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제목 : 지금 방송에서 뭐라 떠드는 거냐?]
아까부터 신조 신조 정신 사납게;;
신조가 뭔지 아는 사람?
-그것도 모르냐?
-넌 뭐 좀 알아?
-알 것 같냐?
-질문충이었네.
[제목 : 시청자 쎄한 반응 레전드네.]
지금 올빼미 방송 시청자들 단체로 벙쪄서 외계어 듣는 중.
-조병창은 또 왜 저런대?
-알지도 못하는 말 쓰면 시청자들이 싫어하는 거 모르나?
-알 게 뭐람. 볼 사람들은 보겄지. ㅋㅋ
[제목 : 사이비 종교 단체 아닐까?]
이상한 종교 단체 많자너.
거기 중 한 곳 아닐까?
우리 빼미 오똑해, 그런 데 들어가면 안 되는데…….
-조언) 본인 앞가림이나 잘하시길.
-반박) 무지개 반사.
-결말) 둘이 뽀뽀해.
***
성진은 조병창과 대화를 나눴다.
특히 중요한 화제는 앞으로의 계획과 관련한 부분이었다.
“내 계획을 알고 있는 겁니까?”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당신의 병사가 그걸 모르면 말이 되지 않죠. 물론 대략적인 큰 그림만 예상할 뿐입니다.”
조병창은 신조의 편에 서서 오랜 세월 싸워 왔다.
그러니 그의 계획을 어느 정도 예상하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아마 그 계획이 성공할 확률은 낮을 겁니다.”
“압니다, 하지만…….”
“성공해야 하죠. 하지만 당신은 인간들에게 최후의 싸움에서 어떻게 광대를 상대할지 언급조차 하지 않았었죠.”
“…….”
‘믿지 못했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을 일러 준다 하여도 그들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 때문에.
하지만, 이제 반쪽짜리 동맹은 그만하기로 했다.
“내 계획은…….”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소리죠?”
“당신은 당신의 계획을 실행하세요. 그거면 됩니다.”
“어째서죠?”
“광대는 오로지 당신을 상대하는 것에 모든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였고요. 누구도…….”
조병창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누구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았어요. 당신도, 광대도. 당신에게 실망하고 광대에게 붙은 변절자들도 있긴 했지만, 인간들은 당신의 곁에 서서 싸우며 다른 계획을 세웠습니다.”
“나를 못 믿었기 때문에?”
“당신이 폭풍을 일으킨 순간부터 우리에게 당신은 선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자명했다.
성진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목적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맞습니다. 선이 목적을 가지면 위선이 되니까. 당신의 신성이 깎여 나간 건 비단 광대와의 싸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재밌는 점은 광대의 신성도 당신과 비슷하게 깎여 나갔다는 겁니다. 이게 뭘 뜻하겠습니까?”
그가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은 역할은 선과 악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질서였다.
그렇기에 종말의 수레바퀴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고.
성진도 알고 있는 바였다.
“그도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거겠죠.”
“맞습니다. 아마 종말을 수호하며 세계가 영원히 지속하도록 하는 고리타분한 목적은 아닐 겁니다. 아마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이겠죠.”
“귀찮은 자입니다.”
“두려운 자죠. 광대를 귀찮다고 평하는 존재는 당신이 유일할 겁니다. 아스가르드도 결국 그에 의해서 멸망했으니까.”
“……인간들에게 뭔가 수가 있는 겁니까?”
“당신의 계획을 도우며 우리는 이 계획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느꼈습니다.”
성진의 계획의 치명적인 결함은 성진 자신도 알고 있었다.
“광대는 바보가 아닙니다. 적어도 창조주에게 부여받은 종말의 힘을 가진 그는 결코 당신의 아래가 아닙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그도 충분히 대비하고 있을 겁니다. 아마도 최근에 모습을 드러낸 완성자들을 통해 뭔가를 꾸미는 것이겠죠.”
성진의 계획을 막는 데 사용하든, 그의 계획의 장치로 사용하든 완성자의 존재는 꺼림칙했다.
“완성자는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었죠. 광대도 최후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뭐, 그렇다고 해결책이 달라지지는 않지만.”
“나는 내 계획을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다른 질문 있으십니까?”
당연히 질문이 있었다.
인간들은 어떻게 신조의 계획을 알아차렸으며, 그것이 실패할 것이란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인간들의 계획이란 무엇일까?
그러나 성진은 그 질문을 삼켰다.
“없습니다.”
“…….”
“믿어 보고 싶으니까요.”
믿기로 했으니, 믿어야 했다.
“정답입니다. 그럼 내일 김정우 박사님을 뵙고 출발하죠.”
***
등불이 성진을 대하는 태도는 당당했다.
그의 명령을 받는 것이 아닌 나란히 서서 해결책을 궁리했다.
작전실에 모인 이들이 앞으로의 진격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니까, 이쪽으로 가면…….”
“아니, 거기는 지난번에 사도들에게 노출됐다니까? 뭘 알고 말을 해!”
“알려 줘야 뭘 알지!”
“자료 받았잖아?”
“거기에는 자세하게 안 나와 있던데?”
“교부한 거 중에 A안 맞아?”
“B안이던데, 내 건?”
“이런, 중간에 자료가 잘못 들어갔나 본데.”
“거봐! 그럴 줄 알았지!”
김정우는 침통한 표정으로 작전 회의에 참가했다.
그는 김석찬과 장시간 얘기를 나눴는지, 성진을 보는 눈빛이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따로 사과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성진은 그를 이해했다.
그가 회의를 지켜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래서야 끝이 없겠군. 시흥 쪽은 전선이 안정적이야. 추가적인 지원은 필요 없네. 이견 있나?”
“없습니다. 그 부분은 아예 픽스하죠.”
“그래, 성남 쪽에서 사도들이 밀고 내려오려는 움직임은 없으니까 이쪽은 최소한의 방비만 할 것이고…….”
눈이 침침한지 김정우가 자신의 눈을 비볐다.
그는 매우 피곤해 보였다.
“사실상 이번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마지막 공세야. 다들 이해하고 있는가?”
“……네. 이해하고 있습니다.”
“혁명군이라는 거창한 이름도 의미가 없지. 5년 동안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우리가 쏟은 노력은 번번이 무산됐고.”
“물자와 병력이…… 따라가질 못하는군요.”
“의지만 있었던 거지. 미안하게 생각하네.”
“박사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다 나은 미래를 꿈꿀 자격이 있어. 그렇다고 생각했네만…… 그것이 우리를 더 힘들게 했는지도 모르지…….”
병력은 소모되고 물자는 부족했다.
이 공세가 실패하면 다음에는 한동안 내실을 다져야 했다.
문제는 사도를 포함한 서울의 상황이 그것을 기다려 주느냐 하는 문제였다.
‘마지막 기회…….’
성진의 계획이 실패하는 것만으로도 로키의 계획은 성공한다.
그 이후에 로키에게 또 다른 계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이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 보게. 현재 파악된 전선의 상황이야.”
“안양 쪽에 대기 중인 병력이 꽤 되는군요. 광명에 배치는 왜…….”
“화살을 아무리 쏘아 대도 성문을 뚫을 순 없어. 결국엔 충차가 해내야만 하는 역할이 있지.”
“……한 번에 뚫으실 생각이시군요.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직은 사도들이 눈치채지 못한 게 분명하네. 그러니 광명 쪽 방비가 허술하지. 그 틈을 노려 진격하면 부천 쪽 루트를 통해 인천까지는 금방 가지 않을까 싶네.”
“시흥은 어떻습니까?”
“걸리적거리는 게 너무 많아. 그쪽 전진 기지 중에 멀쩡한 곳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진격 계획을 세우던 중, 회의가 잠시 중단되었다.
소식을 물고 찾아온 병사 때문이었다.
지이잉.
“시흥 쪽 전진 기지 중 C-3가 습격당했습니다!”
“C-3? 가만있자…… C-3면…… 이런…….”
조병창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었다.
김정우가 그를 잠깐 살피다가 말했다.
“등불 선행 부대가 나가 있는 곳이로군……. 피해 상황은?”
“그게…… 대부분은 퇴각하는 데 성공했지만…….”
“말하게!”
“차, 차일국 대원이…… 남아서 불순물들을 상대하다가…….”
조병창의 무릎이 꺾였다.
차일국은 조병창이 모든 세계에서 함께 싸워 온 전우이자 오랜 친구였다.
“주, 죽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소식이 끊기긴 했는데…… 피랍된 것 같다고…….”
“빌어먹을…… 가지 말라고 할걸…….”
등불 대원 중 안 보이는 자들이 많았다.
이가 빠진 듯 애매한 구성은 전방에 나가 있는 대원들 때문일 것이다.
“만일 그들이 데리고 갔다면, 어디로 갔을까…….”
“……이곳일 겁니다.”
대원 중 1명이 부천시를 가리켰다.
“지난번에 피랍된 대원들이 이곳의 연구 시설 인근에서 포착되었다고 했습니다. 이곳이 아닐까요?”
“맞습니다, 적들의 퇴각할 당시 부천 쪽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무슨 수작일까……. 아무튼, 안산으로 향할 일은 없겠군. 일단, 안양으로 향하도록 하자고. 안양에 도착한 후, 그쪽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진격하는 방향으로 하세.”
“정말…… 마지막인 겁니까?”
“그래, 이번 공격으로 인천을 뚫지 못하면 사실상 서울을 되찾는 일 같은 건 꿈에서나 가능할 걸세.”
김정우가 그렇게 마무리하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온갖 감정이 다 담겨 있었다.
성진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하아…… 난 들어가겠네. 오늘 저녁에 출발할 거야.”
***
성진은 정비를 마치고 저녁이 되어 차량에 올랐다.
시청자들이 뭐라 떠들건 말건 이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보급용 차량과 군용 차량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미리 나가 있는 수십 명의 등불을 제외하고도 100명이 넘는 등불이 차량에 올랐다.
“새벽에는 안양에 도착하는 거지? 거기서 또 어쩔 건데?”
“회의할 때 뭐 들었어? 광명 쪽 지휘관이랑 합류하고 부천 뚫는다고. 지금 차일국이 잡혔다잖아?”
“부천 쪽 연구 시설은 수상한 거 천지야. 저번에도 분쇄한 쉘터 거주민들 납치해서 거기로 들어갔잖아?”
“쉿, 가뜩이나 심란한데 안 좋은 소리 하지 마. 제길, 하필 차일국이 거기 있을 게 뭐람. 있었으면 도망이나 치지, 막기는 또 왜 막아? 람보야?”
“그럴 정신머리가 있었으면 신조 님 곁에서 견마지로를 다했겠냐? 착해 빠져서 신조 님이랑 딱 어울리잖아.”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 너도 거기 있었으면…….”
“그래. 똑같이 행동했겠지. 아무튼, 살해당하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야. 이번에 밀고 나가면서 구하면 아슬아슬하게 세이프겠어.”
“진격이 곧장 진행된다면 그렇겠지.”
성진은 차량에 탑승한 다른 등불 대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상 등불은 성진에게 있어 병사 이상의 존재였다.
그가 계획했던 시점에 그의 곁에 서 있는 전사들은 수만, 수십만, 혹은 수백만을 웃돌았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곁에는 200명이 안 되는 등불뿐이었다.
그들이 전생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기억이 날 정도였다.
그으으응.
차량이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최별과 송하린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형님, 괜찮으십니까?”
성진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뭐가 말입니까?”
“지금 이 상황이요.”
“…….”
솔직히 말하자면 괜찮지 않았다.
최후의 싸움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이라 할 만했는데, 이제는 광대를 이겨야 했다.
“생각대로 일이 풀려도 쉽지는 않겠죠.”
“그…… 우리는 항상 신조 님 편이에요!”
“네?”
“저랑…… 제 동생은 신조 님 편이라고요. 일이 어떻게 되든 간에요.”
“동생이라니 뭔가 찝찝하긴 한데, 맞습니다. 형님, 기운 내세요.”
성진은 최별과 송하린의 얼굴에 다른 존재가 겹쳐 보였다.
솔과 마니.
베르드 폴니르의 부탁으로 구한 이들이 지금 자신의 곁에서 싸우고 있었다.
아마 그들이 돕지 않았다면 이전 세계인 스칸다에서 이 장대한 계획은 막을 내렸을 것이다.
어느 정도 기억을 되찾은 그녀들은 누구보다 성진의 힘이 되어 주었다.
“저희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드디어 끝이 보이네요.”
“언젠간 벌어질 일이었죠.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저희는 끝까지 당신을 위해 싸울게요. 설령 당신이 틀렸더라도.”
“……감사합니다.”
솔과 마니는 데자뷰와 함께 성진이 믿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존재들이었다.
지금의 최별과 송하린이 성진에게 그러하듯이.
대규모 차량 행렬은 밤공기를 가르며 질주했다.
이미 여러 차례 오간 길이었고 정리가 어느 정도 되어 있었기에 차량은 문제없이 나아갔다.
불순물들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몬스터가 나타나도 크게 두려울 게 없었다.
그렇게, 보급 물자와 병력이 안양에 도착했다.
탁!
차에서 뛰어내린 성진은 마중 나와 있는 이들을 비추는 헤드라이트를 통해서 확인했다.
그 중, 유달리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었다.
“형! 형!”
“……인혁이?”
대전의 해방 전쟁을 함께한 주인혁이 자신의 휴머노이드 친구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
“올빼미, 나와 오랜만의 재회입니다. 나는 보고 싶었습니다.”
“유리야…….”
“세종의 종말이 끝난 후에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나는 모체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유감입니다.”
“무사하니 됐다, 유리야. 다들 모여 있던 거야?”
“그렇습니다.”
“다행입니다. 현재 상황의 브리핑을 원하십니까?”
“여기선 됐어. 들어가자.”
오랜만에 재회한 이들이었다.
그리운 이들과의 재회는 설렘을 품게 했다.
수원에는 화이트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었는데, 최전방인 안양에 모여 있어 그랬던 것 같다.
푸른 눈을 반짝이는 화이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안양에 마련된 작전실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곳의 전선을 담당한 지휘관부터 화이트들을 통제하는 정수열 박사까지.
“맙소사…….”
“하하…….”
-헐;;
-어처구니가 없네. ㅋㅋㅋ
-여기 있었다고?
등불과 성진, 그리고 시청자들은 펼쳐진 광경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최전방의 지휘관은 그들이 익히 아는 이들이었다.
손성일.
손동호라는 휴머노이드의 아버지이자 퇴역 군인인 그가 최전방 전선을 통제했다.
여기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우측에 서서 한눈에 보기에도 요직을 꿰찬 이가 이 상황의 주범이었다.
“민상아?”
“형?”
“……이럴 수가.”
“형, 돌아온 거예요?”
“돌아……왔지. 그보다 너…….”
이민상은 젊은 모습이었다.
세종에서의 귀환 당시, 성진은 그의 젊어진 모습을 확인하지 못하고 종말 이후에서 튕겨 나갔는데 이제 와 그것을 확인하게 됐다.
“다시 젊어졌구나…….”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
“제가 무슨 일이 있었나요?”
이민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성진과 최별, 그리고 송하린의 시선이 교차했다.
그들에게 스칸다가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대부분을 잃을 것이다. 힘도, 기억도. 전부를 잃지는 않더라도 힘은 조각조각 흩어질 것이고 기억은 편린만을 가지고 살아가겠지.
‘부작용…….’
다시 젊어진 부작용이었다.
성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필 최악의 장소에서 최악의 재회였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오랜만이에요, 형. 부산에서 본 이후로 처음이죠?”
“……그래.”
이민상은 왜곡된 기억을 가진 것 같았다.
굳이 그것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 기억을 찾았을 때 이민상의 젊음도 사라질까 봐.
“자, 회포는 나중에 풀고 지금 일에 집중하자고. 다들 동의하는가?”
“네, 어르신.”
“하하하, 어르신은 무슨. 그냥 다 늙은 꼰대가 훈수나 두는 거지.”
손성일은 능숙하게 작전을 설명했다.
“작전은 어려울 게 없네. 이걸 좀 보지.”
홀로그램이 떠올라 모든 이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고속국도 제130호선, 다른 말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라고도 불리지.”
“110호선은 왜 기각된 겁니까?”
“영종도로 향하는 길목 중에 멀쩡했던 게 110호선과 130호선 둘뿐이었지. 110호선이 기각된 이유는 간단하네. 뚫기가 어려워. 대답이 됐나?”
“130호선이 상대적으로 몬스터가 적다는 말씀입니까?”
“현저히. 그리고 몬스터가 있어도 뚫고 지나갈 수야 있겠지. 하지만, 이 길목에서 발목을 붙잡히면 잘못하다간 허리가 잘릴 거야. 우리 목표는 영종도가 아니야.”
“…….”
“영종도에서 추가적인 보급을 하고 부대도 새로 편성한 다음, 부천에 있는 해저 터널을 이용할 걸세.”
“그걸로 강북으로 넘어가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계획상으로는 문제가 없었어. 물론, 오늘 아침까지는 말이야.”
아침에 발생한 문제라면 뻔했다.
차일국의 소식이었다.
“일국이가…….”
“차일국 대원뿐만 아닐세. 그간 습격당해 납치된 다른 병력도 부천 소재의 이 수상한 연구 시설로 끌려갔다는 거지.”
“……젠장, 젠장!”
조병창의 울부짖음에 한차례 작전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손성일은 그것을 잠시 기다려 주었다.
“죄송합니다.”
“아닐세. 친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제정신인 사람이 드물지. 이왕 말한 김에 정보를 좀 더 풀겠네. 몇 차례 정찰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연구 시설이 불순물과 완성자들을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는 거야.”
“확실한 겁니까?”
“당연히 확실하지 않지. 문제는 우리가 진군하는 길목에 이 연구 시설이 위치했어. 좋든 싫든 우리는 이제 그 사실을 확인해야겠지.”
“……제가 가겠습니다.”
조병창이 자원했다.
손성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설명했다.
“잘 듣게. 여기는 최우선 목표가 아니야. 우리 입장에서는 이곳에서 시간을 지체하면 사도들이 우리 계획을 눈치챌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어.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지원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 잘 아는군. 우정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전부를 그르칠 수는 없어. 자원자가 아니라면 이곳에 병력을 투입하지는 않을 거야.”
“……괜찮습니다.”
조병창이 어둡게 말했다.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성진이었다.
“저도 가죠.”
“올빼미…… 음, 확실히 소수만 투입될 거고 구출 후에 따라붙을 수 있거나 생존자들을 보호할 정도의 대원이어야 하니 자네가 가는 것도 괜찮겠군.”
“저도 갈게요!”
“저도!”
최별과 송하린이 자원했다.
손성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성진도 예상하지 못한 인원도 손을 들었다.
“저도 갈게요!”
“음? 민상 군? 자네는 내 곁에서…….”
“부천 정찰에는 저도 몇 번 나간 기억이 있습니다. 그곳 지리는 제가 꿰고 있으니 임무에 도움이 될 겁니다. 보내 주세요.”
손성일이 고민하다 답했다.
“알겠네. 이러면 부천 연구 시설 생존자 확인 및 구출은 최정예들로만 꾸려진 거군. 부탁들 하겠네.”
“예.”
“네.”
“작전은 동이 틀 무렵에 시작될 것이고 차량을 제외하고 추가적인 지원은 없을 거야. 고립되더라도 돌아오는 길에 구해 줄 테니 살아만 있게, 살아만.”
“…….”
“그럼, 각자 행운을 빌자고. 토막잠이라도 자 두게.”
***
작전 회의가 종료되었다.
성진은 회의가 끝나고 따로 이민상을 찾아갔다.
“민상아.”
“형, 오늘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어쩌다 여기에 오게 된 거야?”
“그…… 잘 몰라요.”
“몰라?”
이민상이 성진에게 설명했다.
그가 이곳까지 오게 된 사연은 성진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원래는 등불과 합류해서 대구에 합류했었는데…….”
“그랬었는데?”
“기억이…… 기억이 안 나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기억나는 건데?”
“딱 거기까지. 그리고 눈 떠보니 세종이었고 어쩌다 휘말려서 싸우다 보니 여기까지 와 있는 거죠.”
“……손성일 어른이 널 많이 아끼나 보더라.”
“네, 제가 한몫 단단히 거들잖아요! 하하하! 각오해라, 올빼미!”
“다행이다.”
“뭐가요?”
“그냥, 전부.”
이민상이 활발하게 지내는 것도.
그의 젊음이 돌아온 것도.
그리고 그가 슬펐던 기억을 잃은 것도.
어찌 보면 전부 다행이었다.
“작전은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요? 어림없어요. 무조건 따라가서 제 달라진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 드리죠!”
“위험한데…….”
“이상하게 실력이 붙었더라고요. 이제 진짜 저 걱정 안 하셔도 된다니까요?”
“알겠어, 믿는다. 좀 이따 봐.”
“네!”
성진이 자리를 떴다.
이민상은 그 자리에 남아 계단에 털썩 앉았다.
하늘에 뜬 달을 보며 이민상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과 함께 속마음을 내뱉었다.
“후우……. 신조여, 여전히 믿는다는 거짓말을 하다니…… 변한 게 없군.”
이민상은 스칸다에서의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다른 기억을 찾았다.
성진이 알던 이민상과 지금의 이민상은 다른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