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102화
메마른 날의 일이다.
최별이 수도로 향하던 도중, 그녀는 그간 모은 정보를 토대로 이름 없는 산으로 방향을 바꿨다.
동부, 서부, 중앙.
어디든 산은 넘쳐났다.
산이 매우 험준하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떨어져 있으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사람의 발길이 닫지 않게 돼 산은 더 흉악하게 변모한다.
최별은 지금 그곳에 와있다.
화르륵···
키아아아아아-!
콰아아앙-!
만티코어가 꼬리를 휘두르자 단단한 바위가 부서졌다.
최별은 손에 쥔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러 파편들을 모조리 쳐냈다.
캉-!
이윽고 꼬리마저 쳐낸 최별이 만티코어의 몸을 정확히 3 등분했다.
서걱-!
“하아··· 하아···.”
얼굴에 튄 피를 대충 닦아낸 최별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등을 기암에 기댄 채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3일.
산에 도착해서 차분히 정상을 향해 나아간 지 3일째다. 아직도 산의 중턱이다. 몬스터는 시도 때도 없이 목숨을 노려왔고 잠도 거의 자지 못했다. 이 산은 마치 자신을 시험하는 듯했다.
‘죽겠네, 정말.’
“하하···.”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무슨 희망을 찾아 이 산을 오르는지.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운영하던 상단은 경쟁 상단에 밀려 세월에 사라졌다.
나름 체제를 갖추고 육성하던 기사단과 사병 조직은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50년은 스칸다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워내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마치 카펫에 묻은 얼룩이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흐릿해지는 것처럼.
“최별, 정신 차리자. 여기서 이게 무슨 시간 낭비야?”
어차피 이게 마지막이다.
과거에 남은 미련을 이번 기회에 모두 떨쳐낼 생각이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
전투복은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찐득한 피가 허벅지에서 흘러나왔다. 다리를 절뚝이며 이동했다.
‘물소리!’
소리가 크진 않았다.
아마 얕게 흐르는 계곡일 확률이 높았다.
다리를 질질 끌고 도착한 곳은 계곡이 맞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물이 깊었다.
‘마침 잘됐네.’
그녀는 가볍게 한 손으로 물을 떠 맛보았다. 문제가 없는 것 같아 양손으로 물을 마셨다.
꿀꺽···
“으··· 시려.”
차가움에 이가 시렸다.
다음은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피딱지와 땟자국을 계곡물로 씻어냈다.
어느새 밤이 되었다.
계곡물에 밤하늘은 물론이고, 자신의 얼굴까지 비쳤다.
그때, 기척도 없이 물에 비친 최별의 얼굴의 사선으로 늙은 사람의 얼굴이 비쳤다.
“···누구?”
“거칠게 싸운 모양이군요. 피 냄새가 진동합니다.”
“누구냐니까.”
“여전히 아름다우십니다. 하지만 급한 성미 또한 여전하시군요.”
“······.”
늙은 사람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눈엔 물기가 고여 있었다.
반면, 최별은 오히려 표정이 굳었다.
“찾았잖아, 영감.”
“영감이라뇨, 헤어질 때만 해도 파릇파릇한 청년이었습니다.”
“지금은 말라비틀어진 파 뿌리 같네.”
“솔직한 건 빈축을 사기 마련입니다. 여전히 고치지 못하셨군요.”
“빈말은 못 해서. 아무튼··· 50년 만인가?”
“예. 50년 만입니다.”
그 둘 사이의 적막이 산 전체에 내려앉은 어둠보다 무거웠다. 최별이 뜸을 들이다 물었다.
“다 사라졌더라, 내가 이 세계에서 가꾸고 보살폈던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은 스러져 먼지로 돌아가기 마련입니다. 최별님이 남겼던 것들도 예외는 아니죠. 특히나 우리는 적이 많았잖습니까?”
“그렇지. 그랬지···.”
또다시 적막.
이번엔 침묵이 길었다. 하지만, 둘은 희미하게 미소지을 정도로 침묵마저 곱씹었다.
최별이 히죽 웃었다.
노인도 마주 웃었다.
둘을 아는 사람이라면 놀랐을 것이다. 둘은 평소에 웃지 않기로 유명했으니까. 특히 이렇게 시원하게 웃는 경우는 더더욱 없었다.
최별이 말했다.
“갈래. 얼굴 봤으면 됐어.”
“벌써요? 뭐하러 고생하시면서 산에 오르신 겁니까.”
“얼굴 보러.”
“아닐 텐데요. 제가 젊었을 적부터 뭇 여성들의 마음을 얻었지만, 최별님이 고작 제 잘생긴 얼굴이나 보려고 이 험한 산을 오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최별이 입을 꾹 다물었다.
기대하기 싫었다.
기대하는 건 자신이 저지른 무책임한 행동과의 괴리를 불러일으킨다.
- 나 없는 동안, 잘 지켜.
-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지금도 잘 가지고 있느냐고 물으면 저 앙상한 입으로 오물거리며 ‘예, 당연하지요.’ 라고 대답할 것 같았다.
그럼 자신은 틀림없이 울 것이다.
하지만 물어야 한다.
“내가 부탁했던 건···.”
“예, 당연하지요.”
으득···
최별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터져 나올 뻔한 울음을 간신히 참았다.
“이쪽으로.”
노인을 따라간 곳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정처 없이 걸었다.
작은 동굴로 노인이 들어가자, 최별도 들어갔다.
그곳에는 최별이 찾던 물건이 있었다.
“홍련(紅蓮)···. 그리고 야화(野火).”
“최별님의 무구들이죠, 갑옷과 검.”
“어떻게···.”
동굴에 설치된 횃불이 노인의 얼굴과 몸을 비췄다.
최별은 그제야 눈치챘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달했기에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팔이 하나네?”
“거추장스러워서요.”
“흉터들은 또 뭐야? 잘생긴 얼굴은 어디 갔어?”
“이젠 나이가 찼는데 잘생긴 얼굴이 무슨 소용입니까?”
노인은 외팔이었고 얼굴은 흉터가 너무 심해 밝은 곳에서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군데군데 드러난 몸도 흉터가 빼곡했다.
상황이 그려졌다.
“노려진 거구나···. 내 것들 때문에.”
“······.”
“도망쳤어야지. 이깟 것들 다 줘버리고. 도망치고 약속 같은 건 잊고 살았어야지.”
“그럴 수 없습니다.”
“왜에!”
“약속했으니까요, 지키겠다고.”
최별은 슬픔을 억누를 수 없었다.
노인이 웃었다.
“최별님, 속상하실 겁니다. 사정은 들어서 알지만, 50년이나 지나서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남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남아서 최별님이 남긴 것을 지켰습니다.”
“···홍련을 입겠다. 부탁해.”
“이제 한쪽 팔밖에 남지 않아서 전처럼 도와드리기는 힘들 겁니다.”
“괜찮아.”
철그럭···
철컥-
갑옷을 입는 최별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마침내, 투구가 씌워졌다.
그녀는 안면갑을 올린 상태로 야화를 손에 쥐었다.
들불이라는 이름의 검이다. 그녀의 힘을 완벽하게 보조하는 검. 오직 그녀만이 다룰 수 있던 무기로 유명했다.
그녀가 검을 한두 번 휘두르고 등에 장착했다.
그리고 노인을 보며 이야기했다.
“에이단, 네가 지켜낸 것들에 보답하겠다. 말하라.”
“필요 없습니다.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말하라.”
“···그렇다면 다시 한번 불을 일으켜 주시겠습니까?”
철컹-!
안면갑이 최별의 얼굴을 가렸다.
화아아아아아···
불길은 산을 오를 때보다 몇 배는 거대해져 있었다.
“반드시 그러하리라. 재에서 일어나는 것은 불꽃의 숙명이다.”
****
장내의 누구도 소리 내지 않았다.
그저 협회 사람과 초모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둘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한 명은 골치 아픈 상황을 맞이했다는 듯 볼품없이 찡그린 표정을 지었고 다른 한 명은 가면을 써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게 대체··· 초모님? 무슨 상황인지 해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마술을 보여줬습니다.”
“예?”
그때, 누군가 협회 사람에게 다가왔다.
성진의 옆자리에 앉은 진주 등급의 기사였다.
“초모 무죄. 뚱보 유죄.”
“무슨 말입니까?”
기사는 투구를 긁적였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늑대를 잔뜩 데리고 온 요정과 난쟁이 원소술사가 거들었다.
“귀상어가 초모에게 시비를 걸었어요. 별채 열쇠를 달라고 하질 않나, 조롱하질 않나. 참··· 협회는 무슨 생각으로 범죄자 출신을 파견대에 끼워 넣은 거죠?”
“맞, 맞아! 초모는 최대한 좋게 해결하려고 했어! 근데, 그보다 귀상어는 어떡해야 하나?”
협회 사람이 한숨을 쉬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무래도 갱인 것 같았다. 그가 잠시 후, 쇠사슬을 들고 나타났다.
촤르륵···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협회에서는 뭐라고 판단했는가?”
- 귀상어? 안 그래도 처리하려고 했어. 초모가 큰일 했네. 그대로 발디스에 넘겨버려. 현상금이 떨어지긴 했어도 여전히 있긴 있을 거야. 그거 가지고 운영비에 보태 써.
- 예? 범죄자라도 보호하는 게 모험가 협회 아닙니까?
- 귀상어는 모험가가 된 후에도 범죄를 저질렀다. 비록 상대가 이방인이었지만, 그 녀석의 행동은 도가 지나쳤어. 파견 임무를 맡기고 도시 외곽으로 끌어낸 다음 쳐낼 생각이었는데, 수고를 줄이겠군.
- 뭐가 그렇게 주먹구구식입니까?
- 그럼 그 주먹구구식으로 네 인사도 진행하지.
- 발디스에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귀상어는 오늘 내로 넘기겠습니다.
“파견대에 귀상어 님··· 귀상어는 함께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협회가 옳은 결정을 했구만!”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가?”
“어떻게 귀상어가 벽에 처박혔는지···.”
“그게 말이야···.”
다들 초모라고 말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대답을 회피했다. 아까 대답한 진주 등급의 기사가 아닌 검사가 말했다.
“초모가 손을 쓴 것 같은데, 자세히는 보지 못했다.”
“지원가가 손을 썼는데, 비취 등급의 귀상어가 날아갔다고요?”
“그럼 귀상어가 날개라도 달려서 혼자 날아갔을까?”
“아니··· 아닙니다. 일단 진행하죠. 파견대의 인원은 귀상어를 제외한 18인으로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수군댔다.
사태가 일단락되자 호기심이 동한 듯했다.
“초모의 커리어가 조작이라고 하지 않았어?”
“내가? 아닌데?”
“뭔 소리야, 아까는 그런 것 같다며?”
“그런 소문이 있다고 했지. 아무튼,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돼.”
“그럼 데칸 산에서 벌인 그 일도 정말인가?”
“그건 다른 문제니··· 에잉 머리 아파. 일단 파견이나 신경 쓰자고.”
“나는 저 초모랑은 같이 가기 싫은데··· 왠지 거부감이 느껴져서···.”
성진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을 피하는 것을 눈치챘다.
당연한 일이다. 귀상어를 날려버렸으니. 정확한 수를 본 것은 옆자리에 앉은 진주 등급 기사였다.
기사는 슬금슬금 성진의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말을 툭- 던졌다.
“수도사?”
“······.”
“역시.”
- 진짜 과묵하누 ㅋㅋㅋ
- 초모님 수도사는 몽크에여. 신성력 기반 격투가
- 언제 한 번 직업이랑 능력 정리 한 번 해드려야겠네
- 초모 보고 몽크로 착각한 거 같은데 ㅋㅋ
- 그럼 신관이 거인을 벽에 처박았는뎈ㅋㅋ 합리적인 추론이지
기사는 조금 여유를 두고 다음 말을 했다.
“잭.”
“네?”
“잭, 내 이름.”
“아, 전 초모입니다.”
“멋져.”
- ㅋㅋㅋㅋ 엄지손가락 올리는 거 뭔뎈ㅋㅋ
- 진주한테 인정받았네 ㅋㅋㅋ
협회 사람이 귀상어를 발디스의 경비들에게 인계하고 상황을 진행했다.
“정신없었는데, 인사드립니다. 이번 파견대의 총책임자인 브렌트라고 합니다.”
“책임자님도 엘론드까지 같이 가시나?”
“아뇨, 저는 상황만 전해 받고 협회에 보고하는 역할입니다.”
“뭐야, 그럼 다 우리끼리 하라는 거야?”
“협회는 언제나 임무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습니다. 꾸준히 말이 나와도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는 이유가 그 때문이죠.”
“알았어, 임무 얘기나 하자고.”
브렌트가 지도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가 엘론드. 그리고···.”
다른 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가 대삼림입니다. 야생의 보고였죠, 얼마 전까지는.”
“정확히 시조를 깨운 건 누구의 잘못이지?”
“불명확합니다. 그러니 서로 대응을 미루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거죠.”
“하여튼 상회 놈들이 끼면 꼭 일이 지저분해져. 다른 곳에서는 지원한다고 하던가?”
“상회들이 각출해서 엘론드 주민들의 치료를 지원한다고 하는데··· 사실 사제회가 묵묵부답이니 주인 없는 약속입니다.”
“내가 말하는 건 병력을 말하는 거야. 시조가 손을 뻗치면 엘론드도 위험한 거 아니야?”
브렌트가 고개를 저었다.
“대삼림과 엘론드의 거리가 꽤 벌어진 점. 시조는 대삼림의 깊숙한 곳에 자리한 점. 또 충분히 엘론드에 시조의 마수가 스며들기 전에 막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인지 다들 태평합니다.”
“50년 전에 서부의 곡창지대가 아작난 것을 보고도 배운 게 없나 보군.”
“그들에게는 할아버지들의 옛날이야기니까요.”
- 야! 듣는 할아버지들 발끈한다!
- 이눔시끼들! 할애비들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 최별 아니었으면 언더월드 찍었을 놈들이 ㅉㅉ
브렌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제부터는 본론이다.
“자, 빠르게 정리하겠습니다. 일정이 지체됐으니 휴식 시간을 드리려면 그 편이 나으니까요. 이번 임무는 대삼림의 시조를 제거··· 하는 게 아니라 길을 뚫는 겁니다.”
“길? 어쩐지 시조를 노리기에는 구성이 영··· 꽤 상위 모험가가 와야 할 것 같은데.”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연락이 닿는 모험가 파티 중에서 시조를 처리할 수 있을 실력을 갖춘 분들은 한 파티 뿐입니다. 다른 분들은 전부 임무에 나가계셔서 연락이 안 됩니다.”
“천상계군, 천상계야. 그 사람들은 왜 지금 오지 않았지?”
“이미 다른 임무 중입니다. 임무를 끝마치고 합류하기로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길을 뚫어놓으면 시조는 그분들이 합류해서 막기로 했죠.”
“들러리란 얘기군.”
“포인트는 섭섭지 않을 겁니다. 임무의 난이도를 고려해 B 랭크의 포인트를 드릴 예정입니다.”
“짜! 짜다고! B 랭크면···.”
“솔로 포인트로 책정되니 B 랭크의 5인 포인트를 받게 되십니다.”
“달아! 달아졌군! 들러리도 포인트만 넉넉히 준다면 얼마든지 하지.”
5인 포인트.
B 랭크의 임무를 솔로로 완수할 경우, 포인트를 많이 받는다. 성진도 그렇게 이단 승급을 했으니 이번 임무가 끝나면 또 승급할지도 모른다. 이례적인 승급 속도다.
‘하지만··· 불길해.’
어쩐지 이번 임무는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 중에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는지 브렌트에게 질문이 던져졌다.
“근데, 위험하지 않나? 사제회도 모른 척하는 일이고 시조가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며?”
“시조는 현재 전혀 활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삼림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다들 태평하게 대응하는 게 이해가 갈 정도죠. 걱정하시는 건 이해하지만, 이번에 합류하시는 분들은 믿을 만하실 겁니다.”
“누군데?”
“정예 ‘진리의 수호자’입니다. 고정 파티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라 자세한 인물 소개는 생략하겠습니다.”
“오오! 진수인가? 그렇다면 믿을 만하지. 어차피 길만 내는 거니까.”
쾅쾅-!
갑자기 성진의 옆자리에 앉은 잭이 주먹으로 탁자를 쾅쾅 쳤다.
“엥?”
“왜 저래? 할 말 있나?”
잭이 손사래를 치고 아니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성진의 귓가에 슬쩍 말을 던졌다.
“스승님.”
“네?”
“내 스승님.”
“아··· 예.”
- 이색히 캐릭터 개웃기넼ㅋㅋㅋ
- 지 스승님 얘기 나왔다고 신난 거잖아 ㅋㅋ
- 진주는 어케 달았누ㅋ
브렌트가 정리했다.
“자, 그럼 엘론드까지는 함께 이동하시고··· 대삼림에서 어떻게 움직이실지는 그곳에서 결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
“······.”
“없으면 오늘 하루 푹 쉬시고 내일부터는 엘론드로 향해주시기를. 저는 이쪽의 진주 등급의 검사 알란 님과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제게 하실 말이 있으신 분들은 알란 님을 통해 연락해주세요.”
그렇게 브렌트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서 술을 마시는 부류와 자신에게 배정된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부류로 나뉘었다.
성진은 후자였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별채로 향할 때,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가는군. 음··· 나는 솔직히 좀···.”
“초모? 꺼려질 만하지. 속내를 감추는 놈들치고 믿을 만한 놈들이 없으니까.”
“아까 귀상어 날아간 거 봤나? 무슨 수를 쓴 건지 본 사람 있어?”
“아니, 음··· 혹시···.”
“왜 그러나? 뭐 아는 거 있어?”
“데칸 산의 일도 그렇고··· 금지된 마법을 사용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
“자네···.”
“응?”
“헛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처마시게. 금지된 마법은 무슨···.”
성진은 별채에 짐이 제대로 들어와 있는 걸 확인하고 앞뜰로 나왔다.
삐익···
[제목: 초모님! 이번엔 믿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수소문해서 사람을 한 분 모셔왔습니다! 무려 스칸다의 마탑 학자분입니다!
- 학자? 에이; 뭐가 대단한데?
- 스칸다에 접속해서 공부하는 게 대단하지 않을까?
- 글케 들으니까 갑자기 대단하네
성진은 쪽지에 적혀있는 사람과 커뮤니티 친구를 맺었다. 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했다.
「반갑습니다, 초모님. ‘일타강사치명타’입니다. 오늘 남는 시간 동안 시조에 대한 부분을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 오오! 어디서 봤다고 했는데 치명타님이구나
- 기믹 분석해서 공략 남기시는 분? 욜~ 오랜만이에요!
「초모님의 시간을 빼앗기 싫으니 빠르게 설명하겠습니다. 이번 임무는 생각보다 할 만 할 겁니다. 이유는 첫째로, 시조를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둘째로, 단순히 길을 뚫는 정도는 후퇴도 쉽다는 점. 셋째로, 시조와 그의 피조물들이 신성력에 취약하다는 점. 마지막으로, 시조의 소극적인 행동입니다.」
“시조의 소극적인 행동?”
「시조는 대체로 오만합니다. 서부에서 남작이 공략당한 게 그런 이유에서죠. 기록 상으로는 작위가 올라갈수록 그런 경향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삼림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보면 핫바리라는 거겠죠.」
“만일 작위가 높다면요?”
「그럴 확률은 지극히 낮고, 솔직히 남작 정도는 초모님이랑 붙어도 ㅎㅎ··· 아니, 혹시 자작도?」
- 내심 기대중이구낰ㅋㅋㅋ
- 자작까지는 킹볼만 하지 않을까?
- 상성 빨이랑 초모 능력치 고려하면 그럴 거 같은데
- ㄴㄴ 초모의 무서운 점은 능력치와 상성을 씹어먹는 깐뜨롤이다. 그거까지 고려하면 백작도 ㅎㅎ
- 에이! 기분이다! 후작도 ㅎㅎ
- 내친김에 공작이었으면ㅋㅋ
- 니들이 뭔데ㅋㅋㅋ
- 공작이나 후작이었으면 스칸다 진작 멸망하지 않았을까?
- 다른 걸 떠나서 오염이 지옥이잖아
- 쨋든 이번 임무는 개꿀이네. 포인트만 쏙 빨아먹고 동부로 뛰는 건 어떨까?
****
마녀 이시스.
그녀가 가진 재주는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지만,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건 점술이었다.
눈에 안대를 했지만 다른 이들보다 멀리 본다.
그리고 멀리 보기에 볼 수 없는 것들을 본다.
별채로 돌아온 그녀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탁자에 카드 뭉치와 주사위를 올려두고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지금 꿈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안개 낀 시야를 넘어 다른 세계에 도달한다.
탁자에 철퍽 엎드려 있던 그녀가 경기를 일으키듯 정신을 차렸다.
“위대하신 분이시여···.”
어느새 그녀의 맞은편에는 누군가 앉아있었다.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얼굴은 사람이 아니었다.
역삼각형 모양의 정사면체.
거기에 이목구비는 아무것도 없고 눈 모양의 문양이 빛나고 있었다.
“큰일을 앞두고 있어요, 걸리는 일은 두가지입니다.”
그녀는 낮에 있던 일을 설명하고 물었다.
“귀상어에게서 죽음의 냄새가 났습니다. 그는 어떻게 될 운명인가요?”
척-
상대가 주사위를 내밀었다.
그녀는 주사위를 굴려 눈을 확인했다.
사(四).
이 정도면 훌륭한 숫자다.
모든 진상을 알 순 없어도 결과는 알 수 있다.
그녀의 눈이 몽롱해지고 다른 시야를 보게 되었다.
- 반드시··· 반드시 죽여주지, 초모.
-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 뭐? 너희는 누구··· 끄아아아악!
온통 그림자였다.
그림자들은 독방에 수감된 귀상어의 사지를 악독하게 끊어내고 그의 목이 바닥을 구르게 했다.
‘누구? 누구지?’
- ···님. 끝났습니다.
- 가자. 악취가 나는구나.
- ···님께 말씀을 올리지 않고 행동해도 되는 걸까요?
- 꽃을 피우라 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그림자. 그림자는 주인의 발과 같은 발을 딛는다.
후우웅···
안개에서 빠져나왔다.
볼 수 있는 건 여기까지.
“귀상어는 역시 죽는군요···.”
상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이번 임무는 아무래도 불길합니다.”
다시 한번 내밀어지는 주사위
떼구르르···
‘이런!’
주사위가 멈췄다.
일(一).
낭패를 본 표정으로 이시스가 말했다.
“그럼, 카드를 뽑겠습니다.”
일은 카드로 점을 친다.
이시스가 두 장의 카드를 뽑아 상대에게 내밀었다.
“확인을.”
첫 장은 마차의 바퀴가 진창에 빠진 그림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고난을 맞이할 수 있다.’
두 번째 장은 낫을 든 사신.
‘그 고난은 죽음. 거꾸로 된 죽음이면··· 전부 죽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죽는 건가요? 도망쳐야 하나요?”
상대가 고개를 젓고 양 손바닥을 이시스가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다음 카드를 뽑으라는 제스처였다.
또다시 카드 두 장을 뽑았다.
첫 장, 악수하는 그림이다.
‘힘을 합치라는 말인데··· 누구와?’
그리고 마지막 장.
양을 치는 목자의 그림.
“목자? 목자와 힘을 합치라는 말입니까?”
상대가 검지를 입으로 가져갔다.
침묵하라는 얘기.
그의 입에서 천둥과도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시스, 너를 아낀다. 내 말대로 하면 살 것이고 아니라면 너는 죽을 것이다. 명심해라, 너의 실패는 모두가 짊어질 것이니.”
후우웅···
“허억! 허어억···.”
이시스가 가쁜 숨을 내쉬며 현실로 돌아왔다.
너무도 생생했다.
탁자에는 조금 전까지의 일이 거짓이 아니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카드와 주사위가 어질러져 있었다.
그녀가 목자가 그려진 카드를 들어 올렸다.
“목자··· 목자를 찾아야 해. 아니면··· 모두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