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85. 실종
[크어어어……!]
“헬 플레어_Hell Flare!!”
화르르르륵!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트롤을 향해 고위마법을 시전하는 차현화.
녹아내리는 트롤의 뒤편에서, 머리에 뿔을 두 개씩 단 링들이 그녀를 덥쳐갔다.
“신풍, 폭렬권!”
콰아아앙!!
그런 그녀의 앞을 재빠르게 막아서는 한진우.
앞으로 내뻗어진 그의 손 끝에서 권풍이 터져 나오며 링들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허억…! 옘병할, 뭐가 이리 많은 거시여!”
“말 할 시간에 한 마리라도 더 잡아요!”
“알고 있당께!”
A급 헌터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한진우와, 마법적인 재능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차현화.
단지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월영에서 당해낼 학생이 없다고 알려진 한주희라던지, 최근 급성장을 이뤄 낸 이현진.
골든 헬리오스의 중급 기사였던 세바스찬.
심지어는 진명그룹의 이진명 회장과 그의 집사인 최 현집사 마저도 전투에 참가한 상태였으니까.
한 명 한 명의 전력을 생각한다면 ‘고전’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그들이었음에도 상황은 마냥 좋지않았다.
던전의 균열 사이로 넘어 온 몬스터들은, 이제까지 그들이 마주해 왔던 평범한 몬스터와는 차원이 달랐다.
머리에 뿔이 달린 각수들.
한 마리 한 마리가 최소B급에서 A급에 달하는 개체들이었다.
더군다나 균열을 통해 넘어 오는 몬스터는 끝이 없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제 아무리 뛰어난 헌터라고 해도 점차 체력이 떨어져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는 수에는 한계가 있었으니까.
“이런, 썅! 그 개자식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서현아, 뒤에!”
“알고 있다고!”
스아악-!
[캬아아악!]
어느덧 2백여 마리에 달하기 시작한 몬스터들.
헌터들이 놓친 주변의 건물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인명피해마저 발생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합류한 다른 헌터들로 인해 몬스터들이 더 퍼져 나가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으나, 그리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
모두의 얼굴에 조금씩 그림자가 져 가고 있을 때였다.
[키에에에엑!!]
[크르르르……]
“……?!”
발광하듯 날뛰던 각수들이 그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쿠웅……!
털썩!
“……뭐지?”
마치 전원이 차단되기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런 그들의 뒷편에서, 온 몸을 붉게 물들인 마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언뜻 보면 사람의 실루엣을 가지고 있었으나, 바닥까지 닿은 긴 팔과 큰 덩치, 그리고 피칠갑을 해 놓은 듯 새빨간 피부는 기괴함마저도 느껴질 정도였다.
무엇보다, 눈이 없이 입만 존재하는 얼굴, 그리고 몸의 곳곳에 울긋불긋 솟아 있는 얼굴 모양은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소울 이터…?!”
“젠장, 상급 몬스터라고……?!”
이제까지는 그래도 하급 몬스터들이었기에 뿔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나름 상대할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죽은 이들의 영혼을 먹는다는 소울 이터는 상급 몬스터.
절망감을 느끼는 헌터들을 향해, 소울 이터는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영혼들이라……! 벌써 군침이 도는데?]
“마, 말을 하잖아!!”
“젠장…! 상급 몬스터인 것도 엿같은데, 삼각수를 어떻게……!”
대다수의 헌터들이 죽음을 직감한 순간.
조용히 앞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었다.
190에 육박하는 거구.
“이봐, 철댕이! 혼자서 뭘 하려고?!”
S급 헌터, 이진명이었다.
그는 자신을 막아서려는 차현화에게 말했다.
“혼자서 충분하다. 아니,오히려 수를 줄여줘서 고맙다고 해야겠군.”
“……뭐?”
현화를 비켜 지나가는 그의 손 끝으로, 진득한 마나가 모여들었다.
[호오……? 꽤나 실력이 있는 녀석인가 보군. 아주 탐나는 힘이야……]
그런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소울 이터.
얼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입에서 군침이 흘러내렸다.
입맛을 다시는 놈을 향해, 이진명은 나지막하게 한 마디만을 내뱉었다.
“죽어라.”
[흐흐흐…! 그래봐야 너도 한낱-]
스스스-
[?!]
긴 잔상과 함께, 순식간에 소울 이터의 앞으로 도달하는 이진명.
갑작스런 그의 움직임에 소울이터의 손이 그에게로 뻗어져 나갔다.
까앙-!
[뭣?!]
그러나 마치 강철이라도 때리듯, 소울 이터의 손은 이진명의 몸에 맞고는 튕겨져 나갔다.
『철혈금강』이라는 이명.
그의 자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킬, 금강불괴가 시전되고 있었다.
[어,어떻게?!]
“하앗……!”
붉게물든이진명의 오른손이 소울 이터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푸화악-!!
소울 이터의 얼굴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푸콰악!
파바바박!
그로부터 시작된 파동이 목을 거쳐, 점차 아래로 전달되며 몸을 조각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털썩!
“후우……”
상급 몬스터, 그리고 지능을 가진 삼각수라는 엄청난 스펙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렇다 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로.
이내, 온 몸이 산산조각난 소울 이터는 그 자리에 세 개의 뿔만을 남기고는 사라져 갔다.
낮게 숨을 고르며, 그것을 바라보던 이진명.
잠시 후 그가 몸을 낮춰 뿔을 회수하자, 굳어 있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이……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역시 S급은 다르다, 이건가……?”
“끝난 거야……? 우리 살아있는 거지?”
조금 전 까지의 치열한 사투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살았어, 살았다고!”
“드디어 끝났다!!”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냈어!”
죽지 않았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 하나로 환호성을 지르는 헌터들.
그런 그들의 머릿속에, 게이트 안으로 들어섰던 원정대, 그리고 은가람에대한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현화 쌤……”
멍한 표정으로 게이트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는 차현화.
그런 그녀에게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아름이 다가와 말을 건냈다.
근처에 있던 다른 학생들 역시도 하나 둘 모여들었다.
“설마…… 이대로 죽은 건 아니겠죠?”
“가람이 형이라면, 분명 괜찮은…거겠죠?”
“분명 괜찮을 거야. 분명, 그 돌대가리 자식이라면…… 어디선가 또 멀쩡하게…”
자신 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말을, 현화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라도 은가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분명 돌아올 거야. 분명……”
갑작스레 한국에서S급 게이트가 붕괴를 일으켰던 날.
그 날은 기적적인 헌터들의 활약으로 던전 브레이크를 막아낸 날이기도 했으며……
──은가람이 실종된 날이기도 했다.
*
“쿨럭…!크윽……!”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던 지점에서 꽤나 떨어진 곳.
만신창이가 된 남자는 부러진 자신의 창을 내던지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이런 개같은 일이……!”
빠드득 이를 가는 남자.
당시 던전 안에 있던 대부분의 헌터들이 죽었다.
A급 전력은 완전히 몰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간신히 도망치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S급인 자신이 이렇게까지 몰렸다는 사실 자체가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유리…! 타카하시! 어디 있냐?!”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이들은 없었다.
‘S급 녀석들도 살아나오지 못한 건가?’
이상할 것은 없었다.
자신들이 가동시킨 아티팩트에서 쏟아져 나온 마물들은, 하나같이 뿔이 두 개 이상의 각수들이었으니까.
그 정도 수라면 오히려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놈이라면…!’
그는 은가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S급 헌터가 죽더라도, 왠지 그 녀석만은 살아남을 것 같았던 것이다.
실제로 마지막 순간, 은가람의 스스로의 마력을 이용해 던전을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도 그 틈새를 비집고 나올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럴 리 없어. 성유리나 타카하시도 나오지 못했는데, 그런 놈이 살아났다고? 말도 안 되지.”
그렇게 중얼거리며그는 걸음을 옮겼다.
이제 자신이처리해야 할 적은, 베르톨도 한 명 뿐이었다.
*
“증폭 마법서라……? 증폭 마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다만.”
“가능하다면 등급이 높았으면 하는데요. 전이 마법과 관련된 것도 좋구요.”
“흐음……”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기 삼 일 전.
이진명의 서재를 방문한 은가람은 당당하게 스킬 북을 요구했다.
처음 이현진의 교육을 부탁받았을 때, 이진명은 스킬 북에 대한 지원까지도 약속했었으니까.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던 이진명이었기에 그는 흔쾌히 은가람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일단은 간단하게…… 이 정도가 있을까.”
그가 한쪽 책꽂이로 손을 뻗자, 네 권의 스킬북이 날아와 그의 책상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하나는중복에하위호환이니 제외하고, 이 세 권 중에 필요한 것이 있는가 봐라.”
“어디 보자……”
그의 말에 은가람은 잠시간 스킬 북을 둘러보더니, 그 중 하나를 골랐다.
증폭 계열의 스킬 중에서도, 다른스킬과의 연계점을 강조시킨 스킬이었다.
“이걸로 할게요.”
“필요하다면 더 찾아봐도 좋다. 네게는 빚진 게 많으니……”
“에이, 그건 다음에 또 부탁드릴게요. 언제 또 필요한 스킬북이 생길지 모르니까.”
“예의상이라도 안 받는다는 말은 안 하는군.”
“뭘 새삼스레.”
천연덕한 그의 대답에 이진명은 낮게 웃음을 흘렸다.
한 권 한 권의 가격이 상당한 스킬북이었지만, 은가람이라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증폭 계열일 필요는 있는 건가? 더 강한 스킬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있을 텐데.”
이진명의 물음에 은가람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강한 스킬을 찾고 있는게 아니에요.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
“지금 필요한 건 생존기. 전, 이걸 이용해서 살아남을 생각이에요.”
*
“후우~ 어떻게든 성공한 건가? 생각보다 더 복잡했네.”
인적이 드문 골목.
텅 빈 공간을 비집고 나오며, 은가람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곳곳에 자그마한 상처가 가득하기는 했지만, 그의 모습은 각수들과 전투를 벌인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
‘계획했던 대로라면 시전과 동시에 나올 생각이었는데…… 생각 외로 공간을 여는데 시간이 걸렸단 말이지.’
회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지식과 이론, 그리고 차현화를 통해 배운 지식들.
특히, 전이마법과 관련된 것들을 한계까지 증폭시켜 그는 던전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현화 쌤이라면…… 던전 밖에서도 서너명 쯤은 거뜬히 끌고 나올 수 있을정도이니까, 더 쉽지 않았을까? 하여간 천재 아니랄까봐……”
골드 코스트에서 은서현을 비롯한 일행들을 순식간에 전이시킨 일을 떠올리며 그는 혀를 내둘렀다.
그에게 있어서는 증폭스킬까지 사용한 일종의 도박이었으니까.
만약 그렇게 해서도 공간이 열리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나름 수확도 있었고…… 역시 팀게임은 어딜 가나 탈주가 문제라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는 자신의 상태 창을 띄워 올렸다.
[은가람]
근력: 743(1301) 민첩: 809(1190)
마력: 619(1214) 체력: 680(1000)
[현재 제약_32%]
던전의 붕괴와 함께 그대로 매장되어 버린 A급 헌터들.
하려고 했다면, 자신과 함께 다섯명 정도는 데리고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홀로 빠져나오는 것을 선택했다.
결국 그들은적이었고, 자신이 살려야 할 이유가 없는 이들이었으니까.
그래서일까, 그로 인한 수확은 꽤 쏠쏠한 편이었다.
단순히 제약의 해제 뿐만이 아니라,일부 스킬의 해제까지 있을 정도로.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스테이터스는 회귀 전과 비슷하게 되는 건가?’
되찾은 몇 가지의 스킬들을 둘러보던 그는 이내 시스템 창을 닫으며 기지개를 켰다.
“어쨌건, 한 단락 됐구만. 마지막에 다른 떨거지들까지 같이 나온건 좀 그렇지만, 그래도 현혹스킬을 걸어뒀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다음 번에 만난다고 해도 바로 죽이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런다고 한들, 그 때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나오시지? 이렇게 죽치고 있을 시간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