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65화
프로토콜 ‘봄’의 영향이 부산 전역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연제구의 등불들은 줄곧 준비만 해오던 일의 첫걸음을 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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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선빵부터 갈겨. 코피 내면 이긴 거다]
- 부산 쉘터 사람 선빵을 왜 갈겨 너 사람이냐
- 소개팅 나가서 죽빵부터 날릴 놈이네
- 서로 정보도 교환하고 달란트 모아서 물건도 사는 자리잖아 그러면 안 돼
- 달란트는 누구 뇌에서 나온 생각이냐? 그딴 거 없어
- 그럼 마니또는?
- 마니또는 솔깃한데···
연제구 벙커의 지도자인 정병철과 몇몇 사람들, 그리고 등불의 수뇌부가 차량에 몸을 실었다. 전쟁하러 나가는 것도 아니기에 차량은 소규모만 동원했다.
“송하린 쟤 또 처자냐?”
“무슨 일 생기면 깨우래. 저번처럼.”
“저번에 무슨 일 생겨서 깨웠는데 안 일어났잖아?”
“깨워도 안 일어날 테니 깨워보라는 거지.”
“도발이야? 저거 코에 방울 뭐야?”
“수면 장애가 너무 깊게 자는 걸 말하는 건가?”
드드드드···
차량이 부산을 가로지르고 있다.
조병창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눈이 녹았네. 쉘터는 어떠려나?”
“병창아, 또 센치해졌냐?”
차일국이 조병창의 혼잣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센치해지긴··· 부산 쉘터 일은 방송으로 다시 보기 해서 본 게 전분데 센치해질 게 뭐 있어.”
“다시 보기를 올 타임으로 보는 자식은 너밖에 없을 거야.”
움찔···
차량에 타 있던 인원들이 전부 움찔했다.
차일국이 한숨 쉬었다.
“···다들 할 일 없습니까?”
“마침 이직 준비한다고 회사를 나와서···.”
“여자친구랑 냉전 중이라···.”
“저는 원래 다 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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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덕후인 줄 알았는데 연예인이 더 성공해버림]
- ㅇㅈ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누 ㅋㅋ
- 조병창은 등불 합류하면서 싱글벙글이었을 텐데
- 요즘 쉬는 시간마다 올빼미 방송 본다던데
-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ㅋ
- 송하린 대구 정호원 박사 녹음기 들을 때 오열했잖아ㅋㅋ
- 그거 클립 돌더랔ㅋㅋ 엌ㅋㅋ 얼굴 찌그러졌었어 ㅋ
- 그 예쁜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 주지
- 그럼 니 얼굴은 누구 줘
- ······누군가 손해를 봐야 하는구나?
- 보석상도 이건 손절치겠는데
부산 쉘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쉘터의 거주민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콰아아앙!
“크워어어어어어!”
달리던 차량이 전부 멈춰 섰다.
선두 쪽 차량 근처에 몬스터가 감지되었다.
“뭐야!”
“여기서부턴 길거리 청소 안 했으니까 나올 만하지.”
“뭔데? 안 보여. 앞에 뭐 나온 거야?”
“몰라, 일단 내려.”
철컥-
수뇌부 중 몇이 소총을 장전하고 차량에서 내렸다.
“크워어어!”
후미에 있는 차량은 몬스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오우거네.”
“아, 에너지 저항 짜증 나는데. 근접전 되는 애들 몇이나 있지?”
“같이 온 애들 다 어지간하면 다 하지.”
- 오우거 잡몹이었냐?
- 한국섭에서는 토종이라고 봐도 됨
- 무슨 토종 닭도 아니고
- 등불 거 볼 때 심심하면 보이더라
- 아직도 세긴 셈. 근데 이제 등불도 좀 컸지
- 신입들은 접근 금지 ㅋㅋ 베테랑 나서면 뚝딱이지
차량을 등지고 오우거를 마주하는 등불.
조병창의 후미 인원은 대기 하라는 말에 나선 건 선두의 몇 명 뿐이었다.
최별과 화질구지, 그리고 조병창과 차일국이었다.
“뭔가 이상한데요?”
“그러게··· 딱히 우리를 노리고 나온 건 아닌 것 같은데?”
오우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괴물은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뻗고 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대비하자.”
스릉-
최별과 일행이 장검을 뽑아 들고 개조한 건틀릿을 작동하고 오우거에게 다가갔다.
“···뭐지?”
전투에 나서려던 등불의 인원들은 직박구리의 한 마디에 다시 멈춰섰다.
누군가 있다.
슈트를 입은 걸 보니 부산 쉘터의 사람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이 오우거의 목에 와이어를 걸어 순식간에 오우거의 어깨에 올라섰다. 오우거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보였다. 군데군데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오랫동안 싸운 것 같았다.
휘익-
“크워어어어어!”
그리고 손에 든 총을 오우거의 관자놀이에 대고 격발했다.
퍼어엉!
퍼어엉!
등불에겐 익숙한 소리.
올빼미가 사용하던 모델의 샷건 격발음이다.
- 형? 빼미 형이야?
- 와 ㅈㄴ 빠르다. 송하린인 줄
- 송하린이 조스루 보이냐?
- 근데 피지컬 쩔긴 하네; 루킨가?
- 등불 현재 차량에 탑승 중임 ㅋㅋ 등불 아님
관자놀이에서 샷건의 응집된 에너지가 터졌으니, 아무리 오우거라도 버틸 수가 없다.
오우거는 그대로 허물어졌다.
바로 죽지는 않았기에, 등불이 다가가 오우거의 숨통을 끊는 걸 도와주었다.
상대의 깔끔한 솜씨에 내심 감탄하는 단원들.
조병창은 상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상대는 내려서서 바이저를 통해 누군가와 교신했다.
“준석이 형, 잡았어요. 좀 오래 걸렸네. 형, 그보다 모르는 분들이 와 계시는데요? 그것도 잔뜩. ···예.”
상대의 목소리는 단원들에게 익숙했다.
“이민상!”
“민상이다!”
“와, 연예인인 줄 알았다.”
- 민상이잖아?
- 국민 남동생 민상이가 왔다고?
- 언제 이렇게 듬직하게 자랐니 ㅠㅠ 누나 오열한다
이민상이 자신을 알고 있는 듯한 등불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저를 아세요?”
“아, 저희는 연제구 지상 벙커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 저번에?”
조병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산 쉘터와의 교신은 얼마 전 이루어졌다.
신호가 오락가락해 많은 얘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등불 측에서 조만간 방문하겠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자세한 얘기는 쉘터에서 나누도록 하죠.”
“아, 예. 그럼 좀 있다.”
이민상이 나타난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타고 온 차량이 있는 것 같았다.
****
등불의 차량이 줄 지어서 부산 통합 쉘터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륵···
이만한 차량이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게 신기한 건지, 차량이 정차하는 곳에 쉘터 거주민들이 나와 있었다.
“정말, 부산에 멀쩡한 벙커가 남아있었다고?”
“그렇다잖아.”
“그 올빼미도 여기서 왔다고 했었던 거 같았는데?”
“그래? 그럼 좋으신 분들이겠네.”
- 먼저 거래 터놓으신 분이 개쩔었다
- 평범한 거래처를 넘겨받은 후임자의 모습이다
- 선배님을 받들자고 ㅋㅋ
바이저를 벗은 등불의 모습에 인사하던 거주민들이 감탄했다.
“이야··· 이거 다들 선남 선녀들이셔.”
“그러게, 다들 훤칠하네! 우리 딸이랑 결혼했으면 좋겠네.”
“강씨 딸은 한 번 갔다 왔지 않아?”
- 야 ㅋㅋㅋ 저기 뒤편에서 하는 말 들었음?
- ㅇㅇ 승철이한테 한 말?
- 개성있게 생겼다고 했잖앜ㅋㅋ
- 승철이는 솔직히 선남선녀랑은 거리가 멀지 ㅋㅋ
- 선녀랑은 가깝지. 나무꾼처럼 생겼잖아ㅋㅋㅋㅋ
- 옷이나 숨기러 가자. 선녀 두레박 런하기 전에ㅋㅋ
등불의 수뇌부가 쉘터의 대회의장에 들어섰다.
원래는 다른 공간이었는데, 그 사이 공간의 쓰임이 바뀐 것 같았다.
“이야··· 올빼미랑 아는 분들이라고? 반갑습니다. 임준석이라고 부르세요.”
“저는 이민상이에요.”
이들 말고도 쉘터를 이끄는 많은 인원이 회의에 배석했다.
등불의 수뇌부가 자신들을 소개하고 자리에 앉았다. 회의는 물 흐르듯 흘러갔다.
“쉘터 상황이 많이 호전됐나 봅니다.”
“아, 올빼미한테 전해 들으셨다고 했죠? 맞습니다. 다들 노력하니 상황이 계속해서 좋아지더군요.”
올빼미의 방송 애청자라고 할 수는 없으니 올빼미가 가끔 교신을 보내왔다고 얼버무렸다.
이민상이 조병창에게 물었다.
“형은··· 올빼미 형은 잘 지내나요?”
“예. 그런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다른 소식이 있나요?”
“대구에서 일을 마친 상황이라는 것까지밖에 전해듣지 못 했습니다.”
“일을 마쳐요?”
민상은 열렬히 응원하는 누군가의 소식을 전해 듣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조병창은 민상에게 답했다.
“대구의 종말이 종식됐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안정기에 접어들 것 같습니다.”
“버, ···벌써요? 여기서 떠난 지가 얼마나 됐다고···.”
- 그러게. 우리도 놀라는 중이다
- 민상아 너가 같이 놀라주니까 우리도 내심 뿌듯해
- 재주는 올빼미가 부리고 생색은 밀수들이 낸다
- 닥쳐 우린 한 몸이야. 1인칭으로 보기 때문이지
- 앞으로 민상이 얼굴 계속 볼 수 있겠다 ㅠㅠ
그 후로도 많은 얘기가 오갔다. 연제구 벙커에 남아있는 인원들이 거취 문제나 부산 쉘터에 남아있는 문제들을 터놓고 얘기했다.
“위험한 일에는 최대한 거주민들을 내보내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일 처리가 좀 더디긴 하네요.”
“저희도 최대한 돕겠습니다.”
“그··· 등불의 규모를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요?”
“어떻게 알고 계시죠?”
“각성자 기백 명··· 맞나요?”
“맞습니다.”
준석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와··· 군단이네요.”
“아직 부족합니다. 서둘러 부산을 정상화하고 그 후를 준비해야죠.”
“그 후라면···.”
“위로 올라가야겠죠.”
등불도 대구로 향한다는 말이다.
대구의 방사능이 해결되고 있는 와중이니, 준비만 갖춰지면 곧 가능한 일이다.
이민상이 조병창에게 달려들 듯 질문했다.
“정말인 거죠? 꼭, 꼭 가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다행이다. 준석이 형이 우린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차일피일 미뤄서 걱정했거든요.”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누고, 회의는 끝이 났다.
회의 내용은 희망적이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등불.
등불이 문을 빠져나온 후 걷기를 잠시.
송하린이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다.
“민상 공자에게 사인 받는 건 실례이려나?”
“······.”
“···그렇겠죠?”
“그럼 다음에···.”
최별이 송하린에게 말했다.
“굳이 사인같은 걸 받아야 해요?”
움찔···
다른 인원들도 송하린과 함께 움찔했다.
움찔한 인원 중엔 조병창도 있었다.
최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 엄마가 너희들 때문에 못 살아
- 26세 최절망씨는 오늘도 살아간다
- 엄마도 휴먼이야 휴먼!
- (대충 인간극장 BGM)
- 띠로로로~ 로로~
****
성진과 김정우가 종말 거부 장치를 작동시켰다고 전했다.
“이제, 이제 집에 가는 거야?”
“집이 지금까지 남아 있겠어? 그리고 연구단지 인근만 복구됐다잖아.”
“집이야 새로 지으면 되는 거 아니야? 집이 뭐 별건가. 판잣집이라도 지상에서 살면 그게 어디야.”
“새로 시작하겠다고? 그게 될까?”
“이 와중에 안 될 게 어딨어? 잊었어?”
“아, 그렇지···.”
성진은 잔뜩 들떠있는 분위기를 뒤로하고 조용한 장소를 찾았다. 새로 얻은 능력을 점검할 시간이다.
먼저 요르문간드를 사냥하면서 얻은 능력을 확인했다.
[완벽한 사냥을 하기에 몸이 부적합함을 느낍니다.]
[더 훌륭한 사냥을 위해 몸이 적응합니다.]
[섭취한 요르문간드의 유전자를 사용합니다.]
[체내에 피트 기관이 형성됩니다.]
[포착한 대상의 열에너지를 장시간 놓치지 않습니다.]
[포착한 대상의 열에너지를 먼 거리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유전자 조작(Active)이 형성됩니다.]
열에너지 포착은 한번 찾은 대상을 놓치지 않고 추격할 수 있게 해주었다. 거리가 너무 멀리 떨어질 경우나 장애물이 많을 경우에는 그 감각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펄스와 함께 운용하면 그 점도 보완이 되었다.
‘유전자 조작?’
새로운 펄스를 얻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 얻은 능력은 펄스가 아니었다.
홀로그램에 스킬창을 띄웠다.
스킬창에는 시나리오를 완료하면서 새로 얻은 능력들도 보였다.
[올빼미님의 보유 스킬]
[유전자 조작 (Lv.1) : 당신이 폭발적인 힘과 적응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파생된 능력입니다. 폭발적인 힘은 이제 유전자 조작과 합쳐집니다. 짧은 시간, 당신이 원하는 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강한 근력, 빠른 속도, 유연함 등. 이 능력에는 제한이 있고 외형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시 사용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합니다. 경지가 상승할수록 능력이 강화됩니다.]
[조준 시 (Lv.1) : 조준 시를 발동한 상태에서 지향 사격 시 명중률에 큰 보정을 받습니다. 모든 총기류가 보정을 받고 투척물도 그 범위 안에 들어갑니다. 짧은 시간 유지되고, 짧은 시간 후에 다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전에 가졌던 능력인 폭발적인 힘은 적재적소에 사용하기 힘들었다. 전투하는 내내 활동력이 쌓여야만 발동이 가능했고 사용이 가능한 때는 거의 전투가 막바지에 치달았을 때였으니까.
유전자 조작 능력은 중형 몬스터 이상을 상대할 때에나 정확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조준 시도 그때 확인하기로 마음 먹었다.
능력의 상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종말 거부 장치를 작동시키면서 능력의 전반적인 경지가 올랐다.
[종말 거부 장치를 작동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적응이 Lv. 3이 됩니다.]
[보상으로 펄스 : 사이오닉이 Lv. 3이 됩니다.]
[보상으로 펄스 : 블레이즈가 Lv. 2가 됩니다.]
[보상으로 펄스 탄환이 Lv. 2가 됩니다.]
[적응 (Lv. 3) : 당신의 신체는 특별합니다. 당신은 어떠한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오를수록 능력이 강화됩니다. 레벨이 상승하면서 더 빠른 적응이 가능해집니다. 환경으로 인한 즉사를 회피합니다. 유전자 적응은 이제 취식을 하지 않아도 가능합니다. 환경 적응이 보다 신속히 이루어집니다. 적응이 고통을 동반하지 않습니다. 섭취적응이 더 많은 유전자를 활용합니다.]
사이오닉과 블레이즈, 그리고 펄스 탄환의 경지도 상승했지만, 이는 실전에서 사용해봐야 감이 올 것 같다.
‘워낙 광범위한 능력이니까.’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고, 전투의 전반적인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게 펄스다.
펄스의 경지가 상승한 것은 분명 앞으로의 상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 펄스가 늘었어.’
경지가 상승할 때마다 펄스의 총량이 크게 널을 뛰었다. 절대 부족할 일 없을 줄 알았던 펄스지만, 요르문간드를 상대하면서 다시 한번 벽을 느꼈다.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하다 보니 그런 것이지만, 앞으로도 그런 상황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다행히 지금 느껴지는 펄스의 총량은 일전의 경지와 크게 차이를 보였다.
- 이제 탱크네 탱크; 펄스 탱크;
- 원래도 탱크였긴 했는데; 이제 펄스 탄환도 진짜 자주포 아니냐?
- 등불이 뭐? 어림도 없지 ㅋㅋ 본좌는 올빼미다
능력의 점검을 마쳤다.
이제 남은 건 실전에서 확인하는 것 뿐.
****
사방에 곡소리가 가득했다.
이번 전투에서 전사한 사람들의 영결식이 진행되었다.
김정우 부자와 정차현 단장, 그리고 성진까지 이 행사에 참여했다.
시체가 부패하기 전에 서둘러 진행된 행사다.
참석한 사람 중 울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다.
“아··· 으아··· 아빠···.”
“왜! 왜 내 남편이 죽어야 하는데! 왜!”
누군가 삶을 손에 넣기 위해서, 누군가는 죽어야 했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훨씬 많으니 다행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다.
죽은 건, 죽은 거다.
그 슬픔과 상실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고.
여전히 김정우 박사에게 하소연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신! 당신 때문에···.”
“···죄송합니다.”
“이··· 이···.”
“상호 엄마···. 참아, 참으라고.”
“놔!”
하지만 그 하소연도 전보다 많이 줄어든 상황이다.
김정우가 아니었다면 쉘터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유족들도 그 사실을 안다. 물론,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영역이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극성스러운 사람이 김정우의 얼굴에 침을 뱉고 땅에 허물어져 울었다.
행사 내내 김정우는 시달렸다.
영결식이 끝난 후, 성진이 김정우에게 찾아갔다.
땅에 주저앉아 성진이 오는 것을 보고 웃음을 흘리는 김정우.
“이거··· 다 봤나?”
“박사님.”
“슬플 거야. 누군가는 슬퍼야만 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게 야속하긴 하네.”
“······.”
“덕분에 내 친구는 떠나보내지도 못했군. 오늘 밤, 시간 괜찮은가?”
“알겠습니다.”
“고마워···.”
성진은 김정우의 호출을 받고 짐을 챙겼다.
김정우가 성진을 부른 건 한밤중이었다.
연구실에는 김정우말고도 김석찬과 자경단원들 몇, 거주민 대표 몇, 그리고 정차현이 있었다.
“왔군, ···가지.”
낮 동안 시달렸던 김정우의 눈은 메말라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어둡지 않았다.
슈트를 챙겨입은 사람들과 함께, 연구단지에 도착했다. 그 후로 사람들은 거주계획의 큰 얼개를 얘기했다.
성진은 그 대화에서 벗어나, 연구소장실로 향했다.
몬스터들은 거주 영역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 주변은 안전했다. 김정우의 말을 빌리자면, 종말 거부 장치가 가동됐으니 이곳에 곧 쉴드가 형성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몬스터들과 싸우던 게 얼마 전인데, 신기하게 느껴졌다.
회의가 좀 길어졌는지, 동틀녘이 다 되어 김정우가 왔다.
“여기 있었나?”
“이곳으로 오실 것 같아서요.”
“···그래. 나보다 나를 잘 아는군.”
김정우가 달그락거리며 가방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한잔 하겠나?”
“제가 마시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는 보온병에 담긴 액체를 가지고 온 종이컵에 쪼로로 따라냈다. 두 잔이었다.
그리고 ‘연구소장 정호원’이라 적힌 명패가 얹어진 책상에 한 잔을 올려놓고 다른 한 잔은 자신이 홀짝였다.
후릅···
“이제야 나도 내 친구를 보내주는군.”
“···낮에는 고생하셨습니다.”
“아니, 해야 할 일이었어.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잖아.”
김정우가 명패를 살포시 어루만졌다.
“사람은 참 신기해. 안 그런가?”
“······.”
“한없이 약하고 비겁하다가도,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존재가 돼.”
성진도 이번 일로 경험했다.
사람의 약한 면도, 강한 면도.
동이 터오고 있었다.
“밤을 새우고 나면 이곳에서 호원이랑 창밖을 내다봤었지. 경치가 괜찮거든.”
“그런 것 같네요.”
“나는 녹차, 호원이는 인스턴트 커피. 지겹도록 말이야.”
성진은 창가에 다가선 김정우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정호원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김정우를 보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둘은 분명 닮았을 것이다..
“뭐, 커피도 나쁘진 않네. ···가끔은.”
정호원이 남긴 것은, 인스턴트 커피의 단맛보다는 많은 것이었다.
햇살이 창가로 스며들었다.
김정우의 옆에 누군가 있는 느낌이었다.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제 뭐든 할 수 있는 기분이야.”
김정우는 성진이 겪어 본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이제부터 대구의 사람들은 그들이 잃었던 하늘을 누릴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평범했던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