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94화
동부 대륙의 작은 도시.
꽃 같은 기루(妓樓)가 주르륵 늘어서 있었고 다관(茶館)과 객잔이 여행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 중, 한 객잔에 도롱이를 걸치고 삿갓을 뒤집어쓴 자가 나타났다. 해진 무복(武服)이 평소에 수련을 열심히 하는 자이거나 떠돌이의 궁핍한 삶을 사는 자겠거니 짐작하게 했다.
몇 해째 이 객잔에서 점소이를 하는 방옥은 그에게 별 기대 없이 다가갔다. 이런 자들은 시켜도 국수 하나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주문은···.”
“국수.”
‘역시···.’
주문을 하던 자가 돌아서는 방옥을 다시 붙잡았다.
“오리고기··· 는 비싸겠지?”
“비쌉니다.”
“국수만.”
자신의 짐작 중 궁핍한 삶을 사는 자라는 짐작은 맞아떨어졌다.
이자의 행동에 객잔 안에 있는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됐다. 그러다 다시 관심을 잃고 뿔뿔이 흩어지는 시선들.
이 가난한 떠돌이는 송하린이었다.
추격해오는 다른 전갈 패거리들을 피해 달아나 다른 도시까지 건너왔다. 그 사이에 민가에서 도롱이와 삿갓을 훔쳤고, 덤으로 아낙네의 속옷도 훔쳤다.
무복은 적당한 무관의 담장을 넘어 빨랫줄에 걸린 것을 훔쳐 입었다.
‘운이 좋아···.’
누군가의 물건을 도둑질한 게 자랑도 아니고, 행운으로 취급받을 일도 아니었지만 송하린의 과거 모습을 생각하면 충분히 일상 취급을 받아 마땅했다.
그녀는 동부 대륙에서 알아주는 도둑과 동행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꽤 오랜 기간.
‘먹고 싶다··· 오리 고기···.’
“국수 나왔습니다.”
“감사하외다.”
긴 젓가락을 들고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국수를 들여다보는 송하린. 장국에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삿갓에 숨겨진 순진한 눈망울.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는 성향 덕에 새하얀 피부.
“음··· 미의 극한이구려.”
스칸다에 돌아온 것이 믿기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이고 히죽거렸다. 그녀는 흐르는 별의 세계 스칸다를 사랑했다. 대륙을 질타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까먹었다.”
기억에 오래 담아두지 않는 그녀다.
잘 떠오르지 않았다.
‘힘은 돌아오고 있는데··· 이상하단 말이지.’
스칸다를 활보할 당시의 힘이 돌아오고 있다.
아직 본래 힘의 3할도 채 돌아오지 않았지만, 꾸준히 돌아오고 있었다.
‘이 시기에 스칸다라···.’
서점을 지나치다 열린 결말로 끝난 소설의 후속편을 발견한 기분이다. 스칸다는 그녀에게 있어 그러했다. 찝찝하게 끝이 났고 그건 스칸다에서 쓰여지던 그녀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다.
‘맛있겠다.’
골치 아픈 생각은 언제나 뒤로 미룬다.
지금은 저기 잘 생긴 미공자가 잡아 뜯고 있는 오리고기로 시선이 갔다.
그녀도 모르게 속마음이 말로 나왔다.
“남겨라, 남겨. 제발 남겨.”
힐끗-
미공자와 송하린의 눈이 마주쳤다.
히죽 웃는 남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미모에 그녀가 반한 줄 아는 것 같다.
남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송하린에게 얘기했다.
“이런, 마침 식사가 심심하던 차인데··· 합석해도 괜찮겠소?”
“오리고기가 좀 많아 보이는구려.”
“아, 그렇지. 함께 드시겠소?”
“얼른 앉으시오. 식겠소이다.”
“하하, 여인답지 않은 말투군.”
옥으로 만들어진 귀걸이를 한 공자였다.
송하린은 남자가 자신의 식탁으로 합석하자마자 남은 다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우걱우걱 말 없이 고기만 뜯는 송하린을 본 남자는 빙긋 웃었다. 기분 나쁜 웃음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남자의 웃음이 어떤 느낌을 풍겨도 상관하지 않았다.
눈 앞의 음식에 집중했다.
서로 말 없이 음식에 집중하다 송하린이 국물을 후르릅 마시고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서로 소개도 하지 않았구려. 본녀는··· 음, 모르는 게 낫겠소이다.”
“그게 무슨 말이요?”
“본녀가 그대의 이름을 묻는 것이오.”
“나만 이름을 밝히라는 거요?”
“싫으면 말던가.”
“팽모요. 나도 이름은 밝히지 않겠소.”
“팽가였군. 어쩐지 도(刀)를 쓴다 했소.”
송하린이 남자의 옆자리에 놓인 포대기에 턱짓했다.
남자의 눈이 싸늘하게 변했다.
“알고 있었소?”
“검 아니면 도겠지. 찍은 거요.”
“···재밌구려. 도를 쓰시오?”
“그건 비밀이오. 여인에게 물어선 안되는 세 가지 질문이지. 나이, 몸무게, 도를 쓰는지.”
“그런 게 어딨소?”
“여기 있지. 마저 드시오.”
사내의 말투인지 여인의 말투인지 헷갈리는 송하린의 말투에 팽모는 다시 한 번 한숨쉬었다.
그때, 이야기를 파는 매화자가 둘이 있는 탁자에 다가왔다.
“이오란의 이야기가 있소. 사시겠소?”
“아니···.”
“사겠소. 자, 얼른 내시오.”
“내가?”
“그럼 여기 팽모 말고 누가 있소이까?”
“당신은··· 하··· 얼마요?”
“동 세문이요.”
“드럽게 비싸군. 여깄소.”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야기꾼이 동전을 받아들고 이를 들어내며 웃었다.
“히히··· 이오란에 새로운 모험가가 탄생했소.”
“그게 뭔 대수라고?”
“놀랍게도, 실력이 대단하오. 무려 기초 평가가 끝나자마자 금 등급을 받았다고 하더이다.”
“뭐? 그럴 수가···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금 등급이라니.”
“알려진 게 많이 없소. 다만··· 막대한 신성력을 지녔다고 하더이다. 혼자서 균열을 닫았다고 하던데. 이건 확실치 않소.”
“뭐, 뭣? 균열을 혼자 닫아?”
송하린이 삿갓 밑으로 빙긋이 웃었다.
올빼미의 이야기다.
“후후··· 대단해··· 대단하외다.”
“왜 그러시오, 무섭게?”
“아니오, 아무튼··· 식사나 마저···.”
쾅-!
문 부서지는 소리.
객잔의 문이 있던 자리로 바람이 휭하고 불어왔다.
입구에는 거대한 체구의 흉신악살의 얼굴을 한 남자가 수하들과 함께 서 있었다.
두두두···
점소이 방옥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 이게 무슨? 누구십니까?”
“알 거 없다. 여기 파락호처럼 생긴··· 저깄군.”
“···철곤지마(鐵棍之魔). 여기까지 쫓아왔나?”
“내 형제를 죽인 놈이 하는 말 치고는 식상하군.”
"나쁜 짓은 적당히 했어야지."
손님들이 우르르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했다.
철곤지마로 보이는 남자가 입구를 막고 있는 수하들에게 말했다.
“한 놈도 내보내지 마라. 다 죽일 것이다.”
“사, 살려주세요! 저희는 그냥 식사를 하러···.”
“싫어.”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철곤지마.
우락부락한 근육과 더불어 체구가 거대했다.
송하린이 짐작하기로 마두인 것 같았다.
물론 세월이 지났기에 철곤지마는 그녀가 모르는 이름이다.
후르릅···
그녀가 옆에서 덜덜 떨고 있는 매화자에게 물었다.
“저자가 누구요?”
“빌어먹을··· 자린 강 북부에서 악명을 떨치는 마두요. 철곤을 쓰는데 듣기로는 아녀자를 노리개로 삼는 것으로 모자라 고문한다는 소문이 있소.”
“거 참 마두놈들은 소문이 하나같이 그 모양인지, 참신한 인재 없나? 근데, 이곳엔 왜 온 거고?”
“팽위립이 저 마두의 사형제를 죽였소. 아마 그 앙갚음을 하려고 온 모양이오. 하필 우리는 그 장소에 있는 거고.”
“왜 하필 본녀가 식사하는 장소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군.”
팽위립이 포대기에서 섬광이 번뜩이는 도를 꺼내들었다.
“팽가의 사내는 물러서지 않는다! 덤벼라!”
송하린이 이마를 짚었다.
그와 동시에 철곤지마의 수하들이 팽위립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챙-!
서걱-!
“크아악!”
“으악!”
팽위립은 나름 선전했지만, 상대의 수가 워낙 많았다.
패도적인 도법의 특성상 기의 소모가 컸다.
특히 팽위립의 경지가 높지 않은 건지 싸움이 지속될수록 자잘한 상처가 늘어갔다.
“이익··· 비겁하게! 직접 덤벼라!”
“싫은데?”
이대로라면 팽위립은 철곤지마와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이미 시커먼 피가 바닥을 적시는 게 억지로 힘을 운용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리 값은 해야겠구려.”
“네?”
옆에 있던 매화자가 송하린의 말에 잠시 고개를 돌렸다.
탕-!
“···뭐냐? 너부터 죽고 싶은 거냐?”
탁자를 치며 일어난 송하린에게 철곤지마가 물었다.
그런 그에게 송하린은 삿갓을 한쪽으로 벗으며 웃어주었다.
“이보게 점소이! 이 객잔에서 가장 싼 물건이 무엇인가?”
“그, 그건 왜···.”
“본녀가 직접 손을 쓰면 객잔이 박살날 것이외다. 변상할 돈이 수중에 없소.”
“저, 젓가락입니다.”
“좀 쓰겠소이다.”
송하린이 수저통에서 젓가락을 우르르 쏟아내 손에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죄를 묻겠다. 본녀의 식사를 방해하여 삼대 영양소의 균형을 깨트린 죄, 괜히 내 일행만 건드려 남겨진 나를 뻘쭘하게 만든 죄, 힘을 쓰게 만들어 근손실을 유발한 죄.”
“저년이 지금 뭐라는 거야?”
“죄가 무거워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나, 당장은 소란을 일으키면 곤란해지니 적당히 처분해주겠다.”
송하린이 말을 마치자 마자 젓가락을 든 손을 훅- 하고 털었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비명이 쏟아졌다.
퓩-! 퓨퓨퓩-!
“으, 으아악!”
“아아악!”
철곤지마의 수하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들의 몸에는 하나 같이 젓가락이 꽂혀있었다.
“세, 세상에···.”
“이게 무슨······.”
한쪽으로 물러나 있던 군중들에게서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려왔다. 그들에게는 눈으로도 보이지 않았던 수법이다.
“당가? 아니··· 뭐하는 년이냐? 처음 보는 년인데.”
“당가가 아직도 남아있나? 재밌구려.”
팽위립이 숨을 헐떡이면서 송하린에게 얘기했다.
“조, 조심하시오··· 하아··· 철곤지마는 강북의 마두요··· 하아···.”
“응? 나랑 상관 없는 일 아니요? 저자는 그대 몫이니.”
“···장난하지 마시오. 그 정도 힘을 가졌으면서···.”
“나는 협객이 아니외다. 오리고기 값을 한 것 뿐이오. 마두들은 끈질겨서 저놈을 죽이면 이번엔 나를 쫓아올 것이 분명하외다. 맞지?.”
철곤지마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크하하! 맞지만 틀렸다! 이 자리에서 두 년놈들 모두 죽을 것이다!”
쿵-!
철곤지마가 거대한 철곤을 들고 제자리에서 붕붕 휘둘렀다.
훙- 훙-
막대한 경력이 그의 주변으로 휘몰아쳤다.
“꽤 센데. 맨 손으론 오래 걸리겠어.”
송하린의 말에 팽위립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외쳤다.
“어차피 한 배를 탄 거 아니오! 도와주시오!”
“귀찮은 일은 질색인데···.”
“더 먹고 싶은 것 없소? 내 대접하리다!”
“···돼지고기 숙주 볶음.”
“알겠소!”
“소고기도 되나?”
“이를 말이오!”
송하린이 호탕하게 웃었다.
“협을 아는 형제군! 이로써 영양소의 균형은 맞춰졌다! 아, 그리고 미안한데 그 도(刀) 좀 빌려주시오.”
팽위립이 얼굴을 찡그리더니 송하린에게 도를 던졌다.
훙-
한차례 도를 휘둘러 본 송하린이 입맛을 다셨다.
“손에 안 맞는데. 팽씨.”
“팽위립이오.”
“객잔의 변상도 가능한가?”
“얼마든지.”
“그럼. 손을 쓰겠다.”
송하린이 힘을 끌어올렸다.
과거, 송하린의 이름을 스칸다에 널리 알린 힘.
고오오···
그녀 특유의 경력이 무복을 부풀렸다.
파직··· 파지직···
“죽어라!”
철곤지마가 기를 잔뜩 실은 곤으로 송하린의 머리를 노렸다. 적중하면 한방에 머리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송하린의 도가 더 빨랐다.
콰아아아-!
콰아아아아앙!
벽력성을 토해내며 휘둘러진 도는 팽위립의 눈을 부릅뜨게 만들었다.
“저게 뭐···.”
“꺼··· 꺼어······.”
철곤과 철곤지마, 그리고 객잔의 입구가 터져나갔다.
경기에 휩쓸린 사람이 흔적도 남지 않고 터져 나가는 도법.
팽위립이 생전 처음 보는 도법이었다.
···
며칠 뒤, 객잔에 썩은 내를 풍기는 거지가 방문했다.
그는 점소이를 붙잡아 물었다.
“확실하게 답해라. 중요한 일이다.”
점소이 방옥은 거지의 흉악한 기세에 덜덜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흑발, 미인에다 식탐이 많은 여인이 이곳에 왔다고 들었다. 맞나?”
“예. 마, 맞습니다요.”
“도를 휘두를 때 벽력성이 들리고 검고 흉악한 경기가 인다. 맞는가?”
“맞습니다.”
“이런··· 말도, ···말도 안돼.”
이번엔 거지가 덜덜 떨었다.
방옥은 고개를 갸웃했다.
거지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돌아갔다.
“그녀가··· 돌아왔다. 맹에 알려야 해···.”
송하린이 지녔던 별호들.
알려진 것과 숨겨진 것들이 있다.
대부분이 흉악하기 그지 없는 별호들이었지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하나다.
일도무적(一刀無敵) 송하린.
50년이 지나 스칸다에 돌아왔다.
동부는 그녀를 반기지 않았다.
****
시작은 작은 의문.
화젯거리들이 돌고 도는 디스토피아 커뮤니티.
아마도 스칸다에 던져진 파문을 파도로 바꿔버린 건 이곳에서 오고 간 몇 가지 얘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 올빼미 그대로 성기사 해도 되지 않나?]
뿌뿌뿡좌와 병창이는 못말려를 누를 희대의 팔라딘이 탄생할 거 같은데; 힐인데요? 딜이었습니다!
- 어허! 교황이 되실 분이다! 어찌 함부로 검을 놀리겠느냐?
- 교황은 무슨 ㅋㅋ 스칸다에서 사제회만큼 폐쇄적인 집단이 어딨다고. 글고 걔네 엄청 무서움;
- 들꽃 성기사단 들어설 때도 몇 명이 죽어나갔는데; 암살이고 고문이고 가리지 않는다고 하던데
- 입 닫고, 바스카리 가 본 사람? 도시 전경 죽이던데;
- 치안률 100%에 수렴.
- 헐; 그 정도임?
- 범죄를 저지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짐
- 강제로 착해지는 구나···
[제목: 원탁이랑 맹이 아직도 있구나;]
근데 걔네는 100년 지나도 무탈할 거 같음. 글고 보면 송하린이랑 최별이 스칸다 떨어진 것도 개 코메디긴 하다 ㅋㅋ
- 둘다 맹이랑 원탁이었으니까;
- ㄴㄴ 송하린은 정확히 따지면 맹은 아니었음
- 글고 송하린 맹 쌩까고 패악질 부린 게 얼마나 많은데; 오히려 맹의 안티테제지 ㅋㅋ
- 쉿! 그분들 얘기하면 안 된다. 특히 송하린 쪽 그분들···
[제목: 현 시점 올빼미 주목해야 할 점]
정리해 봐따, 마음에 안드는 점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럼 니가 쓰던가.
1. 올빼미의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 이건 능력치 상승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
2. 장비가 존나 구리다. 구려도 너무 구려 너구리 쇠똥구리다. 스칸다에는 세 가지 빨이 존재한다. 그 중 템빨을 전혀 받지 못한다.
3. 스킬이 거의 없다. 무슨 치유랑 축복이랑 정화. 사제들 기본 스킬이다. 물론 올빼미 신성력으로 봤을 때 효과는 기깔나겠지만 암튼 스킬빨을 받지 못한다.
4. 임무가 중요한 상황이다. 사실 스칸다 유저들은 저렙 때부터 쌓아온 인맥을 바탕으로 큰 임무들을 함께 수행했다. 근데 금 등급 이상부터 할 만한 임무들에 같이 갈 인원이 없다. 뚱냥이랑 호프가 호프를 마신다? 타이어 매고 운동장 뛸 일 있냐? 암튼, 애매한 상황이다.
- 정리 잘했누. 혹시 님 정리해고 당하심?
- 회사 다닌 적 없다.
- 그건 또 그것대로 슬픈데ㅋㅋ
- 스칸다 장비빨 크긴 하지; 특히 대부분 귀속이니까
여기까지는 평범한 대화들이다.
늘상 올빼미의 방송을 보던 사람들과 스칸다라는 과거의 향수에 젖은 사람들의 대화.
그런데, 누군가 첫 번째 의문을 던졌다.
[제목: 야, 이거 좀 이상한데?]
스칸다 섭종해도 커뮤니티는 아직도 남아있잖아? 이거 원래 핸폰으로 구동 안 됐는데 지금 접속해보니까 된다? 내가 뭐 했게?
- ㅅ발려나 올빼미한테 러브레터 보냈지?
- 정답. 보내졌음ㅋㅋㅋㅋ
- 그게 무슨 등신 같은 생각이야! 나도 당장 간다 ㅋㅋ
- 이거 올빼미 사연 읽어주는 남자 됐자너ㅋ
[제목: 오오, 야! 야! 올빼미 방송 보는데 내 쪽지 나왔음 ㅋㅋ]
신기하다. 어떻게 내 쪽지가 저기까지 가지?
- 삼매초 6학년 2반 파이팅이 너였냐?
- 응ㅋㅋㅋ
- 커엽네; 가서 구몬 숙제해라. 종아리 맞기 전에
- 힝 ㅠㅠ 형아들 나빠!
이 사안을 가볍게 여긴 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성진에게 다른 쪽지를 남긴 사람도 가벼운 마음이었다. 분명 그랬다.
****
갱은 성진을 조용한 장소로 불렀다.
시가를 뻑뻑 피워대던 그가 성진에게 물었다.
“앞으로는 뭘 할 생각이지?”
“아직 계획해둔 일은 없습니다.”
“그래, 뭐든 할 수 있을 거야. 희소성이 높으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 신성력을 가진 이가 모험을 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가 없거든.”
“······.”
“초모··· 혹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나?”
성진이 이야기를 듣다 갑자기 전환된 화제에 갱을 쳐다봤다.
“당연하겠지. 내가 이방인이라면 이런 망해가는 세계보다는 집이 그리울 테니까.”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 집이 더 난장판이거든요
- 사실 집에 가기 싫어요 ㅠㅠ
갱이 성진의 눈을 보고 말했다.
“지금 자네에게 많은 얘기를 해줄 수가 없어. 하지만 이것 하나는 말해줄 수 있겠군.”
“···어떤?”
“높은 곳에 올라와. 그러면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거야. 아마··· 음··· 아무튼 그래.”
“협회는 뭔가 알고 있는 겁니까?”
“우리도 짐작만 할 뿐이야. 아무튼, 내 얘기는 끝! 잘 해보라고!”
갱이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성진이 골드 버튼을 매만지며 시나리오를 확인했다.
===========================
[chapter 6-3. 뒤죽박죽]
「스칸다에서의 모험가 생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금 등급에 도달한 당신의 실력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여러 골치 아픈 문제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이 사태의 원흉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누구를 만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꽃의 사제와 갱의 말을 종합해 봤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강해지는 것 뿐입니다. 모험가 등급 비취에 도달하거나 고결함 능력치를 30까지 달성하세요.」
* 이 임무는 메인 시나리오입니다.
* 에어리어를 개방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내야 하는 임무입니다.
===========================
[능력치 : 고결함이 개방됩니다.]
“고결함?”
상태창은 잠겨 있었다.
능력치의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얘기.
그런데, 새로 얻은 고결함 만큼은 확인이 가능했다.
[고결함 : 5]
‘무슨 능력이지?’
수치가 너무 낮아 어떤 능력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수수께끼 같은 세계다.
답답한 마음을 느낀 성진은 다른 능력부터 확인했다.
[이미지 : 정화]와 [이미지 : 축복]
머릿속에 어떤 능력인지가 그려졌다.
정화는 대상에게 걸린 부정한 것들을 태워버리는 능력이고 축복은 대상을 강화하는 능력이다. 축복의 경우, 전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기에 더 관심이 갔다.
- 고결함은 뭐냐?
- 저거 사제들이 교단 들어가면 생성되는 거였던가?
- 능력치 높아질수록 후광도 생기고 뻔쩍뻔쩍함 말도 막 성스럽게 들리고
- 뭔 개 같은 능력치다냨ㅋㅋ
- 스킬에도 영향 줌. 근데 높은 유저 거의 없었을걸.
스칸다에 들어온 이후, 채팅을 보는 빈도가 늘어났다.
자신에게는 미지에 가까운 세계가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한 세계였으니 정보를 얻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고결함이 그런 능력이었구나.’
마음속으로만 감사를 표한 성진이 자리를 벗어났다. 이날은 무엇을 하던 관심이 집중되었기에, 숙소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직 신출내기 모험가인 성진에게 지명으로 이루어지는 위탁 임무가 있을리 없으니 성진은 자유 임무를 훑어보았다.
‘다 애매한 것들이네.’
협회 포인트를 적게 주거나 많이 주더라도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임무들이 대다수였다. 마음에 차는 임무가 없었다.
성진의 뒤로 안내원이 다가왔다.
“매일 임무가 달라지니 마음에 안 드시면 다음 날 다시 와보세요.”
“알겠습니다.”
“커뮤니티 확인은 하고 계신가요?”
일전에 첫 임무를 함께 다녀온 일행이 말했던 커뮤니티. 성진은 아직 커뮤니티 확인을 하지 않았다.
“아직입니다.”
“커뮤니티를 통해 임무를 제안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니 확인해 보는 게 어떠세요?”
“감사합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원래 진작 드렸어야 하는 건데··· 커뮤니티를 이용하실 수 있는 장치에요.”
회중시계처럼 생긴 무언가.
작동하는 방식이 스마트폰과 닮아 있었다.
- 저거 누구였더라 여튼 유저랑 같이 만든 거였는데
- ㅇㅇ 디자인 그대로네 ㅋㅋ 하긴 업데이트가 안 되겠지
- 저거 디게 편한데. 거의 머 핸드폰이지
- 공학자들은 스킬 보조 받으면 저런거 뚝딱뚝딱 하더라
- 공돌이 갈아 넣어서 만든 물건···
커뮤니티에 접속해서 모험가 코드를 입력하자 초모라는 이름이 화면에 떠올랐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뭐지?’
[제목: 초모, D+ 임무에 인원이 빕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목: 임무는 순간이지만, 인맥은 영원하다. 저희와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제목: 동료가 되어라. 우리는···]
거의 대부분이 성진을 동료로 만들고 싶어하는 쪽지들이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성진보다 모험가 등급이 낮았다.
- 무수한 악수의 요청 ㄷㄷ
- 힐러님! 제발 와 주세요 ㅠㅠ
- 저거 다 천민 새끼들이다. 갈굼 받아서 파티 대표해서 보낸 거 ㅋㅋ 어케 아냐고? 내가 그랬어ㅠ
- 파티 골라가겠누 ㄷㄷ
‘갈만한데가없따’님이 1,000원 후원하셨습니다!
[인원 많을수록 포인트 나눠먹잖아; 진짜 솔플 해야하나;]
- 걍 C 이상 임무 솔플해서 포인트 벌어야 할 듯
- 솔로로 몇 개 깨면 비취 금방 갈 듯. 물론 깬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 깸
귀찮은 쪽지들을 지우고 지우다보니 이상한 쪽지들이 등장했다.
[제목: 삼매초 친구들 보아라]
삼매초 6학년 2반 파이팅!
‘이게 뭐야?’
이 쪽지를 읽고 찡그린 성진의 얼굴을 본 시청자들이 박장대소했다.
- 삼매초 어딘지 모르겠지만 파이팅이다!
- 와 ㅋㅋ 커뮤니티 진짜 작동하네
- 나도 보내야지! 나도! 나도!
- 무료 후원이자너~
[제목: 야 맞짱까자]
니가 그렇게 대단하냐? 맞짱 뜨자
내 여친이 너 좋댄다. 너 쌈 좀 하냐?
성진은 서둘러 커뮤니티의 기능을 점검했다.
쪽지 기능 중에 등급 별로 필터링을 해주는 기능이 있었다.
금 등급 이상으로 필터를 설정하자, 쪽지 중 거의 대부분이 솎아졌다.
- 얔ㅋㅋㅋ 핫바리들은 보내지 마라 어쨌든 걸러지니깤ㅋㅋ
- 초딩 둘 때문에 우리까지 걸러지잖아!
- 금 이상 모험가 얼마나 된다고 ㅠㅠ
- 근데 쟤네는 왜 보낸 거야?
걸러진 쪽지들을 확인하는데 확연히 눈에 띄는 쪽지가 있었다. 발신인의 등급이 표시되었는데 대부분이 금 등급인 다른 발신인들과 다른 등급이었다.
흑단백석(黑蛋白石)
블랙 오팔을 말하는 것 같은데 비취나 호박 보다 높은 등급으로 보였다.
- 와; 흑단백석이면 ㄷㄷ
-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이네; 갱한테 말해도 누군지 알 듯.
- 닉네임 뭐지? 짤려서 안 보이네.
[제목: 반갑습니다. 올빼미 님. 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시청자들은 흑단백석 등급의 시청자가 보낸 쪽지의 내용도 충격적이었지만, 그의 닉네임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발신인의 닉네임은 ‘빤쓰까지다벗겨요’였다.
- 빤쓰좌? 미친 내가 아는 그 빤쓰좌?
- 그 동부 출신 도적 고수?
- 송하린이랑 붙어 다니던 패거리 중에 하나잖아?
- 무영신투? 걔잖아!
무영신투라 불리는 사람의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 제 수집품을 여러 루트로 나눠 놓았는데 혹시 아직 남아 있나 궁금해서요. 확인하시고 만일 남아 있다면··· 아니 남아 있을 리가 없겠지만; 아무튼, 보관한 곳은···
성진에게 이상한 쪽지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