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1화 〉101. 좋됐네?? (101/114)



〈 101화 〉101. 좋됐네??

‘음……? 이 사람이 왜…’


현재 남은 방은 총 셋.


그 중에서 라우라와 한주희가 있는 방을 찾아야만 했다.

일시적으로 방을 격리하고 있던 결계마법을 해체한 현화.


강화 투시 마법으로 방의 내부를 훑어보던 그녀가 뜻밖의 얼굴을 발견한 것이다.


“쌤, 그래서 어디로 들어가면 되는 건데요?”
“빨리 끝내 버리자고!”


“아, 응…!”


그러나 그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왼쪽이랑 오른쪽 방이야! 왼쪽이 라우라! 한주희는 배틀로얄이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결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둘은 서둘러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서현을 뒤따르는 현화.


배틀로얄의 경우라면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라우라의 경우는 트라우마 속에 갇혀 있었기에 정신을 연결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캬아악!


빠르게 내달리는 그들을 향해, 라이칸슬로프들이 이빨을 세우며 달려들었다.

“섬살!”
“광란혈부!”



스악-!
투콰가각!!


그런 그들을 가로막는 현진과 한아름.


그리고 마치 그것이 신호라도  듯 공격을 시작하는 라이칸슬로프.

한아름과 이현진, 그리고 세바스찬은 분주히 자신들의 애검을 휘둘러야만 했다.


“빨리 끝내고 나와요!”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테니까……!”

그들이 벌어 준 시간을 틈타, 세 명은 각자 향했던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 직후, 현화가 무력화시켰던 결계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한  미쳐 날뛰어 보자고!!”


후우웅!



한아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빛의 기운.

그녀가 가진 스킬 ‘피의 전장’의 버프가, 세바스찬과 이현진의 몸을 감쌌다.



***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

아니, 그것은 ‘어둠’이라는 개념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그런 어둠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세계.



그저 자신의 몸만이 선명하게 비치는 그 곳은 라우라의 심연 속이었다.


“……”



저 멀리서 비치는 희미한 빛에 은서현은 미간을 좁혔다.

눈을 찌푸려야만 간신히 알아볼  있는 그것은 점차 그 세기가 약해지고 있었다.


마치 바람 앞에 흔들리는 약한 촛불마냥.



서현은 걸음을 옮겨 그 빛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
“왜 이러고 있어?”



소녀, 라우라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나마도 들려 오던 미미한 흐느낌마저도 이제는 잦아들어갔다.

“하아……”




은서현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역시도, 이렇게 외로웠던 시기가 있었다.


부모님의 사망을 마주한 그 날.

그의 세계 역시도 무너져 내렸었다.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철저한 암흑 속에서 매일을 보냈었다.
지금처럼 그것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시간들은 그에게 있어 암흑과도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었다.



“이렇게 나약한 녀석이었어?”


“……”

조금은 누그러든 목소리로 그는 그렇게 물었다.

“고작 이런 것에 무너질 정도로 나약한 사람이었냐고. 아니잖아? 왜 이렇게 주저앉아 있는 거야?”




라우라는 아무런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말을 할  없는 인형이라도 된 마냥, 그 자리에서 조용히 떨기만 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은서현은, 그녀의 뒤쪽에 등을 마주 대고 앉았다.

그의 등이 닿자, 살짝 움츠러드는 라우라.

그에 아랑곳 않고, 은서현은 입을 열었다.


“……나도 알아. 두렵다는 거. 네가 뭘 두려워 하는지도.”
“……”

그럴 리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라우라는 대꾸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감정이 그녀의 가슴 한 켠에 조심스레 머리를 들이밀었다.

“주변 사람들이 떠나는 것, 그리고 이렇게 혼자 남는 것이 두려운 거잖아?”




미미하게, 거의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라우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도 그랬어. 괴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하나같이 나를 등지고 돌아서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일어서지 않으면  되었다고.”
“……홀로…”

“그래. 혼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내게 다가 와 준 것은 ‘서연’이었어.”

 다른 자신.
그것이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전부였다.

“웃기지 않냐? 누군가를 의지하고 싶은데, 그러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다른 자아를 만들어 낸다는게 말야.”

자조적으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런 사실을 직접적으로 터 놓는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아마 그녀가 자신과 너무 닮아서이겠지.




“근데 녀석이 그러더라고. 내가 일어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이 더럽고 이기적인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내 기분이 엿같더라도 직접 살아남아야만 한다고 말야.”


─하지만 누군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는 그렇게 덧붙였다.


“……자신 없어.”

혼자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아니, 이런 고독을  이상 버텨 낼 자신이 없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혼자 견뎌내라고 하진 않을게.”
“……?”

줄곧 무릎 속에 파묻혀 있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 들렸다.

“제발, 지금만이라도 이겨내 줘. 쓰러지지만 말아 줘. 내가……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라도 곁에 있어 줄 테니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확신할  있었다.


그저 곁에 가만히 있어 주는 것 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아……”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라우라가 바라 왔던 전부였다.

겨우 들린 그녀의 고개.


어느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서현을 올려다 보는 그녀의 두 눈동자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한 줄기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





“하여간 더러운 재능충……”

손바닥 뒤집듯 쉽게 결계를 무력화시키는 현화를 바라보며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스스로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건만, 역시 천재는 천재란 것일까.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정신을 다른 이의 심연에 연결한다는게 가능하기나 했던가…?’

그래, 가능하기야 하겠지.


다만 그것이 쉽게  수 있는 것이냐 묻는다면 답은 아니었다.

대상자의 정신적인 부하.
연결되는 사람의 정신적 대미지.
그리고 본인의 마력과 술식.


거기에 더불어 파훼하고자 하는 마법에 대한 저항까지도.

그런 것들을 서너 명의 마도사가 진행하는 광경은 회귀 전에 본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부하를 혼자 감당한다고? 사람인가 싶다, 진짜.’

헛웃음을 흘리며, 은가람은 한주희가 갇혀 있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안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로 또 하나의 자신과 싸우는 한주희를 마주할  있었다.



“……뭐 하냐, 너?”

“헉……허억…! 이런 씨발! 하필 왜 니가 온 거야?!”


“……?”


구해주러 와도 지랄일세.


그렇게 생각하는 그.


설마하니 천하의 한주희가 이런 트랩에 놀아날 것이라 여기지 못했던 그였다.

‘아직까지 그렇게 성장하지 않은 건가…? 아니면…… 나 때문에 미래가 바뀌기라도 했나…?’



분명 한주희라면 이 정도의 도플갱어는 무리 없이 알아챌  있어야만 했다.

회귀 이전 그가 봐 왔던 한주희는 그랬으니까.
무식하면 무식했지, 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무식함’을 충분히 상쇄할 정도로 그녀의 능력은 뛰어났다.


‘이전에는 자신의 동생…… 그러니까, 한아름을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악착같이 타워를 올라갔었지? 한아름이 죽는 시기가 이미 지난 건가…?’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강해졌던 거라면, 한아름이 살아있는 지금은 그보다 훨씬 약할 수 있었으니까.

“하여간…… 곤란하게 하네.”



이제 와서 한아름을 죽여버린다고 한들, 자신의 적만 늘어날 뿐.

나지막히 혀를 차며, 그는 인벤토리에서 자신의 검을 꺼내들었다.



“일단, 넌  죽자.”



그리고는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도플갱어의 몸을 한 순간에 양단했다.





***



“뭘 이런 걸로 쩔쩔매고 있냐……?”


“하아……후우……”

가쁜 숨을 몰아쉬는 한주희를 바라보며, 그렇게 내뱉었다.


“정말 의외네? 너 정도면 충분히 도플갱어라는 사실을 알아챌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다른 이들을 죽인게  이상한 건가?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한주희가 입을 열었다.


“그딴건 진즉에 알고 있었어…후우……  새끼들이 가짜라는  정도는!”


“어…? 그럼  그렇게 상처투성이인데? 누가 봐도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한 모습인데.”

“당연하지! 일방적으로 쳐맞은 게 맞으니까!!”

신경질을 잔뜩 부리며,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오! 염병할, 진짜! 내가 왜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는 거야?! 씨발!!”

“……야, 욕좀…”


“너어!!!”


“!!”

후욱!


순식간에 내 눈 앞까지 접근한 한주희.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나는 벽면으로 몰린 상태가 되어 있었다.


“후우…하아……!”
“야, 일단은 숨좀 고르고……어…?”


그러고 보니 전투는 진작에 끝났는데?


한주희의 체력을 생각해 보면 아직도 숨을 몰아쉬는  이상했다.


‘아니, 오히려 일반인이라도  정도는……?’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그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아……!하아…!”
“자,잠깐만! 너 지금 숨이……”


“후후……흐… 내 숨이 왜…? 후…하하……! 뭐  물어보자…?”

“……?”

한주희는 인벤토리에서 자그마한 하나의 병을 꺼내 들었다.



‘저건 분명……?’



어디서가 본 기억이 있었다.

바로 얼마 전 샤오레이에게서 받은 묘약.


거래의 성사를 위해 그에게서 건내받은 것이었고, 당연히 연에게 먹이지 않은 채로 인벤토리에 박아 뒀던 물건이었다.




‘근데 저게 왜 한주희의 손에……… 잠깐만.’


뭔가 잘못되었다.

다분히 본능적인 직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아니, 이건 잘못된 정도가 아니었다.

‘좆됐다!’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걸… 이걸 나한테 줬다는 건, 그런 거겠지? 결국 너도 나와 똑같은 거겠지, 앙?!”


한주희는 약해진 것이 아니었다.
성장이 더뎌진 것도 아니었다.


“자,잠깐만 진정하고……!”
“닥쳐, 씨발! 진정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여긴 우리  뿐이라고…? 영악한 놈, 분명 노린 거지? 그렇잖아???”

“이런 미친!!”

한치의 망설임 없이 웃옷을 벗으려는 한주희.

하나 둘씩 풀어져 가는 그녀의 단추와, 입맛을 다시는 그녀의 풀린 표정을 보며,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이럴 때가 아냐!’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는 어떻게 되든 문제가 터진다.


바깥에 있는 다른 동료들의 안위도 안위였지만, 그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먹힐까 보냐?!’




거칠게 내 옷깃을 붙잡는 한주희를 바라보며, 나는 스킬을 발동시켰다.






***




[흐음…… 이거, 우리 아이들을 처참하게 죽여 놨는걸…?]


“사…삼각수…!”
“삼각수인데 지능을 가지고 있다니…… 쉽지 않겠군.”

기다란 여덟 개의 다리와, 인간 여성의 상체.

중급 몬스터 아라크네의 등장에, 세바스찬과 이현진, 그리고 한아름은 얼굴을 굳혔다.


단순히 중급 몬스터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바로 조금  까지만 해도 같은 개체, 그것도 더 큰 사이즈의 개체들을 여럿 상대했던 그들이었으니까.

보다 작은 크기임에도 그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다름아닌 뿔의 갯수 때문이었다.


“그래봐야 한 마리야.”
“……방금 그 발언, 뭔가 위험한 발언이지 않냐?”


“헛소리 할 여유는 있나보다, 이현진?”



한아름은  손의 떨림을 억누르려 힘을 불어넣었다.


라이칸슬로프에 이어 오우거와 리저드맨, 그리고 아라크네에 이르기까지.

이미 그들의 체력은 바닥을 보이고 있는 상태였다.

“어쨌거나 나머지 인원들이 나올 때 까지는 버텨야만 한다. 둘 다 긴장해.”

“그래야지.”
“그럴 생각이었어!”

낮게 혀를 차는 이현진.

그들을 바라보며 아라크네는 가소롭다는 듯이 입매를 말아올렸다.




[가소로운 것들. 이 곳에서 영원히 썩어가도록 해라!]



촤아악!


“온다!”



빠르게 쇄도하는 은색의 거미줄.


앞서 다른 아라크네들의 공격을 받아낸 적이 있었기에 셋은 각자 산개하며 몸을 피했다.


[어딜!]


촤자자작!

“?!”

마치 각각의 실이 자아가 있는 듯, 허공에서 방향을 꺾는 거미줄.

자신을 추격해 오는 공격에 셋은 다급하게 무기를 휘둘렀다.



카앙!
까가강!!



“윽…?!”
“젠장…”


[어머, 고작 그 정도 강도조차 버거워 하는 거야? 설마 앞서 상대했던 내 아이들과 같은 급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마치 단단한 철을 때린 듯한 감각.

한아름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목을 풀었다.

[그럼, 어디까지 도망다닐 수 있나 볼……]

“루미너스 플럭스_Luminous Flux.”


일순간, 옅은 섬광이 조용히 공간을 갈랐다.




일체의 저항을 배제한 채로 속도에 전력을 부은 일격.

본래 어떤 소음도 나지 않아야 할 그의 공격 끝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려퍼졌다.

까아앙!!




[뭣…?! 크읏!]



뒤늦게서야 자신의 뒤쪽으로 도달한 이현진을 발견한 아라크네.


그녀의 한 쪽 다리에 깊은 자상이 생겨났다.



[고작 이딴 술수로……!]




“바이탈 블레이드_Vital Blade.”

슈아악!


기괴하게 꺾여 나가는 그의 도결.

그가 아라크네의 몸통을 스치며 만들어 낸 자상은 총 다섯 개였다.



앞서 3개의 상처만을 만들어 내던 것에 비해 두 보를 더 앞서나간 그.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고, 세바스찬이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슈르드 블레이드_Shewd Blade!”



이현진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수십 갈래로 나뉘어지는 그의 검결.

이현진이 기괴한 도결로 순식간에 도를 흩뿌렸다면, 세바스찬의 경우는 모든 방위를 점하고 날아드는 그물과도 같았다.



스거거걱!!



[캬아아악!! 이런, 미개한 인간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라크네.
한아름은 곧바로 양 손에 힘을 불어넣으며 두 개의 양날도끼를 휘둘렀다.



“뒤져버려, 이 거미새끼야!!”



후우웅- 콰아아앙!!



그녀가 가진 A급 스킬, <학살자의 송곳니>가 정확하게 아라크네의 목에 적중했다.


거의 동시에 일어난  명의 합공.




이현진과 세바스찬은 자신들의 승리를 예감했다.

그러나 한아름은 아니었다.



‘……?! 공격이……들어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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