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179화
***
대리석으로 장식된 바닥과 아일랜드 키친.
그리고 통유리로 사방이 둘러싸인 공간.
종로 한복판에 우뚝 솟은 호텔.
그곳의 최상층 펜트하우스였다.
“후루룩…….”
“펜트하우스에서 라면은 좀 아니지 않아?”
“흘리지 마! 카펫에 흘리지 말라고!”
컵라면을 국물까지 들이켠 남자가 입가에 붙은 회오리 문양의 어묵을 떼어먹었다.
“역시…… 라면은 작은 컵이야.”
“그건 맞지만, 왜 그걸 지금 처먹고 앉았냐고.”
“신이 아닌 이상, 뭔가를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 사실 신도 마찬가지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고문이야.”
“갑자기 철학적인 척하지 말아 줄래, 토 쏠리니까? 네 얼굴에 토해도 될까?”
“작은 컵이야?”
“아니.”
“그럼 사양하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가 그들을 제지했다.
“그만하도록, 할 얘기가 산더미인데 얘기가 진행이 안 되잖아.”
“네, 조용히 하라잖아!”
“나는 조용히 했는데…….”
“후우…….”
한숨을 내쉰 사내는 다리를 꼬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그는 잠시 발을 까딱거리다가 대화 주제를 던졌다.
“그래서, 최성진의 몸은 회복이 되었단 거군.”
“예정보다 빨라요. 아마 신격을 지닌 존재들과 몇 차례 접촉하면서 생긴 문제인 것 같아요.”
“그가 진실에 다가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다만, 반대급부로 발생할 일이 한두 가지여야 말이지…….”
사내의 말에 말괄량이처럼 생긴 여성이 머리를 긁적였다.
“헬이 먼저 그에게 접촉할까요?”
“그녀가? 음……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기 전에 저희가 먼저…….”
“우리가 먼저 접촉하자고?”
“그러는 게 낫지 않겠어요?”
“경계심만 부추기는 꼴이 아닐까? 우리가 그의 아군이란 것을 어떻게 증명하게?”
“몸이 회복됐잖아요!”
사내는 여성의 말을 듣고 턱을 쓰다듬다가 손을 휘저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해. 앞으로 싸움이 어디까지 번질지 우리조차 알 수 없는데, 그가 고작 몸이 회복됐다는 것 하나로 우리를 의심 없이 받아들일 리가 없어.”
“보통 인간들은 그 정도면 충분히 평생 은인으로 모시는데…….”
“……보통 인간?”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하긴, 그 말이 맞겠네요. 몸이 회복된 이상, 최성진은 신아름의 곁을 쉽게 벗어나려 하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은 일리가 있군. 하아…… 이걸 어쩐다.”
“애초에 그 안락함에 젖어 한눈을 팔 사람은 아니지만…… 걱정이 되기는 하네요. 눈앞에 거대한 문제가 남아 있는데 말이에요.”
줄곧 말이 없던 다른 사내가 말을 꺼냈다.
“스칸다는 닫혔습니다.”
“확실한가?”
“네, 몇 번 이상 확인했습니다. 최성진이 남기고 온 별나무가 문제가 되기는 한데, 상관없을 수준입니다.”
“어째서?”
“그 정도 잔향으로는 좌표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이미 쇠한 저희는 물론 그도, 최성진도.”
“헬이라면?”
“그녀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말을 전부 믿을 순 없지만, 최소한 나눴던 약속을 강제로 파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약속이란 것도 말이야…… 아니야. 그것 때문에 지금 이 상황까지 온 것이 가능했으니까 그걸 의심하면 안 되겠지.”
이들을 이끄는 사람으로 보이는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흔들리는 눈빛에 장난꾸러기 여성이 물었다.
“불안하신가요?”
“불안?”
사내는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이 답했다.
“어떤 세계든 언젠가 반드시 종말을 맞이한다. 이것은 바뀌지 않는 규칙이었지.”
“네, 그렇죠.”
“신들조차도 그것을 피하지 못해. 라그나뢰크를 보라고. 거들먹거리던 신들이 결국엔 한낱 재가 되어 여러 세상에 흩뿌려졌잖아.”
“그래도 언젠가는 제 모습을 찾겠죠, 신들이니까.”
“물론, 신들이야 그렇겠지. 내가 걱정하는 건 인간들이야.”
“제법 선한 척을 다 하시고, 토해도 될까요?”
“꺼져. 아, 주둥이 치우라고.”
사내는 장난꾸러기 여성의 얼굴을 밀쳤다.
장난꾸러기 여성은 사내에게 계속 물었다.
“우리도 인간인데 무슨 그런 편 가르는 소리를 하세요? 세상이 이렇게 혼란한 건 어쩌면 이렇게 서로를 나누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그럼 나와 하나가 될래?”
“연봉 10억 넘으시나요?”
“넘지. 갈퀴로 돈을 긁어모으는데.”
“그럼 싫어요. 못생겼어요.”
“처음부터 말해 주지. 아, 아무튼 농담은 그만하고. 지금 이 싸움을 우리가 왜 이어 나가는지 잊지 말라는 말이야.”
사내를 제외한 정장을 갖춰 입은 4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싸움이 끝나면 종말은 더 이상 당연한 게 아니게 되는 거야.”
“정확히는 그가 승리한다면 이죠.”
“그가? 최성진?”
“네. 아니에요?”
“글쎄…… 난 좀 다르게 보는 편이거든.”
“사시예요?”
“장난은 그만해. 진지한 얘기 하는 중이잖아. 드디어 이 길고 긴 싸움의 끝이 다가오고 있어. 이제 마침표만 찍으면 되는 거야. 몇 개 남았지?”
“뭐가요?”
“연결된 세계 말이야.”
“2개요. 닮은 세계죠. 물론 두 세계 전부 헬이 운명을 뒤튼 세계지만.”
“그것도 계약에 의해서야. 헬은 제 역할을 했다고.”
말괄량이 여성이 아무도 먹지 않는 과일에 손을 대 포도를 씹었다.
찌익.
물이 튀어 사내의 얼굴에 떨어졌다.
“아, 씨.”
“저는 지금이 가장 불안해요. 모든 걸 안배했다고 하지만, 이건 모두에게 불리할 것 없는 상황이에요. 최성진에게도, 그에게도.”
“아무리 헬이 신격을 온존하게 가지고 있다지만 상대의 운명을 마음대로 부술 순 없어. 등가교환이 이루어져야 하는 거야. 그나마 그가 쇠했기에 가능했던 행동이지.”
“그러니까 결국에 여태 가위바위보 하다가 갑자기 총알 장전하고 빵야 하겠다는 거 아니에요? 둘 중에 덜 아프게 맞은 사람만 살고?”
“무슨 비유를…… 아니다, 적당해.”
여성은 몸을 떨었다.
“너무 무서워요…….”
“여기까지 오게 만든 최성진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
“아무리 우리가 도왔다고 하더라도…… 여기까지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짐작이 안 되네요.”
“그는 전부를 걸었어.”
“그 전부에 우리가 끼어 있다는 게 난센스지만.”
“그는 최소한 우리를 친구로 생각했으니까.”
“친구라…… 좋네요. 그가 패배하면 우리도 거름이 된다 이거죠? 음…… 그런데 이제 곧 협정이 깨질 텐데…… 어쩌죠?”
“일단은 지켜보자고. 휴식이 주어져야 더 멀리 갈 수 있는 법이야.”
“제 휴가는 자르셨으면서…….”
“넌 복지의 틈에 기생하는 벌레야. 일이나 열심히 해! 너 그리고 냉장고에 넣어 둔 아이스크림 혼자 다 처먹지 마! 나 하나도 못 먹었어!”
“옙!”
“아무튼, 이번 싸움에 걸려 있는 건 전부야. 최성진과 내기를 한 상대가 누구인지를 잊지 마.”
“…….”
말괄량이 여성은 아쉬워하며 자리를 떴다.
그녀는 최별의 집에 찾아왔던 데자뷰의 직원이었다.
***
똑, 똑.
“…….”
똑, 똑.
“택배입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두고 가세요.”
“등기입니다.”
“올 거 없는데요?”
“열어 주시오. 송하린이 배달됐소.”
“하아…….”
딸칵.
최별이 사는 오피스텔의 문이 열렸다.
최별과 송하린은 성진과 달리, 스칸다를 넘어오며 곧장 깨어났다.
한 달의 시간 동안 종말 이후에 접속이 되지 않자, 송하린이 직접 최별에게 찾아온 것이다.
“왜 왔어요?”
“집 주소를 알려 줬으니 찾아왔지.”
“그거야…… 혹시 내가 깨어나지 않으면…….”
“부려만 먹으려고? 그럴 수는 없지. 강호의 도리가 아닌 법이오.”
“됐어요. 아무튼, 여기는 왜 온 거냐니까요?”
“이유가 딱히 있나, 얘기나 나누려는 거지.”
“으음…… 얘기…….”
최별은 게임에서 사귄 사람들을 게임이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했을 때 어색하게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테지만 그녀는 그 정도가 심했다.
“등불하고는 연락하고 있소?”
“아직은요.”
“왜?”
“멋대로 뛰쳐나갔는데 제가 무슨 염치로 다시 연락하겠어요?”
“하긴, 망할 년 취급받아 마땅하긴 했지.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제 차에 머리 검은 짐승이 한 마리 더 탔던 거로 기억해요.”
“그랬었지. 머리 검은 짐승들이 세상을 선도하는 법. 아무튼, 우리가 등불을 한 번 만나 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뭐 때문에요?”
최별이 몰라서 물어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확인이 필요할 뿐이었다.
송하린이 한숨을 내쉬고 손을 뻗었다.
사아악.
쩡!
그녀의 손에 순식간에 서리가 끼더니 손이 꽝꽝 얼어붙었다.
최별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을 확인한 송하린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난 안 할래요. 집에 불낼 일 있어요?”
“나한테 이런 능력은 없었소.”
“저도요.”
“아무래도…….”
현실과 게임이 동화되고 있다.
이것이 그녀들에게만 벌어진 일일지, 아니면 현실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가장 쉽게 확인할 방법은 물론 올빼미를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빼미의 정보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병적으로 자신의 정보를 감추려고 했으니까.
그러니 차선책으로 등불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녀들은 한참을 한숨만 푹푹 쉬다가 가위바위보를 했다.
최별이 졌다.
“아! 왜! 내가!”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지. 잊지 마시오.”
“좀 봐 주면 안 돼요?”
“전사를 모욕할 순 없지. 약속을 이행하시게.”
최별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뚜우.
“아…… 저는 최별이라고 하는데…… 벼, 병창 님?”
뚝.
최별이 바로 끊어진 전화를 붙잡고 송하린을 쳐다보았다.
송하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뚜우.
“저, 일국 씨…… 최별인데요…….”
***
브라질의 열대 우림.
한 쌍의 남녀가 지프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끼이이익.
“여기까지, 선배! 여기서부터는 도보로 이동해야 해요!”
“네가 고생이 많다.”
“또 입으로만 때우려고!”
“돌아가면 맛있는 거 사 줄게.”
“그럼 지부장님한테 말 좀 잘 해 줘요! 브라질이고 나발이고 꽃다운 나이에 말도 안 통하는 남미에 파견이 웬 말이야.”
“언어능력자가 말이 안 통하기는…….”
“그거는 약간 다르다니까요? 음……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의념처럼 들리는 거라니까? 정작 대화할 때는 신내린 꼴이라 별로라니까요.”
“알았다, 알았어. 가 보자. 남들은 남미에 오고 싶어서 여행도 불사하는데.”
“아마존 대우림에요?”
“…….”
“참습니다?”
여자는 국가 공인 능력자로 C급 말단이었다.
B급 능력자인 그녀의 선배는 그녀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전투 계열 능력자였다.
순간 가속 능력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지구력이 부족해졌기에 주로 사건 현장을 분석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치르르.
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진짜 사람 한 명 살지 않을 것 같은 곳이네.”
“여기는 부족민들도 접근하지 않는 곳이래요. 그래서 발견이 늦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없는 곳에 게이트가 발생하면 그게 제일 큰 재앙이지. 특히나 대처 체계가 명확하지 않은 국가면 그게 더 심각해지고.”
“저한테 강의하지 말아 주실래요? 저 필기는 나쁘지 않았어요. 실기가 구더기여서 그렇지.”
“아무튼, 더 가야 해?”
“네, 깊어요. 벌써 다른 나라에서 파견된 능력자들은 실컷 구경하다 자기들끼리 쏼라쏼라 결론 내고 갔다니까요?”
“미안하다, 미안해. 비행기를 놓쳤다니까.”
“빨리 빨리의 한국인 아니에요? 정말, 선배만 아니었어도…….”
“아니었으면?”
“조금 덜 존경했을 텐데. 그 말이었어요. 아! 다 와 가네요!”
“말 돌리지 말고…….”
“진짜라니까요, 여기! 보이시죠?”
“맙소사…….”
사내가 확인한 광경은 끔찍했다.
검은 기운이 대우림을 할퀴고 지나간 흔적.
나무와 수풀은 말라 비틀어졌고 그 안에 살아 숨 쉬던 생명은 이제 그 삶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거 보세요. 보여요?”
“그래, 죽음의 땅이네.”
“진짜 이런 건 처음 본다니까요.”
“방화는……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불에 탄 흔적이 아니잖아요.”
“그래, 불에 타서 재가 된 게 아니야. 그냥 생명이 다한 것 같은데…….”
“이런 흔적이 남은 걸 보면 어마어마한 능력자 혹은 몬스터였겠죠?”
“능력자가 이만한 힘을 낼 수 있으면 당장 전 세계가 난리가 났을 거야. 이능력이 범인들의 망상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런 게 아니잖아.”
“제 능력을 보면 딱 그 말이 맞죠.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소수니까.”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몬스터의 소행이라는 건데 그것도 좀 이상해.”
“그쵸? 사실 그것도 말이 안 돼요.”
“몬스터가 흘러들었다는 건 게이트가 발생했다는 건데, 누군가 게이트를 닫았다는 보고도 없었어. 자연히 닫혔다는 것은 더 말이 안 되고 말이야.”
“또요! 또 있어요!”
“뭐?”
여후배는 검지를 치켜들며 말했다.
“보시면 알겠지만, 이렇게 큰 힘을 가진 존재가 살생을 하지 않았다니까요?”
“주변에 피해 민가는 없었어? 소수부족이라던가…….”
“전혀요. 전혀 그런 피해는 없었어요. 애꿎은 풀이랑 나무, 그리고 동물이랑 벌레만 잔뜩 죽었어요.”
“흐음…….”
“시간이 좀 지난 흔적이지만 처음이랑 크게 달라진 점은 없어요. 뭐 좀 아시겠어요?”
남자는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했다.
후배가 그를 재촉했다.
“선배? 뭐 좀 아시겠냐고요? 네? 빨리 결론을 내줘야 저도 귀국해서 연애 사업도 마저 하고…… 시집도 가고…….”
“이거……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닌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최근에 네가 나간 사이에 국내에서도 게이트 관련 얘기가 화두야.”
“왜요?”
“늘었거든.”
“빈도가요?”
“수, 그리고 질.”
“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럼 우리나라 이제 큰일 난 거예요? 저 그냥 이민 가야 해요?”
선배는 한숨을 쉬며 후배의 얼굴에 붙은 나뭇잎을 떼 주었다.
“아니,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아닌데 저명하신 게이트 연구원들께서 앞으로 이 나라가 어찌 될지 모른단다.”
“웃겨, 정말.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었는데 별것도 아니었잖아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그냥 기우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음…… 별일 아닐 거예요. 망한다, 망한다 말만 많고 전쟁 난다, 전쟁 난다고 해 봤자 바뀌는 거 없다니까요?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결국에 매일 아침마다 점심 메뉴 궁금해하는 게 우리나라 사람이잖아요.”
“그래, 그렇지.”
“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너, 여기에 좀 더 있어야겠다.”
“아니, 야!”
***
“오빠 잠깐만.”
“응, 뭐 도와줄 거 없어?”
“아니! 내가 오라고 할 때까지 꼼짝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나 여태 꼼짝하지 않고 지냈는데…….”
“아…… 맞다, 미안.”
성진과 신아름은 피식 웃었다.
신아름은 지금 성진의 집에 와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찌개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렸다.
구수한 된장 냄새.
비록 신아름이 요리에 정통하진 않았지만, 된장찌개 하나만큼은 자신 있어 했다.
식당을 하시던 어머님의 비법을 물려받은 것인지 다른 음식보다 특출 나게 잘했다.
“미안해, 좀 오래 걸렸지?”
“아니, 오래 걸리긴.”
“밥 먹는 거 어색하겠다. 내가 대신 먹여 줄까?”
“나 태어난 지 그래도 꽤 된 것 같아, 아름아.”
“아, 깜빡했어. 오빠.”
환풍기를 늦게 켜 온 집안에 생선 냄새가 가득했다.
조금 탄 생선구이와 정성이 들어간 된장찌개.
또, 어머니 몰래 찬 통에 담아온 밑반찬들이 상에 깔렸다.
집은 월세로 급하게 계약한 곳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왔을 때는 허전한 공간에 금방 우울해졌지만, 그 빈자리는 순식간에 가득 채워졌다.
신아름이란 존재 하나로.
생선 굽는 냄새가 집 구석구석에 남아도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그녀가 다녀갔다는 것을 오래도록 느낄 수 있었으니까.
성진이 밥을 뜨기 시작하자 신아름이 부지런히 생선 가시를 발랐다.
이런 것은 성진이 더 잘했지만, 신아름은 굳이 자신이 하려 했다.
그리고 가장 예쁜 살을 성진의 숟갈에 올려주었다.
“자.”
“아름아, 나 신경 쓰지 말고 너도 먹어.”
“응, 오빠 먹어야 나도 먹지.”
“너부터…… 아니다. 이러다 굶겠어.”
“그러니까 얼른!”
성진이 밥을 뜨기 시작하자 그제야 신아름도 만족한 얼굴로 밥을 먹었다.
“어때? 맛있어? 맛없어?”
“그게…….”
“밑반찬이 너무 풀밖에 없었나? 어묵이라도 좀 볶을 걸 그랬나?”
“아니, 밥은…….”
“쌀이 도정한 지가…….”
“아름아.”
“아닌가? 아! 애호박!”
“아름아.”
“응?”
성진이 신아름을 지긋이 바라보며 답했다.
“맛있어.”
“…….”
“맛있다고, 정말.”
“으응, 그럼 됐어…….”
신아름이 그제야 안심하고 웃으며 재잘댔다.
성진은 행복했다.
신아름은 그에게 있어 전부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하루였다.
“TV 보면서 먹을래, 오빠?”
“굳이?”
“오빠가 병원에만 있어서 세상 물정에 어둡잖아. 뉴스라도 좀 봐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오빠 버스비 2,000원 넘은 거 알아?”
“……뭐?”
“이것 봐, 원시인!”
“충격이네…….”
“그러게 기껏 좋은 TV를 샀으면 시간 날 때 봐 둬.”
“……알겠어.”
“이제부터 매일 저녁에는 이렇게 같이 밥 먹는 거야, 알았지?”
“응. 외식은?”
“나 피곤한 날에! 아닌 날에는 무조건 집에서 밥 먹을 거야.”
“응.”
픽.
신아름이 새 리모컨의 전원을 눌렀다.
이른 저녁.
뉴스는 세상의 소식을 전했다.
여느 가정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현재, 전주의 피해 상황은…….
“오빠, 저거 봐. 요즘 좀 이상하네.”
“왜?”
“한동안 잠잠했는데 게이트 피해가 좀 있나 봐. 수도권은 문제가 없는데 지방 쪽이 말썽을 좀 겪는다고 하더라고.”
성진의 표정이 굳었다.
‘뭐지?’
기시감.
뭔가 불길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오빠?”
“…….”
“어?”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니야.”
“난 또…….”
아나운서는 계속해서 말을 쏟아 냈다.
-이번 게이트는 올 초, 태안에 발생했던 D급 게이트보다 거대한 C급 게이트로 당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