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4화 〉84. 고군분투 (84/114)



〈 84화 〉84. 고군분투

아티팩트- 『기억파편』.

회귀 전에도 들어 본 적은 있었다.

대상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아티팩트.

언뜻 보기에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가진 여파는 엄청났다.

그렇게 조작된 ‘기억’은, 고스란히 ‘경험’으로써 자리잡게 되니까.

누군가에게트라우마를 심어 주거나, 혹은 인위적으로 경험을 부여하여 단기간에 힘을 증폭시킬수 있는, 그야말로 사기적인 아티팩트였다.

‘기회를 봐서 선수를  생각이었는데……’

만약 진짜로 기억파편이 맞다면, 그것을 갈취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이익이라고 할  있었으니까.

조금 더 나아가서, 기억파편을 이용해 이 녀석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생각을 바꿔야 했다.

“야, 하나만 묻자.”

나는 아티팩트의 봉인을 풀기 위해 다가서는 성유리에게질문을 건냈다.

“굳이  많은 인원을 데리고 온 이유가 있어?”
“무슨 의미야?”

“단순히 아티팩트를 가동하는  만이라면 다른 A급 헌터들이 굳이 필요했나, 싶어서 말이지. 기억 파편의 가동 자체는 혼자서도 가능한 거잖아?”

그런  의문에 옆에서 듣고 있던 우앙  후에이가 답했다.

“무슨 헛소리를하는 거야?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
“……?”

“협회에서 감지한 이 던전의 규모를 생각해 보라고, 이 멍청한 놈아! 이 정도의 던전을 딸랑 두세 명이서 공략하겠다고 한다면,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겠냐?”

“단순한 눈속임이다?”

그의 말을 타카하시가 거들었다.

“거기다 게이트의 입구를 봉쇄할 인원도 필요했지. 이상하네. 베르톨도가 그런 것도 설명하지 않고 너를 보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

그녀의 말에 녹아든 가시를, 나는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정말로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 말야.”

서서히 피어오르는 살기.

단순히 S급 세명 뿐만이 아닌, 다른 A급 헌터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아…… 이건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은색의 단도를 꺼내들며, 곧바로 팔을 휘둘렀다.

스아악-

“……?!”

미미하게 발생한 소음.
그리고 잠깐의 틈을 두고, 근처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촤아아악!!

“뭐 하러 왔겠냐? 너희들이 아티팩트를 가동하는 걸 막으러 왔지,  멍청한 것들아.”

*


“이, 개자식! 뭐 하는 짓거리야?!”


자신이 가진 창 끝에 마력을 끌어모으는 우앙  후에이.

그에 아랑곳않고 은가람은 인벤토리에서 또 하나의 단도를 꺼내들었다.


“새삼스럽네? S급이라고 해서 좀  똑똑할 줄 알았는데…… 역시 마피아 새끼들한테 휘둘리는 놈들이라, 그건가?”

“넌…… 역시 베르톨도가 보낸 게 아니었군!”

“당연하지? 안 그러면 굳이 아티팩트의 가동을 막을 이유가 없잖아?”


말과 함께 그는 몸을 날렸다.

탓-

내가 서 있던 자리로 쇄도하는 십수 개의 칼날을 피해내며, 나는 아티팩트가 봉인되어 있는 곳으로 접근했다.


“어딜?!”
“?!”

스아악- 까아앙!


곧바로 막아서는 성유리.
목을 노리고 날아드는 거대한 차크람을 은가람은 간신히 막아냈다.


뒤이어 날아드는 타카하시의 태도(太刀)를 칼날로 흘리며, 계속해서 몸을 날리는 그.

하지만 그는 아티팩트에 도달하지 못했다.

“?!”

후우웅-!

퍼억!!

“끅……!”

빠르게 접근한 우앙 천 후에이가 긴 창날로 그의 복부를 후려친 것이다.

5미터 정도를 날아간 그는 몇 번이나 구르고서야 몸을 멈춰 세울  있었다.

“쿨럭…!아오…… 겁나 아프네…”

다행히 어디부러진 곳은 없는  했지만, 전투의 양상은그리 좋지 못했다.
순식간에 몰려든 A급 헌터들이 그의 몸을 붙잡았다.

제 아무리은가람이라고는 해도, A급 헌터 십수 명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하! 이 멍청한 새끼가 말야.”


붙잡힌 은가람을 바라보며 우앙  후에이는 웃음을 흘렸다.

붙잡힌 은가람에게 다가선 그는 은가람의 머리칼을 쥐고 흔들어댔다.

“이 띨빡 새끼야. 넌 우리가 좁밥으로 보이지? 어디 덜떨어진 한국인 새끼가 말야.”
“젠장……!”

“왜? 무슨 할 있냐? 이제와서 목숨이라도 빌어 보게?”

“지금이라도 멈춰…! 저걸 가동해 버리면…!!”


절박한 은가람의 말에 그는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뭐? 푸하핫! 진짜 생각 없는 놈일세? 이제 와서 우리가 니놈 말을 들을 거라 생각하냐?”

“그만 둬! 너희들은 다 속고 있는 거라고!”

“뭐라는 거야? 아~ 그래! 널 살려두는 것도 좋겠는데? 이렇게 편하게 죽는것 보다야, 균열을 통해 넘어오는 마물의 손에 찢기는게 더 재미있지 않겠어?”

“아…안돼! 제발!”

“병신이 나대기는. 야, 빨리 가동시켜! 뭘 꾸물대는 거야?”


절박한 그의 외침을 무시하며, 타카하시는 아티팩트의 봉인을 풀어 가동시켰다.

마력을 머금은 아티팩트로부터 묘한 기운이 흘러나오며 주변으로 퍼져 갔다.


“제기랄……! 난 나가겠어!”

공략의 포기를 시도하는 은가람.
그의 귀에, 차가운 타카하시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소용 없어. 들어 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입구가 봉인된 이상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나갈 수 없으니까.”

“뭐라고……?”

“넌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 밖에, 선택지가 없다는 거지.”

차갑게 내뱉는 그녀.
은가람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미친 놈들아! 그러면 너희들도 전부 뒤진다고?! 제정신이야?!”

“아니, 죽는건 너 혼자뿐이야.”
“후훗…… 너무 안일하게 들어온 거 아니니? 일반적인 방법으로 나갈 수 없다는  뿐이지, 우리는 나갈방법이  있거든?”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에 장착된 반지를 보여주는 타카하시.

다른 헌터들 역시도 같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이건 인위적으로 던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이거든. 일회성이긴 하지만 꽤나 쓸모가 있지. 이미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이 안에 없다는 소리라고, 멍청아.”

그렇게 말하며 우앙  후에이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다른 헌터들에게 말했다.

“자, 슬슬 가자고. 우리 먼저  있을 테니까, 적당히 묶어두다가 나와. 괜히 반지 뺏기지 말고. 알았냐?!”

“예,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일제히 목소리를 모으는 헌터들.
그런 그들의 대답을 들으며, S급  명은 자신의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어?”

이내 들려오는 의아한 목소리에, 은가람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왜? 무슨 문제라도 있냐?”

비릿한 미소와 함께 나는 놈에게 물었다.

“이런 썅…!  짓을 한 거야?!”

퍼억!

빠르게 돌아가는 고개.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 쯤은 다 예상하고 있었거든.’

입가에 흐르는 핏물을 뱉어내며 나는 이죽거렸다.

“내가 뭘 했다고? 말했잖아? 너네 다 속아 넘어간 거라고.”

“뭐……?”
“애초부터 니들이 가동시킨 저건 기억파편이 아니야, 이 병신들아. 그 반지도 제대로 된게 아닌 건 뻔한 소리지.”

“그,그럴 리 없어!”
“이건 무슨 문제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A급 헌터들이 가장 먼저 패닉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나는 쐐기를 박았다.

“니들은 다 속은 거야! 처음부터 베르톨도는  자리의 전부를 죽일 생각이었다고.이제 좀 상황 파악이 되냐?!”

 말에 우앙  후에이는 내 멱살을 틀어쥐며 소리쳤다.

“이런 염병할!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거냐?!”

“풋……! 딱 보면 모르냐? 하긴, 기억파편을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놈들이 진위 여부를  길이 있나?”

“씨발, 그러면  진즉에 말하지 않고……!”

“넌 대가리에 총 맞았냐?”

“……뭐?”
“내가 아직도 너네랑 같은 배를 탄 걸로 보여? 니들이 죽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이, 개자식!”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창을 고쳐쥐는 그.

그의 손을, 성유리의 목소리가 막았다.

“잠깐! 그러면…… 이 아티팩트에 대해 너는 알고 있다는 거야?”
“알고 있지. 아까 말해 줬을 텐데?”

“아까……? 설마…”

“그래, 아마 그 보스룸 안에 각수들이 떼거지로 봉인되어 있겠지? 흘러나온 마력량을 보면 던전 안의 다른 몬스터들도 변이를 일으킬 테고.  정도의 인원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네?”

“그렇다는 건……!!”

“여기서 전부 개죽음 당할 확률이 9할 이상이라는 거지.”

*

파지직……콰직! 콰가가각!


“저…저건…!”

협회 소속의 S급 헌터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간 지  8시간.

게이트의 크기가 점차 늘어나며 주변의 건물들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설마, 던전이 균열을 일으킨 건가……!”
“그럴 리 없어! 안쪽에는 S급 헌터가 세 명이나 있을텐데?”

“하지만 게이트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건, 던전의 등급이 점차 올라가고 있다는 거 아닌가?”

반신반의하는 사람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은 분분히 게이트에서 멀어져 갔다.

일사분란하게 몸을 물리는 사람들의 틈에서, 조용히 자신의 마력을 가다듬는 이들이 있었다.

“정말로, 던전이 균열을 일으키는 걸까요?”

“그 돌대가리가 그랬다면 그렇겠지. 다들 긴장하는게 좋아.”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가람이 형님은……!”

목연우의말에 현화는 대답을 아꼈다.
분명 엄청난 재능을 보이는 은가람이기는 했지만, 이 정도 규모의 던전 브레이크에서 살아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제발, 살아만 있어라…!’

그저,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 처럼 무사하길 바라는 것이 그녀가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들 긴장혀라! 고놈 말대로, 진짜로 균열이 일어날 같으니께!”

점차 팽창하기 시작하는 게이트를 바라보며 한진우가 목청을 높였다.

월영 아카데미의 교사, 한진우와 정운성.

단순히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세바스찬과 한주희를 비롯한 은가람의 동료들과 한진우의 제자인 강헌권.

거기에 성백 아카데미의 교장인 백설하와 이진명까지.

그들이 모아 온 다른 헌터들까지도 저마다의 애검을 꺼내들며 마력을 가다듬었다.


언제 던전이 균열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그 속에서, 팽창하기만 하던 게이트에 변화가 생겼다.

쿠르륵…쿠륵!
파지지직!


짙은 마력이 서로 충돌하며 스파크를 자아내기 시작했다.

처음 미미한 떨림으로 시작된 그것은 점차 큰 폭으로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게이트의 중심부에 빨려 들어가듯 수축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크읏…! 다들 조심해!”
“버텨!”

마치 작은 블랙홀처럼 보이는 게이트.
수 초 동안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던 그것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자취를 감췄다.

마치 그 자리에,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 처럼.

거대한 형태의 구가  자리를 찍어버리기라도  듯, 텅 빈 공간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설마…… 클리어 된 건가?”
“그렇다면 그 헌터들은……”

“게이트가 사라져 버린 건……”

설마 하는 심정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들을 향해, 이진명이 소리쳤다.

“다들 뒤로 물러나! 균열이 열렸다!”

“……!”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하나의 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간 자체에 금이 가며, 그 속에서 붉은 빛의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제…제기랄!”
“진짜로 던전 브레이크가……!”

“전원 전투 준비!”

공간의 틈새를 비집고나오는 마물들.


한 마리가 틈새를 빠져나오자, 벌어진 균열 사이로 수십 마리의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크르르르……!]
[키에엑…! 키이익!]


평범한 마물과 달리, 머리에 저마다의 뿔이 달린 각수.

자신들을 에워싼 헌터들을 발견한 그들은본능적으로 적개심을 피워 냈다.

 개의 뿔을 가진 개체부터  개의 뿔을 가진 삼각수까지.


이진명은 이번 전투가 결코 쉽지 않으리라고 직감했다.

그런 그의 생각에 대답하듯, 각수들은 자신이 적이라고 판단한 헌터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캬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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