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73. 터뜨렸다 (73/114)



〈 73화 〉73. 터뜨렸다

7장의 오우거 카드와, 1장의 베히모스 카드.

은가람을 제외한 7명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베히모스라니?! 미친 거 아냐?”

“대체 누구냐고? 너 아냐?”

“아냐! 내가 왜 그런 짓을 해?”

“그럼 대체 누가……?”

서로 말을 섞던 그들은 한 쪽에서 유난히 조용한 은가람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해맑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은가람.


“맞아, 나야.”

“미친놈아!”


베히모스는 상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였다.

거대한몸집과 그에 맞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

고작해야 여덟 명으로 어떻게 해 볼 만한 상대가 아닌 것이다.

분노를 터뜨리는 그들에게,은가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그래? 상급 몬스터일 수록점수는 더 잘 받을 수 있잖아?”

“그거야 잡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고!”

물론, 나타나는 것은 진짜 몬스터가 아니었다.

몬스터의 모습을투영한 환영일 뿐.


당장 크게 다치더라도 환영이 사라지고 나면 말끔하게 돌아오고, 죽더라도 일시적으로 퇴장되는 것일 뿐, 정말로 목숨을 잃는게 아니었다.


그러나 레이드의 실패와 포기는 최하점수로 직결된다.

어떤 몬스터를 불러내더라도 그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냐, 아직 희망은 있어!”

“그렇지? 8분의 1 확률이야. 설마 걸릴  없잖아?”

“아직까지 속단하기는 일러.”

그들은 애써 좋은 면만을 바라보았다.

‘뭐…… 걸리면 좋은 거고, 아니더라도 상관은 없지.’


지금 상태로 오우거 정도면 손쉽게 제압할  있으니까.


저마다 다른 생각을 안고 그들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8장의 카드가 뒤섞이는 광경을 바라보며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어…? 베,베히모스! 레이드 목표로 베히모스가 걸렸습니다!]


“씨발!!”


‘오, 개꿀?’

희비가 갈렸다.


“개새끼야, 어떻게 할 거야?!”

“우리가 저걸 무슨 수로 잡냐고!”

은가람에게 욕설을 퍼붓는 7명의 인원들과,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은가람.

그는 뭐가 문제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의도적으로 말 꼬리를 늘리면서.


“예에~? 나는 상관 없는데요~? 어차피 나는 이미 대인전에서 우승한 상태라서~”


진지함이나, 미안함이라고는 전혀찾아볼  없는 그의 뻔뻔한 태도에 7명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존나 이기적인 쓰레기새끼!”

“미친놈 때문에 이게 뭐야?!”

“왜 그래들? 이기면 그만아니냐~?”

“이길 수 없으니까 문제라고!”


“아, 그런가아?”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은가람은  앞에 실시간으로 떠오르는 시스템창을 바라보았다.


[김상현_의 분노를 감지합니다]
[이재희_의 분노를 감지합니다]

.
.
.


[은가람]근력: 476(1082) 민첩: 520(1184)
마력: 393(894) 체력: 439(998)


[현재 제약_56%]

‘아, 달달~하다!’

*


“대체…… 왜 이러는 거지?”

차분하게가라앉은 목소리.

그러나 그녀의 어조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짙게 녹아들어 있었다.

“왜냐니? 말해 줬잖아?”

“……”

현화의 말을 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직전 봤던 뒷모습.

‘서현’이라는 이름의 소년의 부탁으로, 그녀가 자신을 살린 것이라고.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살았어. 더 이상 호의를 베풀 필요는 없지 않아?”

“뭐?”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오는말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질문에 현화는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이지 애늙은이가 따로 없네…’

 편으로는 그 점이 마음 아프기도 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살아났다고 끝이 아니잖아? 듣기로는 너…… 코사 노스트라에서 버림 받았다면서.”

“……”

“어른된 사람으로서, 고작해야 15살도  어린아이를 두고 볼  없는 것 뿐이야.”


거기까지말하던 그녀는 문득 무언가에 생각이 미치고는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15살 맞나? 몇 살이었지?”

“……14살이다.”

“아, 14살이구나. 여튼!”


그녀는 막 다 끓은 차를 컵에 따라 그녀의 앞쪽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오갈데 없는 어린애를 그냥 죽게 버려두는…… 더군다나 살려달라는 부탁까지 받았는데도 그러는 사람은 없어.”


찻잔을 쥔 라우라의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아래쪽을 응시하는 그녀의 두 눈은 쉴새없이 떨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믿을 수 없어.”

“응…?”

“살면서 수백이 넘는 사람들을 죽여왔어. 다른 사람에게 나는 두려움의 대상. 마녀. 그 이상도이하도 아니라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그녀.

“그런 나를 동정한다고?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

“어차피 너도 그놈들과 다르지는 않을 거야. 이해하는 척 하지만…… 결국 이해하지 못한다고.”

─이런 고통은.

이제껏 그 누구에게도 말해본 적 없는 아픔이었다.

현화는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데?”

“……뭐?”

“그렇잖아? 뭔지 말을 해 줘야 이해하든 말든 하지.”

라우라의 미간에 약간의 주름이 잡혔다.

그녀는 한쪽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거칠게 걷어내며 말했다.


“이것 보라고! 나는 어차피 태어나면서 마녀였어! 그게사실이든 아니든, 태어날 때 부터 돌연변이인 채인 나를…… 대체 어떻게 이해한다는 건데…?”


악을 지르는 것으로 시작했던 그녀의말 끝은 조금씩 잦아들어, 약간의 떨림마저 동반하고 있었다.


현화는 고개를 저었다.


“나야 이해 못할 수도 있겠지.”

“하……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체념하듯 말을 내뱉는 라우라.


“하지만, 너를 이해해 줄 사람이 있다면? 너와 아주 비슷한 사람이라면…… 다르지 않을까?”

“궤변이야. 나같은 사람이……  있을  없어.”


현화는 안쓰러운 감정으로 라우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무서운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어린 애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구나.’


아직은 따스한 손길이 더 필요한 나이.

현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네. 그렇게 원한다면 불러줄게!”

“……?”

의아해하는 라우라를 두고, 현화는 한쪽에서 스마트폰을 가져왔다.

아니, 손을 뻗자 스마트폰이 허공을 날아 그녀의 손에 안착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전화를 거는 그녀.

서현에게로였다.

그리고……


삐리리리-

“……어?”


같은 연구실에서, 서현의 벨소리가 울려퍼졌다.

“난 이미  있어.”

분명 아무도 없던 공간에서, 돌연 그의 모습이 생겨났다.

“뭐야, 언제부터 있었냐?”

“……조금 전 부터.”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서현.

그를 마주한 라우라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여기있어. 태어날 때 부터 돌연변이인 사람.”

“……”

“어렸을  부터 버림받고, 그런 나를 돌봐 준 유일한 가족마저 잃은 사람이.”


은발의 소년과 백발의 소녀가, 마침내 서로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

처음으로 같은 아픔을 공유한 이를 만난 라우라.

한참동안, 그녀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제껏 참아왔던울분을 터뜨리듯, 처음으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스스로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녀.


간신히 울음을 진정한 그녀는 현화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냐.”

“뭐? 아니라니…… 분명 그 때 둘  죽인 걸로 알고 있는데?”

과연 14살 짜리 어린 아이와 나눠도 되는 주제인가 싶었지만, 그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살바토리오와 알론조가 죽었어도…… 코사 노스트라가 죽은 건 아니라고.”

“그거야그렇겠지. 규모가 큰 조직이니까. 그래도 녀석들이 죽은 이상 얼마 가지는 못할 거야. 지도자가 바뀐다고 해도…… 이전처럼 날뛰지는 못하겠지.”

한주희와 은가람은 분명 그들의 죽음을 확인했다.

같은 고위 인사이던 죠마르 역시도 마인화가 진행된 후 서연의 손에 죽었고, 라우라는 그들에게 버림받은 상태.

외부로부터 거래를 하기 위해 온 백여 명의 사람들까지 고스란히 죽었으니, 그들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칠 게 분명했다.


그러나 라우라는 고개를 저었다.


“지도자는 안 죽었어. 정작 가장 위험한 녀석은…… 놈이야.”

“그 놈…? 또 있었다고?”

살면서 처음으로, 그녀는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베르톨도 프로벤차노. 코사 노스트라의 유일무이한 지도자이자, 실질적인 전력이라고 봐야 할 거야.”

*

“베히모스?! 미친  아니야?”

“아아, 저건 볼 필요도 없겠어.”

“저 녀석…… 아까 개인 대전에서 우승하더니 막나가네.”

“에휴…… 다른 녀석들만불쌍하지.”

경기장의 안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마수의 모습을 보며, 관중들은 혀를 찼다.


“저 녀석들은내일이나 모레쯤 재시합 해야겠네…”
“그러면 공정성에  문제가 있지 않으려나?”

“중복 참가야 뭐 상관없지 않나?”
“하기야, 그것도 그렇지.”

“이번으로 다음이없다면 모르겠지만…… 다음번에도 열린다면 이런 점은 좀 어떻게 해 줘야  것 같아.”

“저런 또라이가 또 있겠냐만은……”


여지껏전례가 없던 규모의 행사인 만큼, 주최 측의 빈틈에 고개를 젓는 이들도 많았다.

사람들의 동정어린 시선을 받으며 경기장 안의 8명…… 아니, 은가람을 제외한 7명은 마음을 다잡았다.


“어쩔  없어! 이렇게  이상 할 수 있는데까지 해 봐야해!”

“어쩄든 8명이니까……  보면 또 모른다고!”

“……”

7명의 시선이 은가람에게로 박혔다.

그들의 표정에는 불신의 감정이 가득했다.

순전히 재미를 위해 참가한 듯한 은가람.

그도 전력에 포함시켜야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를 입 밖으로 내뱉는 이는 없었다.


“시작한다…… 해 보자!”

누군가의 패기어린 외침과 함께 베히모스의 실체화가 완료되었다.


[크아아아아아!!]

경기장이 떠나갈 듯 한 포효와 함께 시작된 평가.

콰앙!

“으악?!”

“조심해!”

쾅! 콰과가각!!

파지지직- 번쩍!


지축을 울리는 엄청난굉음과, 사방으로 튀어오르는 돌조각들.


머리 위로 돋아난  개의 뿔에서간간히쏘아지는 고압력의 전격마법.

모두가 예견했던 대로, 그들은 도망다니는데 전력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그 자리에서 전투불능 상태에 빠져버릴 테니까.

“어이구~ 위험해라. 오옷! 큰일 날 뻔!”

아비규환을 방불케하는 그 속에서 은가람만이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내며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이거…… 괜찮을까요?”

레이드가 시작된 지 채 1분이 지나지 않은 시각.

심사위원 중 한 명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죽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공정한 경기라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모르겠는데……”

“그건 저도 같은생각이네요.  조는 아예 기준을 바꾸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뭐…… 3분 버티기 같은 식으로…”

“……그것도 힘들어 보이긴 합니다만…”

“공정성에도 문제가 있고…”



은가람의 돌발행동에 심사위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때.

전력으로 도망다니던 7명은 온갖 욕설을 뱉어내며 생각을 모았다.

“이,이러다간 끝이 없어!”

“어쩔 수 없다……그냥 포기하는게 맞다고.”

“으악?! 후우…… 나도 동감이야! 이건 그냥 시간낭비에 체력낭비라고!”

이러나 저러나 결과에 변함은 없다.

그렇다면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가며 체력을 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문제는 저 자식인데……!’

포기할  포기하더라도,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라도 이번 일의 원흉인 은가람에게 한 방 먹여야만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은 은밀하게수신호를 교환했다.

‘놈이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려!’

‘우리가 먼저 시선을 끌게.’

‘그리고 놈이 죽고 나면 곧바로 포기하자고.’

이미 점수 따위는 포기한지 오래.

그들은조금씩 은가람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은가람은……


[김상현_외 7명의 동료가 당신의 행동에 살의를 느낍니다.]

[김상현_외 7명의 동료가 당신의 죽음을 바랍니다.]

‘아이고, 달달하다~!’


속으로 좋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베히모스가 한창 날뛰고 있는 경기장의 밖.

검정색의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  누군가가 안쪽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여긴가……”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 않아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가진 고유의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헌터에게서는 저마다 고유의 마력파장을 띠고 있었다.

그 차이가 너무도 미미해 웬만한 S급 헌터라도  차이를느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마력에 상당히 민감해진 그는 분명하게 그 차이를 짚어낼  있었다.

“은가람…… 여기서 죽여주마! 다른 떨거지 놈들까지도!!”

조용히,하지만  글자씩 씹어내뱉든 중얼거리는 남자.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끈적한 살기를 갈무리하며, 그는 경기장 안쪽으로걸음을 옮겼다.

십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인 경기장이었기에 인파 속으로 숨어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헌터가 많다는 것은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모든 사람들이 덤비더라도 자신이 이기리라고 그는 확신했다.


‘때마침 무대 안쪽이라? 모두가 보는 가운데서 죽여주지!’

자신의 모든 것을 뺏아간 은가람을 노려보며, 그는  손에 마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그 때-

덥썩!


“…?!”


한 여성이 그의 팔을붙잡았다.

“야,넌 뭐하는 새끼냐? 뒤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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