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187화 (187/222)

187화

“그래서 누구로 하게?”

“방장미 씨와 박학기 씨로 하겠습니다.”

“더 필요 없어? 팍팍 뽑아도 돼. 우리 돈 있어.”

“규모를 늘려 봐야 통제만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특히나 게이트 발생 상황에서는 각성자가 아닌 이상 개개인이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려우니까요.”

“초모 말도 일리가 있어. 그런데, 각성자인 건 어떻게 알아낸 거야? 나랑 옆에 보좌관은 꿈에도 몰랐네. 일 제대로 안 할래?”

“죄송합니다. 근데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뭐?”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 데 깜빡 잊은 겁니다.”

“그게 더 중죄야. 알아?”

“그래서 죄송합니다.”

성진은 기관장과 함께 차로 걸어가며 대화를 나눴다.

“그래도 2명만 뽑는 건 너무 아쉽네. 어떻게, 더 키워 볼 생각 없어?”

“제가 맡게 될 임무는 인명 구조가 주된 목표입니까?”

“아니, 게이트 척결! 이 땅에서 게이트를 몰아내자! 아자, 아자! 인데?”

“그럼 둘로 충분합니다. 다른 팀장님은 많이 뽑았나 보죠?”

“어, 좀. 20명 중 탈락자를 세는 게 쉬울 거야.”

보통 개인 부대를 꾸리면 인원이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성진의 생각은 달랐다.

‘필요 없어.’

성진이 무명의 일개 부대원으로 살았을 때도 그렇게 느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크게 도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지 않는 대원이 적었으니까.

그것도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상대로 한 임무였기에 그 정도였지 몬스터와 싸웠다면 분기마다 인원이 갈려 나갔을 것이다.

“따로 팀장 충원 계획이 있습니까?”

“우리는 늘 계획을 세우지. 하지만 제대로 달성하는 건 몇 없어. 그냥 계획을 더럽게 많이 세워. 그래야 하나라도 건지거든.”

“계획은 있다는 거군요.”

“응, 예산으로 당겨온 게 꽤 되거든. 문제는 2세대 각성자가 몇 없다는 거지. 우리에게 정체가 드러난 2세대 각성자들에게 접촉 중인데, 국외에서도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나 봐. 영 성과가 없네.”

성진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게이트 통제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는 2세대 각성자가 유일한 희망이겠죠.”

“그런 의미에서, 초모가 우리에게 와 준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 혹시 바라는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도 돼.”

기관장이 표정을 숨기며 물었다.

‘바라는 것?’

강부용 기관장이 의도하고 물은 것인지, 아니면 그냥 던져본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뜻하지 않게 성진의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사람을…… 1명 찾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누구, 동료?”

“아뇨, 동료는 아니고 그냥 소식이 궁금해서요.”

“그래?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누군데?”

“……아닙니다. 생각해 보니 혼자서 찾는 게 낫겠네요.”

“뭐야, 그게. 괜히 떠본 거지? 어디까지 가능한가?”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전 들어가 보겠습니다.”

“알겠어. 그럼, 내일 또 봅시다. 하아…… 또 결재하러 가야겠네.”

조금 걷자, 황 기사가 끄는 성진의 차량이 보였다.

성진은 다가가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탁.

“황 기사님. 미리 와 계셨네요?”

“하도 연락이 없으셔서 일단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어떠셨나요?”

“일정대로 진행했습니다. 집으로 가 주세요.”

“네! 출바알!”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추적추적 빗방울이 떨어졌다.

촤아아.

타이어가 젖은 노면을 지나치며 내는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게 했다.

지금 한 선택이 옳은 선택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후우…….”

“고민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황 기사님은 고민 없으신 가요?”

“왜 없겠습니까? 아들딸 키워 놨더니 아들은 주폭으로 빨간 줄 갔고 딸은 시집갔다가 몇 달 못 살고 돌아왔습니다. 성격 차이라고 하는데 뭔가 있었나 봅니다.”

“…….”

“제가 더 잘난 아버지였다면 상황을 바꿀 수 있었겠죠. 하지만 사람이 어디까지 잘나야 한다는 말입니까?”

“무슨 말이죠?”

“제가 대기업 회장이었다면 뭔가 바뀌었을까요? 자식들의 삶이 조금은 윤택해졌겠죠. 하지만 여전히 고민하고 살고 있을 겁니다. 누가 그러지 않았나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네, 들어 본 것 같네요.”

“그거 잘못된 말입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건 마치 없던 게 생긴 것 같잖아요? 그게 아니라 그냥 모든 힘에는 그에 마땅한 책임이 있습니다. 힘이 적다고 책임이 없는 게 아니에요. 저도 제 적은 힘에 걸맞은 고민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군요.”

“초모 님의 고민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운 내시라는 겁니다. 선택의 결과를 모두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니, 그걸 안다고 해도 그가 내릴 결론은 뻔하죠.”

잠시 차를 정지선에 멈춘 그가 빙긋이 미소 지으며 뒤로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

“그렇겠네요.”

“그러니 웃으세요. 웃는 걸 선택해도 따라오는 책임 같은 건 아주 사소합니다. 얼굴에 팔자 주름이 조금 짙어진다는 것?”

“말씀을 굉장히 잘하시네요.”

“하하하! 이거저거 주워들어서 그렇습니다.”

성진이 오늘 잠시 어두워졌던 이유는 신아름과 함께 국존에 온 것이 잘한 선택인가, 또다시 이용만 당하다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

그에게도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지 모른다.

해외로 나간다든지 오로지 신아름만 바라보며 그녀 옆에 붙어 있든지.

하지만, 그 선택의 끝이 행복을 완성하느냐 묻는다면 똑같이 헤맬 것이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 갈림길 중 방향을 정해 한곳으로 걸을 뿐이었다.

***

방장미와 박학기의 괴상한 능력에 적응하고, 그들의 실전에서의 교전 능력을 훈련을 통해 가다듬는 것으로 한 달이 흘렀다.

시계를 보면 시간이 안 가지만 잠시 다른 일에 몰두하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 있었다.

한 달째, 황 기사의 지인을 통해 은퇴했다는 염동력 능력자 김우열의 소재를 파악하려 했지만, 개도국으로 나간 후에는 종적이 묘연하다는 대답만 되돌아왔다.

더 깊이 추격을 하면 상대도 성진이 자신을 찾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굳이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할 필요는 없으니 일단 놔두라고 했다.

여유가 되면, 직접 그를 찾을 생각이었다.

데자뷰와의 거래도 계속 눈에 밟히니 모든 걸 끝낸 후에 찾아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곳곳에 산적해 있었다.

성진은 시끄럽게 울어대는 전화를 받았다.

삐이.

-어, 나야. 부용이.

“안 그래도 지금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렇지? 역시, 먼저 말해 봐.

“……올 겁니다.”

-……뭐가 오는데?

성진은 면도하며 강부용에게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서울에 또다시 게이트가 발생할 겁니다.”

-……다른 팀장도 그렇게 말하더라고. 위치는 파악돼?

“네, 열 군데가 좀 넘습니다.”

-더럽게 많네. 그거 하나하나 세세하게 집어 줄 수 있어?

서울에 다시 한번 게이트가 발생할 것이다.

이번에는 전과 비슷한 규모의 게이트가 서울에만 열 군데 정도 발생할 예정이다.

다행인 것은, 이번엔 위치 특정이 가능하다는 점과 시민들이 미리 대피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성진은 기감을 넓게 퍼트려 그 느낌을 잡았다.

지도에서 게이트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체크 표시를 해 강부용에게 보냈다.

-어, 받았어. 초모랑 다른 팀장이랑 대조해 봤는데 얼추 맞아 떨어지네. 건물까지는 알 수 없는 거야?

“거기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쉽네. 하긴 그렇게 딱딱 맞아 떨어지지 않더라도 이 정도만 해도 어디야? 근데, 초모가 표시한 곳이 좀 더 많아.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른가? 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모두 대비해야겠지.

성진과 기관장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강부용은 원래부터 바쁜 사람이었고 2세대 각성자가 처음으로 선보이는 지금은 그 업무가 더 많아졌다.

다음 날, 성진이 방장미, 박인혁과 함께 훈련장에서 뒹굴고 있을 때 강부용의 전언이 도착했다.

전언을 들은 성진은 아무 표정을 짓지 않았다.

“팀장님, 기관장님께서 뭐라고 하시나요?”

“우린 이번 임무에서 열외 되었다고 합니다.”

“왜요? 설마 저희 때문에…….”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사정이 있는 것 같아요.”

성진이 황 기사를 불러 재빨리 본관으로 갔다.

강부용은 격무에 시달려 며칠 사이에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어, 왔는가. 미안, 반겨 주지 못해서.”

“왜 2팀이 임무에서 배제된 겁니까?”

“그야 뻔하지. 기성세력과의 반발 때문이야.”

“반발?”

정확히 듣지 않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강부용은 껌 하나를 씹으며 머리를 헝클었다.

“내가 재난 보호 기관의 머리이긴 하지만 내 머리 꼭대기에도 누군가 살잖아?”

한 국가의 정점에 오른 자도 국민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하물며 국가 기관의 수장이 제멋대로 행동할 수는 없었다.

분명, 누군가의 눈치를 보아야 할 것이다.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설명이 필요합니다.”

“앉아. 설명할게.”

강부용은 코를 찡긋하고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 재난 보호 기관 산하에 몇 개의 조직이 있는 건 알고 있지?”

“네.”

“내가 전반적인 것을 통제하는 건 맞지만, 각성자들의 경우는 그게 좀 예외야.”

“1세대 말입니까?”

“그래, 1세대. 초창기 1세대 각성자의 대거 이탈로 한번 휘청하고 나니까 윗분들이 작정하고 그들의 편의를 봐줬거든. 초법까진 아니더라도 위법이나 불법도 어느 정도 용인해 주고 있는 수준이지.”

“…….”

“기득권과 유착하여 지금까지는 크게 잡음 없이 잘 운영되어 왔지만, 이게 상황이 바뀌었어.”

“저희 때문이군요.”

“정확한 원인은 주체가 바뀌었기 때문이지. 초모. 이건 정말 맹세코 얘기하는 건데 당신이랑 다른 팀장의 존재는 국존 팀을 제외하고 정확하게 몰라. 그냥 존재한다고만 아는 유령 같은 존재라고. 만일 이게 아니라면 날 찢어 죽여도 좋아.”

강부용은 약속을 지켰다.

그녀는 성진과 2세대 각성자의 신분을 비밀에 부쳤다.

“다른 놈팡이들이 정보를 요청해도 대충 뭉개 왔어. 그 결과가 이런 거지. 우리야 초모와 다른 팀장의 힘을 알지만 다른 이들은 보지 못했으니까.”

“또 있는 거죠?”

“그래, 혹시 세대교체가 뭔지는 알지?”

“예.”

“1세대 각성자와 2세대 각성자가 지금 그런 상황인 거야. 잘 생각해 봐. A는 게이트에 대응할 수 있지만, 위치는 알지 못해. B는 둘 다 가능해. 당연히 B가 우위겠지?”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은 이 중 B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사회는 흐르는 생명체야. 당연히 B의 숫자가 좀 올라오면 A를 B로 대체하겠지? 그럼 A는 그동안 누려 오던 것을 잃을 수 있으니 반발할 테고?”

“1세대가 반발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그들과 유착하던 의원들도. 2세대가 흐름을 주도하는 걸 원치 않는 모양이야.”

“우리나라답네요.”

“일관성 있는 모습이 매력 넘치지 않아?”

“어떻게 나오는 겁니까?”

강부용이 한숨을 쉬고 답했다.

“다 까놓고 말하면 온갖 추잡한 짓은 다 하고 있어. 스마트폰 자주 들여다보나?”

“연락 용도로만 사용하는 정도입니다.”

“그럼 모르겠군. 일단 언론 플레이부터 시작해서 시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어.”

“어떤 프레임이죠?”

“2세대는 1세대와는 달리 불안정한 아류다. 2세대의 예측은 증명할 수 없는 힘으로 사실상 재난 보호 기구가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낸 존재다. 뭐, 이런 얘기들?”

“그래서 이번에도…….”

“그래, 이번에도 1세대들이 대거 투입될 거야. 2세대가 나설 자리를 만들지 않으려는 수작이지.”

“1팀은 어떻습니까?”

“1팀은 내보낼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양심은 있어야지. 아마 1팀이 임무를 실패라도 한다면 온갖 난리를 쳐서 바닥까지 끌어내리겠지.”

성진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니.

“알겠습니다.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부탁해.”

흐름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여론을 등에 업었고 국민에게 친숙한 존재인 1세대 각성자들은 주도권을 쥐고 놓지 않았다.

1차 투입에서 1팀이 담당한 지역에서 민간인 둘이 목숨을 잃은 것이 기폭제였다.

분명 피난 권고를 무시하고 들어와 사고가 난 것이었고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지만, 언론은 1팀의 실수를 크게 부풀려 보도했다.

-엿 됐어.

“…….”

-이 새끼들이 일부러 게이트 폐쇄가 어려운 지역에 1팀 파견을 요청한 건 알았었는데, 일이 터져도 꼭 이렇게 터지는군. 구실을 줬으니 한동안 물어뜯을 거야.

아무튼, 웃기는 새끼들이네. 1세대 각성자를 햄버거 세트처럼 6명씩 묶어서 진행한 곳보다 2세대 각성자 1명 달랑 보낸 곳이 상황 처리가 더 빨랐는데…… 그건 쏙 빼놓고 논점을 흐리니 문제야.

“상황이 어떻게 되는 겁니까?”

-1팀은 한동안 나서지 못하겠지. 물론 2팀도 그다지 상황이 나아지진 않을 거야. 자기들 레이더 역할이나 하란 건데…….

아쉬운 건 성진이 아니었다.

강부용이 성진의 눈치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아오! 2세대가 10명만 넘어 봐라! 1세대 다 외국으로 보내고 2세대들 손주까지도 놀아 줄 수 있는데……. 저기…… 미안해.

“아닙니다. 전 괜찮습니다.”

-조금만…… 참아.

***

그로부터 다시 3개월 후, 어느새 2세대 각성자의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그간 국존의 1팀은 물론이고 2팀도 임무에 나간 적이 없었다.

당연히 성진은 훈련을 쉬지 않았지만 2개월쯤 지났을 무렵부터 방장미와 박학기는 조금 지쳤었다.

이렇게 열심히 훈련해도 실전에 투입되지 못하고 청춘을 다 보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와중, 봄이 올 무렵에 사건이 터졌다.

“네, 기관장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왜 그러십니까?”

-꼴좋다. 등신 같은 새끼들. 내 그러다 일낼 줄 알았다. 어디서 남의 집 반찬 보고 훈수를 둬? 각성자 놈들도 돈과 권력에 눈멀어서 다른 놈들한테 붙으면 어떻게 되는지 이제 알았겠지?

“네?”

-초모! 제발 뉴스 좀 봐!

“바빴습니다. 무슨 일 생겼습니까?”

성진은 정말로 바빴다.

훈련만으로도 정신이 없었고 최근 능력의 다양한 사용 방법도 터득하고 있었다.

-어제 있었던 작전 있지?

“네.”

1세대 각성자들의 대거 투입.

마찬가지로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에 발생한 게이트에 많은 인원이 투입되었다.

물론, 그중에서 2세대 각성자는 쏙 빼놓고.

-각성자들이 떼죽음을 당했나 봐. 다행히 뒤늦게 임무를 마치고 합류한 S급 각성자 둘이 상황을 어찌어찌 수습하긴 했는데, 사망자가 열이 넘어.

“저런…….”

-이게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줄 알아? 한동안 국회에서 조리돌림을 당해 내 권한을 많이 뺏겼거든. 각성자들 임무 투입 계획과 관련된 계획은 내 소관이었는데 1세대 각성자들이 젖을 빠는 의원이 가져가서 제 마음대로 지시했거든, 국회에서도 찬성했고.

각성자와 게이트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임무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

-미친놈이 급수만 따져서 위험 구역에 정신 능력자 비중을 높여서 쏟아부은 거야. 내가 미친 짓이라고 항변했지만, 저 알아서 한다고 상관하지 말라고 조잘거렸지. 그 꼴이 이거야. 걸작이지?

“……그래서?”

-역풍이야, 바람이 반대로 불고 있어. 1세대 각성자들은 이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채고 나한테 매달리고 있고 저쪽 편에 붙었던 정치판 놈들도 내 말에 힘을 실어 주고 있어.

“잡아떼면…….”

-아마추어야? 당연히 통화 내역도 다 있고 내 기반도 약하진 않아. 내 탓으로 돌리면 다 끝이지. 모양 빠지게 그런 꼴을 당하겠어? 아무튼, 출동 준비하라고. 2팀 다 출격이야.

“…….”

-가자, 우주 최강 우리 존재! 2세대 각성자가 얼마나 무서운지 이번에 보여 줘. 기선제압 해야지!

“알겠습니다.”

***

“미친 거 아니야? 피난 대상 지역인데 왜 출근하래?”

“헬조선 경영자들께서는 피난은 게이트 생기고 하랍니다.”

“이거 불법이잖아, 진짜!”

“중소기업이 불법 편법 가리는 거 봤어? 안 그래도 회사 재정 쪼들린다고 밥 해 주는 아주머니도 잘랐는데 오늘 중요한 일도 있잖아. 이거 놓치면 회사 문 닫는단다. 그러니까 상여금 걸고 나오라고 하지.”

“오늘 벌어 오늘만 사는 양반이니까, 그 양반은. 자기는 왜 출근 안 했대?”

“그냥 출근 안 하는 게 도움 주는 거야. 정말로.”

“후…… 이놈의 회사 이번 달 월급만 받으면 때려치운다.”

“너 그거 신입 때부터 달고 다니던 말이잖아. 또 폰 겜에 현질 했냐?”

“어떻게 알았어요?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은데 이 회사는 신기하게 월급은 안 밀리네.”

투덜투덜 대며 여직원 1명과 남자 직원 4명이 작은 사무실에 들어앉았다.

건물 자체는 거대했지만, 이 큰 건물에 있는 것은 5명이 전부였다.

“대체 우리 경영자님께서는 열쇠는 어떻게 구해서 넘겨준 거야?”

“건물 관리인 아저씨랑 같이 술 마시는 사이잖아요. 자기 말로는 아랫사람들이랑 어울려야 한다나 뭐라나. 관리인 아저씨가 자기 아랫사람이라는 거야, 뭐야?”

“누가 보면 자기가 이 건물 주인인 줄 알겠다. 어휴…… 아무튼, 싸게싸게 오전에 일 다 마치고 오후에는 볼링이나 치러 가자고.”

“과장님이 쏘시는 거예요?”

“널 총으로 쏴도 될까? 당연히 게임 지는 쪽이 내는 거지.”

“우리 5명인데…… 아, 신 대리는 오늘 예비 신부 보러 가나?”

“네, 상견례 날짜부터 뭐 이것저것 정할 게 너무 많네요.”

모두 회전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았다.

17층 건물의 중간쯤 되는 높이.

그들이 머무는 10층.

“쓸데없이 뷰는 좋아요, 또. 엉? 저건 뭔 헬기야? 계속 얼쩡거리네.”

타닥, 탁.

타다닥.

타자 치는 소리만 가득한 곳.

“아, 예. 어머니, 제가 지금 좀 바빠서……. 오늘 중요한 일도 있고…… 예, 예.”

“아니 일부러 연체하는 게 아니고…… 조금만 사정을…….”

타닥, 탁.

타닥.

탁.

탁.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

탁.

타닥.

“……방금, 방금 저 소리 뭐였지?”

“뭐, 뭐예요? 무섭게…… 저거…… 저거 뭔데요?”

“내가 어떻게 알아!”

“소리 지르지 마요! 지금 소리 지를 때에요?”

사원들의 타자를 두드리던 손은 얼어붙어 고개만 삐거덕거리며 돌아갔다.

“하, 하하…… 말도 안 돼. 피난 구역이 그렇게 넓은데 다 비우라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그리고 그거 무시하고 출근했다고 우리 건물에 게이트가 열릴 리가 없잖아.”

“그, 그렇죠?”

그들이 내뱉는 말은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기괴한 울음소리는 계속되었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쿵!

쿵!

쿠우웅!

“지, 진동이…… 흑…… 진동이 느껴지는데요?”

“누, 누가 가 볼 생각 없나?”

“누가 가요! 대체 이 상황에서…….”

“어, 어떡하지? 아! 시, 신고를…….”

“그보다 저 문부터 잠그는 게 어때요? 활짝 열어 놓고 있는데 저러다 괴물이 우리 보기라도 하면…… 흐윽!”

“왜, 왜 그래?”

“저, 저기! 저기 보세요!”

활짝 열린 문 너머로 초록 피부의 괴수가 서 있었다.

염소의 얼굴을 한 작은 괴수는 초등학생 정도 되는 크기였다.

“하, 하하…… 그래도 저 정도면 지금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면…….”

그 순간, 염소 머리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끼아아아아아아!

쿵.

쿠웅.

이 진동은 저 작은 괴수가 만들어 내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저 괴수는 다른 괴수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 것 같았다.

다다닷!

염소 머리가 연락을 마쳤는지 열린 문으로 돌진했다.

끼아아아!

“어, 어떡해!”

“막아아! 막으라고!”

전부 소리만 지르고 울면서 꼼짝도 못 하는 상황에 누군가 나섰다.

“으아아아아!”

쿠웅!

끼아아아!

새빨간 소화기로 상대를 후려친 남자는 오늘 예비 신부를 보기로 한 사원이었다.

염소 머리는 소화기에 얻어맞고 뒤로 물러났다.

남자는 재빨리 문을 닫고 잠갔다.

“허억…… 허억…….”

“흑…… 어떡, 어떡해요…….”

“자, 잘했어. 김, 김 대리.”

“시발…… 우리 다 죽을 거예요…….”

“엄마한테 짜증 내지 말 걸…… 아까 통화 제대로 받을 걸…….”

쿵.

쿵.

다른 괴수의 발걸음이 점점 다가왔다.

아직은 거리가 먼 게 다른 층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곧 당도할 것이다.

끼아아아아아아!

밖에서 염소 머리가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니까.

“아! 이, 이대로 버티면 구조가…….”

“여기 10층이야! 1층부터 올라오면, 그사이에 우리 다 죽을 거라고…….”

“잠깐! 아까! 아까 헬기가…….”

“왜? 헬기?”

“헬기 소리가 계속 크게 들려서 희한하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건물이나 옆 건물에 내린 거 아닐까요?”

“……자세히 말해 봐.”

“아까 분명히…….”

쿵!

쿠우웅!

“오, 온다!”

“흑…… 흑…….”

몬스터가 같은 층에 도달한 것 같았다.

문을 향해 똑바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콰직!

“으아아아아!”

“히이익…….”

괴물의 팔이 문을 뚫고 나왔다.

큰 구멍이 뚫린 문.

팔이 도로 쏙 빠져나가더니 이번엔 웬 눈동자가 사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몬스터였다.

“으으으…….”

“우릴 봤어요…….”

몬스터가 시선을 거두고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달려와서 한 번에 문을 뭉갤 생각이 분명했다.

쿵!

“제발! 제발 누가 좀…….”

“도와주세요! 제발…… 제발…… 죽기 싫어…….”

그때였다.

창밖에 그림자가 어린다고 느끼자마자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퍼졌다.

쨍그랑!

“뭐, 뭐…….”

바닥을 몇 바퀴 구른 그림자들 중 1명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철컥!

쿠우우웅!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몬스터의 돌진에도 구멍 뚫린 문은 멀쩡했다.

끼아아아아!

“잠갔습니다.”

손을 앞으로 뻗은 박학기가 성진을 보며 말했다.

성진은 얼굴의 반은 전투복으로, 나머지 반은 고글로 가리고 있었다.

인이어에 손을 올린 그는 뭔가를 중얼거렸다.

“목표 확보. 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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