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화
***
[제목 : 정부가 드디어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아침 발표한 2세대 각성자의 팀이 정상 운용되기 시작했다는 말은 출근길 사람들의 기분을 들뜨게 했는데요, 이에 현장에 나와 있는 김백수 기자 연결해 보겠습니다. 김백수 기자?
-네, 김백수입니다. 오늘 아침 부모님의 등골을 빨았습니다.
-아주 훌륭하십니다. 게안부를 비롯하여 처음으로 재난 관리에 허점을 드러낸 대한민국. 그를 만회할 이번 행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주 좋습니다!
-끝인가요?
-네.
[제목 : 2세대 각성자 명단 왜 공표 안 하냐?]
1세대 각성자에 스킨만 씌워서 2세대라고 우기는 거 아니냐? 주머니 몬스터처럼? 이거 비밀이라고 하면서 숨기는 게 영 불안한데.
-정부가 무능하긴 해도 우리 최백수 님만 할까요? 하하하.
-이런, 이런 정백수도 만만치 않다고? 하하하하.
-게이트 사태? 응, 나만 아니면 돼. ㅋㅋ
-응, 니 귀에 게이트. ㅋㅋ
-꿀처럼 달콤해 니~
[제목 : 정부 무능하다 하지 마라. ㅡㅡ]
일선에서 일하는 공무원들 요즘 죽어 나가는데 함부로 말하지 마라. 윗대가리들이 무능한 거지 수족들은 멀쩡하게 작동 중. ㅇㅋ? 내 친구 얘긴데 걔도 이번 게이트 유족들한테 머리채 뜯겨서 땜빵 생겼댄다.
-내 친구 얘기 = 내 얘기
-디토에서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하면 어디 길거리에서 할까요?
-여기 폐기물들 모아 둔 곳인데 ㅋㅋㅋ 지금도 사이비 신도들처럼 백마 탄 올빼미 기다린다고.
-지인 피셜 거르겠습니다. 불만 있습니까, 휴먼?
[제목 : 우리나라는 진짜 괜찮은 편이라니까?]
2세대 각성자가 애초에 타국에는 잠잠해. 그런 얘기 일언반구도 없고 근시일 내로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만 발표함. 우리나라 진짜 개 쩔지 않냐? 전염병이나 이런 거 돌았을 때도 우리나라만 대응 개 쩔게 해서 사망자 없었다는 짤 보고 웃어넘겼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위기 상황에 더 힘을 내는 게 우리 민족 종특인 듯.
-이상 다른 종족의 발언이었습니다.
-아직도 백의민족 프레임입니까? 현대 사회는 지구촌입니다. 이제 그만 종족 프레임에서 벗어나세요. ㅋㅋㅋ
-근데 진짜 일 터지면 제일 빡세게 움직이는 게 한국이긴 해. 외국에서도 넘사벽 취급 받자너.
-문제는 위기가 터져야 움직인다는 점.
-고건 맞지. ㅋㅋㅋ
-아 이건 맞잖아. ㅋㅋㅋ
[제목 :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소를 키우십시오!]
게이트 뭐 깜냥도 안 되는 것들 다 각성자들로 밀어 버리겠습니다! 크으으으! 주모! 막걸리 언더락으로!
-막걸리 언더락!
-주모 여기도 한 잔!
-오랜만에 국뽕 언더락 조진다. ㅋㅋㅋ
[제목 : 아, 근데 2세대 각성자가 누굴까?]
진짜 은퇴한 1세대들 복면가왕 시키는 거 아니야?
뭐 하러 정체를 숨기는데?
뭐, 사생팬처럼 집 앞에 가서 대기할까 봐 그래?
-정보) 정말이다.
-정보) 들켰다.
-돈도 오지게 벌 텐데 솔직히 명예는 쥐뿔 없잖아?
-명예가 왜 없어? 연예인처럼 빨아 주잖아.
-빨기만 하냐?ㅋ 빨다가 씹어 버리니까 다 극혐하는 거 아니야. ㅋㅋ 1세대 각성자 중에 구조 실패했다고 대중한테 개 까여서 자살한 거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ㅋ
-님 조증임? 말끝마다 쳐 웃네.
-정보) 들켰다.
-하긴 나라도 돈 벌면 정체 감추고 살겠다. ㅋㅋ 미디어 노출되면 좋을 일이 뭐가 있어?
-인기가 많아지지.
-혈서로 된 편지나 안 받으믄 다행이다, 이것들아.
-네가 죽였어! 너희들이 죽였다고!
-으, 시바 끔찍해. ㅋㅋ
-뭐가? 혈서가?
-아니, 방금 거울 봤어.
***
탁.
탁.
“다 됐나?”
신아름이 마지막 짐을 집 안에 들여놓으며 말했다.
국존의 거주지에는 신아름의 어머님도 함께 들어왔다.
줄곧 성진과의 관계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언짢아하던 태도는 국존의 거주지에 오며 완전히 사라진 듯 보였다.
그녀가 성진을 마주하자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 가관이었다.
-호호호, 최 서방 덕에 남들보다는 오래 똥칠하다 죽겠어. 고마워.
성진은 미소로 화답했을 뿐이었다.
비록, 그녀와 자신의 관계를 반대했던 사람이지만 딸자식 둔 어머니 심정이 다 똑같을 테니 이해가 되었다.
신아름의 어머님이 하시던 식당은 게이트 사태가 발생하자 무섭다며 어머니가 헐값에 권리금 없이 넘기셨다고 했다.
사소한 변화들은 이런 식으로 찾아왔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사를 빙자한 피난.
신아름과 그녀의 어머님이 한집에 살고 그 옆 동에 성진이 혼자 살았다.
결혼도 하기 전부터 남녀가 유별한데 같이 붙어 있어야 쓰겠냐며 신아름의 어머니가 제안한 일이었다.
딱히 그 근거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 때문에 자신이 외부로 나가게 됐을 때 불안해할 그녀를 지탱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긴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마땅히 그 일을 잘해 낼 것이고.
일전의 서먹서먹했던 사이는 상호 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지자 금세 아물었다.
-최 서방만 믿어. 우리 딸…… 아빠 없이 키우느라 나, 일 가리지 않고 했어. 그런데 기껏 키워 놨더니 식물인간 된 남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녀서 속이 찢어졌지만…… 결국엔 아름이가 남자 보는 눈이 있었네. 언제 이런 집 살아 보겠어?
성진은 가만히 자신의 손을 잡아 오는 신아름의 어머니 손을 보았다.
고생을 많이 한 손이었다.
신아름에게 미모를 물려주었을 게 분명한 그 짙은 이목구비는 세월과 고난에 흐릿해져 있었고 손에는 지문이 없었다.
성진은 그 손을 꽉 쥐었다.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는지, 신아름의 어머니는 빙그레 웃었다.
-다치지 마, 절대. 아름이 마땅히 사랑받아야 하는 애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신아름의 어머니는 거주지 내에 존재하는 포켓 상권에 음식점을 하기로 했다.
가게를 넘긴 비용으로는 턱도 없었고 성진이 지원했다.
어차피 신아름도 직장을 관뒀기에 당분간 어머니의 가게를 돕기로 했다.
신아름과 이사를 마친 성진은 그날, 자신의 집에 반찬을 혼자서는 먹지도 못할 만큼 바리바리 싸 들고 오는 신아름의 어머니에게 연신 감사를 표해야 했다.
“알지? 임무 나가기 전에는 연락 꼭 하고 나가는 거?”
“응, 알아.”
“알아서 잘하겠지만…… 불안해서 그래. 위험한 임무는 절대 나가지 마…….”
“알았어, 아름아.”
“나 좀 봐, 벌써 잔소리하네?”
“듣기 좋아.”
“……거짓말.”
성진은 그녀와 밤을 보내고 다음 날, 국존의 본부로 향했다.
걸어가기 위해 집 밖을 나서는데, 못 보던 차가 한 대 와 있었다.
‘응?’
“아!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운전자가 밖으로 튀어 나와서 인사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었다.
처음 보는 인물이었기에 성진이 조금 경계하는 눈빛으로 묻자, 상대는 이렇게 말했다.
“하하하, 제가 초모 님에게 배정된 개인 기사입니다. 국존 소속은 아니고 개인 비서처럼 여기셔도 무방합니다.”
“어디 소속이죠?”
“기관장님 소속입니다.”
“네?”
“저…… 능력 소실로 은퇴한 저급 각성자인데 어떻게 인연이 닿아 이렇게 써 주시네요. 하하하!”
“그렇군요.”
그때 보았던 기관장의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다고 평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주변에 이렇게 따르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중년은 성진의 안색을 살피며 눈치를 보았다.
“저…… 황승현이라고 합니다. 혹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아뇨, 어차피 걸어가도 될 거리라 이렇게 황…….”
“기사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이 일한 지 좀 됐습니다.”
“황 기사님이 괜히 고생하시는 거 아닌가, 마음이 쓰이네요.”
“하하하! 그렇게 말씀하시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저야 어차피 국가에서 돈 받고 하는 일인데 제가 할 일이 계속 있어야죠.”
“그럼…….”
“가시죠! 이쪽으로.”
탁.
성진의 차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간 황승현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좋은 분을 만난 것 같아 다행입니다. 기관장님이 절 찾았을 때는 어떤 까다로운 분 때문에 그러실까 걱정했었거든요.”
“그랬군요.”
“말씀은 편하게 하셔도…….”
“말을 편하게 하기는 제가 불편합니다.”
“하하…… 그러시다면…… 혹시 말을 걸지 말까요?”
“아뇨, 대화는 상관없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래도 혹시라도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어, 엉뜨 켜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능력 소실은 무슨 말입니까?”
“아하하…… 저급 능력자들은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능력이 점점 희미해지다가 돌연 사라져 버리는 것이죠.”
“황 기사님은 능력이 뭐였죠?”
“물체를 잠시 가볍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일전에는 물산 회사에서도 일했었고 국가 소속으로도 활동했었는데 어느 날 능력이 사라지더군요.”
“원인은요?”
“과로가 아니겠습니까? 저희 같은 저급 능력자들은 함부로 능력을 남용하면 꼭 그런 결말을 맞이하더라고요.”
“…….”
황승현은 자신의 딸 얘기부터 나이 드신 부모님 얘기까지 서슴없이 털어 놓았다.
조금 가벼운 느낌도 들었지만, 사람이 좋아 보였다.
“다 와 갑니다.”
“네.”
“오늘 일정을 전해 듣긴 했는데, 말씀드릴까요?”
“네.”
“점심 중에는 초모 님이 사용할 피복 치수 측정 및 개인 장비 지급이 있고 오후 중에 팀원들이 방문할 예정입니다.”
“팀원들이 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오후에 그의 팀을 만난다.
성진은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군인이었을 때엔 자신이 그 팀원 중 1명이었는데 이제는 팀장이 된다니.
코끝을 찡그릴 때쯤, 본관에 다다랐다.
“그럼 저는 지리도 읽힐 겸 이 주변을 돌겠습니다. 다른 기사님들과도 친해져야 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식사 때는…….”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럼, 무슨 일 있으면 연락 주십시오. 여기, 제 번호입니다. 하하하!”
***
“왔는가, 최 서방!”
“…….”
“아니…… 어제 초모, 여자 친구 어머님을 마주쳐서 얘기 좀 나눴어.”
“그렇습니까?”
“이 얘기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네. 좋아, 가자고.”
“안 바쁘십니까?”
“바쁘지. 근데 2세대 각성자 팀장의 팀 빌딩 때는 하루를 비워 놓고 있어. 어차피 할 일은 결재가 대다수야. 좀 미루면 어때, 당장 급한 건 이런 거지. 안 그런가?”
“…….”
기관장이 너스레를 떨었다.
성진은 그녀와 대화할수록 기가 빨리는 기분이라 많은 얘기를 나누기가 꺼려졌다.
“오늘…….”
“그래, 가자고.”
성진과 강부용 기관장은 차를 타고 자리를 옮겼다.
국존 부지는 웬만한 군부대보다 컸는데, 연구실과 더불어 훈련장도 있었다.
이번에 향한 곳은 연구실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관장님.”
“허례허식 근절. 본론으로 가자고.”
“네. 일단 세세한 부분은 조정이 필요하지만, 장비를 좀 챙겨 와 봤습니다.”
수납대에는 여러 사이즈의 전투복이 있었다.
군인들이 사용하는 의복이 아닌 특수부대원들이나 입을 듯한 전투복이었다.
“아마, 이 사이즈일 겁니다. 손목이나 디테일한 부분은 입어 보시면 1시간 내로 조정이 될 겁니다.”
성진은 그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그의 흉터 많은 근육질의 육체가 드러나자 연구소장을 비롯해 기관장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왕 박사, 확실히 군인은 군인이었나 봐. 그렇지? 몸으로 누가 장난친 것처럼 금이 가 있네.”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믿음이 가네.”
찌이익.
방검복까지 챙겨 입은 성진은 평범한 특수부대원처럼 보였다.
찌이익.
툭.
“이건 불편하네요.”
“방검복을 안 입으시면 임무 중에…….”
“괜찮습니다. 탄창 수납 용도로 만들어진 조끼가 있습니까?”
“그건 여기에…….”
훨씬 홀가분해진 성진은 빈 탄창을 조끼 곳곳에 넣었다 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게이트 부산물로 만들어진 것들은 좀 무겁긴 하죠.”
“게이트 부산물?”
“방검복의 소재가 그렇습니다. 몬스터 부산물들은 저마다 쓸모가 있으니까요. 엄청난 강도, 혹은 유연하면서 단단한 말도 안 되는 성능. 그야말로 꿈의 소재나 다름없죠.”
정부든, 유력자든, 무기상이든 게이트 연구에 관심을 가질 만했다.
하지만, 성진에게는 별 필요가 없었다.
“조끼도 조만간 개량해서 내놓겠습니다. 일단은 사용하시다가 나중에 교체해 드리겠습니다.”
“전투복도 신소재입니까?”
“네. 웬만한 불에 타지 않고 얼지도 않습니다. 자체 절연 효과도 있고요. 전투복은 게이트 부산물 연구 중 가장 선진적인 분야죠.”
성진은 목을 가렸던 전투복을 눈 밑까지 올렸다.
“아, 그렇게 하셔도 좋습니다. 호흡에 장애가 되지도 않고 어지간한 독기도 자체적으로 걸러 주죠. 방독면 사용이 임무 중 시야에 제한을 둔다고 해서 개선된 겁니다. 멋지죠?”
지금 성진의 얼굴은 눈만 드러나 있었다.
기관장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이야, 핏이 좀 사네. 이런 것도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었어.”
“…….”
“바이저는…….”
“괜찮습니다.”
“아, 그럼 인이어랑 홀로그램 고글로 대체하겠습니다. 이건 임무상 어쩔 수 없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하긴, 바이저는 뽀다구가 안 나지.”
“저기, 기관장님? 옆에서 자꾸…….”
“알았어, 알았어. 그냥 아줌마가 옆에서 구경하면서 입이나 놀리는 거야.”
성진이 반 장갑까지 착용하자 그의 모습은 완전한 전투원이 되었다.
“완전히 첨단이네.”
“한국의 보편적인 기술은 뒤처졌지만, 선진 기술은 어디에 밀리지 않습니다. 미국도 게이트 발생 이후로는 저희와 기술 협약을 맺은 상황이고요.”
그렇게 말을 하던 왕 박사가 성진의 몸을 자꾸 힐끔거렸다.
“저…….”
“왜 그러시죠?”
“아, 아닙니다.”
“말해, 왕 박사. 아까부터 계속 그렇게 훔쳐보는데, 나라도 경계하겠다. 초모에게 관심 있어? 여자 친구 있는데…….”
“관심이야 있는데……. 아, 아뇨! 그런 관심이 아닙니다.”
“그럼?”
왕 박사는 꾸물거리다 마지못해 대답했다.
“기회가 된다면 초모 님의 펄스를 한 번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펄스를? 인체 실험이라도 하게?”
“굳이 부정하진 않겠지만…… 사실 게이트 부산물 연구도 제자리걸음 상태라서요.”
“응? 아, 그랬지.”
“사실 근 2년간은 소득이 전무 했습니다. 게이트 부산물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구치지 이렇다 할 성과는 안 나오지……. 특히나 무기는 사실 그대로라고 봐도 좋을 정도죠.”
“그렇지…… 화약 이상의 파괴력을 내는 게 잘 없으니까. 그 이상 위력을 내려면 시가 전에서 사용할 수도 없고.”
“퍼, 펄스라면 다를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먼저 붙여 줬던 2세대 있잖아? 그…….”
기관장이 성진의 눈치를 보았다.
팀이 다르면 팀장의 정체도 알 수 없다.
그것의 국존의 규율이고 성진도 그 규율이 마음에 들어 국존에 몸담기를 결심했다.
“아무튼, 어떻게 됐는데?”
“실패했습니다. 능력을 다루는 건 어렵지 않아 하셨지만, 응집력이 약해 연구 용도로는 전혀 사용할 수 없더군요.”
“응집력?”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선 펄스라는 에너지원이 멀쩡한 상태로 현실에 존재해야 합니다. 전기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여기지만 누구도 번개를 그것과 동일시하지는 않잖아요?”
“음, 일리 있네.”
“그…… 그분의 펄스는 그랬습니다. 몸에서 발산되는 에너지. 그것뿐이죠. 개인의 특수성은 범용적인 장비 개발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거든요.”
성진은 다른 팀장이 누군지도 궁금했지만, 펄스의 응집이라는 말이 신기했다.
‘응집?’
“그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네?”
“펄스의 응집이요.”
“아, 그건 저도 모릅니다.”
“네?”
“그냥 막연하게 고순도의 펄스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것을 응축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입니다.”
“과학의 발전은 망상에서 시작되지.”
“과학을 좀 아십니까?”
“어딘가 책에서 본 것 같아. 그리고 나는 문과였어.”
왕 박사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뭐지, 그 표정? 마치 이래서 문과 녀석들은 하고 경멸하는 표정인데?”
“에이, 그럴 리가요?”
“맞는데?”
“…….”
“이봐?”
“……맙소사.”
“자기? 왜 그…….”
콰르릉!
성진이 한 손에 야구공만 한 구체를 쥐고 있었다.
문제는 그 구체가 펄스로 이루어졌다는 것.
“설마…… 가능한 겁니까?”
“모릅니다. 여기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지, 지금은 에너지가 날뛸 겁니다. 아마 통제를 느슨하게 하면 사방으로 퍼져 터지겠지요. 더, 더 응축해야 합니다!”
성진은 왕 박사의 말을 따랐다.
차분하게 야구공을 찌그러트린다고 생각하고 힘을 응축했다.
파지직!
지지지지직!
“이, 이거 우리 다 죽는 거 아니야?”
“조금만! 조금만 더!”
“왕 박사! 미쳤어?”
“될 것 같습니다! 될 것 같다고요!”
찌지지직!
콰르르르릉!
구체는 성진의 힘에 반발하다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야구공 크기에서 테니스공 크기로.
다시 테니스공에서 탁구공 크기로.
그리고 마침내, 탁구공에서 조그만 구슬 크기로 줄어들었다.
쩡!
성진이 힘의 발현을 멈추었다.
“이 이상은 무립니다. 터질 것 같네요.”
데구르르.
탁자에 조그만 구슬이 굴러갔다.
비취색의 영롱한 구슬은 어떻게 보면 새하얗다가도 다시 원래의 색을 발했다.
“떨어진다! 떨어져! 빨리 잡아! 터진다고!”
“기관장님, 조용히 좀 하시죠.”
“아, 그런가? 그보다 이게 뭐지?”
“펄스의 응집체입니다. 지금은 단단하게 감싸져 응어리져 있지만, 큰 충격을 가하거나 트리거를 당기면 안에 있는 에너지가 터져 나오겠군요.”
“우리 죽는다는 얘기지?”
“아닙니다.”
“휴.”
“먼지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
강부용 기관장이 왕 박사를 째려보다가 성진에게 물었다.
“괜찮아? 힘을 많이 쓴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하하하…… 정말 어마어마하네. 먼저 초빙한 2세대도 이런 건 꿈도 못 꿨는데. 왕 박사, 지금 그 구슬로 뭘 할 수 있는 거야?”
“입자 패턴을 분석해서 또…… 아니야, 일단 이걸 안전하게 파헤칠…….”
“……왕 박사?”
“아! 그렇게 하면 되겠다. 일단 연구진부터…….”
왕 박사는 영롱한 구체를 보고 혼자 계속 중얼거렸다.
결국 화가 난 기관장이 소리쳤다.
“왕 박사!”
“네, 네? 아, 죄송합니다.”
“됐어. 그보다 그 구슬로 성과가 나오려면 얼마나 걸리지?”
“연구 방향에 따라 다릅니다.”
“방향?”
“초모 님이 사용할 무기를 이 펄스에 맞게 개량하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겠지만, 다른 이들의 무기에 펄스를 담는 건 기약할 수 없습니다.”
“전자로 해. 일단 써먹을 수 있어야지.”
“네, 알겠습니다. 후자도 어떻게 다운그레이드하면 근시일 내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어느 정도로?”
“테이저건보다는 조금 세겠죠?”
“많이 세겠다 싶으면 개발해.”
“네.”
성진은 단검보다는 길고 장검보다는 한참 짧은 두 자루의 직도를 골랐다.
“신기하네요.”
“네? 왜죠?”
“2세대 각성자들은 날붙이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아닙니다.”
아마 다른 팀장도 검을 고른 것 같았다.
성진이 권총 1정과 무장을 고르는 사이, 기관장의 보좌관이 달려왔다.
그는 기관장에게 무어라 속삭였다.
“초모, 점심 할 건가?”
“별로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마침 다행이네. 초모 팀의 팀원 후보들이 예상보다 일찍 다 모였다고 하는데…… 어떻게 직접 골라야 하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
훈련복으로 갈아입은 성진이 기관장과 함께 훈련장으로 이동했다.
훈련장은 실내와 실외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들이 향한 곳은 실내 훈련장이었다.
각종 첨단 체력 단련 기구들과 대련장, 사격장 등 어마어마한 실내 크기에 감탄할 만도 한데 아무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모여 있는 20명에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예비 팀원 스물.
그중, 성진과 함께할 이들을 그가 직접 골라야 했다.
“어때?”
“다른 분은 팀을 꾸렸습니까?”
“아, 그치? 왜?”
“편제가 몇 명으로 되었죠?”
“알아야 해?”
“적어도 되나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그거야 직접 결정하면 되지.”
상관없다는 기관장의 말에 성진이 입을 다물고 사람들을 자세히 살폈다.
하나, 둘.
10명째를 지나칠 동안 성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한데…….’
모인 인원들은 너무 약했다.
이미 평범한 인간은 한참이나 벗어난 성진에게 이들은 손가락 하나로도 죽일 수 있는 자들이었다.
아마 단련에 단련을 거듭한 인재들이겠지만, 무명에 몸담았던 군인 시절의 성진에게도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음?’
모두 돌려보내야 하나 하고 걱정하던 차에, 눈에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단발의 여성이었는데 특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름이?”
“네?”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방, 방장미입니다!”
“장미 씨, 각성자입니까?”
“헙…… 어, 어떻게? 어떻게 아셨습니까? 서류에는 안 적었는데…….”
이 여성에게서 희미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 때문에 알아차린 것이고.
“능력은?”
“D, D급입니다!”
“급수 말고, 능력은?”
“저…… 정말 별거 아닌 능력인데…….”
“능력.”
“제, 제가 느끼는 감정을 미리 연결한 대상에게 의도해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푸훗…….”
“아, 그래서…….”
“뭐야. 그냥 우리랑 똑같네.”
성진이 보기에도 쓰임새가 한정적인 능력이었다.
바꿔 말하면, 그래도 쓰임새는 있다는 말이었다.
‘이 사람. 그리고…….’
천천히 후보들을 지나쳐 17번째에 서 있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박학기입니다.”
“능력은?”
“……조금 특이합니다.”
“말씀하세요.”
“제가 문이라고 생각한 곳을 완전하게 잠글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다시금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능력이야?”
“그러게.”
수치스러운지 얼굴이 붉어진 박학기는 인상을 찡그렸다.
성진이 말했다.
“해 보세요.”
“네?”
“제가 이 문 너머에서 넘어오겠습니다. 막아 보세요. 문이랑은 떨어져 계시고요.”
“……알겠습니다.”
이상한 걸 다 시킨다는 표정으로 박학기가 문 앞에 다가갔다.
잠시 손을 뻗은 그가 손을 꽉 움켜쥐었다.
찰칵.
분명 잠겨 있던 문이었는데, 다시 한번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제가 열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열리지 않습니다.”
철컥.
철컥, 철컥.
성진이 문을 잡아당겨도 문은 꿈쩍하지 않았다.
잠금장치를 풀어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디…….’
쿠웅.
성진이 주먹을 휘둘러 문을 후려쳤지만, 문은 조금 찌그러지는 데 그쳤다.
이번에는 펄스를 조금 담아 휘둘렀다.
콰르릉!
“허헉!”
“뭐, 뭐야!”
“무슨 소리…….”
콰아앙!
엄청난 충격이 문을 강타했지만, 바닥만 조금 파였을 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재밌네.’
박학기의 안색은 조금 변했다.
여태 자신이 닫고자 했던 문에 이만한 흔적을 남긴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뚫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럼…….”
콰아아아아아앙!
성진이 조금 더 힘을 줘서 후려치자 문이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났다.
쾅, 쾅!
파편이 되어 튕겨 나간 문을 멍하니 바라보던 박학기와 후보들에게 성진이 말했다.
“결과는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왕 박사가 기관장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어디서 모셔 온 겁니까?”
“미스 정이 커피 사다가 들이받았대.”
“미스 정은 자빠져도 돈을 줍는 운수네요.”
“내 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