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는 종말에 적응했다-180화 (180/222)

# 180

180화

[제목 : 데자뷰가 발표한 거 본 사람? 진짜 얼척이 없어서 ㅋㅋ]

진짜 이 새끼들 나님께서는 용서를 절대로 해 줄 수가 없네?

-무엇에 그리 화가 나셨습니까?

-해명문처럼 뭔가 발표하긴 했는데 좀 그렇긴 하지. ㅋㅋ

-아니 뭐가 그렇긴 그래야, 겜돌이들아. 제발 인생을 사세요.

-얘들아 지금 무슨 얘기하는 거야? 혹시 그거 내 얘기야?(눈치 없음)

[제목 : 데자뷰의 QnA 시간!]

Q1. 한국 서버만 너무 아끼는 것 같다. 한국 서버만 이번 스칸다 진입을 비롯하여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많았다. 모든 서버가 동등한 조건에서 게임할 수는 없는 것인가? 혹시 데자뷰는 한국 서버를 편애하는 것인가?

A1. 그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종말 이후의 개발 초기부터 결정된 사항이다. 한국은 종말 이후가 시작된 배경이자 가장 위험한 장소이다. 스토리와 관련된 에피소드와 컨텐츠가 편중된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Q2.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해외 유저들은 어째서 등불로 활동할 수 없는 건가? 또한, 같은 한국 유저들도 전부 플레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 유저들만 그 특권을 누리고 있다. 이것을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A2. 좋은 질문이다. 그럼 이렇게 대답하겠다. 우리는 복지를 실현하는 국가가 아니다. 또한,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예술 집단도 아니다. 우리는 기업이다. 일반 기업의 절대적인 가치는 얼마만큼의 이익을 달성하느냐고 나머지는 부수적인 문제일 뿐이다. 우리가 생각했을 때, 한국 서버는 이래야 한다고 판단했고 종말 이후에 그것을 반영한 것이다. 이 판단이 결국 우리의 최대 이익을 실현해 줄 것이다.

Q3. 최근 미로가 불안정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러 스트리머들이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끊김 현상이 잦았고 아예 채널이 튕겨 버리는 상황도 있었다.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와 해결 방안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다.

A3. 많은 유저들이 종말 이후를 플레이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미로의 플랫폼 수수료가 낮게 책정되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스트리머의 권익을 보장해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컨텐츠를 소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최근 한국 채널이 불안정했다. 이것은 미로의 문제가 아니라 종말 이후의 문제다.

Q4.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즉, 종말 이후에 발생한 문제가 미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가? 그럴 수 있는가?

A4. 가능하다. 특히 종말 이후의 한국 서버에 발생한 문제는 짧은 시일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긴급회의를 거쳐 결론을 내렸다. 한국 서버는 문제를 해결하고 안정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진 잠정적으로 폐쇄할 계획이다.

Q5. 놀라운 발언이다. 한국의 등불 유저들이 슬퍼할 것이라 생각되는데, 다른 방법은 없었나?

A5. 가상현실 게임의 문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경우, 끔찍한 재앙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그것을 명심하고 있다.

Q6. 그렇다면 한국 서버는 언제쯤 돌아오는가? 최근 스칸다 에피소드에 힘입어 해외에도 많은 사람이 한국 서버의 스트리머를 응원하고 있다.

A6. 며칠, 몇 주, 몇 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겠다. 데자뷰야말로 유저 여러분이 이 세상의 종말을 막아 주었으면 하니까. 실제로 스칸다의 종말도 시청자들이 없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싶다.(웃음)

(밑에는 활자를 못 읽는 친구들에게 전하는 3줄 요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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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3줄.

-아, 김밥 3줄 뭐야 ㅡㅡ 참치는 넣었겠지?

-스크롤 바로 다 내렸는데 요약 실화냐? ㅋㅋㅋ

-그래서 데자뷰가 한 말이 머임?

-1. 한국 섭은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운영되는 곳. 2. 미로 문제 알아, 근데 그거 종말 이후의 문제. 3. 그래서 종말 이후 한국 섭을 일시 폐쇄. ㅋㅋ

-결국…… 3대 마검인 정기점검 긴급점검 연장점검 중 하나가 뽑혔군.

[제목 :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이 온 줄 알았습니다.]

올빼미니무 ㅠㅠ 그립습니다…….

게이트가 닫히면 당신이 온 줄 알겠습니다.

-아, 맞다 게이트. ㅋㅋ

-우리 현실도 게임 못지않았지? ㄹㅇ ㅋㅋ

-나도 이능력 좀 있었으면 좋겠다. ㅠㅠ

-응 사상 최강의 FFF급 능력자~

-거기까지 내려보내냐? ㅋㅋㅋ

[제목 : 전주 산다, 어제 전주 게이트 썰 푼다.ㅋㅋ]

무엇이든 물어 보세욬ㅋㅋ 어제 한옥 마을 가서 오징어 통꼬치 처먹다가 게이트 열림.

-갑자기 게이트가 열렸다.

-아 ㅋㅋ 한옥 마을 오징어 통꼬치는 ㅇㅈ이지.

-오징어 통꼬치는 못 참지. ㅋㅋ

-아 물어 볼 거 없으면 간다.

-ㄴㄴ 궁금함. 어제 게이트 컸음?

-ㅇㅇ ㄹㅇ 내가 본 게이트 중에 제일 컸음. 징그럽더라, 막.

-근처였나 보네. 어떰? 가까이 가면 어떤 기분임?

-심장 쪼그라드는 기분. 군대에 있을 때 전차포 사격하는 거 근처에 있었던 적 있는데 그때 느낀 기분이랑 흡사함.

-고블린 나왔음?

-비슷한 거 나옴. 사람들 도망친 사이에 가게 다 털리더라.

-고블린도 인정한 오징어 통꼬치. ㅋㅋㅋ

-고블린도 오징어 통꼬치는 못 참지. ㅋㅋ

[제목 : 그래서 궁금한 건 그게 끝임?]

무려, 전주에 게이트가 열렸다고.

어? 전라도의 심장부에 게이트가 열렸어!!

-궁금한 거 있음.

-말해 보셈.

-한옥 마을 혼자 감?

-집 근처라 ㅇㅇ

-그 근처 집값 저번에 확 뛰었자너?

-ㅇㅇ 우리 집임.

-반려동물 키움?

-ㄴㄴ

-이번 기회에 키워 보는 거 어떰?

-고양이?

-나.

-꺼져.

-똥은 잘 가림. 술만 안 먹으면.

***

“재수 없거든, 너 말이야. 일반인 주제에 기어오르는 게.”

‘왜…… 대체 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5년이 넘도록 그를 지배했던 생각이었다.

소변 줄이 대롱대롱 매달려서 주인의 슬픔을 대신 쏟아 내던 그 시절.

앞보다는 뒤를 보며 악에 받쳐 있던 그 시절.

난간에서 떨어지며 성진은 후회했다.

이번 임무에 나가지 말걸.

조소하는 염동력 능력자 김우열의 얼굴이 보였다.

이를 갈며 증오하던 얼굴.

5년 동안 저주하며 되새기던 얼굴이었는데, 신기하게도 떠올리려 하니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이…….’

왜 기억나지 않는 걸까.

그토록 그를 미워했는데.

5년 동안 그를 육체라는 감옥에 속박한 김우열.

자신은 그 사람을 용서한 것일까.

콰직!

끔찍한 소리가 추락하는 상황이었다는 걸 상기시켰다.

그와 동시에 부러졌을 척추는 도리어 앞으로 활처럼 튕겨 일으켜졌다.

“헉…… 허억…….”

꿈이었다.

아주 생생한 꿈은 도리어 현실 같을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허어억…… 우웁…….”

성진은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가 몸속의 이물감을 토해 냈다.

벌써 며칠 째였다.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성진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를 이렇게 만든 각성자 김우열에 대한 복수심이 때를 가리지 않고 치밀어 올랐다.

성진이 선한 사람이라 하여도 고난을 반기지는 않았다.

자신과 상관도 없는 사람을 5년이 넘게 병석에 누워 있게 만들고 그와 관련한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이를 어떻게 잊는단 말인가.

“후우…….”

성진이 탁자에 앉아 텅 빈 거실을 둘러보았다.

역시, 신아름이 없으면 조금은 쓸쓸한 공간이었다.

지금 성진을 괴롭히는 것은 본인의 성향과 복수심과의 괴리가 아니었다.

선하게 살고 싶다고 원수를 아무 이유 없이 용서할 정도로 미련하지는 않았다.

‘아름이…….’

성진은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자신이 복수를 위해 손을 뻗는다면, 그것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부술 것만 같았다.

신아름이 곁에서 재잘거리거나 함께 손을 잡고 외출을 하는 일이 더는 일상이 아니게 될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을 옭아매는 운명이 있다면 이대로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쳐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너무도 오랜만에 손에 넣은 달콤한 일상과 행복이었으니까.

이제는 뒤가 아닌 앞을 보고 싶었다.

현재를 살고 싶었다.

띡.

허전해진 성진은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TV를 켰다.

-이번 전주 게이트는 성공적으로…….

-각성자분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지금 시대에서 각성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신분이었다.

국가에 소속되는 것도 선택할 수 있었고 해외에 나가 막대한 돈을 버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국내라고 해서 돈을 못 버는 것은 아니었다.

성진은 각성자가 과거, 연예인의 사회적 위치가 그대로 옮겨 온 것이 아닐까 했다.

물론 위험부담이 있었지만, 혼자서 활동하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보유 각성자 수가 줄어들까 우려하는 정부가 그들을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게 하지 않았다.

각성자는 안전은 안전대로 보장받으면서 금전과 명예를 가져갔다.

“재밌는 세상이네…….”

어딘가 미친 구석이 있는 시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늘 뒤틀린 곳은 있기 마련이었다.

‘아…….’

김우열.

5년 전의 김우열은 대단한 존재였다.

수많은 팬이 뒤따랐고 그의 말이 절대 선처럼 여겨졌었다.

‘검색 정도는…….’

아직 복수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일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이 선 후에 복수를 결심할 것이니까.

성진은 검색 창에 김우열이란 단어를 넣었다.

그와 연관된 기사를 비롯하여 소식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어쩐지 날짜가 좀 되어 보였다.

‘어?’

스마트폰을 쥔 손이 벌벌 떨렸다.

성진으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가 적혀 있었다.

“은퇴? 잠정 은퇴?”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도 그렇게 적혀 있었다.

-염동력 능력자 김우열 ‘잠정 은퇴’ 선언.

진실을 갈구하는 두 눈이 재빠르게 기사를 확인했다.

기사의 내용은 길지 않았다.

김우열이 각성자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선언했다는 것.

그의 향후 일정은 전부 캔슬됐고 그의 거처 또한 알 수 없다고 기사에는 적혀 있었다.

다른 기사들을 쭉 훑어보아도 김우열이 현재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 5년 사이에, 김우열은 대중에게 잊힌 것이다.

-우열좌 ㅠㅠ 돌아와요!!

-악플러들 때문에 공황 왔나 보네.

-그럴 만하지. 게이트 피해 발생하면 죽자고 달려드니 각성자가 뭔 죄가 있다고. ㅉㅉ

-기부도 많이 한 양반인데 참 뭔가 안쓰럽네; 안티들이 또 애먼 각성자 하나 골로 보냈구먼.

-이러니까 우리나라가 각성자들이 살기 ㅈ같은 나라 1순위에 꼽히지.

-(선진국 중에서)

-대중들은 반성하라!

김우열의 본성을 알 리 없는 네티즌들은 그를 좋은 사람이라고 포장하고 있었다.

성진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김우열이 현재 어디 있는지와 왜 활동을 그만두었는지였다.

한동안 검색을 계속하던 성진은 결국 그 이상의 정보는 얻지 못하고 일어서야 했다.

당장 중요한 일은 아니었느니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알아볼 생각이었다.

“후우…….”

오늘은 외출할 일이 있어 준비해야 했다.

수건을 챙겨 든 성진이 화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말끔하게 준비를 한 성진이 옷을 갖춰 입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움직였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할 텐데, 그동안은 차가 있어도 쓸모가 없을 거라고 판단해 차는 구매하지 않았다.

지하철이 그를 싣고 몇 정거장을 지나갔다.

곧 지하철은 그가 예정한 역에 그를 토해 냈다.

성진은 지상으로 올라가 시간을 확인했다.

‘……일찍 왔네.’

예상보다 일찍 왔다.

늦은 게 아니라 일찍 온 것이니 어딘가에 들어가 있으면 될 것이다.

적당히 기다릴 장소를 찾는 그의 시야에 약속 장소 근처에 자리한 어느 카페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던 성진이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 1층에 위치한 카페의 유리 너머로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

긴 챙이 달린 캡을 눌러 쓴 여인이 그의 시선 끝에 있었는데 카페에 있는 다른 이들은 그녀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 여자……. 그 여자다.’

니드호그와의 일전에서 한 차례 그를 추락시켰던 여인.

성진이 어쩐지 낯익다고 생각했던 여인이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여인도 성진을 발견했는지, 그를 보고 작게 미소 지었다.

반은 소녀, 반은 노파의 모습을 했으니 그 미소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특이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었을까?

딸랑.

“어서 오세요!”

“…….”

성진은 여인과 마주하기 위해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여인은 연기처럼 사라진 것인지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남아 있었다.

반쯤 마신 커피가 담긴 커피 잔, 그리고 한 장의 쪽지.

-아직은 아니에요. 나중에 봐요.

“저…… 손님?”

성진이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그 쪽지를 바라봤다.

***

“일 끝나고 한잔할까?”

“네?”

“이번 프로젝트 동안 너무 고생했잖습니까, 아름 씨. 야근에 주말 출근에…… 팀장으로서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상사의 발언에 신아름의 두뇌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왜지? 왤까? 잠깐, 술?’

그녀의 프로젝트 팀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팀장을 포함해 조촐하게 5명.

“저는 부모님 결혼기념일입니다.”

“아, 승일 씨는 들었어요.”

“대리님은 연차 쓰셨고…… 저희 셋인가요?”

이러면 신아름으로서는 술자리를 갖기가 부담스러웠다.

이런 자리는 거절하는 게 옳았다.

“저는 좀…….”

신아름이 말을 채 다 뱉기도 전에, 그녀의 선배가 타일렀다.

“아름 씨, 이런 거는 팀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필요한 자리예요. 신아름 씨 생각해서 자릴 만드신 팀장님께 실례예요.”

팀이 5명인데 3명뿐인 회식이 어떤 화합을 도모하는 것인지, 자리를 만든 팀장에게 실례인 것은 끔찍하게 싫어하면서 자리를 강요당한 자신에게 실례인 것은 어째서 무감각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알기도 싫었다.

신아름은 예의 그 방법을 쓰기로 했다.

너무 많이 써서 이제는 약발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저, 오늘 남자친구랑 약속이 있어서요.”

“허어…… 그 남자친구는 번번이 얘기만 하고 본 적이 있어야지. 신아름 씨 남자친구 없는 거 아니었어?”

“그게…….”

“굳이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거절할 정도야? 밤늦게까지 붙잡을 생각도 없고 내일이 주말인데 팀을 위해 이 정도 시간도 못 내서야…….”

“…….”

어쩐지 앞에서 촉새처럼 떠드는 팀원이 수상했다.

팀장과 아까부터 눈빛이 오고 가는 게 영 불쾌했다.

모종의 대화가 있었던 것 같았다.

“죄송해요. 하지만 정말 남자친구를 만나기로 해서요.”

“하…… 일단 나가자고. 나가면서 얘기해.”

다들 짐을 챙겨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은은하게 풍겨 오는 스킨 향.

개인적으로 신아름이 싫어하는 냄새였다.

“흠…… 흠…….”

팀장의 찰락거리는 시계.

척 보기에도 고가로 보이는 시계였다.

괜스레 손목을 까딱거려 그것을 그녀에게 강조했다.

팀장이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직급이 높은 이유를 가지고 사원들끼리 말이 많았다.

그중 같은 팀의 대리님이 신아름에게 해 주었던 얘기가 있었다.

-우리가 딱히 대기업에 다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건 좀 아니지 않을까?

-예?

-그렇잖아, 잘난 부모님에게 이거저거 물려받고 능력도 없으면서 백으로 낙하산 인사라니. 가끔 일하는 거 보면 속 터진다니까.

-하…… 하하…….

-나한테도 치근덕대더라니까? 아름 씨도 조심해. 아름 씨는 겉보기에 어리숙해 보여서 저런 젊은 아저씨들이 환장하니까.

-대리님도…….

-나야 걸리면 확 알을…… 뿌작! 어?

-아, 뭐예요…….

-심했나?

신아름이 오기 전까지 같은 부서의 유일한 홍일점이었던 대리님이 경고했던 상황이었다.

심지어 오늘은 그 대리님도 자리에 없었다.

“신아름 씨, 그러지 말고…….”

“정말 오늘 약속이 있어요. 죄송합니다, 다음에 팀원이 다 함께 모이면 저도 꼭 갈게요. 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

띵.

1층에 도착하자, 다른 사원들이 내려서 멀어졌다.

“신아름 씨.”

신아름은 팀장이 불러 세워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섰다.

“예, 팀장님?”

“그 꼬박꼬박 팀장님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아…… 예.”

“신아름 씨, 남자친구 없는 거 알아요.”

“네?”

“나랑 함께해야 하는 자리 거절하려고 일부러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정말 남자친구가…….”

“내가 신아름 씨 일하는 게…….”

팀장이 지루한 훈계와 결국 도돌이표로 회식을 가자는 제안을 다시 이어 나가려는 찰나, 누군가의 굵직한 음성이 들렸다.

“아름아.”

“내가 딱히 무슨 마음이…… 응? 누구십니까?”

“어? 오빠?”

성진이 말끔하게 차려입고 입구에 신아름을 마중 나와 있었다.

팀장이 신아름에게 물었다.

“……친오빠?”

“저기…… 그게…….”

성진이 대신 답했다.

“남자친구입니다. 아름이가 늘 신세 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팀장님.”

“허…… 허허…….”

“죄송한데 오늘은 제가 아름이랑 약속이 있어서요. 저희는 먼저 가 봐도 될까요?”

성진이 눈매를 온화하게 했다.

그런데 그 시선을 마주한 팀장은 오히려 위축되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그를 압박했다.

“그…… 그러시죠. 하하…… 저희가 너무 오래 붙잡아 뒀네요. 약속이 있다더니 정말이네요.”

“그럼…….”

신아름이 팀장의 얼굴을 한번 힐끔 보았다가 쪼르르 성진에게 달려왔다.

일에서의 해방과 팀장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녀는 다 죽어 가던 아까와는 달리 해맑게 팀장에게 인사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팀장님. 주말 잘 보내시고요! 월요일 날 뵐게요!”

신아름의 작은 손이 성진의 큰 손을 꽉 잡았다.

성진은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신아름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하…… 하하…….”

잠시 후, 손을 잡고 걷는 성진과 신아름의 곁에 외제차 한 대가 가까이 왔다.

신아름은 차를 보자마자 팀장의 차라는 것을 알았다.

지이잉.

창문이 열리고 팀장이 말했다.

“두 분, 어디 가시죠? 태워 드리겠습니다.”

다분히 악의적인 행동이었다.

재력을 자랑해 성진을 기죽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행동이었다.

성진의 통장에 쌓여 있는 돈만으로도 성진이 전혀 위축될 이유가 없었고 애초에 성진은 금전적으로 부족하다 하여 위축되는 사람도 아니었다.

“괜찮아요, 저희는 걸어갈 거라.”

신아름이 성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 모습에 이를 악문 팀장이 성진을 흘깃 쳐다보았다.

“어…… 어어…….”

“제안은 감사하지만, 저희끼리 가겠습니다.”

성진은 시종일관 예의를 지켰다.

하지만, 그 눈빛에 담긴 것이 너무도 싸늘해 팀장은 식은땀을 흘렸다.

눈빛에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팀장은 왜소한 편이 아니었지만, 성진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알겠습니다.”

부아앙.

차가 지나가고 난 자리, 성진이 말했다.

“아름아, 저 사람이 괴롭히면 말해.”

“왜, 혼내 주게?”

“타일러야지.”

“피…… 말은.”

물론 좋게 타이른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신아름이 그가 개입하는 것을 원할 리가 없었다.

“오빠! 오느라 안 힘들었어?”

신아름은 변함없이 재잘댔다.

성진은 이 행복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 행복이 종이로 만든 집에 사는 것과 같다고.

당장에 안락해 보이지만, 비가 오면 모두 젖어 무너지는.

종이로 만든 집.

아직은 그곳에 살며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하철에 앉아서도 신아름은 계속 떠들었다.

옆자리의 아저씨가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중얼거렸다.

성진은 애써 그 말을 무시했다.

행복을 되찾은 성진에게,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상이 어찌 될는지…… 전주 터지고 이번엔 천안이네. 이러다 진짜 서울도 큰일 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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