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45화 - 누구나 다 계획은 가지고 있지
후욱- 퍼억!
“크핫……카하핫!”
부들부들 떨면서도 웃음을 흘리는 이현진.
기괴함마저 느껴지는 그 광경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은가람은 목청을 높였다.
“그만 해, 이 새끼야!”
현진…… 아니, 그를 조종하고 있는 에이전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금 칼을 집어든다.
그러고는망설임 없이, 자신의 팔을 그어내렸다.
스악!
촤악!
“꺄아악!”
“저,저러다 죽는 거 아냐?!”
“경찰 불러!”
이미 거리는 현진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붉게 점철되어있었다.
은가람과 은서현, 한아름 그리고 한주희가 필사적으로 막고 있기는 했지만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탓에 한계가 있었다.
“젠장, 그냥 죽여버리면 안되냐?!”
“언니!! 안된다니까!?”
“크흐흐…… 왜들 그러시나? 나는 전혀 안 아픈데 말야?”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채로, 현진은 자해를 하고 있었다.
“어디, 눈 하나 정도는 없어도되지 않을까?”
“미친새끼……!”
자신의 눈에 칼을 꽂아넣으려는 현진의 팔을, 은가람은 사정없이 후려쳤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현진의 팔이 인간의한계를 벗어난 각도로 꺾였다.
“하하핫……! 이거, 어떻게 하냐? 팔이 부러져 버렸는데?”
그렇게 말하는 그의 온 몸은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통각을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몸의 반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현진의 몸은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입매를 말아올리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 곧 다 죽여주마!어디로 도망가든, 내가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하진 마라!”
“……염병할 놈…”
“실컷 욕하라고. 어차피 그래봐야 너희는 이 놈을 살릴 수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는 뒤쪽으로 몸을 뺐다.
무리한 움직임에 근육이 찢어져 나갔지만, 그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몸이 아니었으니까.
“그거 아냐? 비록 내가 제어하고 있기는 해도, 이 녀석의 정신이 사라지는 건 아냐. 어쩌면 지금도 이 통증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는 말이지.”
“뭐라고……?”
“그러면 어떻게 될까? 미쳐버리는 것도 나름 볼만할 텐데.”
그렇게 말하며 그는 손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아쉽네. 이 녀석은 여기서 먼저 죽여버려야 할 테니까.”
숙주의 정신을 붕괴시키는 것도 나름 볼만하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눈 앞의녀석들이 더 거슬렸다.
친구가 눈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더 구미가 당겼다.
그는 손에 쥔 칼을 자신의 목에 깊숙히 찔러 넣었다.
“안돼!!”
달려들어 막기에는 애매한거리.
은가람이 땅을 박차기는 했지만, 그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커어억……!!”
“……?”
돌연, 이현진의 몸이 그 자리에 굳었다.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숨소리가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어……어떻게……?!”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부릅뜨는 현진.
그러나 그의 눈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현진의 시선이 아니라, 에이전트 자신의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이다!”
“제압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은가람은 현진에게 달려들어 그를 제압했다.
앞서 미친듯이 저항했던 것과 달리, 그의 몸은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조금 전 까지의 사투가 무색할 정도로 쉽게 쓰러지는 현진.
정신을 잃은 녀석을 바라보며, 은가람은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아오! 이 똘빡새끼, 진짜!”
탁!
가볍게 그의 머리를 때린 그는, 상처투성이인 그를 들어 건물 안쪽으로 옮겼다.
*
“끄아아악! 제,제기랄……? 대체 어떻게!!”
머리가 다 까진 60대의 노인.
자신의 은신처로 쳐들어온 여성을 바라보며 그는 악을 질렀다.
“네년이! 대체 어떻게!! 왜여기에 있는 거야!”
그의 앞에는 현존하는 가장 강한 마법사라고도 일컬어지는 여성- 차현화가 서 있었다.
“그건 너같은 놈이 알 거 없고.”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 됐었는데!”
후욱- 파지지직!
현화의 손 끝에서 검은빛을 머금은 번개가 그를 강타했다.
“끄아아아아악!”
신체를 조각내는 듯한 격한 통증에 그는 몸을 뒤틀었다.
그런 그를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며 현화는 한쪽 책상에 걸터 앉았다.
“에이전트라고 하길래 조금 더 스마트한 모습을 예상했는데…… 이건 뭐,다 죽어가는 노망난영감이었잖아?”
“크으윽……!”
“그 나이 쳐먹고아직도 인정을 바라고 있다니, 너도 참 불쌍하다? 뭐,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지만.”
한심하다는 듯이그렇게 중얼거리는 현화.
얼굴을 팍 구기며 에이전트는 소리쳤다.
“니가 뭔데…… 니가 뭔데 나를 판단해!!”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며 한쪽으로 손을 뻗는 그.
빈틈을 보이는 지금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자신의 도구를 이용하면 제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손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콰아앙!!
“에휴……”
그러나 그는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산화되어 버렸다.
현화의 마법이고스란히 적중한 것이다.
그가 생각하던 ‘마법사’로서의 한계를, 현화는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단백질이 타들어가는 퀴퀴한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며, 현화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두어 번의 통화음 끝에, 은가람이 전화를 받았다.
“거긴 어때? 이현진은?”
[다행이 목숨에 지장은 없어요. 당분간 깨어나지는 못할 것 같지만요.]
“그래……”
[선생님은 괜찮아요? 뭐, 제가 걱정할 처지가 아니긴 하지만……]
은가람의 말에 그녀는 빛 하나 들어오지 않던 어두운 방 안을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조금 있다가 그리로 갈게. 일단 여기를 한 번 정리해야 할 것 같아.”
*
[에이전트의 생명반응이 사라졌다.]
[멍청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에이전트의 죽음을 접한 코사 노스트라의 일원들은 낮게 혀를 찼다.
자신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가져다주던 에이전트였으나,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정보원은 차고 넘쳤으니까.
[그래도 한동안은 조심해야겠군. 한국에서 펼치고 있던 건들은 다 철수해야겠어.]
[확실히 그래야겠군. 뭐, 어차피 그리 많은 투자를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보다는 그 실험에 더 기대가 가는군.]
[그래. 오히려 그 쪽이 메인요리지 않나.]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채로, 그들은 저마다의 화면 앞에서 입매를 말아올렸다.
에이전트나 에반스 같은 말단 녀석들의 실수 따위야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그래도 이진명이 중태라는 사실은 꽤나 잘 써먹을 수 있겠어?]
[그걸 생각하면, 에이전트는에반스같은 덜 떨어진 놈 보다는 약간 낫군.]
[뭐, 딱 그정도이긴 하지만.]
잠시 웃음을 흘리던 그들은 조금은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일단, 그 꼬맹이는 예의주시 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그저 그런 학생 정도로 볼 게 아닌 건 확실하더군.]
[그래 봐야 이제 갓 입학한 놈이 얼마나 강하겠냐 싶지만.]
가소롭다는 듯이 말하는 누군가.
나머지 일원들은 그를 나무랐다.
[자중해라, G. 누누이 말했을 텐데? 적을 얕보지 말라고.]
[아아, 알았다고. 뭘 훈수야?]
[조용히들 해라.]
조금씩 커져 가는 언성에 누군가가 한 마디로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그의 화면에는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까만 색의 실루엣만이 비치고 있었으나,그 이름에는 라고 적혀 있었다.
[머지 않아 우리들의시대가 온다. 조급해 하지 말고 차분하게…… 그러나 완벽하게 준비해라. 너희들에게 실수는 용납되지 않으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들의 대답을 끝으로, 화면은 하나 둘 씩 꺼져갔다.
*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카페.
오후 내내 경찰들과 한 바탕 소란을 겪은 은가람 일행은 겨우 사정을 설명하고 풀려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동양인인 그들을 어느정도 무시하기는 했으나, 이내 현화의 얼굴을 알아보고는태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물론, 은가람과 차현화의 유창한 이탈리아어 역시도 한 몫 했다.
그들은 현화의 입에서 나온 ‘코사 노스트라’라는 단어 한 마디에 기겁하고는 다급하게 조서 작성을 끝마쳤다.
“일을 그런 식으로 해도 되나 모르겠네.”
한아름의 말에 현화가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잖아. 그 사람들한테는 다른 세계 이야기인 헌터 협회보다, 가까운 마피아가 더 무서울 테니까.”
“그런가…… 그래도 요즘에는 헌터 협회의 입지가 높은 편 아니었어요? 그래도 인류를 위해 싸우는 중인데……”
“쿨럭……!”
“……?”
그녀의 말에 은가람은 차를 마시다 말고 기침을 내뱉었다.
사레가 제대로 들린 것인지 몇 번이나 헛기침을 내뱉던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한아름에게 되물었다.
“누가 인류를 위해싸운다고……?”
“왜 그래? 당연히 헌터 협회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는 마물들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게 바로 헌터잖아?”
“흐음……”
그에 은가람과 현화는 같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리고 현화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음료를 입으로가져다 댔다.
어린 학생의 동심을 깨는 것은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책임을 떠맡은 것은 은가람이었다.
“아름이 네 말은 맞기도하지만, 정확하게는 조금달라.”
“응? 뭐가?”
“물론, 던전브레이크가 벌어지면 많은 사람이 죽는 것도 맞고, 게이트 너머의 마물들은 위험하지. 하지만…… 지금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무슨 소리야?”
“쉽게 말해서, 던전 브레이크는 그저 ‘산재’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지. 지금 사람들이 게이트를 넘어가는 건, 그로부터 얻는 자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물론, 타워를 등반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런 말을 은가람은 속으로 삼켰다.
그에 한아름은 충격을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허억…… 그,그래도…… 헌터 협회는 뭔가 히어로……”
“라기보다는 거대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더 가깝지?”
“……”
눈에 띄게 시무룩해지는 한아름.
그런 그녀를 보던현화는 화제를 바꿨다.
“아무튼, 일단은 이렇다 할 단서가 없을 것 같네. 놈의 은신처를 이잡듯 뒤져 봤는데, 치밀하게도 코사 노스트라에 관한 건 다 사라져 있더라고.”
“역시 그런가요……”
“유일하게 남아 있던 거라고 해 봐야…… ‘BSAMG’라는 다섯 글자 뿐이었어.”
“흐음……”
영어로도, 이탈리아 어로도 아무런 의미를 찾기 힘든 단어.
아니, 실존하는 단어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은가람은 스마트폰의 메모장에 그를 옮겨적으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현진은 저렇게 둬도 괜찮겠죠?”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진.
그는 현화가 데려 온 사람과 함께 숙소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를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전부 이 곳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고.
“일단은 믿을 수 있는 몇 안되는사람이니까.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비록 말단이긴 하겠지만,놈들도 이걸로 한동안은 잠잠할 거야. 괜히 힘빼지 말고 회복하는데 전념하는게 좋겠지.”
그녀의 말에 은가람과 한아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 한 마디 없이 모카를 마시는 서현과, 관심 없다는 듯 의자를 뒤로 기울이며 늘어져 있는 한주희.
그들을 돌아보던 현화는 웃으며 말했다.
“모처럼이니까, 여행 온 기분이라도 느끼는게 어때?”
“……네?”
“엉?”
“뭐……?”
분위기와 전혀 맞지 않는 그 말에 한아름과 한주희, 그리고 은서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은가람은……
“저희 처음부터 여행 온 건데요? 일하러 온 게 아니라.”
태연하게대답하며 자신의 음료를 마저 마셨다.
*
“가람이도 참 불쌍하네……”
“그 놈이 불쌍할 게 뭐 있냐? 본래 능력있는 놈이 다 그렇지.”
“언니도 S급이면 꽤 능력 있는 편 아냐?”
한아름의 질문에 한주희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난 머리 쓰는 타입은 아니라서 상관없어.”
“……그래……”
도대체 어떻게 S급으로 올라갔나 싶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녀의 신체조건을 생각하면 그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한아름이었다.
그녀의 옆에서 은서현 역시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머리 쓸 상은 아니지.”
“귀엽네, 우리 꼬맹이.”
“꼬맹이라고 하지 마라, 뒤진다?!”
“제발…… 둘 다 그러지 좀 마.”
“……쳇.”
“……”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하던 은서현은 그녀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동생에게 유난히 약한 한주희 역시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현재 그들은 차현화와 은가람과는 떨어져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차현화가 은가람만 끌고 가 버린 것이었지만.
극구 거부하는 은가람을 질질 끌고 가면서도, ‘여행을 즐기라’는 말과 함께 통역 마법을 걸어 준 차현화였다.
“벌써부터 논문이라…… 대단하네, 가람이는.”
마치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듯한 기분.
멀기만 한 그 감각에 한아름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이야~ 이쁜이끼리 이렇게 다니는 거야?”
“혹시 자매? 이 꼬맹이는 동생이냐?”
“이 병신들아. 중국인이잖아. 알아 듣겠냐?”
여섯 명의 건장한 남성들이 그들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사실 언어가 뭐가 중요하냐?”
“하긴, 그렇지? 맛만 좋으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주희와 한아름의 몸을 위 아래로 훑어보던남자들.
그런 그들을 향해, 한주희가 한 마디를 건냈다.
그녀의 표정에는 묘한 기대감과 흥분이 서려 있었다.
“니들…… 지금 시비거는 거지?”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한아름은 턱- 하고이마를 짚었다.
‘언니 또 눈 돌아갔네.’