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82화
쏴아아아아아···
정유리가 감았던 눈을 떴다.
채널은 정신.
거대한 바다에 와있다.
그녀는 바다 위에 떠 있었고 지금은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 겁니까?”
그녀는 오염되고 있는 휴머노이드에게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똑같이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어딨는 겁니까?’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막막했다.
어려운 일이고 해내야 하는 일인 건 알고 있었지만, 너무 막연했다.
그녀가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양팔을 휘저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바닷물이 검은색이었다.
그녀가 시야를 멀리하자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섬?’
팔을 휘저어 그곳으로 다가갔다.
누구도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신기하게도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타닥···
탁···
모닥불 근처에 앉아 몸을 말리려 했다.
기분 좋은 온기가 전신을 감쌌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휘유, 죽다 살았네. 박사, 어떻게 되는 거야?”
“저는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 어쨌든 휴머노이드들이 멈춰 섰으니 다행이네. 이 틈에 다 죽여버릴까?”
“그건 안됩니다. 외부 자극으로 한 기의 휴머노이드만 깨어나도 전부 채널에서 이탈할 겁니다.”
“상황도 모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 역시 폭탄을 챙겨왔어야 했는데.”
“지금은 유리를 믿고 유리 곁에 있어야 합니다.”
일행이 정유리의 곁을 막아섰다.
휴머노이드가 정유리의 몸에 접촉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니까.
정수열이 부정적인 말을 꺼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뭐라는 거야, 박사님? 갑자기···.”
“글레이프니르··· 저주받은 물건입니다. 신화에 등장하는 글레이프니르를 아십니까?”
“나는 모르는데?”
“신화에서는 난쟁이들이 만든 구속구입니다. 여인의 수염, 고양이의 발소리 같은 허무맹랑한 것들로 만들어졌죠.”
“그게 왜?”
정수열이 고개를 푹 숙였다.
“현실은 아니지 않습니까? 펜리르를 구속하기 위해, 연산 장치를 끌어왔습니다. 많은 휴머노이드의 희생이었죠. 그 희생이 꼭 자발적으로만 이뤄진 것도 아니었고요.”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우리는 벌을 받고 있는 겁니다. 글레이프니르는 살아남은 마지막 인간들마저 벌하려···.”
“정수열, 헛소리 하지 마.”
재성이 정수열에게 화를 냈다.
“그건 당신의 비뚤어진 생각이고, 아직 모르는 일이야. 함부로 단정 짓지 마.”
“···죄송합니다.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헛소리한 모양입니다.”
“그냥 딸을 믿으라고, 나도 당신 딸 믿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주인혁이 정유리의 곁에 섰다.
그녀는 비를 맞은 새끼 양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는 어쩐지 그녀가 가여워졌다.
“정유리, 해내라.”
그는 욱신거리는 자신의 팔을 그녀에게 가져갔다.
쑥스러워 그녀의 팔꿈치를 쓰다듬다가, 단박에 그녀의 손을 잡았다.
슈트를 입고 있어 온기가 제대로 전해지긴 힘들겠지만, 어차피 절반이 넘게 기계화된 팔이니 상관없었다.
자신이 응원하고 있다는 걸 정유리가 알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렇기에 자신의 반대쪽 손은 꽉 움켜쥐었다.
****
“무섭습니다.”
꽈르르르릉···
쏴아아아···
비가 거세져 모닥불이 꺼졌다.
어둠이 사위를 좀먹었다.
어디까지가 바다고, 어디까지가 섬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올빼미··· 주인혁··· 무섭습니다. 아버지, 나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때, 더욱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거대한 존재.
태양이 떠 있었어도 자신을 향해 바다를 휘젓고 오는 이 존재가 가렸을 것이다.
“크르르르···.”
깊은 곳부터 뚫고 나오는 울음.
늪을 걷는 자 펜리르가 정유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정유리는 압도적인 존재감에 전율했다.
그리고 고개를 바닥에 처박고 신음했다.
“무서워··· 무섭습니다.”
“정신차려요!”
“도망치라고!”
들려온 목소리에 정유리가 처박았던 고개를 다시 들어 끔찍한 존재를 보았다.
글레이프니르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볼 땐 펜리르를 옭아매는 갑옷이었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것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휴머··· 노이드?”
작은 휴머노이드들이 펜리르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을 잡아끌고 있었다.
“으으··· 도망쳐요, 엄마!”
“여기는 내가 막을게! 여보! 재호 데리고 떠나!”
“우리 가족한테 손대지 마, 이 개자식아!”
정유리는 순간 멍해졌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다.
“미워한 게··· 아니었습니까?”
어쩌면 망상이었을지도.
글레이프니르가 인간을 증오해 안티를 만들어냈다는 망상.
“당신들은 대체 무엇입니까?”
글레이프니르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펜리르를 막아서려 했다.
“안돼! 버틸 수가 없어···.”
“한 번만, 단 한 순간만이라도 멈춰야 해요!”
얼굴이 얼마 남아있지 않은 노인의 모습을 한 휴머노이드가 펜리르에게 달라붙은 채로 정유리를 돌아보았다.
아마 그는 아버지를 그리워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가 말했다.
“아이야, 힘을 내라.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건 잠시뿐이다.”
으득···
으드득···
“크르르···.”
펜리르의 모습이 찌그러졌다.
아니, 세상이 찌그러지고 바닷물은 어딘가로 증발했다.
당연하게도 섬도 사라졌다.
정유리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어딘가로 떨어졌다.
“하하··· 저거 사줄까?”
“응, 나 저거 가지고 싶어요!”
“음··· 말 잘 들으면!”
“아, 엄마아!”
웃는 아이와 아이의 어머니.
아이는 눈이 푸른 휴머노이드였다.
정유리에게 남아있는 다른 이의 기억이었던 것 같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퍽-!
“개 같은 새끼! 일을 그따위로 하면 어쩌자는 거야!”
“매, 매뉴얼대로 했습니다. 윽···.”
“매뉴얼? 휴머노이드 새끼가 말대꾸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
작업복을 입은 사내가 다른 이에게 발길질하고 있었다. 발길질을 당하는 사내는 휴머노이드였다.
그의 눈은 붉었다.
주변을 돌아보자 학대당하는 휴머노이드가 가득하였다.
발길질을 당하고, 얼굴에 침을 맞는 휴머노이드들.
전부 눈이 붉었다.
푸른 눈의 휴머노이드는 더는 보이지 않았다.
화아악···
주변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사람들이 사라진 자리를 붉은 눈의 휴머노이드가 채웠다.
그들의 입이 열렸다.
“이래도?”
“이게 그들이다. 이것이 우리고.”
“우리는 분노해야 한다.”
정유리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은 몰랐을 뿐입니다!”
“무엇을?”
“헛소리.”
“우리는 다릅니다! 그렇기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너만의 생각일 뿐이다. 우린 더는 믿지 않기로 했다, 인간을”
“그만··· 그만···.”
“인간을 포기해라.”
“그만··· 으아아아!”
정유리가 고함을 질러댔다.
지직··· 직···
눈의 푸른빛이 옅어지고 한쪽 눈에서 붉은빛이 점등했다.
붉은 눈의 휴머노이드들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한 걸음··· 두 걸음···
그들에게 닿는 순간, 정유리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녀도 오염될 수도 있다.
“어떻게··· 나는 누구··· 나는··· 휴머노이드입니다.”
그때, 거짓말처럼 어두컴컴한 하늘이 열렸다.
순간 모든 휴머노이드가 그곳을 올려다보았다.
“손?”
쿠웅-!
거대한 손이 내려와 정유리와 휴머노이드 사이에 장벽을 만들었다.
“손이 왜 이곳에? 나는··· 누구···.”
잊었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여름 내내 틀어막았던 댐이 터져나간 것처럼 기억의 홍수가 정유리에게 들이닥쳤다.
“나는 정유리··· 이건··· 주인혁.”
이 손은 주인혁일 것이다.
주인혁이 자신을 위해 잃었던.
정유리는 가까스로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주인혁과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티격태격했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위하게 되었던 관계.
정유리의 눈에 다시 푸른빛이 깃들었다.
부웅···
손이 붉은 눈의 휴머노이드들을 저 멀리 밀어놓았다.
휴머노이드들이 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손은 절대로 비켜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인혁···.”
손 틈새로 비친 휴머노이드의 눈은 아까보다 붉은빛이 옅어져 있었다.
실마리를 찾은 것 같다.
정유리는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다.
행복했던 기억들, 절반은 자신과 아버지가 보낸 시간이었다.
- 네 이름은 유리, 정유리다. 아버지라고 불러볼래?
- 아버지, 나는 정유립니다.
- 그래, 내 딸. 예쁘기도 하지. 아빠는 우리 딸 사랑해.
그리고 나머지는 최근의 기억이었다.
함께 보낸 시간이 머리로 흘러들려 하는 그 순간, 세상은 다시 한번 무너졌다.
우르으으으응···
쏴아아아아···
비가 건물들을 씻어내고 손과 휴머노이드들을 쓸어냈다.
정유리는 비에 젖은 머리를 하고 앞을 바라보았다.
고층 빌딩 너머로 늑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끝이야! 도망쳐라, 아이야!”
“이제 막을 수 없어!”
펜리르의 정신 오염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정유리는 벗어나기 위해 다른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뭔가··· 뭔가 떠올릴만한 것이···.’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사진.
친구들과 찍었던 사진.
정유리의 입꼬리를 잡아끌어 억지로 웃게 했던 주인혁.
그때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았다.
그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임을.
“크르르···.”
콰직-!
콰지직!
풍경이 변했다.
늑대는 어느새 시야 저편으로 사라졌다.
지금 자신은 적막한 공간에 놓여있다.
어딘지 낯익었다.
“여기는···.”
“유리야, 무슨 생각해?”
“아, 양준호. 모르겠습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뭐야 그게···.”
탁자.
여럿이 앉을 수 있게 의자가 빼내어져 있었다.
‘여기에 누군가 앉았었던 것 같은데···’
“야, 얼뜨기처럼 또 멍 타네.”
“당신은··· 주인혁?”
“내 이름이 그렇게 어렵냐? 앉은 자리에서 까먹을 정도로?”
“호감도가 낮을수록 떠올리기 힘듭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야!”
주인혁이 정유리를 보고 웃었다.
여전히 허전한 탁자.
마음이 시렸다.
“마음?”
누군가 정유리를 불렀다.
“유리야.”
“손동원?”
반대편에서도.
“왜 그래, 문제라도 있어?”
“올빼미? 아, 이제 알았습니다.”
빈자리가 모두 채워졌다.
“모두 왔습니다. 이것이었습니다.”
“뭔 헛소리야.”
“아닙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정유리가 미소지으려 했다.
이 기억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폭음이 들리더니 주변을 불태웠다.
“무슨 일입니까?”
“끄아아아악!”
“양준호!”
양준호의 한쪽 눈이 붉게 변했다.
정유리는 도움을 청하려 손동원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손동원, 양준호가···.”
“나는 손동원이 아니야··· 아니라고.”
화르륵···
손동원은 불길에 휩싸여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피부까지 녹아내리더니 결국, 재가 되었다.
옆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주인혁의 목소리였다.
“네가 미워···. 아파··· 너무 아파···.”
“미안합니다. 나는 미안함을 느낍니다···.”
고개를 돌리니 올빼미는 자리에 없었다.
탁자는 다시 쓸쓸해졌다.
“이렇게 끝인 겁니까?”
화르륵···
콰직···
콰지직···
주변이 뜨거워지고, 무너져내렸다.
“나는 실패했습니다. 미안합니다, 휴머노이드. 미안합니다, 믿어준 사람들.”
이제 곧 자신도 불길에 휩싸일 것이다.
그때, 근처에서 언제 생겼는지 모를 문이 갑자기 열렸다.
끼이익···
‘문이 있었나? 아···.’
이제 저 문으로 늑대가 나타날 것이다.
자신의 실패를 비웃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늑대가.
“미안.”
정유리는 실패했다.
****
“뭐, 뭐야! 다시 움직이잖아!”
“유리를 보호해!”
파아앗···
휴머노이드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됐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움직임이 굼떴다.
이들 모두를 처치하려면 지금뿐이다, 가능할지는 미지수였지만.
성진과 재성, 그리고 일행들의 시선이 엇갈렸다.
주인혁이 소리쳤다.
“야! 너 왜 그래!”
정유리가 무서울 정도로 파르르 떨어댔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오던 푸른빛이 사라졌다.
팟-!
지직··· 직···
그녀가 고개를 떨궜다.
“야!”
일행은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실패했군···. 유리야, 고생했다.”
“유리야! 정유리! 일어나라고!”
붉은 눈의 휴머노이드 한 기가 어느새 성진의 근처까지 접근했다.
휴머노이드가 한쪽 손을 뻗어왔다.
성진의 목을 움켜쥐려는 모양인지 손의 방향이 그쪽이었다.
“이인··· 간. 주우···.”
우뚝···
휴머노이드의 손이 멈췄다.
움직이던 휴머노이드들이 다시 정지한 상태로 돌아갔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일행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뭐, 뭐야?”
갑자기 정유리가 고개를 들었다.
팟-!
그녀의 눈에 푸른빛이 깃들었다.
“돌아왔어!”
“어떻게··· 어떻게···.”
“저, 저거!”
누군가 정유리에게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털썩···
손성일이 허물어졌다.
그가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동호야···.”
“···아버지.”
“일어났니?”
손동호가 미소지었다.
비록 전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그 미소는 같았다.
“예, 아버지.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있을 곳은 여기예요.”
손동호의 눈에선 정유리의 눈과 같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눈부시도록 푸른빛이.
****
정유리의 공간에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손동호였다. 그녀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미소지었다.
“늦었습니다, 손동호.”
“그래, 앉아도 될까?”
“아, 거기는 손동원이 새까맣게 타버린 자리입니다. 불길하니 저쪽에 앉으십시오.”
“알았어.”
화륵···
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불길이 점차 잦아들었다.
끼이익···
다시 문이 열렸다.
“애송이는?”
“아직.”
“매일 늦어, 그 자식은. 형은 또 언제 왔어요?”
“방금.”
성진과 양쪽 눈의 색이 다른 양준호가 자리에 앉았다.
끼이익···
이어서 주인혁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가 입을 열었다.
“다들 모인 건가?”
“주인공 대사 하지마. 사천왕 중 최약체 주제에.”
“주인혁, 앉으십시오. 거슬립니다.”
“···망할 휴머노이드 새끼들. 난 왜 불렀어?”
다섯이 탁자에 앉았다.
정유리의 마음이 하늘로 붕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소리가 들려왔다.
쾅-!
콰아아앙-!
들려온 굉음은 아까와는 달랐다.
세계가 넓어지고 있었다.
정유리의 탁자.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파문은 모든 것을 휩쓸었다.
콰직-
콰지지직-!
부수고, 부숴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그 힘은 붉은 눈의 휴머노이드는 물론 거대한 늑대조차 먼지로 만들었다.
그렇게 정유리와 탁자에 앉은 모든 이들이 스르륵 사라졌다.
****
정유리와 손동호의 눈이 떠졌다.
“유리야!”
“아버지.”
“해낸 거니?”
정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자신의 팔로 옮겼다.
장갑을 탈락시킨 주인혁의 맨손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의 손은 전부 인공 피부였기 때문에 독기가 침범하지 못했다.
“주인혁, 이 손은 무엇입니까?”
“아, 미안. 놓을게. 그리고 응원이었다?”
“응원? 어쩐지···.”
일행의 근처로 몰려들었던 휴머노이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워하던 그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고함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악!”
일행이 가만히 그 광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성진은 자신의 목을 움켜쥐려던 휴머노이드를 보았다.
붉은 눈 중 한쪽이 깜빡이다가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재성이 그것을 보고 소리쳤다.
팟-!
“됐어! 됐다고!”
“아직입니다.”
“뭐?”
휴머노이드는 계속해서 괴로워하다가 다시 소리쳤다.
“끄아아아아!”
지잉···
팟-!
하나 남았던 붉은 눈의 색이 바뀌었다.
정유리와 손동호의 눈처럼 푸른빛으로.
“말도··· 안돼···.”
“무슨 일이···.”
휴머노이드들이 우뚝 멈추었다가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들 중 성진의 앞에 있던 휴머노이드가 입을 뗐다.
“반갑습니다, 사람. 저는 전투형 휴머노이드 엡실론-9입니다. 악수를 요청해도 될까요?”
성진의 목을 향하던 손은 어느새 배 쪽으로 당겨와 있었다. 성진은 그 손을 잠시 쳐다보다가 마주 손을 내밀었다.
차가웠지만, 곧 자신의 온기가 휴머노이드에게 전해졌다.
주저앉은 손성일에게 다른 휴머노이드가 다가갔다.
그가 물었다.
“사람,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손성일의 얼굴은 이미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는 아들이 돌아왔다는 기쁨과 지금의 상황에 벅차올랐다.
“네,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최상의 만족을 제공하겠습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늑대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저에게 맡기십시오.”
휴머노이드가 손성일을 잡아 일으켰다.
진흙탕 속에 떨어져 허우적거리던 인간과 휴머노이드의 손이 맞닿았다.
미끄러지고, 미끄러졌지만 결국엔 다시 잡은 손이다.
무장하기 위해 차량으로 향하는 휴머노이드들.
그런 그들의 뒤로 주인혁이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왜 우리를 도우려는 거죠?”
이상한 질문을 다 듣겠다는 듯이 휴머노이드 중 한 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답했다.
“질문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답을 내놓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도 대답을 원하십니까?”
“예, 왜 우리를··· 돕는 겁니까?”
휴머노이드가 대답했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친구니까요. 친구를 돕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적절한 답이 되었습니까?”
낡고 먼지 쌓인 관계를 들먹이는 휴머노이드.
주인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알았습니다.”
“그럼.”
성진의 채팅창이 활자가 일그러져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전환되었다. 대부분은 의성어로 표현된 환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