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
164화
시청자들이 충격을 받았든 좋은 친구들이 충격을 받았든 성진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지원을 받게 되자 얼떨떨했지만 상황 판단은 빨랐다.
“지팡이를 부셔야 합니다!”
성진이 소리치자, 이선익이 달려가 바위 거인의 주먹을 방패로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성진도 주르륵 밀려날 정도의 힘이 담겼던 주먹을 가뿐하게 받아 낸 이선익.
특수한 능력이 있는 건지 바위 거인의 팔이 산산 조각났다.
콰지지지직!
그으으으어.
스튜디오의 정재민이 소리쳤다.
“인과응보!”
왕이나가 정재민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네?”
“인과응보라는 고유 능력이에요!”
“스칸다에 그런 게 있어요?”
“네. 별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는 고유 능력을 갖췄어요. 선익이랑 대형이는 특출 나게 많이 보유했지만.”
-이나 이런 것도 몰랐구나?
-송하린이 쓰는 검법이나 이런 것도 결국에 고유 능력임.
-만드는 것도 있고 파생되는 것도 있고 전승되는 것도 있긴 함.
-고유 능력 습득 요건 같은 거 뒷구멍으로 거래되고 했었음. 가격이 ㅎㄷㄷ이었지만.
심대형이 말했다.
“시에르네요. 그보다 당신들은 누구죠?”
심대형의 질문에 성진이 재빨리 말했다.
“일단 이것부터 정리하고 대답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여 성진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몇 마디를 얹었다.
“시에르…… 이제야 기억이 나요. 우리는 시에르를 공략하지 못했어요.”
“지팡이 말고 다른 약점이 있습니까?”
쿠우웅!
이선익이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는 바위 거인을 분쇄하며 소리쳤다.
“아이아!”
“아니라네요.”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지팡이는 약점이 아니에요.”
“그럼 어디가 약점이라는 얘기죠?”
후우웅.
팡!
모래 병사 하나가 심대형이 만들어 낸 바람에 맞아 분쇄되었다.
“아까 지팡이를 부숴야 한다고 했죠?”
“네.”
“아닙니다. 부숴야 하는 건 이 방의 전부예요. 건너편에 문이 있기 때문에 시에르만 처치하고 빠져나가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죠. 저번 공략에서 저희도 빠졌던 함정입니다.”
성진이 재빨리 방을 훑었다.
그가 시에르에게 집중하느라 놓치고 있던 것이 있었다.
살아 있는 모래는 방의 벽면을 전부 차지한 석상들에게 깃들고 있었다.
일정한 주기를 두고 시에르의 지팡이에서 마력이 흘러 나와 모래가 깃들도록 하는 것.
“아!”
성진은 결국, 이 방 전체를 부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떻게?
정방형의 공간을 벗어나면 거대한 바위 거인조차 떨어질 만한 틈이 있었다.
벽에 붙어 석상들을 부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터.
그 전에 깨어나는 석상이 더 많을 것이다.
고민이 뇌리를 스칠 무렵, 심대형이 얘기했다.
“제가 하죠.”
“가능합니까?”
“부수는 건 자신 있습니다. 다만, 파괴력이 모자랄까 우려되는데…… 거기 계신 신관 님께서는 어떤 힘을 다루십니까?”
“물입니다.”
“좋습니다. 저와 저 신관 님이 힘을 합쳐 보겠습니다. 시에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콰지직.
콰직!
교룡이 비스듬히 우회해 송하린 쪽으로 향했다.
송하린이 화들짝 놀라 대응하려 했으나, 이선익의 대응이 더 빨랐다.
그의 메이스가 하늘을 날았다.
후웅, 훙.
콰앙!
황금빛 기운이 담긴 메이스가 교룡의 머리를 후려치고 되돌아왔다.
특이한 능력이 담긴 것인지 교룡은 잔뜩 화가 나서 이선익에게 향했다.
그 모습에 이선익이 투구 밑으로 웃음을 흘리고 방패를 몸에 밀착시켰다.
콰아아앙!
교룡의 머리가 방패에 직격했지만, 이선익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특수한 능력인 것 같았다.
그때, 이선익의 뒤에서 성진이 튀어나왔다.
교룡이 서둘러 빠져나오려 길게 늘어진 몸을 쭉 일으켰다.
파지직!
서걱!
송하린이 교룡의 뒤에서 나타나 허리를 반으로 뚝 갈랐다.
성진은 대신 그녀에게 가해지는 바위 거인의 공격을 차단했다.
쾅!
콰아앙!
교차하는 성진과 송하린은 웃었다.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정한 6명이 된 지금은.
베어가 소리쳤다.
“여기도 부탁해!”
베어가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대인전에 특화된 그는 다수의 병사를 상대로 시간을 끄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송하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베어와 합류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앙!
연속 타격의 피해량을 현저하게 낮춰 주는 ‘사자의 심장.’을 발동한 이선익이 바위 거인들의 계속되는 타격을 견뎠다.
그리고 성진은 그가 조금이라도 다치면 금세 회복시키고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짐 레이너에게 메딕이 붙었다.
-메딕 공격력이 짐 레이너보다 세다.
-개쩌는데 상대도 개쩐다; 저걸 6명이서 어케 잡아;
-얼른 시에르 지팡이 압수!! 지팡이 2개월 압수하라고!
지팡이를 부순다는 계획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6명이 달려들어도 살아 있는 모래가 깃든 석상이 방해하면 뚫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리 잘 드는 검이라도, 한계는 있는 법.
일개 검수가 군단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철컹.
이선익의 안면갑이 올라왔다.
그는 이 상황에 웃고 있었다.
‘왜 웃는 거지?’
그가 뒤를 가리켰다.
그는 함께 온 동료를 믿는 것 같았다.
심대형이 소리쳤다.
“모여어어어어어어!”
심대형과 물의 추기경의 몸에서 기괴망측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자 성진과 이선익이 재빨리 몸을 뺐다.
그것을 보던 시에르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트화악! 이악스라!
그가 부리는 병력의 일부는 마법의 발동을 막기 위해 달려갔고 바위 거인들은 몸을 움츠려 시에르를 보호했다.
심대형의 눈에서 번개가 쳤다.
물의 추기경도 고통스러운지 소리를 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마침내, 마법이 발동했다.
성진도 처음 느껴 보는 순수한 마력이었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오!
콰직!
콰지지지지직!
성진이 일행과 합류하자, 이선익이 큰 팔을 휘적거려 일행을 감싸 안았다.
그들의 주위로 엄청난 바람이 몰아쳤다.
콰과과과과과과!
콰직!
콰직!
벽에 박힌 석상들이 송두리째 부서졌다.
그들을 막기 위해 달려오던 모래 병사들은 마치 처음부터 회오리의 일부였던 것처럼 바람에 휘말려 형체를 잃었다.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바람에 물의 추기경의 신성력이 섞인 것 같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 서리 바람은 모든 것을 휩쓸었다.
휘오오!
바람의 경력이 상쇄되자, 시에르가 보였다.
그는 부러진 지팡이를 보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지금입니다!”
심대형의 외침에 성진과 송하린, 그리고 이선익이 달려갔다.
이선익의 질주는 두꺼운 갑옷을 입었음에도 정말 빨랐다.
-메타, 아 홈 메시타!
그런데, 시에르의 행동이 이상했다.
결연한 표정을 짓더니 정방형 공간의 외곽 부분인 어둠의 틈으로 몸을 날리는 것이었다.
일행은 일순간 당황했지만, 사태를 주의 깊게 살폈다.
콰슉!
이것은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육체가 뭔가에 분쇄 당하는 파육음이었다.
보통, 무언가에 잡아먹힐 때 이런 소리가 나곤 했다.
심대형이 소리쳤다.
“중앙으로 모여어어어어어!”
그 외침에 앞으로 나섰던 3명은 서로 눈을 맞췄다.
단 1초.
그 1초 동안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읽었다.
이선익은 재빨리 동료들에게로 돌아갔다.
위협이 있다면 가장 먼저 그가 맞설 것이다.
성진과 송하린은 가운데에 일행을 끼고 서로 반대 방향에 섰다.
어느 방향에서 뭐가 나타나더라도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콰아아아아앙!
곧장, 지지대가 무너지며 모래로 이루어진 거대한 손이 그들이 있던 공간을 움켜쥐었다.
그으으으어어어.
들어갈 곳을 잃은 살아 있는 모래가 전부 모인 것 같았다.
디뎠던 발판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기우뚱거리며 모두 중심을 잃었다.
모래로 이루어진 거대한 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대로라면 떨어져서 신체가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심대형이 침착하게 주문을 외자 모두에게 약간의 부력이 생성되었다.
콰직!
콰과과광!
지축을 흔들며 떨어지는 발판.
모래 거인도 당황했는지 벽면에 한쪽 팔을 박아 넣고 추락을 견뎠다.
콰지지지직!
무게가 엄청난지 팔을 박아 넣었음에도 모래 거인은 밑으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일행은 순식간에 상황을 판단하고 거인과 맞은편의 벽으로 붙었다.
“내려가서 싸우면 힘들 겁니다!”
“아아!”
“선익이가 맞답니다!”
성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송하린을 쳐다봤다.
둘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튀어 올랐다.
한쪽 팔로 흑백쌍존을 상대해야 하는 모래 거인은 두 가지 수를 냈다.
하나는 팔을 앞으로 쭈욱 뻗어 상대가 접근하기 곤란하게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입에서 막대한 양의 토사를 쏟아 내 벽에 붙은 일행을 공격하는 것.
둘 중 하나만 성공하더라도 모래 거인을 향한 공격은 흐지부지될 것이 분명했다.
그으으어어어어!
하지만, 모래 거인의 판단은 틀렸다.
푸화아아아아악!
거인이 뿜어낸 토사는 막대한 압력으로 벽에 붙은 이들을 납작하게 만들 것처럼 보였지만, 전혀 아니었다.
“으아아아아아!”
이선익이 황금빛 기운을 북돋자 그의 몸보다 더 큰 방패 형태의 방벽이 생겨났다.
물의 추기경이 그를 도와 푸르스름한 방벽을 한 겹 더 둘렀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토사는 방벽의 겉을 깎아 낼 뿐, 그들을 뭉개진 못했다.
모래 거인의 눈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검은 색과 흰 색의 인간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들은 몸을 감춘 것이 아니라 거인의 손에 가려진 것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베고 나타난 두 사람이 거인의 팔을 타고 달렸다.
달리며 팔을 베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거인은 팔의 형체를 붕괴시키며 거칠게 휘둘렀다.
그 반동으로 둘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위태로웠다.
송하린은 결단을 내렸는지 성진보다 앞서 있던 위치에서 몸을 구부려 성진의 다리를 받쳤다.
놀라운 균형 감각이었고 과감한 판단이었다.
성진이 그에 호응했다.
그는 재빨리 발을 디뎠다.
송하린이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었다.
“으하아아아아아!”
쒜에에엑.
거인에게 날아가는 성진은 야차의 호흡을 운용하고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의 그는 검을 사선으로 내리 그었다.
콰지지직!
검격에서 났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거인의 머리가 통째로 짓이겨졌고 몸이 늘어지기 시작했지만, 성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콰지직!
콰직!
콰직!
거인의 몸을 잔뜩 난도질하자, 모래는 사방으로 퍼져 형체를 잃었다.
철컥.
성진이 검을 집어넣었을 때는 이미 벽에 박힌 거인의 팔마저 스르륵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
지하의 깊숙한 공간에 내려 온 일행.
성진과 송하린은 이들에게 물을 말을 정리한 후에, 새로 합류한 둘에게 다가갔다.
“아어!”
“안녕이라고 하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초모, 이쪽은 송하린이라고 합니다.”
“네, 저희는 선의 날개와 큰형님입니다.”
-아이디 소개하는 장면 부끄러워. ㅋㅋ
-아, 연결 언제 되냐고. ㅡㅡ
-그러게; 번인이여도 친구들의 과거 의식이잖아? 얘기하고 싶을 텐데.
성진은 굳이 시간 끌 것 없이 단번에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서버 종료는 어떻게 된 거죠?”
“서버 종료?”
성진과 송하린이 눈을 마주했다.
그들은 물의 추기경과 베어에게 부탁해 자리를 피하게 했다.
넷은 지금 알고 있는 정보가 달랐다.
성진은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너무 큰 정보를 한꺼번에 주입하다가는 상대가 충격을 받을 수 있기에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로 송하린과 합의했다.
송하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성진이 얘기했다.
“우선, 지금의 스칸다는 두 분이 활동하던 때로부터 50년이 지났습니다.”
“혀, 형님? 차근차근이라면서요?”
“아.”
-아.
-ㅋㅋㅋㅋㅋㅋㅋ
-보폭이 너무 커 버린 거임~
이선익과 심대형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금방 평정을 되찾고 답했다.
“그렇군요.”
“아아.”
“아아라네요.”
“5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으셨습니까?”
심대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50년? 저희가 느낀 건 찰나예요. 서버가 종료됐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여기에…… 아니, 어쩌면 모래처럼 유적을 떠돈 것 같기도 하고……. 선익아, 너는?”
“아오.”
“아오라네요.”
“아오.”
“나도였구나.”
상대는 50년 동안 그저 잠들어 있었다.
성진의 마음엔 송하린이 말했던 가능성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아마도 번인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형님.
번인에 관해선 송하린이 친절하게 설명했기에 성진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들을 단지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치 복제 인간에게 ‘당신은 사실 곧 사라질 복제 인간입니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때, 송하린이 이야기했다.
“저, 당신들은 번인 현상의 결과물일 수도 있소.”
“번인? 우리가 번인이라고?”
“어아오?”
“정말로라네요. 아무튼, 번인이라…….”
-송하린 단호한 거 보소. ㅋㅋㅋ- 야, 눈치 좀 봐 얘들아. 게스트들 표정 싹 굳었잖아;;
-난 아님! 쟤가 했음!
-나도 아님! 난 말렸음!
그 얘기를 들은 심대형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아, 기분이 이상하네.”
“아오.”
“나도라네요.”
“괜찮으십니까?”
“아뇨, 번인 취급을 받았는데 괜찮으면 그게 이상한 거죠.”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대형은 그를 쳐다보다 말했다.
“그랬구나…… 나는 번인이겠구나. 50년 동안 이곳에 있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으니까.”
“…….”
성진이 이제 꺼내야 하는 이야기는 앞서 꺼낸 얘기보다 몇 배는 골치가 아픈 얘기였다.
하지만 꺼내야 했다.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심대형이 코를 긁적이다 물었다.
“더 곤란한 얘기가 있나 보네요.”
“네.”
“하셔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번인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는데 더한 말도 뭐…….”
“……현실의 심대형 씨와 이선익 씨는 현재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뭐?”
“…….”
“방금…… 뭐라고 했어요?”
이선익은 동공이 탁해져 멍해 보였고 심대형은 정말 당황한 것 같았다.
“아니, 아니! 내가 식물인간이라고요?”
“정확히는 멘탈 번입니다.”
“캡슐! 캡슐에 있다는 거예요?”
“네.”
“……얼마나?”
“꽤 오래…….”
“……깨어나진 못한데요?”
“지금까지는 딱히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째서 이런 걸 알려 주시는 거죠?”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심대형은 입매를 비틀었다.
“번인이니까?”
“…….”
“시한부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번인이니까 그런 거예요? 번인은 뭐 상처 안 받나? 아니, 받는 것 같아요! 저 지금 엄청 상처 받았으니까.”
“아이 아 애어아.”
“하지 마, 대형아라네요. 아이씨! 넌 가만있어!”
심대형은 슬퍼 보였다.
그가 자조 섞인 말을 주절거렸다.
“그랬구나,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 곁에 없었구나.”
“…….”
그는 울적해져서 슬픈 눈을 하고 성진에게 물었다.
“친구들은…… 친구들은 잘 지내나요?”
“그게 궁금하십니까?”
“네, 갑자기요. 번인은 이런 거 궁금하면 안 되나요?”
-…….
-…….
-;;
성진은 못 다 한 상황 설명을 했다.
현실의 좋은 친구들이 방송을 보고 있었고 시초의 유적을 공략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연결이 끊겨 지금은 보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까지.
잠시 충격을 받은 둘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히죽 웃었다.
“하하, 그랬구나. 다들 지켜보고 있었구나.”
“이으오?”
“지금도라네요. 지금은 아니겠지, 붕신아! 끊겼다잖아.”
“아이아.”
“붕신 아니라고? 저번엔 맞다 했잖아.”
“아이아.”
“알았어.”
-우리가 보고 있어요!
-미로 이 개 같은;; 뭐 해! 빨리 연결 안 하고!
-번인이랑 대화하면…….
-근데 전투까지 했는데 번인 확실해?
-데자뷰가 그럼 구라치겠어? 상식적으로;;
-ㅇㅈ 구라치다 걸리면 아무리 초 거다이맥스 일류 기업이라도 주가 박살 날 텐데;
-손모가지가 아니라 진짜 모가지 달아남.
-ㅇㅇ 번인 맞음. 글고 번인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음.
성진이 얘기 도중, 주변을 훑었다.
격렬한 전투로 휴식이 필요했기에 살아 있는 모래가 주변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모래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일단 불을 피우죠.”
타닥.
탁.
고생한 베어와 물의 추기경은 오랜만의 단꿈에 젖었다.
성진과 나머지는 유적 안에 만들어진 불가에 앉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심대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제 친구들을 아시나요?”
“아뇨, 모릅니다.”
“그렇구나.”
“그래도 소식은 전해 들었습니다. 채팅 창에서 누군가가 자꾸 전해 주더군요.”
“아! 정말요? 다들! 다들 어떻게 지내요?”
“일단, 송예지 씨는 아직도 학기 중이라 이번 일에는 참여하지 못했답니다.”
“역시 그렇죠? 정 없는 년. 친구들이 의식불명에 빠졌는데도 학업이 우선이구나! 돌아가면 단단히 따져야겠어요. 물론, 번인인 저 말고 진짜 심대형이.”
“…….”
“아, 죄송해요. 또요?”
성진은 송하린의 기억과 대조하여 소식을 계속해서 전했다.
“김상혁 씨가 심대형 씨와 이선익 씨를 많이 그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상혁이가 겉보기에는 드세 보여도 심성이 여려요. 아, 어렸을 적에 선익이랑 상혁이 싸운 거 아세요? 엄청 지독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도 방송에서 얘기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선익이가 저한테만 몰래 얘기했었는데, 상혁이를 엄청 싫어했대요. 한주먹도 안 되는 뭣밥 같은 게 자꾸 까분다고.”
“애아 어에!”
내가 언제.
“지금도 언제 한 번 깔 생각이라네요.”
“이에 이아!”
이게 진짜!
“장난이야, 장난.”
-ㅋㅋㅋㅋㅋ
-……웃을 수가 없다.
-미로 공지 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어쩌고로 복구에 시간이 걸린 댄다.
-이 방만? 말이 돼?
-니가 미로 담당자냐? 왜 나한테 따져! 나야 공지만 읽은 거임;
이선익과 심대형은 웃음을 터트렸다.
“재민이는요?”
“별 다른 얘기는 없었습니다.”
“혜연이는? 혜연이는 같이 왔대요?”
“네, 같이 와서 얘기도 나눴습니다.”
“뭐라고 했어요? 사실 심대형을 좋아하고 있다고 하진 않던가요? 아, 선익이를 좋아한다거나 사실 상혁이와 사귀는 사이라고 밝혔으면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사귄답니다.”
“진짜요?”
“농담입니다.”
“휴. 하마터면 세계를 부숴 버릴 뻔했네.”
성진은 심대형의 얼굴을 보자 가슴이 아릿했다.
그의 감정은 여태 그 진동 폭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알게 될 때마다 그의 감정이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심대형은 재잘재잘 친구들에 대해 떠들었다.
“제가 예지랑 단 둘이 있었을 때, 예지 눈빛이 심상치 않았어요. 뭐랄까, 음…… 팩트만 얘기하자면 저를 좋아하고 있는 게 너무 티 났다고 해야 하나? 표정이 왜 그러세요? 정말이라니까? 팩트예요, 진짜.”
“어 이이에.”
뻥 치시네.
“나도 동감이야라고 하네요.”
“그렇게 길지 않았던 것 같은데.”
“선익이 말은 제가 더 잘 알아요.”
성진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번인이 아니기를.
이선익은 손가락으로 땅에 글씨를 새겼다.
사악, 삭.
그의 글씨는 순식간에 문장을 만들어 냈다.
-상혁이는, 밥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낸대요?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삭, 삭.
-우리 없어졌다고 슬퍼하나요?
“네.”
삭, 삭.
-그렇구나……. 상혁이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
심대형이 불만을 표시했다.
“야! 나는! 내가 더 좋은 친구 아니야?”
사악, 삭.
-애매해.
“이런 씨…….”
성진이 물었다.
“상혁 씨를 많이 생각하시나요? 왜죠?”
사악, 삭.
사사삭.
이번엔 조금 긴 문장.
-상혁이는 한 번도 제 말을 틀리게 전한 적이 없어요. 제가 말하기 어려운 걸 아니까 그런 건지는 잘 모르지만, 그랬어요.
“야! 그렇게 적으면 나만 쓰레기되잖아!”
사악, 삭.
-부정은 못 하겠어.
둘은 피식거리며 웃었다.
성진이 물었다.
“상혁 씨가 선익 씨의 말을 전부 알아듣는다고 하던데, 이유를 짐작하시나요?”
사악, 삭.
-나는 알아요. 상혁이는 제 얘기를 들으려고 해요.
사악, 삭.
-엄마가 얘기했던 것처럼, 제 말을 귀담아 듣는 친구예요.
사악, 삭.
-어렸을 때는 애가 덜 됐지만.
“푸하하하하! 맞지, 맞아.”
송하린이 이야기를 듣다 말고 조금 돌아서 있었다.
성진은 왜 그런지 몰라 물었다.
“왜 그러…….”
“쿠흡…… 눈에 뭐가 잠깐 들어가서…….”
좋았던 이야기는 여기까지.
번인과의 대화는 끝이 정해져 있었다.
그들은 세계에 한 순간 머물다 떠나는 존재였기에.
심대형이 나지막이 말했다.
“저희가 번인이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거네요.”
“……아마도.”
“만약, 저희가 번인이 아니라 정말 심대형이고 이선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저는 모릅니다.”
“저는 알아요. 아마 끝을 봤을 것 같아요. 제 친구들이 사랑했던 공간이고 함께 했던 시간이 깃든 곳이니까. ……지키려고 하지 않을까요?”
“으.”
“응이라고 하네요.”
심대형은 자신이 번인이란 사실을 원망하지 않았다.
받아들이고 조용히 말했다.
“친구들과의 추억은 너무도 생생해서 제가 번인이라는 게 잘 믿기지는 않지만…… 받아들일 생각이에요.”
“아오. 아오아.”
“나도, 나도야라네요.”
심대형이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저, 혹시 아직도 방송이 끊어져 있나요?”
“네.”
“……저쪽은 연결됐는데 이쪽이 끊어져 있을 가능성은요?”
성진이 송하린을 쳐다보자 송하린이 어깨를 으쓱했다.
“가능성은 있소.”
“어, 그러면 어디가 시점이죠? 초모 님인가요? 송하린 님인가요?”
“이중 시점이기는 한데, 초모 형님이 메인 시점일 거요.”
“아! 그랬군요. 선익아! 이리 와서 같이 좀 앉아 봐.”
이선익이 거구를 일으켜 심대형의 옆에 앉았다.
둘은 사진을 찍듯 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대형이 잠시 입술을 짓깨물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좋은 친구들 혹은 시청자 여러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렇게 인사합니다. 저는 스칸다에서 활동했던 무려 활금강! 큰형님이고 이 친구는 활금강 선의 날개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이.”
그는 조금 울먹거렸다.
“아마 저와 제 친구는 멘탈 번 상태에 있는 심대형과 이선익의 번인인 것 같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하네요.”
“아이.”
“결국은 누군가의 흔적에 불과하다는 얘기긴 한데, 저와 제 친구는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좋은 친구들한테요! 어……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그…….”
그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계속 얘기를 꺼내기 위해 잠시 숨을 참았다가 다시 말을 했다.
“기, 김상혁, 송예지, 최혜연, 정재민까지. 모두 정말 좋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비록 누군가의 흔적일 뿐이지만, 아마 진짜 심대형과 이선익도 당신들을 좋아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진짜로요!”
“으.”
“응이라고 하네요.”
성진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심대형이 계속 말했다.
“번인이더라도 이 기분과 감정만큼은 정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실체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감히 심대형의 입장이 되어 한마디 하자면…….”
“…….”
“지금 친구들이 정말 보고 싶습니다. ……정말로.”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하지만 말소리는 작았다.
마치, 자신이 얘기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것처럼.
“보고 싶다, 친구들아…….”
그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저, 흑…… 자, 잠시만요. 마, 말이…… 으…… 아, 안 나와서…… 으…… 조금만…… 지, 진정을…… 하고…….”
성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선익이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잠시 후, 심대형이 얘기했다.
“저와 선익이는 좋은 친구들이 늘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존재들이지만, 저희가 이렇게 남아 있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좋은 친구들. 번인인 저희들은 당신들의 추억에 꼭 마침표를 찍어 이 모든 것을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으.”
그는 웃었다.
“꼭, 해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처럼 번인이 아닌 진짜 선익이와 대형이가 깨어났으면 좋겠네요. ……정말로요.”
“으!”
“친구들이…… 오랫동안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