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92화
드르륵···
일행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쩐지 음침한 기분이 드는 상대라 병장기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성진이 한 손을 살짝 올려 괜찮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들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왔지만, 고개를 한번 끄덕여주는 것으로 걱정을 사라지게 했다.
“한참 식사 중이신데 죄송합니다. 자리를 방해했나요?”
“그렇긴 한데, 괜찮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나요?”
“예, 한데··· 조심스러운 이야기라 따로 밖에서 나누고 싶군요.”
“그럼 다음에···.”
“안됩니다. 지금이어야 합니다.”
성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가면을 썼기에 아무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대가 경우 없이 행동한다고 생각해서 인상을 찡그렸다.
“저희의 사정을 조금 헤아려주실 순 없으신지?”
“하아··· 나가죠. 호프, 금방 올게요.”
“카, 칼 맞는 거 아니냥! 스칸다에서 단둘이 보자는 건 칼로 찌를 때랑 고백한다고 하고 칼로 찌를 때밖에 없다냥!”
- 뭐야 그게! 지옥의 2지 선다 에반데 ㅋㅋ
- (볼 발그레) 널 칼로 찌를 거야
- 떼껄룩이 많이 험난한 삶을 살아 왔누ㅎ
후드를 쓴 자들이라 눈이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성진은 그들을 따라 이동했다.
“어디로 들어가는 건 부담스러우실 거고··· 길에서 얘기를 나누는 건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사제가 말한 길은 쭉 뻗지 않고 이리저리 꺾여있었다.
도중에 습격을 받더라도 빠져나가기 용이한 골목이었다. 사제는 이 길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드디어 이야기를 꺼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성국 바스카리의 사제회, 그중에서도 불의 교단에 몸담고 있습니다.”
“초모입니다.”
“저는 편하게 사제님이라고 해주십시오. 저는 형제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편하게와 사제님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일단 이름을 밝히기 싫다는 뜻이었고 이름을 알게 되면 불편한 관계가 될 것이라는 암시. 하지만, 성진은 늙은 사제의 이름이 궁금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안도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스칸다 곳곳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최초로 제대로 된 임무를 맡기 전부터 균열을 닫은 모험가가 있다고.”
“어떻게 아셨습니까? 오늘 있었던 일이었는데.”
“그 균열은 이미 관측된 상황이었습니다. 연락망이 꼬여 협회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지만, 며칠 내로 사제회에서 사람을 보내기로 했죠. 물론, 형제님께서 그럴 이유를 사라지게 했지만.”
“협회에서 들으신 거군요.”
“예, 알아야 했으니까요. 비록 최하급 균열이긴 했지만 그래도 균열은 균열.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균열을 닫은 이가 누구인지를.”
협회로서도 균열을 누가 닫았는지 정도는 말해야 했으리라. 균열은 마력 혹은 신성력으로 닫는다. 문제는 그 마력과 신성력이 아주 아주 높아야 했다.
“형제님은 마법사가 아니시죠?”
“예.”
“신관이시군요. 맞습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따로 믿는 신은 없습니다.”
“······그건 예상외군요. 이방인이라 들었는데 고향의 신을 믿으시는 건 아닙니까?”
“아닙니다. 왜 자꾸 신을 믿는지를 물어보시는 거죠?”
“중요한 문제입니다. 막대한 신성력이 어디서 기인한 건지를 알아야 하니까.”
남자가 이야기를 차분하게 끌어오다가 신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조급한 기색을 보였다.
‘왜 이러는 거지?’
상대도 성진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흐흠··· 죄송합니다. 조금 흥분했군요. 사실 사연이 있습니다.”
“사연?”
“성국 바스카리의 사제회는 유서 깊은 단체입니다. 사실상 국가를 지배하는 의회나 마찬가지죠. 일개 종교인들에게 왜 그만한 힘이 있겠습니까?”
“···신성력이군요.”
“맞습니다. 우리에겐 마르지 않는 신성력이 있었습니다, 쏟아내면 다시 채워지는 신성력이. 우리는 힘을 교환했습니다. 신성력을 권력으로··· 세력으로.”
듣자 하니 신성력을 지닌 이들은 희귀하다고 했다.
특히 신관 같은 경우에는 모험가를 하는 경우가 드물어 모험가 파티의 대부분이 치유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일행이 얘기했었다.
“그런데요?”
“형제님과 진솔한 관계가 되고 싶으니, 저희가 먼저 터놓고 얘기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신성력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50년 전 영웅들이 사라지는 그 순간부터 꾸준히 쇠락했습니다.”
- 헐; 힐러 품귀 현상 심해졌다는 거 아님?
- 도적은 어떡해! 임무에 가지 못하게 될 거라고!
- 사제: 얘 도적아, 너 죽어버리렴?
- 넵더적
“신들은 우리에게 관심을 끊었습니다. 스칸다는 신들이 버린 땅입니다.”
“고작 신성력이 끊겼다고요?”
“신은 모든 것이자 하나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버렸다는 건 인간에게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어딘가 뒤틀려있는 사람이다.
성진은 함께할 마음도 없었지만, 정보를 더 얻고 싶었다.
“제가 어떻게 해줬으면 싶으신 겁니까?”
“불의 교단에 몸담으세요. 신성력이 불의 신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공언하세요.”
“······제정신입니까?”
- ㅋㅋ아직 올빼미 맛 덜 봤구나
- 시큼털털하게 처맞고 싶나
- 마! 이거 펜리르 뚜까 패서 뺏은 거구만 어딜 ㅋ
- 올빼미도 뻔뻔함에 당황한 듯 ㅋㅋ
사제의 양옆에 서 있던 남자 둘이 성진을 포위했다.
압박감을 주려는 수작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전혀 압박이 되지 않았다.
성진은 오히려 기세를 일으켜 그들을 압박했다.
“크윽···.”
“무, 무슨···.”
다급해진 사제가 성진에게 다른 제안을 했다.
“아, 알겠습니다! 바라시는 게 있으시군요. 무엇을 원하십니까?”
“원하는 것이라···.”
원하는 것은 하나다.
세종시의 시민들을 이 세계에서 돌려받아 돌아가는 것이다.
“이방인들을 돌려받고 싶은데, 가능합니까?”
“이방인들을······.”
만일 이 제안을 수락하면 다시 생각해 볼 생각이다.
불의 교단에 몸을 담는 것만으로 시민들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불의 사제가 답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왜죠?”
“이방인들에 대한 적대감은 뿌리 깊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편을 든다면 자칫 분쟁으로 번질 우려가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위해 싸우지는 않겠다는 거군요.”
“일의 불가능을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틀렸다.
이 사제는 자신과의 교섭에서 어떤 희망적인 면도 보여주지 못했다.
“대화는 여기까지 하죠. 동료들이 기다리겠어요.”
“···대답은 거절입니까?”
“예. 애초에 신관이 아니니까요.”
“후회하실 겁니다. 스칸다는 이방인에게 호락호락한 세계가 아닙니다.”
“후회라면 얼마든지. 들어가 보겠습니다.”
성진이 몸을 돌려 걸어갔다.
불의 사제는 나서려는 양옆의 부하들을 제지했다.
이기지 못한다.
맹수 앞에 서 있는 기분을 방금까지도 느꼈으니 이들은 절대로 초모를 이기지 못한다.
“얻은 게 없군요. 아니, 있으려나?”
“사제님.”
“가시죠. 초모는 경계할만한 인물입니다. 정보를 차근차근 모으도록 하죠. 일단 오늘은 그가 만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충분합니다.”
사제의 후드에 가려진 눈이 빛났다.
“곧, 다시 보게 될 거다. 이방인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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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받는다 저놈들ㅋㅋ
- 주는 것 없이 받아 가려고만 하네 ㅉㅉ
- 등가 교환 모르나! 인체 연성 실패하겠네 쯧
- 올빼미님 욕탐 주시나요? 지금 욕해도 되나요?
- 안됩니다
- 그럼 할 말 없는뎅··· 저는 발언하지 않겠읍니다
성진은 사제회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됐다.
특히 불의 교단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번듯한 말로 뭐든 해줄 것처럼 말했지만, 자신을 이용하려고만 했다.
‘신관이 될 것도 아닌데 뭐.’
“형제님.”
들려온 것은 아까의 불의 사제와 다른 목소리.
성진이 고개를 돌리자 마찬가지로 전례복을 입은 사제가 서 있었다.
하지만 같은 느낌을 받지 않았다.
전례복은 해질 대로 헤져 살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지경이었고 사제의 얼굴은 핼쑥했다.
- 주, 죽음의 사제!
- 암흑 사제가 분명하다!
- 일단 선빵부터!
특이한 점은, 환갑 정도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고 불의 교단과는 달리 후드를 뒤집어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구십니까?”
“바스카리 꽃의 교단입니다. 잠시 인사를 드려도 될까요?”
- 꽃의 교단?
- 어디서 들어봤는뎅. 접은 지가 오래돼서 까묵었다
그에게서 받은 인상이 형편없었다면 곧장 자리를 떴겠지만, 성진은 앞에 있는 이가 마음에 들었다.
“예. 잠시라면.”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신성력을 가진 이방인이 나타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성진은 다시 그와 함께 걸었다.
“똑같은 제안을 하러 오신 겁니까?”
“똑같은 제안?”
“불의 교단에서 찾아왔습니다. 자신들과 함께하자고.”
“여전히 행동력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형제님들이죠. 그래서 거절하셨습니까?”
“예. 조건이 맞지 않아서.”
“조건이라··· 뭘 제의하고 뭘 원하셨는지 들어봐도 실례가 안 될까요?”
상대의 화법은 조심스러웠다.
성진의 기분을 거스를까 염려하는 듯, 혹은 그의 평상시 대화법이던가. 어느 쪽이든 성진은 그와의 대화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사제회에서는 왜 저를 원하는 겁니까?”
“이런··· 제대로 듣지 못하셨군요. 그 친구가 일을 잘 못 해서 그럴 겁니다. 제가 설명해드리죠.”
“부탁드립니다.”
“바스카리의 사제회는 여러 교단으로 구성된 다신교 의회입니다. 겉으로는 서로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듯하지만··· 방금 만나보셨으면 아시겠지요.”
“예. 전혀 그런 기색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정확하십니다. 다들 권력과 욕망의 늪에 가라앉는 중입니다. 이것은 신성력을 잃게 된 순간부터 더 가속화됐죠.”
남자는 소탈하게 말했다.
자신들의 치부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모든 교단이 그렇습니까?”
“저희는 아닙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아!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으시겠군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근거가 있습니다.”
“······.”
“일단 저희는 힘이 없습니다. 교단의 세력이 다른 교단에 비해 형편없거든요.”
- 사실 우리는 힘이 없어서 약골이라는 걸 자부합니다!
- 전국 약자 자랑 대회 ㅋㅋ
- 밀수들 나가면 우승 확정
- 약자 코스프레인 줄 알았는데 진짜 약했잖아?
“꽃의 교단은 다른 교단과는 성격이 판이합니다. 이득이 될만한 것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왜죠?”
“태생부터 그러했으니까요. 꽃의 교단은 신을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럼?”
“자신을 믿습니다. 사제회에서 인정받은 역사도 50년을 조금 넘겼을 뿐입니다.”
50년.
성진의 귓가에 이 단어가 맴돌았다.
“설마.”
“네. 꽃의 교단은 사제회에서 속한 교단 중 유일하게 이방인이 만든 교단입니다.”
그렇다면 이해가 됐다.
'하지만··· 어째서?'
“50년 동안이나···.”
“네,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지요. 저희가 받은 은혜는 그렇게나 거대했으니까요.”
- 꽃의 교단··· 꽃교··· 들어본 것 같기도···
- 검색하니까 안 나옴. 있었으면 검색하면 나왔겠지
“저는 집창촌에서 쓰레기통을 뒤져 하루를 살아가던 고아였습니다. 그런 저를 거둬 예절을 가르치고 믿음을 가르친 분들이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어쩌면 50년 동안 기다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그들을 다시 보고 고마웠다고 전하기 위해···. 아무튼, 꽃의 교단은 아직 타락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제게 전해졌습니다. 하시던 말씀 계속하시죠.”
“아, 얘기가 다른 곳으로 샜군요. 사제회는 최근 힘을 잃어가고 있고 성국 또한 존망의 갈림길에 섰습니다. 그래서 초모님을 영입하기 위해 애쓰는 겁니다. 아직 신성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교단의 정통성을 상징할 것이니까요.”
“정치적인 목적으로 저를 사용하겠다는 거군요.”
“네. 맞습니다. 의회에서 가지는 힘이 세지면 종국에는 성국을 교단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 다들 필사적이겠지요.”
노인의 눈빛은 평온했다.
성진은 그의 눈을 바라보다 말했다.
“꽃의 교단도 신성력을 잃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우웅···
성진보다 한없이 약한 빛이었지만 연분홍빛의 기운이 노인의 손에 맺혔다.
작지만 아름다운 빛이다.
“하지만 세력이 약하고 지도자가 부재하기에 우리는 의회에서 주류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라는 씨앗을 뿌린 이방인들도 딱히 힘을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떠나기 전 우리에게 남긴 말은 다른 종류였습니다.”
“무슨 말을 남겼습니까?”
“···행복해지라고. 다시 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그러니 스스로를 믿고 행복해지라고 했습니다.”
“······행복해지셨습니까?”
씨익-
노인이 빠진 이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치열이 어긋나 보기 좋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 미소가 너무나 보기 좋았다.
“물론이지요. 행복해지니 다른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 순간부터 검과 갑옷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돌봤습니다.”
“검과··· 갑옷?”
“아, 말씀드리는 걸 깜빡했군요. 우리 교단은 성기사단이 주축이었습니다. 교단의 명칭도 그 때문에 한차례 변경됐습니다.”
“교단의 이전 이름은 무엇입니까?”
“들꽃 성기사단. 다들 우리를 그렇게 불렀습니다.”
채팅창이 갑작스럽게 시끌벅적해졌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시청자들이 서둘러 채팅을 쏟아냈다.
- 미친··· 들꽃 성기사단···
- 들성 미친 미친 미친 미친 미친
- 개소름이다 씨바아아아아랄! 들성이었다니;
의성어가 난무하는 채팅창.
성진은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잠자코 채팅을 더 지켜보았다. 그의 시야에 어떤 사람이 쓴 채팅이 잡혔다.
- 들꽃 성기사단이면 거기잖아. 청록 전신.
- 조병창이랑 차일국이 만든 곳 아님?
- ㅇㅇ 성기사단이었잖아
- 그게 50년이나 살아남았다고?
- 아! 나 저 사람 알아! 이제 기억났어! 그때 꼬마였는데 노인이 됐다고? 어떡해 나 눈물 나 ㅠㅠ
- 어쩐지 들어봤다 했다. 꽃 들어가는 단체가 흔치 않았잖아.
“···제게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이끌어주십시오, 이방인이여. 우리는 세상의 안녕을 원하는 양들입니다. 늑대들에게 유린당하지 않기 위해선 양치기가 필요합니다.”
양들의 목자.
성진이 부산의 종말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일이다.
어렵지만, 가능한 일이다.
이제는 그때보다 더 강해지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세종의 일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그렇기에 선의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가 원하는 것도 들어주십니까?”
“말씀하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경청하겠습니다.”
“이방인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그들을 고통받게 하는 삶에서.”
노인이 눈을 감았다.
고민하는 눈치였기에 성진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노인이 눈을 떴다.
“불가능한 이유가 너무 많습니다. 첫째, 인적 자원이 부족합니다. 스칸다 전역에 퍼진 이방인들의 수는 어마어마합니다. 그들을 찾아 불러들이기엔 우리는 너무나 적습니다.”
“또.”
“둘째, 금전적으로 무리입니다. 이미 합법적으로 노예가 된 이들도 있을 것이고 그들의 권리를 다시 웃돈을 얹어 사 오려면 스칸다의 모든 금을 모아도 부족할 것입니다.”
“또.”
“셋째, 제도부터 잘못됐습니다. 스칸다는 이방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제도들이 가득합니다. 이런 제도들을 교묘히 이용해서 합법적으로 이방인들을 괴롭히는 무리도 있습니다.”
문제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종말을 극복하면 세종시의 사람들을 원래의 세계로 데려갈 수 있을까? 그조차도 확실하지 않다.
얼마나 긴 싸움을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니 더더욱 자신이 이곳에 체류하는 동안만큼은 그 사람들을 웃게 해주고 싶었다.
“모두 극복하기엔 확률이 너무 낮네요.”
“그렇죠?”
“불가능하다는 말을 돌려서 하신 거군요.”
“아닙니다. 확률을 높일 방법이 있습니다.”
확률을 높인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성진은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성국을 손에 넣으면 됩니다. 성국은 스칸다에서 독보적인 존재입니다. 일부 강성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성국의 발언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제회의 거짓된 믿음은 무시할 수 있어도 그들이 믿음을 팔아 얻은 힘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성국을 손에 넣는다? 어떻게?”
“간단합니다. 교황위에 오르시면 됩니다. 이것을 목표로 하시면 확률은 반반이 됩니다.”
“교황이 되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산수는 어려운 게 아닙니다.”
- ㅎㅎ 참 쉽죠?(실제로 한 말)
- 기적의 수학자다! 피타고라스를 아스팔트에 내동댕이쳤어!
- 무릎 탁! 부랄 탁!
- 행복회로가 타오르고 있어! 부, 불이 붙었다고!
- 불의 사제랑 비교되네 ㅋㅋ 일 잘하는 사람 특 일단 해보겠다 함
- 여보게 주인장~ 누런 소가 일을 잘하나 검은 소가 일을 잘하나?
- 둘 다 맛있습니다 존맛탱
성진이 물었다.
“제가 교황이 되는 게 가능한 일입니까?”
“또 불가능한 이유를 나열할까요?”
“아뇨, 이번엔 가능한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노인은 호탕하게 웃었다.
과거에 성기사였다고 하더니 큰 웃음도 잘 어울렸다.
“가능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입니다.”
그의 눈은 믿음으로 가득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당신들과 함께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제 신관이겠군요.”
“우리는 당신을 만나는 이 순간을 50년 동안 기다려왔습니다.”
우우웅···
노인의 양손이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꽃가루가 사라락 날리더니 분홍 화관이 만들어졌다.
노인은 그것을 성진의 머리 위에 씌우고 말을 이었다.
“이것은 들꽃 성기사단 시절부터 줄곧 내려오던 전통입니다. ‘병창이는 못말려’님과 ‘일국이는 너무해’님이 만드신 것이죠.”
채팅창이 오랜만에 듣는 차일국과 조병창의 아이디에 폭소했다. 하지만 성진은 웃지 않았다.
노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원하는 것은 그것뿐입니까?”
“한가지가 더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성진이 가면을 벗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했다.
“행복해지세요.”
노인이 그 얼굴을 보고 마주 웃었다.
이 빠진 치열에서 바람이 새어나왔다.
“또 그 소리시군요. 반드시··· 반드시 그러겠습니다.”
노인이 곱씹어 다짐하고 대답했다.
“···꽃의 추기경이시여.”
스칸다에 숨죽이고 있던 낡은 세력이 일어났다.
성진은 50년 전 영웅들이 남긴 첫 번째 유산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