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72. 시작하기도 전에 게임 터뜨리기
“이건 끝났네.”
“볼 필요도 없겠어.”
백골단 측의 학생들은 경기장 위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머리 하나는 족히 차이가 나는 키.
타고난 장골로 인해 확연히 다른 체급.
무투가에게 더 유리한 환경까지.
백승태가 가진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결과가 정해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래도, 저 녀석도 꽤나 하던데?”
“에이, 그래도 월영이잖아. 유명하긴 하던데, 그것도 마법쪽으로 유명한 거지.”
“하긴…… 그렇겠지?”
“마법사가 비무대에서 뛰어 봐야 뭘 하겠어?”
그런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들으며, 백골단의 단장인 천일호는 침음을 흘렸다.
‘보통 녀석이 아니군……’
앞서 자신의 학생들을 가볍게 제압하는 모습을 보인 은가람.
비록 그 상대들이 그리 강한 녀석들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은가람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않았다.
‘무엇보다 저 투기…… 저런 것이 저 나잇대에서 흘러나올 수 있는 것인가?’
현재의 그 역시도 소싯적에는 꽤나 혈기왕성했으나,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만 쌓을 수 있는 것도 분명 존재했다.
그의 눈에, 은가람의 모습은 고작해야 20대 중후반의 애송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전쟁을 겪어 온백전노장의 모습이었다.
‘다시 일어서기만 한다면…… 승태 놈에게는 좋은 수업이 되겠군.’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백승태의 패배는 확정지어진 상태였다.
*
[시작!]
경기장을 울리는 사회자의 목소리.
백승태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상대를 도발했다.
“어디 한 번……”
객기를 부려 봐라-
그런 그의 뒷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투콱-!
시작과 동시에 땅을 박차는 은가람.
그의 발 끝에서 묵직한 소리가 들리며 땅이 푹- 꺼졌다.
“?!”
퍼어억!!
그리고 백승태가 그것을 채 인지하기도 전에, 은가람의 무릎이 백승태의 안면을 가격했다.
“끄으윽……?!”
백승태의 입에서피가 뿜어져 나오며 자그마한 치아 두 개가 떨어져 나왔다.
“아가리 닫으라 했지? 이빨 다나간다고.”
“이……?! 이 개-!”
후욱- 콰앙!!
가볍게 몸을 회전시키며 다리를 뻗는 은가람.
그의 왼발이 백승태의 안면을 가격하며 또 하나의 치아가 떨어져 나왔다.
“끄으아!! 으아아아!”
입에서 피를 질질 흘리는 백승태.
환호성이 가득하던 경기장에 일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지능이 없냐? 이빨 쳐 다물라고.”
“……!!”
두 눈에 핏줄을 세우면서도 입을 꽉 다무는 백승태.
스스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짧은 순간 각인된 공포는 조금씩 그를 좀먹어가고 있었다.
“뭐, 강하다고 하더니 별 거 없잖아? 뭐 믿고 나댄 거냐?”
“크으……!”
“약해 빠진 새끼.”
그 말에 백승태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죽어도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상대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눈이 돌아간 것이다.
“으아아!! 나는 야카디 아나!!”
새는 발음으로 그렇게 외치며,그는 몸을 날렸다.
은가람이 보여준 것에 비해서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 속도.
큰 체격을 이용해 그는 위에서부터 주먹을 찍어내렸다.
콰아아앙!!
앞서 있었던 몇 번의 경기에서도 흡짐 하나 나지 않던 경기장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어우, 무식하네. 설마 그게 전력은 아니지?”
“으아아아!”
파아앙!!
허공을 휩쓴 그의 주먹에서 압축된 공기가 터져나오는 소리가 일었다.
간발의 차로 공격을 피해내는 은가람.
백승태는 재빠르게 따라붙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연속적이면서도 하나 하나가 위력적인 주먹.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정석적인 복싱 스타일로 은가람을 몰아세워 가는 그.
일순간 승기를 잡아가는가 싶었으나, 은가람은 재빠르게 백승태의 명치를 걷어찼다.
퍼억!
“컥……!”
앞축으로 찌르듯 내지르는 발차기.
순간 숨이 턱 막힌 백승태의 왼쪽 정강이를, 은가람은 있는 힘껏 걷어찼다.
빠악!
앞선 기세가 무색하게 분분히 물러나는 백승태.
두 배에 달하는 덩치를 가진 그가 밀리는 모습은 관중들에게 적잖이 낯선 광경이었다.
짧은 두 번의 공격 이후 여유롭게 상대를 바라보는 은가람.
그것이 백승태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스로가‘약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을 그는 받아들일수 없었다.
“뭐 해? 계속 해 봐!”
“……”
다시 한 번 이어지는 도발에, 그는 말 없이 자세를 낮췄다.
무릎이 직각이 될 정도로 자세를 낮추는 그.
‘거리는 약 3미터…… 죽여주마…!’
한쪽 주먹을 뒤로 빼며 은가람을 노려보았다.
“서,설마……?!”
“여기서 한다고?! 미친……!”
“저 놈 죽는 거 아냐?!”
그의 자세를 본 백골단 학생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갔다.
그들로서는 잘 알고 있는 기술.
그가 가진 위력이 얼마나 강력한지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우우……
처음 미미하게 시작된 옅은 바람이 맹렬하게몰아치며 백승태의 오른쪽 주먹으로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는 압축되듯, 그의 손 끝에 머물렀다.
“백보…신권……!!”
쿠르르릉……!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중후함을 고스란히 담은 채로 내뻗어지는 백승태의 주먹.
상대가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그의 입매에 미소가 감돌았다.
결국 이기는 것은 자신이다.
그렇게 확신하며.
콰아아아아앙!!
엄청난 위력을 발하는 그의 권풍.
관중석을 보호해주는 방벽이 요동칠 정도로 강력한 그 공격을 뚫고, 은가람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확신이 의문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에 백승태는 두 눈을 크게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입꼬리를 말아올리는 은가람.
“왜? 마법 쓰지 말란 법은 없잖아?”
은화마력방벽을 최대한으로 전개해 백승태의 공격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마력이 크게 깎여나가기는 했지만, 전투를 이어나가는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
“씨바…!”
잔기술에 속았다는 기분에 백승태는 분개하며 주먹을 뻗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야에서 은가람이 사라졌다.
“……?!”
아니, 사라졌다 싶은 순간 그의 코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은가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작게만 보였던 상대가 한 없이 커진 기분이었다.
“으……이……이게……”
자신보다 다섯 배는 커 보이는 상대.
엄청난 덩치와 옷 너머로 드러난 울룩불룩한 근육.
시뻘겋게 빛나는 두 눈에서는 섬뜩한 안광이 흘러넘치고, 길게 찢어진 입에서는 새까만 연기가 흘러나왔다.
이길 수 없다─
그런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오래 전의 기억.
자신이 한 없는 약자이던 시절의 공포가 다시금 그를 덮쳤다.
“으아……! 사,살려주세요!”
뒤늦게 눈을 감아 봤지만 소용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두 귀를 막아도 상대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미칠 듯한 공포에 그가 벌벌 떨며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사회자의 목소리가 그의 두 귀에 울려퍼졌다.
[그만!]
“……”
그리고 동시에, 은가람은 공포 잔상의 전개를 거두었다.
“흐윽……흑……”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는 백승태.
그의 바지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
“저거 또 저러네…… 에휴, 진짜저 놈은 적당히라는 게………어…?”
은가람의 경기를 관람하던 현화.
한숨을 내쉬던 그녀는 문득 무언가를 느끼고는 경기장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정확히는 월영 아카데미가 있는 방향.
그녀는 다급하게 자신의 짐을 챙겼다.
“뭐시여? 뭔 일인겨?”
“진우 쌤, 저 먼저아카데미에 가 있을게요!”
“엥? 아직 경기 한창 진행중인디?”
“나중에 결과 알려줘요! 지금은 연구실에 급한 일이 생겨서……”
“아따, 뭔 일인디? 어?!”
한진우의 외침을 뒤로 하고, 현화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도 않는 공간이동 마법까지 사용해 가면서.
순식간에 아카데미에 도착한 그녀는 연구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후우……”
잠시 호흡을 고른 그녀는 한쪽 의자를 당겨앉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좀 괜찮니?”
그녀의 앞에는 아직 15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녀가 누운 채로 눈을 뜨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한국의 월영 아카데미. 헌터 양성 아카데미라고 하면 알겠지?”
“……”
소녀는 잠시 눈을 굴려 현화를바라보더니, 다시금천장으로 시선을 옮겼다.
낮게 한숨을내쉬는 그녀.
이내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왜 나를 살린 거야?”
평생을 몸담아 오던 코사노스트라에서 버려진 라우라.
이제는 살아갈 의미마저 잃은 그녀였다.
그녀에게 현화는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어떤 철 없는 꼬맹이가 부탁했거든. 반드시 살려 달라고.”
*
“아이고, 속 시원하다!”
경기장을 나서며 그렇게 내뱉었다.
물론, 백골단 놈들한테 들으라고 한 소리였고.
내 경기를 본 것인지, 복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한주희가 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겁나 재밌더라? 시작부터 시원하게 갈기던데?”
“재밌었다니 다행이네. 나도 후련했거든.”
“그래도 약속 지켜라? 앙?! 진짜 안 그러면 재미 없을 줄 알아?”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한주희.
나는 어색한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알았어. 재촉하기는.”
나는 곧장 매니저형…… 아니, 헌권 형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어……?”
병실의 문을 열자, 낯익은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푹-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니는 말이다. 인간이 와 그래 적당히가 없는겨, 적당히가? 글마 그거 트라우마 생겨가 제대로 밥이나 쳐묵긋나?”
첫 마디부터 따지고 드는 진우 쌤.
나는 장난스런 미소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래서, 잘못한 건가요?”
그에 그는 언제그랬냐는 듯 얼굴을 피더니, 한 손을 척 들어 보였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잘 혔다! 아주 잘 혔어! 워메, 속이 다 뻥 뚫려브네~!”
“것 봐요.”
헌권 형이 어째서 월영 아카데미에 있는지는 시합 전에 이미 들은 참이었다.
자기 제자가 그렇게 맞고 왔는데, 아무리 유한 성격의 진우 쌤이라도 화가 안 날 리 없지.
‘아니면…… 딱히 유하지도 않은 건가…?’
그런 생각을 삼키며 나는 물었다.
“그러고 보니 현화 쌤은요?”
“응? 아, 거시기…… 아까 뭔 일 생겼다고 먼저 돌아가던디? 아카데미로 간다 카던디…… 나도 잘은 몰러.”
“아아……”
짐작가는 바가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우라가 깨어나기라도 했나보네.’
어린 나이 치고는 꽤나 위험인물이기는 했지만…… 상대가 현화 쌤이라면 문제는 없겠지.
“아니, 근디 니는 여서 뭉개고 있을 시간이 있당가?”
“네……?”
“쫌있으면 다음 종목 시작혀! 퍼뜩퍼뜩 준비혀야지?! 신청해 놓고 안 갈거면 뭐더러 신청혔냐?! 하기야, 좀 전에 경기 보믄 안혀도 되어 븨기는 허다만……”
“아니, 그래도 아직 시간은 20 분이나……”
“잔말 말고 가서 준비 혀!환자 안정 취해야되니께! 가서 딴 놈들 경기도 좀 봐 주고 말여! 아름이나 현진이나!”
“……”
지금 여기서 쌤이 제일 시끄러운데요.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나는 눌러 참았다.
*
“나름 선방하고 있네?”
한아름과 이현진의 활약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혹시나 하는 걱정도 없잖아 있었는데, 확실히 녀석들은 크게 발전한 모습이었다.
“트롤 세 마리면 여덟 명이서 조금 벅찬 정도지만…… 그래도 나름 잘하고 있네.”
두 번째 평가는 단체 레이드전이었다.
아카데미나 학년, 클래스 상관없이 여덟 명이 무작위로 묶이는 팀.
그 여덟 명이서 특정한 마물을 정해 레이드를 하는 식이었기에 단체전임에도 개인적인 성격이 강해 보였다.
‘실상은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냐가 중요하겠지만……’
레이드의 대상 몹을 고르는 것부터 그랬다.
우선은 상대하고자 하는 몬스터를 하나씩 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정한 8가지의 몬스터 중, 랜덤으로 하나의 카드가 선택되며, 구성원들은 그렇게 정해진 몬스터를 상대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개인이 잘 풀어나가더라도 결국 레이드에 실패하면 영락없이 최저 점수.
때문에 처음 주어지는 10분간의 시간 동안 말을 잘 맞추느냐가 관건이었다.
‘뭐…… 나도적당히 하면 되겠지.’
한아름과 이현진의 레이드가 끝나고, 몇 번의 레이드가 더 진행된 후, 마침내 내 이름이 불려졌다.
‘감지.’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며 나는 가장 먼저 감지 스킬을 사용해 나머지 인원들의 전투력을 파악했다.
‘전체적으로 월영 기준 B클래스…… A클래스 한 명에 C클래스 두 명인가.’
나는 입매를 말아올렸다.
“다들 잘 해 보자!”
“내 주특기는 원거리 마법이니까 나는 뒤쪽에서 지원을……”
“나는 탱커 계열이긴 한데, 솔직히 그리 강하지는 않아.”
“그러면……”
주어진 10분의 시간동안 빠르게 진행된 대화.
나는 건성으로 그들의 질문에만 대답하며 시간을 떼웠다.
그렇게 우리가 정한 레이드 몹은 거구를 가진 오우거 다섯 마리.
트롤과 같은 등급을 가진 개체였다.
[자, 그러면 우선은 각자의 카드 확인하겠습니다!]
스크린에 뒷면으로 비쳐지던 여덟 장의 카드가 하나씩 뒤집어졌다.
앞서 그랬듯이, 똑같은 그림이 그려진 카드가 계속 되었고……
[어……? 하,한 장이다르군요!]
“뭐?!”
“어떻게 된 거야?”
“누구야?”
예상대로 패닉하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야 강한 녀석이 나오면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