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100. 꺾이는 마음과 꺾고 싶은 마음
“아아!! 염병할, 이거 다 가짜라고!”
한주희는 그렇게 소리쳤다.
분명, 스스로도 그렇게 인지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 열이 뻗쳤다.
‘어떤 새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딴 트랩 만든 새끼, 내가 족치고 만다! 씨발!’
속으로 그렇게 욕지거리를 내뱉는 그녀.
그런 그녀의 주변에는, 동료들의 모습을 한 ‘무언가’의 시체가 즐비하고 있었다.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
자신이 끔찍이 아끼는 동생 한아름과, 최근 들어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은가람.
그 둘이 문제였다.
“씨발, 진짜!”
투화아악!
뻗어지는 그녀의 주먹에서, 공기가 압축되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를 악물어야 할 정도로 강한 결단이 담긴 주먹.
그러나, 끝내 그녀는 방향을 틀었다.
“젠장!”
당연하게도 빗나가는 그녀의 공격.
그리고 그 빈틈으로, 은가람과 한아름의 모습을 한 마물이 공격을 해 왔다.
까앙! 캉!
“크읏…!”
하나 둘씩 늘어 가던 상처가 어느덧 그녀의 전신을 덮어가고 있었다.
‘젠장할, 고작 이딴 술수에 왜 휘둘리는 거냐고?!’
사실 다른 이들이야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상대가 진짜가 아닌 ‘도플갱어’라는 사실을, 그녀는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한아름과 은가람을 죽이는 것에는 계속해서 망설이게 되는 그녀였다.
‘씨발, 같잖은 것들이 되지도 않는 흉내나 내고 말이야!’
사실 그 점이 가장 열받았다.
나름 소중한 이들의 얼굴을 뒤집어 쓴 채로 자신을 공격하는 것.
비록 정신세계가 독특할 지는 몰라도, 그녀 역시 사람이었다.
“쯧……! 이대로 가다간 영영 끝나지 않겠어!”
이미 타이머는 끝난지 오래.
그럼에도 공간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것은 대상의 불안감을 촉진시키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으니까.
꽈악…!
주먹을 말아쥐며, 그녀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대로 방어만 하는 것이, 당사자들에게는 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곧바로 몸을 날려 근처에 있던 한아름에게로 접근했다.
“아름아, 미안하다!”
“언니!”
단말마를 내지르는 도플갱어.
한주희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뻗어 상대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퍼억!!
이번에는 제대로 적중한 그녀의 공격.
진심을 한가득 담은 주먹이었기에, 상대의 머리는 속절없이 터져 나갔다.
“후우……!”
이제 남은 것은 은가람.
한 손에는 화염 계열의 마법을, 그리고 나머지 손에는 새까만 단도를 역으로 쥔 그는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언제든 공격할 수 있도록.
“그래…… 아름이 모습도 처리했는데, 너라고 못하겠냐?!”
줄곧 싸우고 싶었던 상대이지 않던가.
그렇게 떠올리며, 그녀는 은가람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
두근-!
상대의 얼굴을 가까이 한 순간, 그녀는 다급하게 몸을 뒤쪽으로 물려야만 했다.
다시 한 번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녀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은가람.
“대체 뭐냐고, 진짜아!!”
자신이 이런 사람이었던가?
물론, 이제껏 누군가를 이성적으로 좋아해 본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이상하잖아!’
주변에서는 좋아하면 설렌다느니, 머리에서 종이 친다느니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적어도 이건 아니었다.
해도 해도 정도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거기다 상대는 가짜라고! 왜 가짜한테도 반응하는 건데?!’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다시 한 번 공격을 감행했다.
외모만으로 그런 감정에 휩싸이는 자신을, 그녀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공격은 제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런 쌰아아아앙~!!”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는 한주희.
과도한 호감과 설렘, 그리고 그녀의 두 눈에 보기좋게 씌인 콩깎지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도 끈질기게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사실상 트랩이 발동하기 전부터 시작된 증상.
그것이 자신이 포션이라고 생각하고 마신 묘약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의 외로운 사투, 자신과의 싸움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
낙후된 건물과 어우러지는 칙칙한 분위기.
언뜻 자유로워 보이지만, 통제된 채로 살아가는 아이들.
부모 없이 버려진 그들은, 그런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삶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은, 그녀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 그녀도 그런 흔하디 흔한 고아원에서 자라났으니까.
그리고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녀는 한층 더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어?”
“저게 뭐야!”
“마녀다, 마녀!!”
그녀를 발견하자 신이 난 듯 뛰어다니는 아이들.
철 없는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녀의 가슴에 날아와 박혔다.
자신은 마녀가 아니라고, 그저 태어날 때 부터 이랬을 뿐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그녀.
그럼에도 그 당시에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말을 꺼냈다간, 정말로 그들이 자신을 떠나버릴까 두려웠다.
“마녀래요, 마녀!”
“머리 하얀 마녀~!”
“으악, 괴물이다~!”
철없는 그들의 놀림.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하는 자신은, 그렇게 죄인이 되어 구석으로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때 즘이면, 고아원의 어른이 중재를 시키곤 했다.
그러면 못 써요! 같이 놀아야지─ 와 같은 진부한 말을 내뱉으며.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마녀가 이런 곳에는 무슨 일이냐!”
“……”
“감히 네가 무슨 낮짝으로 여길 와?! 꺼져버려!”
오히려 화를 내는 원장.
예전의 그녀였다면, 분명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분명 자신이 잘못한 것이라고, 그렇게 되뇌이면서. 어떻게든 스스로를 바꾸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아냐.”
“……?”
“난 마녀가 아냐. 그저 이렇게 태어났을 뿐.”
“그런 것 따위, 우리와 무슨 상관이지?”
“그래, 아무런 상관도 없겠지. 하지만…… 지금이라도 말하고 싶었어.”
처연하게, 그녀는 말을 내뱉었다.
조금만 더 일찍 용기를 냈었다면.
그랬다면 자신의 인생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그런 사색에 잠기는 그녀에게, 원장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조금 전과는 다른 어조.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 역시도 그 자리에 선 채로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우린 단지, 네가 무서웠을 뿐이다.”
“알아.”
“생긴 것도, 생각하는 것도 우리와는 너무 다른 너를…… 우리와 똑같이 생각할 수는 없었다.”
어릴 때, 그들은 자신에게 있어서 사랑받고 싶은 존재였었다. 자연스레 그들을 자신보다 강자라 여겼고, 그랬기에 더 노력했다.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더 밀어낸다는 사실을 모른 채.
“하지만 지금은, 납득할 수 있어. 나는 너희들과 다르니까. 선택을 받았으니까.”
그들에게 자신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인정하는 라우라를 향해, 원장은 한이 맺힌 목소리로 물었다.
“그것이…… 그렇게 큰 잘못이었는가?”
아이들도 그에 따라 말을 내뱉었다.
“맞아! 난 억울해!”
“내가 왜 죽었어야 해?”
“우리가 죽을 죄를 진 것도 아닌데!”
“안 그래도 가족 없이 자란 우리인데. 그런 죽음은 불합리하잖아!”
“──이 괴물아!”
“……”
피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절규하는 그들.
라우라는 아무런 말을 내뱉지 못했다.
정말로 그들은 죽어야만 했을까.
어쩌면 그들의 말이 맞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녀는 그렇게 조금씩 흔들려 갔다.
“나도…… 나도 그러고 싶지는…”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를 그런 말을, 그녀가 내뱉으려고 할 때였다.
“우리도 죽고싶지 않았다고!!!”
“……!”
한 목소리로 절규를 내뱉은 그들은, 그 자리에서 그렇게 죽어갔다.
아주 오래 전,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제대로 된 해명도, 사과도, 혹은 가식적인 감사마저도 듣지 않은 채로.
그렇게 그들은 사라져 갔다.
그리고……
“신경쓰지 마라. 그들은 약자일 뿐. 네 가족이 아니었다.”
또 다른 목소리가, 그녀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살바토리오님……?”
돌아 본 곳에는 처음 자신을 찾아왔던 코사 노스트라의 간부, 살바토리오가 서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아원에 있던 그녀는 어느새 시칠리아의 어느 거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약자. 너와 같은 강자를 두려워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강자가 약자를 배려할 이유는 전혀 없지.”
“그렇…습니까?”
“네가 있을 곳은 코사 노스트라다.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것은 그녀가 오래 전 들었던 말이었다.
처음 고아원을 떠나던 날.
자신이 처음으로 타인을 죽였던 그 날.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넌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다.”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던가.
아무런 감정 없는 말이라 한들, 한 없이 어린 소녀에게 그것은 너무도 따스하기 그지없었다.
시간이 흘러 그런 철 없는 감정에 무뎌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 한 곳에서는 그런 욕구가 남아 있었다.
나도 누군가의 가족이었으면.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으면.
그런 기분을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래…… 여기가 내가 있을 곳.’
그녀는 그렇게 추억 속으로 잠겨 갔다.
하지만─
“─아니, ‘가족이었다’가 맞겠지.”
“……?”
추억에 젖어가던 그녀를, 차가운 목소리가 끌어올린다.
잠시의 안락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그의 목소리에 죽음의 향기가 덧입혀진다.
만신창이가 된 살바토리오의 모습.
죽음을 앞둔 그의 모습이 라우라의 눈 앞에 비쳐졌다.
“그들의 말이 맞았어. 거둬 준 은혜도 모르고…… 그렇게 배신을 하다니.”
“아……아냐…”
애써 목소리를 내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결국 넌 살육을 즐기는 역겨운 괴물이었을 뿐이야!”
“아니야!!”
세차게 고개를 흔들며, 그녀는 그렇게 소리쳤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고? 거짓말! 넌 그저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야. 너 스스로가 그들을, 그리고 우리들을 죽이고 싶었던 거라고!”
“아냐, 아니라고! 그만해!”
“그만? 하! 웃기는 소리! 네가 똑바로 했다면 우리는 죽지 않았을 텐데?!”
“그만……제발 그만…”
양 귀를 막으며, 그녀는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아무런 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난…난 그저……”
애써 변명하는 그녀에게,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되물었다.
“그저 뭐?”
“……?”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목소리.
퉁명스러우면서도 앳된 그 음성을, 자신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누구였더라……?’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모든 기억들이 조각조각 흩어져 어지러이 점멸했다.
두 눈을 뜬다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가슴 깊이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끝없이 솟아올랐다.
─적어도, 그에게만은 미움받고 싶지 않아.
그런 마음에 가슴 한 켠이 시리도록 아팠다.
“결국 또 외면하는구나. 그렇게, 또 도망가려는 거겠지.”
“……”
“난 네가 나와 비슷한 줄 알았어. 나와 같은 아픔을 겪었다고, 그러니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여겼지.”
분명 있었다.
자신과 한 없이 비슷한, 그런 존재가.
그러나 그게 누구였는지, 어디서 만난 사람이었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눈을 감는다고 네 죄가 씻겨지진 않아.”
“……!”
문득 불안한 마음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
자신의 바로 코 앞에 다가선 소년.
시리도록 새하얀 은발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었다.
“서현……”
“이제 좀 보이냐? 네가 무슨 짓을 저질러 왔는지…… 이제야 그 자각이 들어?”
“무슨…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래선 안되었는데.
적어도 그에게만은, 이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을 향한 그의 말투는 한 없이 차갑기만 했다.
“나……나는……”
뭐라도 변명해야만 했다.
한 마디라도, 그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가만히 있다가 이전에 그랬던 것 처럼 그 마저 잃기는 싫었다.
“듣고싶지 않아, 괴물─”
“……!”
그러나 은서현은, 그렇게 등을 돌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국 그녀의 주변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자라 온 고아원도, 거둬 줬던 코사 노스트라도.
그 누구도 남지 않은 차갑기만 한 고독.
제 아무리 산전수전을 겪은 그녀였다고는 하나, 고작해야 15살의 어린 아이가 버틸 만한 것이 아니었다.
선택자이며, 코사 노스트라의 그림자이기 이전에 그녀는 사람이었다.
사람이자,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두 다리를 끌어안았다.
양쪽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채로, 그렇게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들을 사람 하나 없는 장소였지만, 그럼에도 그 누구도 듣지 못하게.
조용히 흐느끼며, 그렇게 무너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