응!
차량이 즐비했던 장소가 한순간에 휑해졌다.
안양에 숨어 있던 차량이 전부 튀어나온 것처럼 도로가 가득 찼다.
“우와아…… 장관이네요. 안 그래요?”
“그러게.”
“그런데 대형 차량은 좀 불편하지 않을까요? 왜 대형으로 배차했지?”
“그곳에 있는 거로 추정된 생존자들이 꽤 돼. 혹시 문제없이 모두 생존해 있다면 그분들에게 걸어오라고 할 순 없잖아.”
“하긴, 그도 그렇네요. 버티든, 합류하든 간에 최대한 많은 인원이어야 하니 대형을 줬구나. 어쩐지 적재 공간을 봤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착오가 있는 줄 알았죠.”
“이제 적재 공간을 가득 채워 오기를 바라야지 않겠소? 민상 공자!”
“하하하! 맞아요! 출발, 출발!”
송하린이 맞장구를 쳐 주자 이민상도 신이 났는지 들떠 보였다.
정작 웃음소리를 흘린 이민상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지만,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정신 산만하니까 조용히 좀 해 줄래요?”
최별이 운전대를 잡고 한소리 했다.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운전을 하는 것도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옆에서 중요한 임무를 앞두고 활기찬 모습을 보이니 열이 뻗쳤나 보다.
차들은 어둠을 틈타 빠르게 움직였다.
소음에 뛰쳐나온 몬스터들은 엄호 차량이 선수를 쳐 사격을 가해 벌집으로 만들거나 대형 차량이 그대로 치고 지나갔다.
속도가 줄어드는 경우는 좀처럼 없었다.
-곧, 광명 진입합니다.
-대비, 각자 맡은 임무들 잊지 말고.
-멈추는 계획은 없다. 이대로 부천으로 곧장 향할 것이고 광명의 최전방 주 전력은 미리 대기하다가 합류할 거야.
-예!
광명에 오고 난 후, 조병창이 몸을 심하게 떨었다.
평소 그의 모습을 기억하던 성진은 말없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진정이 좀 됐는지 떨림이 잦아들었다.
-합류 예정 지역까지 300미터 남았습니다.
-슬슬 보입니다. 선두 유지하겠습니다.
-특작조는 여기서 이탈해!
최별이 무전기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특작조 이탈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자네들에게도 행운이 함께하길!
-형, 꼭 무사해야 해요!
그아아앙!
성진이 탄 차량이 방향을 틀었다.
다른 차들이 향하는 방향에서 우회전하자, 어두컴컴한 도로가 나왔다.
“몰랐는데, 지금 밤이구나.”
“헤드라이트랑 조명 때문에 한낮처럼 보이긴 했소.”
끼이이이익!
퍼어엉!
차가 잠시 덜컹했다.
“방금 뭔가 쳤는데?”
“기분 탓이에요.”
“차 앞 유리에 피가 튀어 있는데 뭔…….”
“민상 씨, 내려서 뛰어올래요?”
“피야, 닦으면 되겠죠? 근처에 세차장 없나?”
성진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소총을 전방으로 향했다.
기이잉.
퉁!
투웅!
투둥!
단발로 쏜 탄환이 번쩍이며 사이사이 은신해 있던 몬스터들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최별은 당연하다는 듯이 눈도 껌뻑하지 않고 운전했다.
“곧 연구시설이에요. 본대에는 다른 소식은 없고요.”
“주차는 어디에 해야 하지?”
“그럴 정신이 어딨어요. 대충 대로에 문 잠그고 뛰어 내려서 진입해야지.”
“하긴, 차가 없더라도 영종도에서 보급을 마친 본대가 데리러 올 테니까…….”
“성공한다면 그렇겠죠.”
“민상 씨…….”
“성공할 거니까 반드시 그러겠죠? 하하하, 거의 다 온 거 아니에요?”
최별이 핸들을 과하게 꺾었다.
끼이이이이익!
제 때에 방향을 튼 차량이 공터에 덜컥 멈춰 섰다.
“주차 완료.”
“주차한 거 맞소?”
“주차장이 이렇게 넓은데요?”
“모르겠다. 출발!”
성진과 일행이 차에서 뛰어 내렸다.
전원이 소총으로 무장하고, 장검과 단검, 기타 전투 장비들을 착용하니 두려울 게 없었다.
성진이 선두에 섰다.
연구 시설은 겉보기에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일단 지상으로 드러난 것만 봤을 땐 그랬다.
‘펄스가…….’
느껴지는 펄스가 심상치 않았다.
특이한 점은, 그 펄스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았다.
연구시설의 담벼락에 붙은 그들이 진입하기 전 대화를 나눴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펄스 파장이요? 맞죠?”
“네. 무슨 이유에선지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저도 느끼고 있어요. 왜일까요? 이건 마치…….”
펄스가 또 요동쳤다.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대체 누가?’
성진은 인상을 쓰고 상황을 판단했다.
진입을 미룰 것인가 말 것인가는 지금 결정해야 했다.
“어떡하죠, 형?”
“어떡…….”
“진입하죠. 길게 끌어 봐야 답이 안 나옵니다.”
“동감. 갑시다!”
덜컹.
불 꺼진 연구 시설의 정문은 역시 잠겨 있었다.
송하린이 유리로 된 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쩌어엉!
유리가 그대로 금이 가더니 단단하게 얼어 넘어갔다.
콰앙.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인 일행은 불 꺼진 연구소의 1층을 걸었다.
성진과 송하린이 먼저 자리를 잡고 주변을 경계했다.
바이저를 썼기에 일행의 대화는 채널을 통해 진행되었다.
-어…… 건물 구조상 시설은 지하에 있는 것 같네요.
-네, 그래 보여요. 그런데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 안 나요?
-이상한 소리?
끼아아아아아아!
끔찍한 비명이 공기를 울렸다.
성진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비명이 인간의 비명인지 몬스터의 비명인지 헷갈린다는 것.
두 번째로 든 생각은 비명의 주인이 생각보다 거대한 덩치를 가졌을 거라는 것.
‘연구 시설이 생각보다 더 큰가 본데.’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닐 것이다.
일이 생각보다 어렵게 진행될 것을 짐작한 일행이 밑으로 향하는 방법을 궁리했다.
-승강기는 전부 전원이 나가 있어요. 원래 전력이 안 들어오나?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요?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차량이 지나다니는데 몇 차례 정찰한 바로는 연구 시설에서 대응하는 움직임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얘기했잖아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네, 이상하잖아요. 완성자들이든 불순물이든 뭔가 행동을 취할 법한데, 깜깜무소식에 연구 시설은 전력이 차단되기까지 한 상황이니…….
성진이 그 말을 곰곰이 되새기다 대답했다.
“지금부터 그걸 확인해 봐야겠죠.”
잠시 후, 지하로 향하는 숨겨진 계단을 조병창이 발견했다.
그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성진이 수신호했다.
“내려가죠.”
홀로그램으로 주변 지형이 세세하게 표시되었다.
펄스를 지닌 이들에게는 별 도움은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이마저도 큰 차이로 다가올 것이다.
끼이이이이!
“불순물이네요.”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진 남자.
그는 이곳의 연구원이었던 듯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다.
불룩.
부구룩.
일행을 발견한 남자의 볼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기이잉.
파아앙!
성진의 펄스 탄환이 남자의 이마에 적중했고, 그대로 그의 머리를 으깼다.
-우욱…….
-목을 베는 게 낫겠어요. 어떡할까요?
-무장을 바꾸죠.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
지하 1층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깨진 유리 파편이 사방에 널려 있었고 이상한 액체와 가스가 가득했다.
성진은 먼저 의심할 만한 부분들을 하나씩 짚어 나갔다.
“시체가 왜 이렇게 많은 거죠?”
이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죽은 것처럼, 방금 마주친 불순물이 된 연구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어 있었다.
-으깨진…… 것 같은…… 느낌인데요.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복장을 보니 쉘터 주민들도 있었어요.
-왜 다 죽었을까요?
-저기 보세요!
핏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 한 가지.
“핏자국이 좀…….”
-네, 좀 크네요?
-뭔가가 질질 기어가거나 끌려간 것 같은데……
-음…… 아마 이 연구소의 생존자들과 연구원들을 죽인 존재가 내려간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성진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끄아아아악!”
누군가의 단말마가 들렸다.
그리고 펄스가 다시 한번 줄어들었다.
지금 느껴지는 펄스는 처음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었다.
어떤 존재가 이곳의 모든 불순물과 연구원들을 죽인 것이다.
“완성자?”
-완성자일까요? 하지만…….
그때, 조병창이 홀린 듯이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없어…….
-네?
-일국이가 여기 없어…….
조병창이 고개를 휙 돌려 밑으로 향하는 통로를 보았다.
마치 지하 주차장처럼 널찍한 형태로 되어 있는 구조.
핏자국이 그곳으로 이어져 있었다.
-병창 씨!
-같이 가요! 위험해!
-어어?
조병창이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뚜벅.
뚜벅.
“……일국이니?”
조병창의 목소리가 바이저 밖으로 새어 나왔다.
확성 기능을 사용하자 조병창의 목소리가 층 전체에 퍼졌다.
꾸르륵.
“일국아, 나야. 괜찮아?”
꾸르르륵.
턱.
성진이 조병창의 어깨에 손을 올려 제지했다.
“그만.”
“잠깐만…….”
그때, 어두운 공간에서 소리가 들렸다.
“오지…… 끅…… 마…….”
“……일국아? 일국이지, 너?”
“……오면 안…… 끅…… 돼.”
조병창이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두운 시야 너머, 차일국의 모습이 보였다.
전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
몸이 매우 거대해져 있었다.
마치 괴물처럼.
“……일국아.”
“병창아…… 거기서…… 더…… 오지…… 마.”
뚜벅.
뚜벅.
조병창은 친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네가 한 일이야?”
“…….”
“네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인 거야?”
“응.”
“……왜?”
“그래야 했으니까. 끄윽…… 안 그럼…… 위험하니까…….”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성진은 이제 차일국의 모습이 보였다.
고름이 가득 찬 거대한 몸뚱이.
어딜 봐도 몬스터였다.
아직 멀쩡한 차일국의 이목구비를 제외하면.
“어떻게 된 거야…….”
“이곳에서…… 불순물을…… 끅…… 만들고…….”
“사도들이?”
“응…… 완성자가…… 끅…… 못 되면…… 폭탄으로…… 끄윽.”
불순물은 말 그대로 폭탄이었다.
몬스터로 변해 날뛰게 만들어 전력을 약화시키는 인간 병기.
“넌…… 어떻게 멀쩡한 거야?”
“흐흐…… 멀쩡해? 끅…… 내가?”
“…….”
“다 죽여야…… 했어. 아니면…… 위험했으니까…….”
“일국아…….”
조병창이 바이저를 벗어던지고 친구에게 다가갔다.
“왜, 왜 그랬어…….”
“…….”
“왜 거기에 남았어, 왜!”
차일국이 푸들거리는 몸을 힘겹게 지탱했다.
“병창아…… 끄윽…… 내가 하는…… 말…… 들어.”
“……응.”
“별거 아닌…… 일이야. 알잖아. 죽는다는 건 생각보다…… 끅…… 별거 아닌 일이라는 거.”
“알아. 하지만…….”
“내 말…… 듣는다며…… 남은 시간이, 없어.”
“알겠어.”
“인천으로 향하는 계획도…… 들켰을…… 거야. 도와줘야 해…….”
“응.”
“완성자들은…… 열쇠야…….”
“그건 알아.”
“그래? 다행이네…… 시간을 아껴서…….”
“…….”
“나는 강인한 영혼……. 신조에게 선택받은 인간……. 그러니까 이건 아무것도 아니어야…….”
“일국아…….”
“아니어야…… 하는데…… 아프다…… 너무…… 아파…… 끅.”
조병창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땅을 짚었다.
그에게는 지금이 지옥의 불길보다 더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병창아…….”
“흐어으…….”
“이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해…….”
“…….”
“꼭 너는 살아남아서…… 우리가 끅…… 다음에 만났을 때…… 어떻게 됐는지…… 끄윽…… 말해줘야 해…….”
“흑…… 으흑…….”
“궁금…… 하니까……. 그리고 나한테는…… 끅…… 너랑 같이 게임하던 순간이…… 제일 행복했어…….”
조병창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친구를 안심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신조…….”
“……미안합니다.”
성진의 대답에 차일국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닥쳐…… 끄윽…….”
“내가…….”
“닥치라고! 끄아악!”
“…….”
“당신은…… 내 말에 대답…… 해.”
“……네.”
“나는 당신에게…… 쓸모 있는 존재였습니까?”
“……어떤 대답을 원합니까?”
“그냥…… 아무 대답.”
“네. 믿을 만한 아군이었습니다.”
“그럼…… 됐어…… 그리고 착각하지 마…… 억지로 이런 거 아니야, 내 선택이라고. 당신은 인간에게 창조주를 거스르지 않고 종말과…… 싸울 명분이었을 뿐이야…….”
“…….”
“그리고 이 싸움은…… 끄아악…… 반드시, 이길 거고…… 우리가…… 그러기로 했으니까.”
차일국의 몸이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끔찍한 광경에 송하린과 최별은 고개를 돌렸다.
“신조…… 최후의 싸움에 앞서…… 나는 패배했다. 미안해…….”
“당신이 사과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 이 패배는 신조의 패배가 아니며 우리의 패배도…… 아니다. 반드시…… 반드시 신조가 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어…… 끄아아아아아악!”
차일국이 부풀어 오르는 몸을 억눌렀다.
“우리를…… 끄으…… 위대하게 할…… 것이다…….”
“…….”
“이제 됐어…… 더 못 버텨…… 죽여.”
철컥.
기이잉.
“신조 님!”
“죽여야만 하는 겁니까?”
“이 개 자식아! 내 친구 죽이지 마!”
투웅.
그 순간, 차일국의 펄스가 조병창을 밀어냈다.
불순물이 되며 그의 펄스는 등불을 한참 넘어섰다.
“터지면…… 다 죽어. 병창이는…… 나 못 쏴…….”
성진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 차일국에게 말했다.
“당신은…….”
“쏴! ……제발!”
“당신은 이미 위대합니다…….”
성진이 방아쇠에 손을 올렸다.
차일국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히히…… 또 병창이랑 게임하고 싶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종말 전쟁 1일 차.
차일국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