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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는 종말에 적응했다-87화 (87/222)

# 87

87화

“미네르바의 올빼미여, 이제는 어디로 날아갈 생각인가?”

재성이 나이 든 영감님 흉내를 내며 성진에게 물었다.

“그거, 부엉이 아니야?”

“···알아. 이래 봬도 나도 학습형 모델이야.”

“게을리했군.”

“조용히 해!”

성진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쳤다.

서로 희미한 미소를 한 채로 얘기를 마저 이어갔다.

“진짜로.”

“세종으로 가야지. 다음 종말 거부 장치가 그곳에 있으니까.”

“아쉽다. 대전의 대영웅께서 이렇게 바로 떠나신다니. 정말 명예욕이 없으시군요!”

“명예욕은 무슨··· 박사님이랑 어르신은?”

“올 거야.”

잠시 기다리자, 정수열과 손성일 그리고 양준호를 비롯한 정유리 일행이 찾아왔다.

성진이 떠난다고 하니 다들 아침부터 찾아온 것이다.

손성일과 정수열이 다가와 총기 한 정을 건넸다.

일전에 전투에서 사용한 총과 비슷했다.

“TK-28이라는 총이야. 일전에 자네에게 지급한 것보다 개량된 모델이지. 다루는 게 복잡하기는 한데, 자네라면 금방 적응할 것 같군.”

“주시는 겁니까?”

“그럼. 이런 것밖에 줄 게 없어서 민망하군.”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성진은 소총을 받아 휘릭- 돌려 목에 걸었다.

적당한 무게감이었다.

정수열이 성진에게 말했다.

“세종이라··· 멀지 않은 거리긴 한데···.”

“아시는 게 있습니까?”

“제가 아는 거라고는 이곳보다 먼저 종말이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그 종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곧장 연락이 끊겼다는 것입니다.”

“여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거라는 말이군요.”

“안타깝게도.”

- ㅎㅎ 익숙합니다

- 걱정 마세요. 지독한 곳 전문입니다

- 이 집 종말 잘해요

양준호와 일행이 싱긋 웃으며 다가왔다.

“형,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나도. 고마웠다.”

주인혁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애송이 새끼! 또 운다! 동네 사람들! 여기 주인혁 또 울어요!”

“야! 아직 안 울었어! 이 새끼가?”

손동호도 옆에서 주인혁을 약 올렸다.

“눈물이 많은 남자 주인혁. 이렇게, 이별 앞에 울고 있다.”

“이상한 내레이션 깔지 마. 망할 휴머노이드 새끼들아.”

이렇게 모이면 티격태격하면서도 웃을 일이 가득한 것 같다. 성진도 도시를 떠나며 아쉬웠던 기억이 몇 번 있었지만, 대전만큼 정이 든 도시는 없었다.

“형은 이제 갈게.”

성진의 작별 인사에 정유리가 손을 붙잡았다.

“올빼미. 기다리십시오. 해야 할 일이 남았습니다.”

“해야 할 일?”

“밖으로 나오십시오.”

“밖?”

- 네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땅으로 따나와!

- 털썩! (처맞고 쓰러지는 햄버거)

성진은 정유리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향했다.

그 뒤를 방금 자리를 함께한 일행들이 따랐다.

투둑··· 툭···

뒤에서 양준호가 말했다.

“비는 맨날 오네.”

“그래도 여우비잖아.”

“비란 비는 전부 보는 기분이야.”

“말 그만하고 앞으로 나와서 설래?”

성진이 정유리가 핀 우산을 함께 쓰고 밖으로 걸었다.

작은 화단 앞까지 이동한 성진이 말했다.

“···왜 다 여기 모여있는 거야?”

혜령과 그레이들.

화이트들 중 몇이 나와 있었다.

“얼른 와요, 올빼미. 다들 비 맞으면서 기다렸어요.”

“···알겠습니다.”

일행은 그대로 모여있는 이들의 앞에 섰다.

비는 몇 방울씩 툭툭 떨어지는 게 전부였기에 우산은 치워버렸다.

재성이 그들의 맞은편에서 카메라를 조작했다.

“좀 웃어라, 다들. 아연이가 지하에서 몽둥이 들고 때리러 올라.”

“이 자식이 갑자기 아연이 얘기는 왜 꺼내? 꿀꿀해지게.”

“아무튼, 자 웃자고. 헤벌쭉!”

재성이 카메라를 조작하고 자리로 돌아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찰칵- 찰칵-

연속적으로 셔터 음이 들렸다.

“됐다! 어디 보자···.”

몇 장은 곧장 인화되어 나왔다.

재성이 사진을 차례차례 넘겨 보며 말했다.

“제대로 웃는 새끼들이 없어, 하여튼. 이거 잘 나왔네. 올빼미, 너 해.”

“···나 주려고?”

“그럼, 뭐하러 우리가 이 고생하며 사진을 찍겠어? 조상님들 말씀 하나 틀린 거 없어. 사진이 남는 거야.”

- 님 조상 아니잖아요 ㅋㅋㅋ

- 와씨 나도 깜빡했네. 사람 아니었지

성진이 사진을 받아 들었다.

물기 가득한 세상.

이제는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이 그 안에서 웃고 있었다.

“형, 고마웠어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올빼미.”

“대전은 잊지 않을 거야!”

“그걸 왜 네가 정해? 이건 대전 말도 들어 봐야지.”

시끌벅적해진 사람들 틈새로 정유리가 다가와 또 다른 사진을 건넸다. 일전에 찍은 손동호가 손동원이던 시절의 사진이었다.

“이거 나 주는 거야?”

“우리는 서로를 볼 수 있지만, 올빼미는 그렇지 못합니다.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이것을 줄 것입니다.”

“고마워.”

“우리를 기억해주십시오.”

- 시큰···

- 어라, 어째서··· 눈물이···

성진이 사진 두 장을 코트 품으로 집어넣었다.

“그래. 기억할게.”

아쉬워하는 일행을 뒤로한 채, 성진은 길을 떠났다.

어쩐지,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1시간쯤 길을 갔을까.

- 정유리 왜 안 따라옴?

- 그때 말 못 들었냐?

- ㅇㅇ 똥 싸느라. 왜, 머라 했음?

- 보면 암

기괴할 정도로 거대했던 나무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빨리 썩어가는 모습이, 종말 거부 장치의 영향이 이곳까지 미친 것 같다.

그때, 갑자기 총기에서 뭔가가 떨어져 나왔다.

칩셋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의 소형 드론이었다.

삐-

“TK-28과 정유리의 페어링이 완료되었습니다.”

“···잘 보여? 목소리는 잘 들리고?”

“다면 광학 렌즈의 힘은 위대합니다. 목소리도 아주 잘 들립니다. 평소처럼 좋은 음성입니다.”

정유리는 대전에 남기로 했다.

그녀는 연산 장치 형태의 칩셋을 성진에게 넘겨주었다.

스페어로도 몇 개를 더 받았는데, 어지간한 사물에는 전부 페어링이 가능했다.

쉽게 말해, 고성능 영상 통화나 다름없었다.

TK-28에서 분리된 소형 드론에서 정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면 올빼미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동의합니까?”

“그래. 어느 정도는.”

간략한 설명만을 들었기 때문에 궁금증이 일었다.

성진이 물었다.

“이렇게 접속하면 네 본체는 어떻게 되는 거야?”

“빙의와 유사한 개념입니다. 혹은 유체이탈.”

“···휴머노이드치고 예시가 오컬트 느낌인데.”

성진은 북서쪽을 향해 계속해서 걸었다.

정유리도 주위를 구경하는 것에 여념이 없는지 별다른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 반딧불 하나가 날아다니는 기분인데···

- 내 여고생과 희망찬 여행이! 이게 뭐야아아!

- 젠장! 반딧불이랑은 잘 되고 싶은 맘이 없어!

대전을 벗어나서 국도를 걸었다.

이제는 산소 포화도가 현저히 떨어진 대전.

그간 포식자로 군림해온 대형 몬스터들은 숨 쉬는 것도 힘에 부칠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시비를 걸어오는 몬스터도 없었다.

“이 정도면 본체가 왔어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본체로 올까요?”

“아니.”

“···나도 딱히 본체로 오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 본체로 오고 싶었네 ㅋㅋ

- 정유리(본체, 응원 가능)

- 목소리만 들어도 훨씬 여행이 부드러워졌네.

- ㅇㅈ 방장이 혼자 있을 때 한마디도 안 하는 방송은 이게 유일했으니까 ㅋㅋㅋ

- 그걸 보는 우리가 레전드지

시간이 꽤 흘러 밤이 되었다.

딱히 밤이어서 몬스터에게 위협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세종에 진입하기에 앞서 체력을 안배해야 했기에 인근의 민가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이곳도 펜리르의 영역이었네.’

아직도 근처에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있었다.

종말 거부 장치의 힘이 닿지 않은 건지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천장이 휑한 것이 나무가 뚫고 나와 지붕을 날려버린 것 같았다.

투둑-

성진이 나뭇가지를 몇 개 뜯어내어 한데 모았다.

화르륵···

블레이즈 펄스가 불을 피워올렸다.

- 블레이즈 특) 유용함.

- 아니 능력을 왜 저딴 데만 쓰냐고 ㅋㅋㅋ

- 저렇게 쓰는 게 잘 쓰는 거지 ㅋ

- 송하린도 커피 타서 펄스로 차갑게 먹던데

- 걔는 진작에 이상했잖아

- 여기서 떠들어 봐야 질투로밖에 안 보임. 꼬우면 아시죠?

- 답답하면 니가 뛰던가

성진은 불가에 앉아 온기를 만끽했다.

“취침하실 예정입니까? 주변을 경계할까요?”

“아니, 너도 쉬어.”

“그럼 저는 페어링을 잠시 해제하겠습니다.”

드론이 TK-28로 돌아갔다.

정유리의 음성이 사라지자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몬스터가 접근할 리도 없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나른해···.’

어째서인지 계속 졸음이 왔다.

순간, 경계심이 일었지만 살펴본 결과 주위에 다른 생명체는 없었다.

그러니 잠에 빠져도 될 것이다.

타닥··· 탁···

모닥불의 온기가 이불을 덮어주었다.

****

나무.

성진은 또다시 나무 위에서 깨어났다.

‘여기는···.’

전에 온 기억이 있는 것 같다.

하늘을 부유하는 기분이었다.

또 새 소리.

그때의 그 청설모다.

거대한 청설모가 다가와 성진의 곁에 앉았다.

아무 질문도 하지 않기에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슴에 고양감이 차올랐다.

그때, 청설모가 입을 뗐다.

울음소리가 아닌 사람의 말이었다.

“···경계하라.”

“······.”

“모든 게 무너질 것이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어쩐지 질문할 수 없었다.

청설모는 성진을 바라보지 않았다.

서로가 마주 보지 않고 앞에 펼쳐진 하늘을 바라보는 기이한 상황.

“시간은 연속되지 않고, 세계는 마주하리라.”

“무슨···.”

“낡은 것을 잃고, 새로운 것을 얻으리라.”

청설모는 알 수 없는 말만 했다.

“표류하면 세상은 절망할 것이고, 항해하면 아직 희망이 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아가라. 용을 찾아라.”

딱-

세상이 꺼졌다.

성진이 눈을 뜨자, 아침 하늘이 보였다.

“올빼미, 좋은 아침입니다. 하지만,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유리야?”

“저 나무에 올라 보십시오.”

정유리의 소형 드론이 반딧불이처럼 날아가 지붕을 뚫고 나온 나무의 곁에 멈췄다.

성진은 몸을 날려 나무의 꼭대기까지 단박에 올라섰다.

‘이게 무슨···.’

세종시와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육안으로도 도시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어제는 안개가 낀 날씨도 아니었으며, 그 당시에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 시발, 저게 뭐야?

- 어제 저런 게 있었어?

- 아 디토 버벅인다. 개 소름이네;

- 바다? 파도? 저게 뭐지?

도시를 잡아먹은 나선.

빙글빙글 회전하는 그 기운은 어찌 보면 바다 한가운데 생겨난 소용돌이를 닮았고, 다시 보면 은하를 닮았다.

‘물은 아니야.’

물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그 파도에 별처럼 반짝이는 것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은하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문제 발생. 아버지는 저게 무슨 현상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가보자.”

“위험합니다.”

“가야 해.”

“알겠습니다.”

성진은 세종을 둘러싼 물결을 향해 나아갔다.

하루가 지나기 전, 성진은 그 물결에 닿을 수 있었다.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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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1. 소용돌이]

「당신은 대전의 종말을 극복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은 다시 활력을 찾을 것입니다. 종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전 인근에 있는 세종시를 정체불명의 소용돌이가 둘러쌌습니다. 누구도 도울 수 없습니다. 위험할 게 분명하지만, 당신만이 해낼 수 있습니다. 세종시를 둘러싼 소용돌이의 정체를 확인하십시오.」

* 이 임무는 메인 시나리오입니다.

* 에어리어를 개방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내야 하는 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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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이 물결에 몸을 던지는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은 기분.

청설모가 얘기한 말들은 이곳을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물러나야···.”

“들어간다. 유리야.”

“같이 가겠습니다. 저를 꽉 붙들어 주십시오.”

정유리의 드론이 총신으로 돌아왔다.

성진은 힘차게 발을 뻗어 격랑의 한가운데에 몸을 던졌다.

[막대한 에너지에 노출됩니다.]

[신체기능에 이상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외부 환경에 대항하기 위해 펄스가 최대치로 발현됩니다.]

······

[환경에 적응합니다.]

[표식이 형성됩니다.]

[시간이 고정됩니다.]

****

“민상 공자! 이 길이 맞는 겁니까?”

“맞아요, 거의 다 왔어요.”

“어떻게 된 게 지도도 볼 줄 몰라요? 이래서 제가 보겠다고 했잖아요?”

“지도를 거꾸로 들었소이다. 본녀는 그렇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으니 자꾸 탓하면 똥침을 놓을 것이오.”

“뭐, 뭐요? 지금 저한테 똥침 놓는다고 하셨어요?”

“이미 장전했소이다. 더는 탓하지 마시오. 내 총알은 자비가 없으니.”

차량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북상한 송하린, 이민상, 최별 일행은 성진을 거의 따라잡았다. 아슬아슬한 거리를 두고 따라붙던 일행은 도중에 차량을 버리고 도보로 전환했다.

“몬스터는 또 왜 이렇게 많죠?”

“참 불편한 게 많은 여인이군. 민상 공자와 본녀의 계획에 끼어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공자, 내 불찰이오.”

“계획? 계회엑? 그게 무슨 계획이에요? 요즘 계획은 머리에 복면 뒤집어쓰고 차 훔치는 것도 포함되는 거예요?”

“갈! 치밀한 계획이었소이다.”

“대체 왜 슈트 안에 복면을 뒤집어쓴 거예요? 어차피 슈트 넘버 때문에 송하린 양인 거 다 들켰을 텐데.”

“어쩐지! 전화가 엄청나게 오더라니. 그리고 뒷좌석에 숨어서 타고 온 주제에 너무한 거 아니오? 본녀는 귀신인 줄 알고 소리까지 질렀는데.”

최별이 미간을 찌푸리며 슈트를 매만졌다.

“슈트도 종일 입었더니 불편하네. 도중에 헤매지만 않았어도···.”

“쳇··· 가슴만 큰 게 잔소리는··· 소인배···.”

“···방금 뭐라고 했어요?”

“거의 다 왔소이다. 저기··· 어라?”

“말 돌리지 말아요!”

“말 돌리려고 했는데 진짜 이상해서 그렇소이다. 저기를 보시오!”

“대체 무슨··· 어? 저, 저게 뭐죠?”

일행은 세종시를 둘러싼 소용돌이를 보았다.

이민상이 읊조렸다.

“형···.”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졌네요. 어쩌죠?”

“방금 확인한 결과, 올빼미 님은 저곳으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당연히 들어가야지.”

“그래도 이럴 땐 뜻이 맞네요. 가요! 민상 씨는?”

“들어가요. 형이 위험할지도 몰라요.”

“뭐, 그럴리는 없겠지만··· 가죠!”

셋은 소용돌이로 뛰어들었다.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손은 잡지 않았다.

“크, 크아아악!”

“꺄아아아악!”

“허······ 허억···.”

[막대한 에너지에 노출됩니다.]

[신체기능에 이상이 생길 우려가 있습니다.]

[외부 환경에 대항하기 위해 펄스가 최대치로 발현됩니다.]

···

[표식을 추적합니다.]

[시간이 고정됩니다.]

****

“으윽···.”

성진이 움찔하며 일어났다.

사방에 시끄러운 소리가 가득했다.

평온한 일상의 소리.

하지만 이것이 시끄럽다고 한 이유는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다드닥··· 다그닥···

히이잉···

말발굽 소리와 투레질.

마차가 지나가고 있다.

성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과상, 푸줏간.

사람 사는 풍경이고, 실제로 사람이 살았다.

문제는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 어? 여 어디여; 기사 아저씨, 여기서 내려주심 어케여;

- 와ㅋㅋㅋ 님들 근데 뭔가 이상해여

대전의 경우, 빌딩들을 뚫고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 있었다. 그것도 충분히 낯선 환경이었지만, 이곳은 더했다.

빌딩의 주변에 뭔가가 생겨난 게 아닌, 원래 이곳의 환경에 빌딩 몇 개가 뚫고 나온 것처럼 보였다.

빌딩이 아닌 다른 건물들은 중세 서양의 건축 양식인 것 같았고.

- 이거 왠지 내가 아는 게임 닮았는데 ㅎㅎ

- 에이 설마 ㅋㅋ 근데 그겜 튜토랑 똑같긴 하넼ㅋㅋ

- 님 같으면 신작에 구작 끼워 팔기 하겠음?ㅋㅋ

- 끼워 팔기라니; 전작도 쌉흥했는데;

- 네다틀

- 몇 년 안 지났는데 벌써 틀니 취급하네 ㅡㅡ

성진은 자신의 옷가지를 내려다보았다.

코트는 온데간데없었고 총도 사라졌다.

오직 등에 멘 짧은 검 한 자루가 전부였다.

성진이 몸을 털고 주변을 관찰하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상대는 털 옷을 입고 있는 난쟁이였다.

“음? 왜 그러고 있는가. 이오란에 처음 오는 건가?”

이오란이라는 지명은 처음 들어보았기에 자연스럽게 채팅창에 눈이 갔다. 채팅창엔 잠시 정적이 흐르다 누군가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읽기가 힘들 정도의 채팅이 올라왔다.

- 이오란? 내가 아는 이오란?

- 씨이이이발 이거 스칸다잖아?

- 데자뷰 미친 새끼들이네; 스핀오프를 신작 시골섭에서만 푼다고?

- 시골섭은··· 맞긴 하네. 강제 시골섭이지; 접속을 못하니

난쟁이가 성진의 차림을 보고 물었다.

“혹시··· 자네 이방인인가?”

- 아 디토 터졌네 개염병

- 이 겜 만든 사람 제정신 아니네; 버그 아니냐?

- 빌딩이 뚫고 나온 거 보면 또 그럴 수도···

아무래도 이곳은 데자뷰의 전작인 이세계 스칸다인 것 같았다. 성진도 예전에 채팅창에서 떠들어대는 시청자들의 얘기를 본 적이 있다.

세종의 종말은 성진을 이곳에 오게 했다.

흐르는 별의 세계 스칸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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