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170화
성진 일행은 위대한 존재의 외침에 다급하게 서로를 쳐다봤다.
위대한 존재에게 하얀 실을 넘겨받았지만, 그들은 아직 나이 든 모습이었다.
“어서! 가라!”
콰르릉!
온 천지에 천둥소리와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크아아악!”
끔찍한 상황에 혼란스러울 법했지만, 일행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서둘러 도주했다.
“허억…… 헉…….”
“문을 여세요, 할머님!”
“이것아! 운명의 샘은 들어오는 것은 마음대로지만 나가는 것은 위대한 존재의 뜻이다! 우리가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게 아니야!”
“하, 하지만!”
이시스가 그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녀가 굳이 말한 이유는 우르드의 추방자들이라면 혹시라도 방법이 있을까 해서였다.
콰지지지직!
콰지지직!
벼락이 인근에 떨어져 어두운 공간이 뻥 뚫렸다.
휘오오오오!
그곳에서 강한 흡인력이 발생해 일행을 빨아들이려 했다.
“서로를 붙잡아라! 빨려 들어가면 시공의 균열로 떨어질 거야!”
하지만, 아직 노인의 몸을 한 그들이 이런 격풍을 견뎌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잡아! 잡으라고!”
“서로 놓치면 끝이야!”
우드득!
성진이 재빨리 수를 내 기다란 나무를 얽히게 해서 그들을 붙잡았다.
날아갈 뻔했던 사람들은 나무에 얽혀 들어 간신히 생명을 부지했다.
‘어떻게 해야…….’
임시방편으로 살아 돌아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도 벼락이 계속되고 있었다.
범위가 점점 좁아져 일행 근처에서도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르르르릉!
“우리는 수가 없다! 버티든가 죽든가야!”
“여기서 죽을 순 없어!”
“방법을 찾아야 해!”
“일단 움직여!”
“허억…… 허억…….”
도망치는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벼락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꺄아아악!”
“트, 틀렸어! 출구 같은 건 안 보여!”
그때, 일행을 새하얀 빛이 감쌌다.
지이이익.
성진이 무언가 수를 낸 것이 분명한 듯, 그를 중심으로 힘이 방출되었다.
“뭐, 뭐야!”
“어디로…….”
“으읍…….”
모두를 감싸 안은 그 빛은, 일행을 벼락이 치는 검은 공간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그 직후.
콰르릉!
일행이 사라진 바로 그곳에 벼락이 떨어졌다.
***
“헉, 헉…… 방금 뭐야?”
“도망친…… 건가?”
“어떻게? 우리 어떻게 빠져나온 거지?”
“크으윽…….”
치이이익!
성진의 양손이 검게 타오르고 있었다.
“크아아아악!”
“뭐, 뭐야! 손이 왜 이래?”
“초모! 초모가 한 거야?”
“다들 조용히 하거라! 소란 피워 봐야 득 볼 것 없으니.”
“할머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그만, 일단은 안정이 우선이다!”
“…….”
성진이 잠시 식은땀을 흘리며 양손을 어찌하지 못하다가 검은 불이 꺼지자 안정을 되찾은 것 같았다.
후우우웅.
새하얀 빛이 그의 양손을 감싸자 검게 변한 손이 하얀 거품과 함께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치이익.
“큭…….”
그 과정이 꽤 고통스러운지 성진이 신음을 흘렸다.
-왜 이러징?
-뭐 한 거임?
-본 사람 있습니까?
성진이 일행을 운명의 샘에서 구해 낸 힘은 그가 몰타를 쓰러트리면서 새로 얻은 힘이었다.
당시, 그는 정신을 잃어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몸 안에 기이한 힘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깨어난 후로 그 힘을 몇 번 사용해 본 성진은 이 힘이 단순한 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이 힘을 사용했을 때는 바스카리 인근의 숲으로 이어졌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연구해 왔다.
오차는 힘을 사용할수록 줄어들었지만,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우선, 혼자서 이동할 때는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여럿이 이동할 땐, 소모하는 신성력이 막대했다.
또한, 거리의 문제도 있었다.
지금껏 먼 거리는 시도해 보지 않았지만, 거리가 늘어날수록 고통과 대가가 커졌다.
즉, 많은 사람을 데리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엔 그의 신성력이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 능력을 운명의 샘에서 사용했으니, 능력의 반작용으로 손이 검게 타고 신성력이 모조리 빨려 들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소모된 신성력이 순식간에 차오르고 검게 변한 손도 원 상태로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우르드의 추방자가 물었다.
“괜찮은가?”
“……괜찮습니다.”
성진은 자신의 고통보다 중요한 것을 떠올렸다.
우선, 가장 궁금한 것을 물었다.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우리도 모르지. 위대한 존재가 그렇게 떠는 것은 처음 보았어. 아마 자네의 운명이 생각보다 끔찍했는지도.”
“네?”
“크흘흘, 농담이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무튼, 방금 확인했는데 영원의 샘이 닫혔어. 우리에게만 닫힌 것인지 일족도 더는 들어갈 수 없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다시는 영원의 샘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겁니까?”
“그래, 아무래도 그렇게 된 것 같아.”
“그런…….”
성진은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우르드의 추방자들은 오로지 자신을 돕기 위해 운명의 샘에 발을 들였고 자신 때문에 그곳을 드나들 권한을 박탈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저 때문에…….”
“아니, 아니야. 사실 그곳에 더 드나들어서 좋을 게 없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이 나이쯤 되면 그런 생각이 들더군. 운명을 거스르는 것도 순응하는 것도 누군가의 손을 빌려서 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음을. 무슨 말인지 알겠나?”
“…….”
“살고 싶은 대로 살되, 결국 본인의 선택이라 이거지. 뭐 하러 운명의 샘까지 가겠나? 뭐, 자네들이야 이유가 있었다지만 앞으로는 저런 기분 나쁜 곳은 쳐다보지도 말아.”
“……감사합니다.”
“우리는 가서 좀 쉬도록 하지. 간만에 달렸더니 허리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우르드의 추방자들이 이시스와 인사한 후, 바스카리의 한적한 공간으로 떠났다.
성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나이를 거슬러 서서히 젊어지는 모험가들이 있었다.
훤칠하게 생겼던 알란과 잭을 비롯하여 이시스까지.
14명의 모험가들은 다시 젊음을 되찾았다.
그들은 이것이 믿기지 않는지 땅을 짚고 울었다.
“흐어…… 허…… 다시 저, 젊어졌어!”
“흑…… 다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성진은 그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힘이 부족했기에 그들의 삶을 희생하여 시련을 넘었다.
-반드시…… 언젠가 반드시 제가 여러분들을 원래대로 돌려놓겠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반드시 삶을 되찾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은 지금, 지켜졌다.
성진이 피식 웃자, 모험가들은 물기 가득한 눈으로 웃었다.
그들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ㅋㅋㅋ 마! 초모는 약속 꼭 지킨다!
-ㄹㅇ 대삼림에서 일어났던 일 안 까먹고 약속 지킨 거 보소. ㄷㄷ
-옆의 신사분께서 보내신 청춘입니다.
-어맛! 뭐 이런 걸……(매혹적인 춤사위)
-(매혹당함)
알란은 이들과 오래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날을 기억했다.
이야기꾼이 했던 말.
-만족했어! 그야 세상을 구했으니까!”
세상을 구했기에 그들은 만족했을 거라는 얘기.
그때 그는 그 이야기꾼의 말에 동조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순간부터 삶은 철저히 생명을 잃었고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 대한 원망을 타인에게 돌렸다.
굳이 나였어야 했을까, 굳이 삶을 희생해서 막았어야 했을까.
모험 따위.
모험 따위 하지 말 것을.
알란은 그 지독한 악몽에서 막 깨어나자 정신이 맑아지며 눈앞의 사내를 보았다.
그는 눈앞의 사내에게 빙긋 웃고 손을 움직여 보았다.
후우웅.
붉은 기운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사지에 뻗은 충만한 감각.
그는 지금 살아 있다.
성진이 말없이 14명의 모험가에게 무언가를 나누어 주었다.
-우리 모험은 여기서 끝이야, 초모. 이어 가 줄 거지?
성진이 건넨 것은 버튼이었다.
모험가라는 것을 증명하는 알록달록한 보석들은 다시 그들의 손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초모…….”
“너무 무거웠습니다. 이제 가져가 주세요.”
그들은 그것을 손에 꼭 쥐고 얘기했다.
“응.”
모험가들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줄곧 어떤 흥분 상태에 놓인 것처럼 대화가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성진은 서둘러 그들을 배웅했다.
그는 혹시나 해서 그들에게 물었다.
“이제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모험가들은 이상한 질문을 다 한다는 표정으로 성진을 바라봤다.
무리의 가운데 서 있던 알란이 대표로 답했다.
“그야, 당연히 모험이지.”
성진과 모험가들은 마주 서서 웃었다.
***
삶은 계속된다.
바스카리에도 재앙은 벌어졌으나, 그들은 좌절하지 않았다.
불은 태풍에는 살아남을 수 없지만, 어설픈 바람에는 더 큰 불길로 화답하는 법이다.
스칸다 주민들의 삶은 그러했다.
“저기 봐!”
“저분이 태양성의 주인이야?”
“와아아아아아!”
바스카리는 전에 없는 열기를 띄고 있었다.
마치 고난을 잊기 위해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지금, 바스카리에는 스칸다 세력의 수장 혹은 그 대리인이 모이고 있었다.
“어제는 산왕 소렌딜 님이 오셨는데! 오늘은 아서 님이야!”
“길 막지 마! 비켜 드려!”
최별의 양 옆에는 베디비어와 디고어가 함께했다.
남은 기사들은 태양성을 수호했고, 앞으로의 거취는 바스카리에서 이루어지는 회합에서 결정될 것이었다.
디고어가 자신에게 안겨 오는 아이를 잠시 안아들었다가 내려 주었다.
그리고 투덜거렸다.
“으휴, 아이들은 이 난리가 벌어져도 해맑다니까.”
“그것이 아이들의 좋은 점이죠! 어른들이 하는 걱정을 그들까지 한다면 그때야말로 이 세상의 끝이 온 것 아닐까요?”
“맞는 말이네. 그보다 아서 님, 어떻게 할까요? 꽤 떠들썩하게 모인 것 같은데 미리 사람을 보내 약속을 잡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바스카리에서 준비했을 테니까요.”
최별의 대답에 디고어가 어깨를 으쓱했다.
이념과 다툼을 넘은 대규모 회합이 바스카리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디고어는 이래서야 오늘 안에 대성궁에 들어설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었다.
베디비어가 감탄했다.
“이전에 와서 본 바스카리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군요!”
“뭐가?”
“일단 세계에서 이번 회합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종족이 한데 모였는데도 다툼이 없다니요.”
“동감이야, 이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 보네. 혹시라도 바스카리가 부유하고 있었으면 무게 때문에 추락했을 거야.”
“하하하!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저길 보시죠, 디고어 경.”
“뭐 때문에…… 응? 아하, 그걸 말하는 구나.”
“네, 바스카리는 우리 태양성과 같은 뜻을 표명했습니다. 이방인들의 노예를 금하고 세계에 퍼져 있는 이방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죠.”
베디비어가 가리킨 방향에는 이방인들이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디고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래봐야 2천 명 조금 넘는 수준 아니었어?”
“군대로 생각하면 그리 많지 않은 숫자죠. 하지만 그들이 모두 능력자라면 어떻게 보십니까?”
“……뭐?”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라 저도 미처 진상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곳의 교황이 불러 모은 이방인들은 어찌 된 일인지 전부 능력자라고 하더군요.”
“그게 말이 돼?”
“말이 되니 하는 말입니다. 아니었다면 바스카리는 이번 대규모 균열로 무너질 수 있었다고 하니까요.”
“하기는, 그 추기경 놈들이 거들먹거리는 거에 비해 실속이 없기는 했었으니까.”
“뭐, 아무튼 간에 재밌는 일입니다. 세계의 변화가 이 피부로 와닿을 정도니까요!”
“그 세계의 변화인지 뭐시긴지는 안 좋은 일로 촉발됐지만 말이야.”
“뭐든, 결과가 중요한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서 님?”
최별이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셋이서 움직이는 단출한 행로였지만 그녀는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베디비어와 디고어는 굳이 최별에게 묻지 않고 둘이서 담소를 나눴다.
“그런데 반발은 없었을까?”
“태양성을 비롯하여 맹까지 나섰는데 어느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다른 곳들도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그 뜻을 지지하겠다고 밝혔으니 음지의 악독한 놈들을 제외하고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이방인 노예를 해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재밌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왜 모든 단체에서 이방인들을 해방하려 하는 거지? 그간 잘 부려먹었잖아? 아, 아서 님. 실례! 이건 말이 헛 나왔습니다.”
“괜찮습니다.”
베디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디고어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 말은 틀린 말은 아닙니다.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이방인을 감싸려고 했으니까요. 그중에는 아서 님도 포함되어 있고요. 아마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 몰라. 베디비어 경, 대성궁의 침구가 닭털이라는 얘기가 있던데 난 거위털이 아니면 잠을 못 자. 혹시 조정이 가능할까?”
“일단은 가 봐야 알겠지요. 의외로…….”
이들이 다시 흥미 없는 화제로 돌아갔기에 최별은 귀를 닫았다.
센티널의 안내를 받아 대성궁 인근에 도착한 최별 일행은 건물을 올려다봤다.
디고어가 입을 크게 벌렸다.
“우와아…… 카멜롯 못지않네.”
“바스카리는 중앙 대륙의 요지입니다. 사유지뿐만 아니라 보유하고 있는 현물의 양도 어마어마하겠죠.”
“모든 게 돈이구나, 베디비어는?”
“하하, 오해십니다.”
“응? 근데 저 앞에 저 사람은 뭐야?”
“로브를 쓴 젊은 남자 말입니까? 확실히 수상하군요.”
최별은 이들이 말한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몸 곳곳에 각양각색의 새들을 올려놓고 있었다.
새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 저 사람?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최별 님이 일전에 대동했던 분이군요. 한데 여기는 왜…… 모험가라고 들었는데?”
새들에 둘러싸인 남자는 성진이었다.
성진이 최별을 보고는 작게 미소 지었다.
최별은 턱을 살짝 들어 성진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바스카리의 새로운 주인이여.”
“바스카리는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아무튼, 저도 반갑습니다.”
디고어와 베디비어가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제야 상황을 알겠다는 듯이 입을 가렸다.
“맙소사…… 단순한 모험가가 아니었군요.”
“베디비어 경, 혹시 내가 오면서 말실수를 하지 않았던가?”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부터 말씀드릴까요?”
성진이 이들을 안내했다.
“들어가시죠. 곧 회의가 시작될 것입니다.”
***
마련된 회의장은 화려한 모습이 아니었다.
상아와 비슷한 재질의 광석을 깎아 만든 원탁이 그들의 앞에 놓여 있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지금 모인 이들이 발하는 기세가 요란했으니 잘못하면 정신없었을 것이다.
“모두 바스카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모인 이들의 면면은 이러했다.
별자리 관의 유리온을 대신하여 온 대정령사 제닌, 맹의 수뇌인 금강신(金剛身) 여불과 송하린, 무지개 사원의 홍예 중 1인인 호랑이, 모험가 협회의 사무관 셰일과 갱. 지혜의 고리의 카이덴.
또한 영원의 용광로를 다스리는 산왕 소렌딜과 자유민 연합의 수장인 혼라스를 비롯하여 그리 크지 않은 단체의 수장들도 함께했다.
그런 자들이 모이니 그 거대한 원탁도 자그마하게 보였다.
소렌딜이 입을 열었다.
“바스카리에서 부탁한 이방인들은 머지않은 시일 내로 도착할 것이오.”
“호의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우리야 크게 불편한 부분 없이 지냈으니 쉽게 결정할 수 있었소. 뭐,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그는 난쟁인들이 이방인들을 홀대하지 않았다는 말을 짧게 돌려 말했다.
성진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부 자유민들을 다스리는 혼라스가 물었다.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는 대충 듣긴 했습니다. 그래도 회의를 시작하는 차원에서 한 번 더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성진이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은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갔다.
혼라스가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그러니까, 이 종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입니까?”
“맞습니다.”
“어째서요? 물론, 피해가 있었지만 터전이 붕괴될 정도는 아니었고, 충분히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성진이 고개를 저었다.
-시청자는 고개를 저었다.
-팀플할 때 꼭 저런 놈들 있어. ㅉㅉ
-내 의견은 마땅히 없지만 일단 네놈의 의견은 틀렸으렷다. ㅋㅋ
-으! 극혐!
“이미 우리는 거대한 종말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고요.”
“그럴 리가…… 분명 균열은 정리된 것 아닙니까?”
카이덴이 혼라스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새로운 균열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당연히 종말의 영역도 넓어지고 있고요.”
“그런…….”
“자유민들의 거처가 비옥한 남부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해를 넘기기 어려울 겁니다. 농부가 거두는 작물은 병들 것이고 어부가 낚은 물고기는 썩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힘을 모은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습니까?”
“많은 것이 달라지죠. 오늘은 그것에 대해 상의하고자 모인 것 아니겠습니까?”
카이덴이 계속해서 설명했다.
그가 손을 펴자 손바닥에서 광원이 분출되어 스칸다 대륙을 보여 주었다.
“스칸다는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고요. 길어야 1년일 겁니다.”
“방법이 있겠죠? 그러니까 모였겠지!”
“물론입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있지요.”
“그게 무엇입니까?”
카이덴이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균열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
“균열의 근원?”
“근원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엔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썩였다.
지금껏 균열의 근원을 알지 못해 이렇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에 주력해 오지 않았던가.
“지혜의 고리에서 균열의 근원을 찾은 것입니까?”
제닌이 묻자 카이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균열의 근원을 찾은 것은 맞지만, 지혜의 고리에서 찾은 것은 아닙니다.”
“그럼 누구입니까?”
“……저희입니다.”
갱과 셰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마디 말을 얹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균열의 근원을 찾은 시기는 지금이 아닙니다.”
“뭐?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제 수염이 나기도 전이겠군요. 무려 50년 전의 일이니까요.”
미리 사정을 들은 성진은 태연하게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놀라서 이곳저곳을 살폈다.
최별과 송하린마저 놀라 성진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가 곧 설명할 것이라 믿고 조용히 있었다.
갱과 셰일은 담담히 이야기를 풀었다.
그 안에 담긴 세월과 고민, 그리고 사연들은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그럴 수가…….”
“확실히…… 미리 안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었군.”
모두가 신음할 때, 회의장의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크하하하하! 재밌구나!”
“이곳까지 오기를 잘했어.”
원탁에 앉은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구를 쳐다보았다.
혼라스가 신음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너희는 누구냐?”
“진정해, 진정하라고. 나도 초대받고 온 것이니까 말이야.”
“다 누구지?”
입구에 와 있는 것은 3명이었다.
붉은 외투를 입은 남자.
그의 옆에는 다소 어설퍼 보이는 수하가 있었는데 여인이었다.
또 그 옆에는 검은 로브를 쓴 남자가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안녕들 하신가? 나는 시궁창이라는 작은 조직을 맡고 있네.”
“시궁창! 맙소사, 하다하다 밀수꾼이랑 얘기를 나누게 될 줄이야!”
“그럼 그 옆에는 붉은 첸이겠군! 빌어먹을, 해적까지 온 거야? 여긴 뭐 하러 온 거지?”
“워워, 진정하라고. 초대받아 왔다니까?”
초대라는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성진에게 향했다.
성진이 말했다.
“제가 초대했습니다.”
“이런! 어째서 저런 간악무도한 자들을!”
“나름의 쓰임이 있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크하하하하! 맞는 말이야. 약탈도 빼앗을 게 있어야 하는 법! 없는 것을 빼앗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제가 드린 제안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소렌딜이 물었다.
“제안이라니? 저자들에게 무슨 제안을 했다는 말인가?”
“무엇이겠습니까, 병력과 물자겠죠.”
“우리만으론 부족하단 말인가!”
“앞으로 상황은 더 안 좋아질 겁니다. 그때엔 어쩌시겠습니까?”
“하지만…… 끄응…….”
소렌딜이 앓는 소리를 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스칸다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전부를 책임져야 하는 그들은 현실을 봐야 했다.
감정싸움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으니까.
붉은 옷을 입은 사내가 말했다.
“제안은 봤지. 이방인들을 해방하고 병력을 내어라. 이 말이지?”
“맞습니다.”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다니 담도 좋군. 죽어라.”
사내가 품에서 마석 권총 두 정을 꺼내 격발했다.
“뭐!”
“위험…….”
콰앙!
콰앙!
팅!
티잉!
권총은 연기를 뿜고 있었지만, 성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탁자에 발을 올린 최별과 송하린이 검을 뽑아 날아온 총알을 쳐 냈다.
원탁에 앉은 사람들은 붉어진 얼굴로 분노를 표출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어찌 저런 자들과!”
그러나 붉은 남자는 개의치 않고 히죽 웃었다.
“제법 하는군. 물론 너 말고.”
“제안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제안이라…….”
“그보다, 슬슬 진지하게 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뭐?”
“자리를 마련하지요.”
우드득.
성진이 손을 까딱이자, 빈자리에 나무 의자 2개가 만들어졌다.
“알고 있었나?”
“들어오는 순간부터요.”
“허.”
붉은 남자와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앞으로 걸어와 의자에 앉으려 했다.
자신을 시궁창의 주인이라 소개한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자리에 앉았지만 붉은 옷을 입은 사내는 자리에 앉지 않고 의자를 잡아 당겼다.
“앉으시지요.”
그의 옆에 어리숙하게 보이던 여인이 대신 자리에 앉았다.
사내는 붉은 옷을 벗어 여인의 어깨에 걸쳤다.
“제법이야. 담도 좋고.”
“당신이 첸이군요.”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성진이 그들을 조용히 쓸어 보자 다시 조용해졌다.
“이방인들은 우리한테도 중요한 존재야. 대가 없이 해방할 수는 없어.”
“협상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입니다. 이방인을 해방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합니다.”
“어째서? 우리야 너희가 세계의 멸망을 막든 멸망해 버리든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걸?”
성진이 빙긋 웃었다.
“우리가 좋게 얘기하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요.”
“뭐?”
“진주 해협과 인어의 무덤, 사자의 무대…….”
성진이 줄줄이 말하기 시작한 것은 남부 해적들의 은신처였다.
“하! 협박이야? 우리야 배만 있으면 너희들 따위는…….”
“배도 정박할 곳은 있어야겠죠. 안 그렇습니까?”
“…….”
“이건 타협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신중히 생각하시길.”
성진의 강압적인 어조에 원탁에 모인 이들이 침묵했다.
잠시 후, 첸이 두 손을 들었다.
“괜히 왔어. 손해라고. 그래서, 어쩔 생각인데?”
성진이 갱과 셰일과 함께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듣는 내내 사람들의 반응은 말도 안 된다는 쪽과 이 방법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쪽으로 나뉘었다.
“그래서 누가 먼저 나설 건데? 난 솔직히 너희를 믿을 수 없어.”
“뭐, 그거야.”
스릉.
성진이 칼을 뽑자, 원탁에 앉은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섰다.
“뭐, 뭐 하는 건가?”
콱!
원탁의 한가운데에 성진의 검이 박혔다.
그리고 그 검을 가로질러 2개의 검이 더 박혔다.
콱!
콱!
송하린과 최별의 검이었다.
미리 얘기해 뒀던 사안이었기에 그들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런, 맹과 태양성은 이미 깊이 관여된 모양이군. 어쩐지.”
“어쩌시겠습니까?”
이곳에 모인 인물들은 서로를 힐끔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대균열 공동 연합체가 탄생했다.
단체의 이름은 성검맹(星劍盟).
별의 용광로에서 태어난 검이 전부 모였기에, 지어진 이름이었다.
지휘기(指揮旗)에는 세 자루의 검이 엇갈린 그림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